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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11장 37-41절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것(1)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7.03.20|조회수1,253 목록 댓글 0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것(1)

 

누가복음 1137-41/ 37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9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본문을 비롯하여 54절까지 계속되는 내용에서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외식을 책망하는 내용을 대하면서 바리새인처럼 외식하며 살지 말자는 생각을 갖는 것에서 바리새인이 행했던 것들, 예컨대 본문에서 보는 손을 씻는 행위라든지 잔과 대접을 씻는 행위라든지 하는 따위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을 바리새인처 럼 외식하지 않고, 바리새인처럼 살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표면적인 억제요 금지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해 왔던 일들을 더 이상 행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이 하는 행위에서 보시고 있는 외식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요 그러한 행위에 있는 모습을 본받지 말라는 것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손을 씻는 행위라든지 잔과 대접을 깨끗이 씻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따위의 행위들을 하지 말라는 금지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가져나가는 것을 가지고 외식하는 것에 있어나가는 잘못을 예수께서는 따르지 말라는 것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본문인 누가복음 11장 37-41절은 누가복음 11장 37-54절의 일부인데, 전체 구절은 비교적 긴 구절인 17절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의 병행구절인 마태복음은 23장 전체 39절중에서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36절의 긴 구절에서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가복음 12장에서는 3절에 불과한 짧은 구절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중에서 누가복음 1137-41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것에 한해서 그 내용과 이것 이 지닌 의미를 설명함으로써 예수께서 알게 해주시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보도록 합니다.

 

이에 본문에서 예수께서 해 주시고 있는 말씀이 무엇인지 그 내용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앞서에서 말씀하신 등불 비유를 마치실 때 한 바리새인이 자기 집에서 음식을 대접하겠다며 와 주실 것을 예수께 청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러겠다며 쾌히 응하시고는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의 집에 당도한 예수님은 유대인의 관습인 손 씻는 의식을 지키지 않고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유대인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기 전에 먼저 손 씻는 의식인 정결의식을 행하는 것이 조상 때부터 해온 오랜 관습의 전통입니다. 이는 본래 이스라엘이나 근동의 민족들은 식사를 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수저나 저분, 또는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포크와 나이프 등의 도구 없이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었기 때문에 식사 전에는 의례 손을 씻음으로써 위생에 주의하는 관례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이면 누구나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손 씻는 일부터 당연히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기를 겪은 이후에 이러한 관례가 거룩함에 이르는 정결 의식으로 정해져 하나의 유전이 되었습니다. 모세 율법에는 정결 규례가 있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장막에 불러들임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그들 또한 거룩함에 있게 되는데, 여기에는 속죄제물의 희생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덮고 있는 것은 그들을 부정으로부터 벗어난 정결(거룩)의 은혜입니다. 이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게 하시는 것에서 하나님은 각종 짐승을 깨끗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으로 구별해 놓으셨습니다.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은 정결한 짐승으로 먹을 수 있게 하였으며, 낙타, 사반(오소리), 토끼와 같이 새김질만 하고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지지 않은 짐승이나 돼지 굽은 두 쪽으로 갈라졌으되 새김질을 하지 않는 짐승은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짐승, 그리고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길짐승 가운데에서 발바닥으로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짐승, 땅 위에서 기어 다니는 짐승도 부정한 짐승으로 규정하면서 이런 동물의 사체는 만지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민물고기이든 바닷물고기이든 물고기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정결한 것으로 먹을 수 있게 하였으며,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먹을 수 없는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경우 문둥병(각종 피부병), 아들을 출산하거나 달거리를 하여 피를 유출한 여인, 성병에 걸림으로 고름이 나는 자, 성행위에 의해 정액 유출과 그 접촉에 있은 남녀 및 성행위 없이도 정액 유출이 있은 자는 부정하며, 시신을 가까이 하며 접촉하는 것도 부정하다고 규정하여 그 부정으로부터 벗어나 깨끗할 거세서 정결 의식을 치르게 하였습니다. 이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범죄에 해당하는 부정한 행위에 있은데 따른 정결 의식을 갖는 것에서가 아니라, 동물의 상태 또는 사람의 신체상에 일어나는 특이함을 가지고서 이스라엘 백성이 정결할 때와 부정한 때를 여러 규례로 정함으로써 부정하게 되는 때와 정결하게 되는 때의 구별에 있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속죄에 있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부정함으로 부정한 자로 있게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정결함으로 정결한 자에 있게 하실 것을 예시하여 주시는 것인데, 이는 장차 메시야 사역을 통해 정결케 하실 일의 예시로 삼는 일을 하시는 것에서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이 부정하다고 규정된 각종 규례에 해당할 경우 이것으로부터 정결 의식을 행하게 하여 자신을 깨끗함에 있을 수 있게 함으로써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정결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항상 자신을 살펴 돌아보는 것이 되게 하였습니다(10-15).

