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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45-52절 / 화 있을 것이다, 너희 율법교사여!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7.05.14|조회수1,103 목록 댓글 0

화 있을 것이다, 너희 율법교사여!

 

누가복음 1145-52/ 45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52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없는 외식에 있는 바리새인을 화 있을 것임을 거듭하여 말씀하시자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말했습니다.“선생님, 어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그러자 예수님은 바리새인에게 말씀하셨듯이 그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화 있을 것이다. 너희 율법교사여!”예수께서 율법교사에게 이처럼 말씀하여 그들에게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것에 사용된 단어는 앞서 바리새인들에게도 같은 말씀을 해 오신 것인데,  기본적으로는 슬픔의 탄성, 또는 분노와 절망의 탄성을 자아내는 의성적 감탄사로,‘슬프다’,‘오호라를 뜻하는 것으로 그들이 받을 심판의 성격에서 사용되어 저주하시는 말씀으로 나타날 때저주를 받을 것이다’,‘화가 있을 것이다가 됩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에게 그랬듯이 율법교사들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함으로 화를 당할 것임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을 통해서 율법교사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 상태인지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처럼 화가 왜 있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첫째, 율법교사들은 지킬 수 없는 힘든 짐을 사람들이 짊어지게 해 놓고는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도 그 짐에 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법교사는율법사’, 또는서기관’,‘랍비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본래 율법을 필사하는 것을 비롯해서 공적 자료를 기록하고 이를 필사하며 보존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들은 율법에 정통했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은 점차 확대되어 율법을 해석하였으며 또한 이를 교육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들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법률과 신학에 대한 답을 주며 전통을 수호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이 지킬 수 없는 힘든 짐을 사람들이 짊어지게 해 놓고는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도 그 짐에 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의지기 힘든 짐을 혹자는 율법이라고 말합니다만,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을 근거로 해서 만든 장로들의 유전과 이것을 해석한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42절에서 보게 되는 바인 심지어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에 대한 십일조 규정을 세부적으로 제정하였으며, 그 결과 당시의 유대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땔나무까지도 계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너무나도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어 복잡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일일이 기억하여 지키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정작 율법교사 자신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지기 힘든 짐을 한 손가락도 대지 않는다는 것은 손가락 하나조차 가볍게 만지거나 살짝 건드리는 것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백성들에게는 율법의 의무를 무겁게 부과하지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전혀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또는 백성들이 부과된 율법의 의무를 지키기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며 매우 힘들어할 때도 그들은 그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무관심으로 지나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모든 의미를 다 의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율법교사는 말입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인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이신 예수께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어 받들어 따름에 있게 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지식의 열쇠를 그들 자신으로부터 치워버렸습니다. 그런 그들은 자기 자신들도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들어가고자 하는 것도 막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교사의 이러한 행동은 실상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의적인 뜻과는 전혀 다른, 오히려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를 배척하고 대립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으로 있는 모든 계명은 죄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실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공의와 자비(사랑/긍휼)의 메시야법으로 있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그런데 율법교사들이 백성들에게 지게 한 장로들의 유전과 이것의 해석을 따르게 한 짐에는 이것을 빼버리고 계명의 준수만을 요구함으로 엄격하고도 철저히 지켜야만 하는 의무와 이것의 이행 여부에 따른 책임만이 남게 하므로 백성들의 어깨를 무거운 짐으로 짊어지게 하여 수고와 고생에 있게 하였으며, 그 마음은 짓이겨지는 억눌림으로 고통을 겪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섬김에 있는 백성들의 신앙에는 장로들의 유전을 대하며 일생을 지켜나가는 것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여 따라가는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계율주의적 신앙만이 남았습니다. 그러기에 율법교사를 따르는 유대인들의 신앙에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는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에게 선언했던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게 된 이유입니다.

 

둘째, 그들은 선지자들을 죽인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여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다며, 이러한 행동은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는 다음의 여러 한글 번역들에서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증인이 되어 너희 조상들의 행위를 인정하고 있으니, 그들은 그 선지자들을 죽였고 너희들은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바른성경)

 

그래서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저지른 일을 인정하고 찬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기 때문이다.(우리말성경)

 

그렇게 해서 너희는 너희 조상들의 소행에 대한 증인이 되었고 또 그 소행을 두둔하고 있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 무덤을 꾸미고 있으니 말이다.(쉬운성경)

 

결국 너희는 조상들이 행한 것에 대한 증인이 되고 거기에 동조한다. 그것은 너희 조상들은 죽였고 너희는 무덤을 만들기 때문이다.(현대인의성경)

 

살인자들아! 너희는 조상들이 저지른 행실을 옳다 하고 그들이 한 짓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현대어성경)

 

진실로 너희는 증인이 되어 너희 조상이 하는 일에 찬동하나니 이는 그들은 참으로 그 선지자들을 죽였고, 또 너희는 그 선지자들의 묘를 세웠기 때문이라.(한글킹제임스)

 

그들은 참으로 대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들의 돌무덤을 만드나니 그러므로 진실로 너희가 너희 조상들의 행위를 인정함을 증언하는도다.(킹제임스흠정역)

