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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13장 1-5절 /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7.09.03|조회수1,043 목록 댓글 0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누가복음 131-5/ 1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총독 빌라도는 갈릴리 출신의 유대인 몇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드릴 때 그들을 처형하여 그들의 피를 그들이 드리던 희생제물의 피와 섞어 물들게 하였습니다. 총독 빌라도가 이렇게 학살을 자행한 것은 학살을 당한 자들이 로마에 대적하는 행위를 하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 비참한 사건을 두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뒤숭숭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어 사람이 예수께 찾아와서는 있었던 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이 일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자 해서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그 갈릴리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보다 더 악한 죄인이라서 그 같은 일을 당하였겠느냐? 그렇지 않다. 너희는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너희도 너희 악한 길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실로암 탑이 무너졌을 때 깔려 죽은 열여덟 사람은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그들이 예루살렘에 살던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악한 죄인들이었기 때문이겠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사람들이 총독 빌라도가 행한 일을 놓고 설왕설래 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 희생제물을 드린 갈릴리 출신의 유대인 몇 사람이 죽임이 당한 것 때문입니다. 이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로마에 맞서 싸우고 예루살렘 성전에 희생제물을 드리다가 그리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로운 일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일을 놓고어떻게 그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 의로운 자가 어떻게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악해서 그렇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반대로, 다른 갈릴리 사람들은 총독 빌라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선해서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인가 할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당시에 있었던 실로암 망대 사건과 비교하였습니다. 실로암은 예루살렘 성벽의 남동쪽 구석 가까이에 있는 못[저수지]인데, 이곳에 망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망대가 무너져 열여덟 명이 깔려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죽은 열여덟 명은 그곳에 있었던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더 악해서 그렇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다른 많은 사람들은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은 열여덟 명보다 더 선해서 깔려 죽는 해를 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해 주신 것은 죄의 정도 차이에 의해서 사람이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살아남기도 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에서입니다. 예수님은 말이죠. 자신이 하는 말을 잘 들을 것을 말씀하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악한 길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에 있지 않으면 총독 빌라도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게서 보고, 또는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은 사람들에게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 지금은 총독 빌라도의 칼에서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악한 길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에 있지 않으면 그들 모두는 산 목숨이 아닌 죽은 목숨이라는 것입니다. 갈릴리 출신의 유대인 몇 사람이 총독 빌라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여 그 피가 예루살렘 성전의 희생제물의 피와 함께 섞인 것처럼 멸망당할 것이며, 무너진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은 열여덟 명처럼 그렇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해 주신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에 있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에 있는 악한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를 하지 않는 악한 죄인이 받을 종말론적 멸망을 내다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죽음을 대하면서 죽은 사람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이 많습니다. 죄가 많아 저렇게 죽었다니, 어쩌니 하면서 말입니다. 의로운 사람이면 하나님께서 저렇게 죽도록 하셨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또는 죽임을 당한 사람이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인지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인지를 놓고서도 말합니다. 총독 빌라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의 경우는, 아마도 그들이 한 처사 - 로마에 대항하는 것 - 가 유대인을 위한 것이요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는 의로움에 있는 사람인데, 그런 그들의 피가 희생제물의 피와 함께 섞이는 일을 당한 것에서 이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알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러한 사건을 들어서 무리들에게 하시고 싶은 이야기를 단호하게 말씀합니다.“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도 이들과 같이 되어서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회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전후 문맥에 의해서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탕감의 원리에 의해서 회개를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본문에 앞서 빚진 자 이야기와 관련해서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갖고 있는 죄의 채무를 한 푼 남김없이 하듯이 다 면제(탕감)해 주시겠다는 것을 본문에서는회개하라는 말씀으로 해 주십니다. 회개는 죄 아래 있는 자들에게 일어날 멸망을 그들에게서 영원히 제거되어 없어지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그렇게 탕감해 주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관한 이해를 주시는 말씀을 시편 51편에서 보고자 합니다. 이 시는 다윗이 지은 것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와 그가 한 일에 대하여 책망을 받으며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서 하나님께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1-5)