 

그런데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서기관들은 이 정결 규례에 근거하여서 손 씻는 규례라든지 잔과 대접을 씻는 규례라든지 등도 만들어 정결 규례로 삼고 이를 지켜오는 전통을 세운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오랜 세월을 이 전통을 따르며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동에서 바리새인은 매우 의아하게 생각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유대인의 관습인 손 씻는 의식을 지키지 않고 바로 식탁에 앉으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신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의아하게 여기는 것을 아시고는 그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너희 바리새인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너희 속은 착취와 악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그러나 속에 있는 것들로 자선을 베풀어라. 보아라, 그러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으니,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가 이것들도 행하고 저것들도 버리지 말아야 했다. 너희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으니, 너희가 회당에서 높은 곳에 앉는 것과 장터에서 인사 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화가 있으니, 너희가 드러나지 않은 무덤과 같아서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알지 못한다."(11:39-44, 바른성경)

 

바리새인은 정결의식을 따르는 손을 씻는 의식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는데, 이는 예수님을 부정한 자로 보는 것에서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바리새인들이 실상은 어떤 자들인지를 알려 주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씻지만 속은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속은 탐욕과 악독이 가득 차 있어서 더럽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겉은 바리새인이 정결 의식을 따르는 것에서 행한 손을 씻는 의식에서 보는 몸(신체), 그리고 39절에서 예수께서 언급하신 잔과 대접의 겉을 이릅니다. 그리고 속은 사람의 속, 곧 마음을 이릅니다. 예수님은 잔과 대접의 겉과 사람의 속마음을 대비시켜서 진정 깨끗하게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잔과 대접은 단지 먼지, 티끌로 더러워 있을 뿐입니다. 이건 말이죠. 물로 매번 씻으면 한동안은 깨끗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속마음은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여 언제나 부패한 악취가 풍겨나는 더러움에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속마음은 탐욕과 악독으로 온통 더럽혀 있지만 이를 깨끗하게 하지 않고 단지 잔과 대접을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에서 자신이 깨끗해 있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손을 씻고 잔과 대접을 깨끗이 씻는 것에서 자신들이 깨끗하는 줄로 알고 있는 정결 의식은 본래 율법이 명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장로들의 유전, 그러니까 장로들의 전통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관습이었습니다.

 

이 장로들의 유전에서 손을 씻는 행위라든지 잔과 대접을 씻는 행위는 정결 규례에 속하는 것인데, 이번의 경우와 유사한 사건인 마가복음 73-4절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 몇 사람이 예수님을 멸시하며 비난하는 것에서 한 말인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라고 말하여 정결에 관한 전통과 관습들이 매우 많았으며, 이것들을 엄격히 지켜 왔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개역한글에서는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라고 말하여 부지런히 자주 씻는 행위를 가졌으며,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으니 씻는 행위를 갖는 것에서 정결의 규례를 열심히 지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 초청을 받고 그 집 식탁에 앉으면서 장로들의 유전을 따름에 있는 손을 씻는 정결 의식을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은 것은 그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그가 보고 갖는 의문에 갖고 이상히 여기게 하는 것을 통하여 그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데, 이를 놔두고서 단지 손을 씻고 잔과 대접을 씻는 의식을 지켜 행하여서 사람이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이냐며, 손을 씻고 잔과 대접을 씻는 그들은 자신의 속마음도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할 것인데, 사람이 깨끗하려면 그들 안에 그들을 만드신 주께서 계셔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을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표현하여 말한 것은 마가복음 76-13절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하신 말씀인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 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이러하기에 예수님은 그의 겉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의 속까지도 다 만드시지 않았느냐는 수사 의문문을 사용하여서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겉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속도 만들었는데, 바리새인은 이 사실을 잊고서 사람의 보이지 않는 속의 정결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단지 종교적 형식 준수를 지켜 가는 것에서 겉만 깨끗하게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정결한 자가 되게 하는 건인양 잘못 알고 있기에 외식에 있어 나갔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라고 크게 책망하시면서,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라고 책망하신 후 이어서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라고 하신 말씀은 그들의 마음이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하신 말씀에서 볼 때, 그리고 그것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실상인 속마음은 재물을 취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서슴없이 폐하기까지 하고 그렇게 해서 취한 재물을 축적하는 것에 있다고 하신 말씀에서 볼 때 그들의 그러한 악한 죄에서 떠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라는 의미에서 하신 것이며, 그에 대한 실행으로 자신의 가진 것을 그가 부정하게 취함으로 애통함에 있는 자들에게 돌려주며 또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는 그가 백성의 선생으로서 알고 있으며 가르침에 있어야 하는 주님을 따르며 섬김에 그들의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여 힘을 기울일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임에 다름 아닙니다. 이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입으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경외함에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생명인 영생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구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8:22)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9:5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19: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10:21)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18:22)

 

바리새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있는 우리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주님으로 오셔서 우리 겉만 아니라 속도 만드신 그 모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겉이 예수님을 따르며 입술에 하나님을 경외함을 담고 있는 깨끗함에 있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타락한 사람의 본성인 부패한 죄성에 의해 탐욕과 악독이 가득 찬 우리 속마음을 예수께서 차지하고서 십자가에서 구속하신 피공로로 깨끗함에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말이죠. 입술로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한 행위를 가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속마음에서도 그 마음을 차지하고서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나가게 하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고후 5:17).

 

우리가 말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모든 부정으로부터 깨끗케 하시는 구원을 베풀어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리고 예수께서 이 일을 위해 우리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기 전에 살아오던 방식인 자신의 육체를 위해 보이는 세상의 것이 전부인 옛사람에 대해서는 죽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이죠. 예수님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생각이나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며 또한 우리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 일은 그만두고서 이제는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를 소망 중에 바라보며 예수께 가진 믿음에 진실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자들로 함께 교회를 이루고 있으니 자신의 유 익을 위해서가 아닌 예수께로부터 공급되는 사랑의 힘에 서로 의지하며 함께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악의 세력에 대하여 서로를 보호하고 살피며 이겨나가며 주께 믿음을 뿌리를 깊게 내려 견고히 서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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