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고치는 이적을 행하심
누가복음 14장 1-6절 / 1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2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예수께서 구속 사역을 해 나가시는 행적에는 자주 안식일에 귀신들리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는 이적을 행하신 일이 말씀되고 있습니다. 앞서 누가복음 13장 10-17절에서는 안식일에 귀신들려 무려 18년 동안이나 중한 병에 걸려서 몸을 똑바로 펴지 못하고 고통 중에 고생하며 지낸 한 여자를 고치시는 이적을 행하셨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다시 안식일에 수종병을 앓아 고생하는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이렇게 안식일에 귀신들리고 병든 자를 고쳐 주시는 일이 자주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안식일에 이 일을 행하심으로써 예수께서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그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어 알게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1. 본문 내용 이해
안식일인 어느 날에 예수님은 음식을 잡수시러 바리새인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어떤 사람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자리 앞에는 수종병을 앓으며 고생하는 병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 지도자를 비롯해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께로 집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지켜봤습니다. 예수께서 수종병을 앓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라도 귀신들려 18년 동안 중병에 걸려서 고생하던 한 여인을 고쳐 주신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만일 이번에도 예수께서 수종병을 앓는 사람을 고쳐 주는 일을 하시면 그것을 트집 잡아서 예수님을 흠내고자 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들이 가진 생각을 아시고는 수종병을 앓는 자를 바라보시며 바리새인과 율법선생들에게 물으셨습니다.“너희가 대답해 보아라.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예수님의 이 물으심에 그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잠잠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수종병을 앓고 있는 병자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시고는 그의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묵묵부답으로 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너희 중에 너희 아들이나 집에서 키우는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이라고 해서 끌어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 안식일이라도 당장에 끌어내지 않겠느냐?”예수님이 이 말씀에 그 누구도 이러쿵 저러쿵 대답하지 못하였습니다.
2. 본문 내용이 지닌 예수님의 구속사적 의미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앞서 누가복음 13장 10-17절에서 안식일에 귀신들려 무려 18년 동안이나 중한 병에 걸려서 몸을 똑바로 펴지 못하고 고통 중에 고생하며 지낸 한 여자를 고치시는 이적을 행하셨을 때 하신 말씀과 매우 같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자신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며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 외식하는 자들아, (1) 너희는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2)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18년 동안이나 사단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이라도 사단으로부터의 매임에서 자유롭게 풀려나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했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의 수종병을 앓고 있는 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시는 것과 관련해서는
(1) 너희 중에 너희 아들이나 집에서 키우는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이라고 해서 끌어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 (2) 안식일이라도 당장에 끌어내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자는 안식일에라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 주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는 것을 통하여 사단의 매임에서 풀어주어 자유에 있게 함으로써 생명을 지켜 그 보전에 있게 하실 것에서, 그리고 후자인 본문에서도 안식일에라도 아들이나 집에서 키우는 소가 우물에 빠져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으면 끌어내어 살릴 것에서 역시 사단의 매임에서 끌어내어 그 생명을 살려낼 것에서 생명을 지켜 그 보전에 있게 하실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안식일에 수종병을 앓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 이적을 행하신 것에서도 사단에 매인 자를 구원하여 생명에 있게 하실 것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선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증거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 안식일에 바리새인의 집에서 수종병을 앓는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의 의도
예수님은 수종병을 앓는 사람을 고치시는 이적을 안식일인 어느 날 바리새인의 지도자의 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셔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고치신‘수종병’은 한글개역개정성경 이전의 번역성경인 한글개역성경에서는‘고창병’이라고 하였었습니다. 이 둘은 같은 성격의 질병입니다만, 본문에서 사람이 앓는 질병으로서는 '고창병'이란 용어는 적절치 않습니다. 이 병은 동물이 앓는 질병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개역개정성경이 사람이 앓는 질병에 해당하는 의학 용어인 '수종병'으로 번역한 것은 잘 한 것입니다. 이 수종병은 신약성경에서 본문에서만 단 한 차례 사용되었습니다. 이 병은 신체의 여러 부위에 물이 고여서 몸이 붓고 살이 썩어가는 병으로서 예수님 당시의 시대에서 유대인들은 이 병이 하나님의 저주에서 비롯된 불치병으로 이 병에 걸린 자는 부정한 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은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하여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와 가까이 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신체에 접촉되었을 경우에는 자신도 부정하게 되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종병은 급성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어 당장 치료해야만 할 화급을 다투는 병이 아닌 만성질병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유전에 의하면 이 병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서 안식일에 치료해서는 안 되는 병이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수종병을 치료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예수께서 고치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것도 말입니다. 안식일에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는 것은 불법이었던, 그래서 안식일에는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될 일인 것을, 예수께서 안식일에 수종병 걸린 사람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종병 걸린 사람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신 것을 두고 우리네 주위의 교회에서 행하는 설교는 대체적으로 수종병을 비롯한 모든 질병 걸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 이름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들이 걸린 병을 깨끗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몰고 갑니다. 그래서 그렇게 될 수 있으니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자신들의 병을 고쳐주실 것을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며, 구하는 자는 구한대로 응답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암이든 또는 다른 불치병이든, 또는 각양의 질병이든, 병만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 여기에 걸고 갑니다. 병을 비롯하여 삶에서 겪고 있는 짓누르는 무게 있는 짐, 그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다 아뢰고 응답 받는 그런 좋은 믿음에 있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을 의사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심지어는 신학생들이 공부하며 또는 성도들이 볼 수 있도록 쓴 책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파일 형식으로 된 책인 성경개론에서는 복음서를 약술한‘예수님의 생애와 교훈(Ⅱ)’에서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1) 구주로서의 예수님 :“예수님은 그의 이름부터가 구주임을 확증하는 예언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생애의 목적이 구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며, 그의 죽음 역시 구주의 죽음이다“이라고 해 놓고서는 또한 (2) 의사로서의 예수님 :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많은 이적을 행하셨고, 그 중의 대부분이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이다. 물론, 당시만 해도 제사장들이 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던 시대다. 그러나 예수께서 병을 고치신 것은 A. 인간들의 고통에 대한 자비심의 발로요, B. 인간세계에서 질병을 추방하실 전능자이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C. 그리고 믿는 자들이 이 축복을 누리게 한 것이다.”라고 설명을 해 놓은 형편입니다.