다윗은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여삐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자신이 저지른 허물로 남아 있는 죄악을 말끔히 씻어 아주 깨끗하게 없애 달라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허물을 잘 알고 있으니 지은 죄가 늘 눈 앞에 어른어른 거려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그런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징벌을 내리시는 것은 백 번 천 번 옳으므로 입이 열 개, 아니 천 개, 만 개라도 아무런 할 말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는 그렇게 죄인된 존재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참으로 중요한 말을 합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죄인이니, 어머니 복중에 있을 때부터 죄 중에 있었다는 여기서 말입니다. 다윗은 죄인된 인간인 인죄론을 언급하는데, 창세기에서의 인죄론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의해 지음 받은 첫사람 아담이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하는 죄의 악함에 의해서 등장하는데, 여기서의 다윗은 그렇게 죄인된 첫사람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의 실상을 알고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통해서 너무나도 뚜렷이 보는 것에서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니 어머니 복중,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죄 중에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사람의 형성은 어머니 뱃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2-3개월 지나면서 얼굴이 형성되고 손 발 모습을 갖추고, 얼굴에 검은 눈동자가 박혀 있고 콧구멍과 입술도 보이고 해서 비로소 사람인 것이 아니죠. 그러한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 전인 남편의 정자와 아내의 난자가 결합되어 하나 된 생명을 이룬 그 순간부터 그 부부와 동일한 사람의 생명이 잉태되고 있는 것이요, 그 사람이 마침내 출생하여 세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해서 말입니다. 사람이 어느 때부터 죄인인지요.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죄인으로 출발하는가 하는 말입니다. 어머니 복중에서 몇 달 되어 사람의 형태를 비로소 갖추어가면서부터 인가요?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인, 사람의 생명이 잉태된 그 때부터입니다. 이것은 말입니다. 사람은 한 사람도 의인이 없으며, 모든 사람은 악한 죄인이라는 인간의 정의에 대해서 사람이 죄인된 것이 그가 저지른 행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교리는 이를죄의 전가 원리에 의해서, 그리고죄인의 대표 원리에 의해서 알려주고 있는데, 하나님께 범죄하여 타락한 이후의 첫사람 아담과 함께 그의 후손으로 오는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여 타락한 이후의 첫사람 아담에게 있는 죄성이 그의 후손으로 오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있는 그 죄성을 인식하고서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여삐 보시고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불쌍히 여겨줄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죄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자신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참으로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빚진 자의 탕감이야기입니다. 진 빚으로 주인의 노여움을 사서 감옥에 갇혀 한 푼 남김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감옥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기에 그렇게 되기 전에 그를 고발하기 위하여 재판관을 찾아가는 돈을 빌려준 주인과 화해하라고 말입니다(12:58-59). 그리고 여기서의화해하라13장에 이르러서는 두 가지의 역사적 실예를 들어서회개하라는 용어로 바뀌어 말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회개에 있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주로 보내셔서 그를 통하여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따름에 있는 순종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하나님의 회개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생명의 주께로 나오게 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게 하시는 은혜에 의해서 회개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갈릴리에서 온 몇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당한 죽음에서 보고, 또한 무너지는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은 사람에게서 보는 모든 사람이 겪는 죽음의 해를 당함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할 것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을 통해서회개하라, 그러면 너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질 것이다를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입니다. 죄의 경중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총독 빌라도의 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든, 무너진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든, 또는 이런 저런 어떤 사건에 의해서 죽든, 자연사 하든, 돌연사 하든, 사람은 죽습니다. 이 죽음을 아무도 피하지 못합니. 그러니 죽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악한 죄인이어서 죽음을 피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는 더 선해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어떤 경중에 있든지 간에, 악한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에 있지 않는 악한 죄에 있으면 사람들은 이 죄로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니 총독 빌라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에나 무너진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은 것에서 사람이 갖는 죽음의 성격을 보고 그 의미를 보고자 할 것이 아닙니다. 그 모두의 죽음에 있어도 악한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온 회개에 있은 사람은 결코 멸망을 겪지 않을 것이니,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총독 빌라도의 칼은 피하고, 무너진 실로암 망대에 깔리는 위험은 피하여 살아 있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멸망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인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가 되어 다시 오셔서 그들의 악한 죄를 심판하여 그들의 죄를 정죄하시고 죽음의 형벌을 판결하실 때 그분이 행하시는 심판으로부터 결코 피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의 관심이 생명의 주로 오신 자신에게 있어야 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과 함께 하심에서를 분간하여 자신들에게 닥쳐올 위기에 대해 경고를 받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은혜의 시대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이 되는 것이겠는지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베풀 은혜를 땅에 그대로 쏟아 내버려짐이 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경에 약속된 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승귀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셔서 온 세상에 생명을 주는 주님이 되시고, 유대인이 거부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방인에게 베풀어주심으로써 유대인에게 약속된 구원의 은혜에 이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의 시기에 있는 유대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서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한몸이 되게 하여 표면적 이스라엘이 아닌 이면적 이스라엘,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믿음에 의한 아브라함의 자손인 참 이스라엘로 있는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9-11).

 

지금까지의 이해에 의해서 예수께서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신 대로 예수님의 이 말씀에 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님이 주시는 경고인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는 위기에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과연 그대로 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경고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이 준비되어 있음을 봅니다.“너희가 총독 빌라도에 의해서 죽은 사람을 보느냐? 또 너희가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은 사람을 보느냐? 너희가 회개하면 그 죽음에서 보는 멸망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를 말씀해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회개에 있는 우리는 죽음의 멸망을 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악한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온 회개에 있는 우리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너희가 회개하라!”에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회개와 믿음[신앙]이란 구원론의 논리적 이해에 의한 순서의 관계는 있을지라도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짐에서는 회개와 믿음의 관계는 같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회개에 있는,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악한 죄인들과 함께 있었던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한분 하나님의 형상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는 교회의 모습에 있는 우리입니다. 광섬유 가닥 하나하나가 모여 꽃의 형상도 이루고 온갖 작품의 형상을 이루어 거기에서 나오는 형형색색의 광채가 나타내 보이는 아름다움을 보듯이 회개에 있는 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 되어 이 전체가 나타내 보이는 생명체는 선하신 하나님의 형상 그 아름다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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