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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12장 49-53절 /세상에 불을 던지러 오신 예수님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7.07.26|조회수1,439 목록 댓글 0

세상에 불을 던지러 오신 예수님

 

누가복음 1249-53 / 49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세상에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그 목적을 여러 차례 알려 주셨었는데, 본문에서는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는 말씀으로 해 주셨습니다.“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내가 세상에 불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요, 이는내가 세상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불을 지피기 위해서/불을 지르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하실 것을 심히 원하고 원하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그처럼 세상에 불을 붙임으로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이미 불 붙어 활활 타올랐으면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를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는, 오직 이것만을 바랐다는 것이요, 그에 따라서 예수께서 세상에 붙일 불이 이미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곧 불이 타오르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심히 원하고 원하신 세상에 활활 타오르게 붙인 불은 무엇인지요.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어왔습니다. 성령, 또는 성령의 능력을 말한다고 하기도 하고, 심판을 말한다고 하기도 하고, 신자와 불신자 간에 조성되는 적대감이나 이로 인한 성도의 고난을 의미한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지금까지 예수께서 말씀해 오신 내용과 함께 본문에 의한 문맥적인 의미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함에 있는 제자들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일어나게 되는 일인 종말론적인 정화와 심판을 가리키는 묵시적 용어로 이해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구함에 있게 하심으로 세상에 전파되어가는 하나님 나라는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034절에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에서의 성격을 띠는데, 아들, , 며느리로 말해지는 누군가에게는 사람 앞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시인함에 있게 하는 것이요, 아버지, 어머니, 시어머니로 말해지는 누군가에게는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부인함에 있게 하여 예수님을 시인하는 자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간에불화/분쟁하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시인함에 있는 마음에 있게 하는 것은 그 사람 안에서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따름에 있게 하시는 정결(정화)케 하시는 은혜로운 사역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마음에서는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부패한 죄성에 내버려두심으로 더욱 완고하며 완악함으로 예수님을 배척하여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심판을 쌓게 됩니다.

 

이에 예수님은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다.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말이죠. 예수님은 가족 간에 자식이 부모도 모르고 부모가 자식을 자식으로 취급하지 않고 다툼을 갖는 가족 불화를 일으킨다는 것에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사람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을 환영하여 주로 맞아들이는 정결함에 있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한 하나님의 한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여기에는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 한 무리, 한 백성, 한 자녀가 될 수 없었던, 그래서 이들 사이에 결코 화목이니 화평이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었던 유대인과 이방인간에 놓인 벽이 허물어져 없어지는 일이 일어나니깐요. 이는 가족 간에서도 발생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기 이전에는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하는 하나 됨이 없었습니다. 땅에서 먼지요 티끌로 흩어짐에 있는 관계일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가족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함으로 현세에서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영원히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을 이룸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함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일어나게 되는 일인 종말론적인 정화(정결)에 의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정결하여 그 마음이 깨끗함에 있는 자를 다시는 그 깨끗함을 잃어 더러움에 있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다.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입니다. 여기서의분쟁불화이기도 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시인하며 주로 섬겨 따름의 믿음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고 반대 당하는 것에서 분쟁, 또는 불화가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여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여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부정한 마음에 있게 붙잡는 것에 대해 무릇 그 정결한 마음을 지키는 것에서 분쟁이요 불화가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분쟁, 불화가 일어나는 매일 일어나는 현장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무릇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시인하며 믿음의 주로 섬김으로 해서 다름 아닌 이것의 반대에 있게 하는 자신의 육과에 있게 되는 싸움에서 대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육은 언제든지 용암을 분출할 수 있는 활화산과 같습니다. 악한 욕망이 분출하는 죄의 본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육입니다. 이를 잘 알게 해 주고 있는 것이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7장에서 이 사실을 말해줍니다. 뒷장인 7장에서부터 설명하면, 유대인은 하나님을 믿는 자신들에게 선이 있다고 보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 아래 있는 사람, 곧 유대인을 염두에 두고서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는 존재인지를 말합니다. 사람은 육신에 선한 것이 없으므로 선을 행하는 것도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을 원하면서도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사람 속에 거하는 것은 선이 아닌 죄인 까닭입니다. 이렇게 선을 행하기 원하는 사람에게 악이 함께 있습니다. 이렇게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그의 몸속에서는 그가 가진 그러한 생각의 마음에 있는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도록 싸우는 죄가 있어 그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이 죄가 사람을 사망으로 이끌고 갑니다. 사람은 죄값인 사망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참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탄식에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죄에서 해방시키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셔서 주께서 하시는 일에 믿음을 가지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항상 감사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사망의 악한 죄에서 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이죠. 이제는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그 결과로 거룩한 사람이 되었으며 마침내 영생, 곧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해서 말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는 우리는 어떤 인식 속에서 살아야겠는지요. 이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 6장입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한 우리는 이제는 죄의 지배를 받아 죽고 결국 죽고 말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여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사는 악의 도구가 되어 살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로서 오직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의로우신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사는 사람으로 쓰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우리에 대하여 죄는 아무런 힘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장악하고 죄가 쏘는 독에 어떤 상처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죄의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의 법 아래에 있는 우리입니다. 이런 우리는 이제 누구에게 순종하는 종으로 자신을 내주어야겠는지요.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의 종은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구함에 있으며 이를 위하여 사는 의로운 자로 살게 하신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야겠습니다. 이제는 말이죠.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구함이 없이 탐심에 이끌려 우리 몸을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부정과 불법을 일삼는 악한 죄의 그림자를 밟는 행동은 부끄러워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가져오는 마지막은 사망인 것이며, 이는 우리에게 맺어질 열매가 아닌데 그 속에 끼여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일 것이 무엇인지요.

 

앞서 예수님은 삼가 탐심을 물리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행복이 그가 탐심을 품고 있는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은 것이며, 무릇 사람이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복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아무런 생각도 마음도 없이 사는 몸이란 참으로 의로우며, 진실로 선함을 죄에게 두 손 바쳐 가져다 바치는 꼴입니다. 그렇게 살아야서야 되겠는지요. 이에 대한 갈등에 의한 분쟁, 불화가 우리 마음에서 늘 일어나 우리 몸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게 하여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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