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의 수태 고지(告知)에 대한 사가랴의 믿음
누가복음 1장 18-23절, 67-79절 / 18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19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20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21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22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23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67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1. 누가복음의 첫 번째 이야기 : (세례)요한의 수태 고지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또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이 전해준 그대로를 기록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며, 자신도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면밀히 조사해 보고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두를 데오빌로에게도 그를 위해 차례대로 이야기해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데오빌로는 누가가 이야기 해주려는 내용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만, 누가는 그가 이미 듣고 있는 모든 사실이 참되다는 사실을 다시 확증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전해 주고자 한 것에서 가장 먼저 기록한 것은 세례 요한의 출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것을 통해서 알려주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전 제사장단 중에 아비야 반열에 속하는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에게 있은 세례 요한의 출생은 성령님에 의해서 되어진 일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출생으로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는 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고 많은 사람도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이는 그가 엘리야의 심령으로 주님보다 먼저 와서 그분을 영접하도록 많은 사람들을 준비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들의 아버지께로 돌이켜 나아오게 할 것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그의 자식들에게 두며, 복종하지 않는 자식들을 아버지를 따르는 슬기에 있게 할 것이었습니다. 이것에서 알려주시고 있는 세례요한의 임무는 주의 큰 날 이전에 앞서 와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참조 행 2: 20)
이에 사가랴가 제사장단 반열의 순서를 따라서 자기의 차례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일을 하게 되고, 제사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은 결과에 의해서 성소에 들어가 주님 앞에 분향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 그에게 나타난 주의 사자가 그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2. 요한의 수태 고지에 의해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사가랴의 믿음이 있게 하심
(1) 사가랴의 질문
주의 사자가 사가랴에게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할 것을 알려 주자 사가랴는 천사에게 말하였습니다.“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아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과연 그 일이 가능이나 하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이는 6개월 후에 있을 사가랴의 친족인 마리아에게 일어날 예수님의 출생과 관련해서 마리아가 천사에게 한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때 주의 사자인 천사는“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하여라<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하면서, 그 말을 듣고 놀라 주의 사자가 내게 어찌 이런 인사를 하는지 어리둥절하는 마리아에게“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려질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실 것이니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천사에게 말하기를,“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한 마리아에게 주의 사자는“성령께서 네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네게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알려주면서 이를 알려주는 천사가 전하는 말을 마리아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미 일어난 일인“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은 나이에 아기를 가졌다. 사람들은 엘리사벳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 하였으나, 그가 임신한지 이미 여섯 달이나 되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나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마리아는“보십시오, 나는 주의 여종입니다. 하오니, 주께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나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이 말이 있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습니다(눅 1:26-38).
이 일이 있기 전의 사가랴 또한 주의 사자인 천사가 자신에게 있을 일을 전하였을 때 이를 받아들이지를 못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주의 사자를 못 믿어서이거나 주의 사자가 전하는 주의 말씀을 불신앙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은 사가랴에게 있어선 참으로 기쁘고 즐거움에 있게 하는 소식입니다. 나이 많아 늙게 되기까지 아들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이젠 아들을 낳을 기대를 가질 수 없는 나이에 이르렀으니 말입니다. 그런 자신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니 그에게서는 참으로 놀랍고 큰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은데 아들이 있을 것이라니요?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라고 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주의 사자를 뵙고, 주의 사자가 전하는 주의 말씀이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는데, 자신에게 있는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거듭남의 경이로움에 대하여“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태어나야 하는 것인가?”하는 불가능에 당면하고 있는 것처럼, 나이 많아 늙은 사가랴가 아들을 낳는 것은 저 옛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주의 사자로부터 전해 듣고는“내가 늙어 이미 경수가 끊어졌고 남편 아브라함도 나이 많아 늙었는데 어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3. 사가랴의 믿음의 동인(動因)인 성령의 함께 하심과 하나님의 능력
사가랴는 자신에게 아들이 있을 것에 대한 주의 사자의 고지에 대해서 아직은 자신의 육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한에서 주께서 하실 일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한계에 매여 있기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는 일을 주께서는 하고자 하시는 것을 마음에 두고 있지를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사가랴가 나이 많아 늙고 엘리사벳 또한 그럴지라도 주께서는 그들에게 하실 일을 인하여 아들이 있게 하실 것에 그들의 육체인 몸을 복종케 하십니다.“성령께서 네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며,“네게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실 것인데, 사가랴는 자신과 엘리사벳에게 일어날 일이 이렇게 되어질 것임에 대한 이해에 아직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은데 그러한 몸에 어떻게 아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며,“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란 육체에 있다는 것을 사가랴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사자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서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따라서 주의 사자가 전하는 말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께서는 그러한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성령님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그 육체에 아들이 있게 하실 것임을 전하며, 사가랴를 주님과 주님이 하실 일에 복종케 해나가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그가 섬기는 주님에 의해서 성령님이 함께 하실 것과 그로 인하여 그에게 일어날 주님이 하실 일인 그에게 아들이 있을 것에 대하여 믿음에 있게 하셨습니다.
4. 사가랴의 찬양에서 나타내신 믿음의 내용
이 믿음에 있은 사가랴는 후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들이 있게 하신 것은 그의 친족인 마리아를 통해서 위로부터 돋는 해를 통해서 어둠과 죄악의 그늘에 있는 백성에게 비추는 빛으로 오신 구주이신 예수님을 보내신 것과 관련이 있는 것임을 알고서, 이스라엘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돌보셔서 죄로부터 용서하여 구원하심으로 죄에서 해방시키실 구원 얻는 진리를 알게 하실 것으로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를 마침내 신실히 이루신 것이라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눅 1:67-79).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5. 끝맺는 말
주의 사자가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알려주고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르게 한 것에 따르는 사가랴의 믿음이 말해지고 있습니다. 사가랴가 주의 사자의 지시를 그대로 따를 뿐만 아니라 마침내 요한을 낳고서 그가 행한 하나님을 찬양한 것에서 말해주고 있는 믿음은 그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해 오면서 믿음으로 가져온 메시야 언약에 이스라엘이 있은 것에서였습니다. 제사의 직무에 언약되어 있는 죄 사함의 구원은 아브라함과 그리고 다윗 왕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하나님의 신실성이 마침내 온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빛 가운데로 나오는 자마다 죄 사함에 있게 하시는 주의 구원을 볼 것이었습니다. 이 믿음에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통해서 사가랴가 안고 있는 육을 쳐 복종케 하십니다.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나이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문제인, 그래서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육의 상태를 인정하게 하여 이러한 자기 부정에 있게 하는 것을 통해서 그 육을 통해서 능히 행하시는 성령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존하게 하십니다. 사가랴의 찬양은 그렇게 해서 사가랴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믿음이 있게 한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나타내어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것은 사가랴에게 임하신 성령님이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쳐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여 그분을 따르게 하시는 은혜를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는 마치 밧데리(건전지) 모양으로 시간이 흐르고 날이 지나면서 점차 희미해지고 떨어져 없어져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 이르면“성령충만하게 해 달라”며 다시 충전하여야만 다시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은혜를 입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 몸을 쳐 복종케 함에 있습니다. 우리를 날마다 쳐 하나님에게 복종시켜 나감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사람의 힘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인 하나님에게 있게 해 나감이 우리 육에서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것을 겪고 있습니다. 주께서 오실 그 날까지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서 참으로 힘(권세)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행하여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