 

그렇게 함으로써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증언하며 찬동하는 것이다. 너희의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는데,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세우기 때문이다.(새번역성경)

 

 

그렇게 해서 너희는 너희 조상들의 소행에 대한 증인이 되었고 또 그 소행을 두둔하고 있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 무덤을 꾸미고 있으니 말이다.(공동번역)

 

이 내용을 보면, 예수님은 율법교사들은 조상들이 저지른 죄악의 행위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켜 그 전철을 밟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조상들의 행위를 옳게 여겨 자신들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에서 똑같이 예수님을 죽이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들의 가식이 숨어 있습니다. 율법교사들이 자신들의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행위를 옳다고 여겨 동조하는 것에서였는데, 이를 마태복음 29-31절에는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함께 서기관, 곧 율법교사들이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묘비)을 꾸민다는 것은 그들을 추모한다는 것에서 입니다. 이 추모는 말이죠. 선지자와 의인을 죽인 조상들이 저지른 일의 잘못을 알고 이를 기억하며 후손들인 자신들은 다시는 그 같은 길을 걷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다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만. 그러한 것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의 이해는 다음 두 국가의 사례에 의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차이에서 알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저지른 만행 중에 가장 큰 것이 유대인 학살 정책이었습니다. 유대인을 가스에 의해 대량 학살하였는데 최초의 가스 대량학살은 19423월 벨제크 수용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포로수용소는 하루에 15,000명을 죽일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194112월까지 히틀러는 약 870만 명의 유대인을 그의 통치하에 두고 있었는데, 종전까지 그들 중 대략 600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이 중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만 200만 명이 학살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1953년에 건립된 추모 박물관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나치정권 하에서 학살당한 600만 유대인을 기억하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기념관의 이름은 기억이란 뜻의 야드 바쉠’(Yad Vashem)입니다. 히틀러에 의해 저질러진 유대인 대량 학살 만행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라는 뜻에서 입니다. 그런데 단지 그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독일로부터 유대인이 입은 피해에 치를 떨며 분노하는 것에서 기억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야드 바쉠’(기억)을 기념관 명칭으로 삼은 것은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말라는 것에서입니다. 홀로코스트(holocaust: 대학살)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고, 다시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1990년대 중반부터 확장 공사를 시작해, 10년 만인 2005315ʻ야드 바쉠 홀로코스트 박물관ʼ(Yad Vashem Holocaust History Museum)을 다시 개관하고서는 전시관 출구 옆 야드 바쉠 전시실 2층 동판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새겨 넣었습니다.

 

ʻʻForgetfulness leads to exile, while remembrance is the secret of redemption.ʼʼ(망각은 포로 상태로 이어지나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

 

또한 기념관 출입구에는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고 뼈만 앙상히 남은 물고기가 기념관을 찾는 방문객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데, 그 곁엔 다음과 같은 표어가 적혀 있습니다.

 

ʻʻForgive, but remember.ʼʼ(용서하라, 그러나 기억하라/잊지 말라)

 

이런 독일에 반해, 일제치하 동안에 우리나라에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은 이런 모습을 전혀 갖지 않고 있으며, 전후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상황에 의해 전범이 안치된 신사를 찾아 추모 형식의 참배를 통해 오히려 숭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 기간에 동원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잘못에 대한 인정과 그에 대한 반성, 그리고 용서를 구함이 우리 국민의 납득과 그로 인한 용납에 이르지를 못하고 있어 지금까지도위안부의 미해결문제로 남아 계속되고 있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유대인들처럼용서한다, 그러나 잊지 않는다는 입장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교사가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과 의인들의 무덤을 다시 쌓아 만들고 그 묘비를 세우는 것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조상들이 그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죽이며 저지른 악행에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이를 잊지 않고 생각하여 조상들이 걸었던 길을 다시는 걷지 않을 것에서가 아닙니다. 이들은 말이죠. 선지자들의 무덤들을 세우고, 의인들의 기념비들을 장식하며 하는 말이 우리가 조상들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는 일에 함께 가담하지는(되풀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23:30) 라고 합니다만, 이것이 거짓인 것은 자신들을 옳게 보이려는 것일 뿐 그들의 마음은 외식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어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말이죠. 그들 자신이 조상들의 증인이 되어 그들의 행위를 두둔하며 인정하고 그들이 한 짓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그러니 너희 조상의 분량을 너희가 채워라.”(23:32) 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말이죠.“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여라.”라는 것이요,“너희는 그들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밟아 가고 그들의 악을 다 채우고 있다(채우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인지요. 예수께서는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35절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를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는아벨이라고만 기록하였으나 마태는의인 아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가는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라고만 기록하였으나 마태는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라고 하였습니다. 아벨은 구약성경의 처음 책인 창세기에서 첫 번째 죽임을 당한 인물입니다.“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11:4)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벨은 제사에 의한 그의 믿음에 있는 의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첫 번째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인 바라갸의 아들로 제사장의 계열에 있는 사가랴1)는 유대인의 구약성경 분류에서 마지막 책인 역대기하에서 의로운 죽임을 당한 마지막 사람으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요아스왕에게 백성들의 우상 숭배를 엄히 꾸짖는 직언을 함으로써 제단과 성전 사이, 곧 성전 뜰 안에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대하 24:20-22). 따라서“(의인)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바라갸의 아들)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는 유대인들의 구약성경(히브리성경) 분류에 의한 처음 책인 창세기의 아벨로부터 마지막 책인 역대기하의 사가랴에 이르기까지, 곧 구약 모든 성경에 이르기까지 의로운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율법교사(유대인)의 조상들이 해 왔다는 것인데, 그렇게 땅 위에서흘린’2) 의로운 피는 예수님 당시에도 계속해서 쏟아질 것이며 또한 그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쏟아질 것이어서 율법교사와 그들의 악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서 행해집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조상들을 그대로 따르는 행위는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가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전한 세례요한을 죽인데 이어서 예수님을 배척하며 죽일 것을 모의하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요구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는 것으로 행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악행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 사도들에게도 계속되어 박해하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하나님의 지혜가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하심으로 자신이 하는 말이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되어질 일임을 나타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3)에서의하나님의 지혜지혜로우신 하나님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지혜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사도들을 자기 백성들에게 보낼 것인데, 그들 중 얼마는 죽이고 얼마는 박해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종들을 죽여 온 책임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은 조상들과 함께 저질러온 악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는 말이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에서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27:25) 라고 말하는 것으로 실현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지나간 세대의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이 모든 세대에 내려질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전개되고 있는 내용에서 바리새인에 이어 율법교사의 외식을 대합니다. 그들은 바리새인의 외식과 이에 대한 심판의 저주를 선언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들의 상태를 알고 조상들이 저질러왔던 악행에 가담해왔던 것에서 돌이킴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바라봄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교사들은 예수님을 비난하며 예수님을 책잡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악독과 탐욕이 가득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으니, 이런 그들의 상태를 예수님은 하나하나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회칠한 무덤’, 곧 아름답게 장식한 무덤 같다고 하시면서 겉은 좋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거룩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온갖 위선과 죄가 가득 차 있다고 하셨습니다(23:27-28). 이렇게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의 위선된 행동은 죄에 따른 것이요 그 속에는 죽음의 비참뿐인 것이 여실히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받을 하나님의 심판의 중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저주받은 존재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없이 외식뿐인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서는 바리새인으로, 그리고 율법교사로 회칠함으로 있어 자신의 속마음을 감출지라도 온갖 위선과 죄가 가득 차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뿐인 저주받은 사람의 실상을 보여주고 이를 말해줄 뿐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이들에게서 예수님이 함께 하셔서 그들의 죄를 낱낱이 들추어 드러내주실 때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지요. 임박한 진노를 인하여, 그래서 메시야가 오시면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덮칠 그들의 죄를 인하여 예수님이 죽음을 당하신 피 값이 아니겠는지요. 해서 말입니다. 울며 통곡이 끊어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큰 고통의 불행을 겪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없는 자에게서는 그 일을 겪을지라도 그것의 진정성을 알지 못하며, 그것의 진지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존재인 사람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 구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구주되심을 온 세상에 나타내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의 주가 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권능을 힘입음으로 우리는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우산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 안에서는 죄의 위협으로부터도 자유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또한 그의 다시 살아나심이 있게 되어서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으며,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이 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입니다. 예수 앞에서 드러난 숨겨있는 죄인 된 사람이 예수 안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게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소유, 곧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자라고 불림을 받는 성도입니다(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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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대하 24의 기록에 의하면 사가랴는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 또는 사가랴의 아버지 바라갸로 말해지고 있지 않다. 사가랴의 아버지는 이름이 바라갸가 아닌 여호야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상의 족보 기록이 3대 이상의 할아버지를 아버지의 위치로 기록하기도 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가랴의 아버지는 바라갸이며 여호야다는 사가랴의 할아버지, 곧 조부일 가능성이 크다. 여호야다는 130세에 죽었으므로(대하 24:15) 사가랴의 조부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2)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에서의 흘린은 과거적 의미로  밖으로 흘러나오다’, ‘쏟다는 의미를 지닌 것인데, 분사 현재 수동태로서 현재까지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를 의미한다. 이는 아벨로부터 시작된 의인을 죽임으로 쏟는 피가 성전 뜰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는 주께서 심판주로 오심으로써 악한 자를 처벌함으로 비로소 멈출 것이어서 세상 끝날까지 계속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3) 마태복음 2334절은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예언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지혜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성령)의 붙잡힘에 의한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늘에 관한 지혜에 대하여 말하는 자들이니, 곧 온 세상을 죄로부터 구원할 구주와 그분의 나라를 전파하는 자들이다. 또한 서기관들은 단어 자체는 바리새인들과 함께 나오는 서기관, 곧 율법교사를 지칭하나, 여기서의 서기관은 예수님의 심한 책망에 있는 서기관들이 아니라 예수께서 보내시는 서기관으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그 의미를 바르게 교육하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들’(13:52)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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