예수께서 수종병 든 사람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신 것이 그러한 것에서 있는 것이겠는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알고 있다면 이는 참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져나가는 것이라면 그 믿음은 참으로 잘못된 믿음입니다.
수종병을 앓는 사람을 고치는 이적을 예수님이 행하신 것은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바리새인과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율법교사들은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는 치료를 하는 것을 안식일에는 하지 못할 일로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규정에 의해 지키도록 해온 전통에 따라 수종병 걸린 사람을 안식일에는 해서는 안 된다고 대대로 알고 있으며, 그렇게 대대로 백성들에게 가르쳐왔기에,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고쳐 그 병으로부터 풀어 자유하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안식일에는 계속해서 붙잡아 두고 그 얽매임에서 억압 받음에 있게 하는 잘못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수종병 든 병자처럼 각종의 병으로 몸이 고통의 괴로움에 있는 사람은 안식일 규정이 있다는 이유로 안식일에 치료를 통해 병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어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스스로 병을 안고 고통의 괴로움을 겪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에 따라서 안식일 규정이 하나님께서 본래 내신 의도인 하나님의 구원(해방/자유)에서 벗어나 오히려 사람들의 몸과 그 생명을 속박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예수께서 수종병이 든 사람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신 것에는 단지 그의 신체를 피부병으로 억압하고 있던 질병으로부터 풀려나게 하여 자유한 몸으로 자신 있게 살아가게 해 주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이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만 하는‘죄 인식’에 대한 이해에 의한‘죄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야’이해에 의한 믿음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께서 본문에 이르기까지 해 오셨던 구속 사역의 행적 중에서 귀신들렸던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11:14-26), 이번 수종병 걸린 사람을 안식일에 고치셨듯이 또한 안식일에 18년간을 중병에 걸린 여인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시는 것에서(13:10-17) 죄 아래 있는 자들을 사단의 지배 아래 있어 종으로 삼고 있고는 사단에게 매여 있던 자를 사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풀어주는‘사단, 곧 마귀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야’를 알게 해주시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대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율법교사, 그리고 이들의 가르침을 좇는 유대인들은 그 이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예수께서 마지막 방문의 길에 있으신 곳인 예루살렘이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울수록 예수님을 대적하여 배척하며 예수님을 체포하여 죽이려는 음모의 모략이 깊어가는 것에서 그들의 악한 마음은 더욱 완고히 강팎해져 갔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악한 세대에 있는 그들의 유전에 따른 잘못된 관념을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는 것에서 나타내신 본래의 의도로 바로 잡아 주시는 것에서 질문하기를“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질문을 하신 것은 앞서에서 있은 일인 예수께서 회당에서 안식일에 강론 중 18년 동안이나 중한 병에 걸려 있던 한 여자를 고치는 이적을 행하셨을 때 회당장이 크게 분노하며 무리를 향하여 일할 수 있는 날이 한 주간에 엿새씩이나 있으니 그 엿새 동안에 어느 날이고 와서 고쳐달라고 하면 되는데 왜 하필이면 안식일에 고쳐달라고 하느냐면서 안식일에는 안 된다고 하였던 사건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율법교사가 안식일에 자신이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는 이적을 행한 것에 어떤 행동으로 예수님을 대할지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개역성경, 개역개정성경, 카톨릭성경)라고 물으심은“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새번역, 현대어성경, 현대인의성경, 바른성경, 쉬운성경, 우리말성경)또는“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일이 율법에 어긋나느냐? 어긋나지 않느냐?”(공동번역),“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율법에 맞느냐?”(킹제임스흠정역),“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타당한 일이냐?”(한글킹제임스) 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물으심에 그들 중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수종병 걸린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고는 고쳐서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너희 중에서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는데 안식일이라 해서 끌어내지 않고 두 눈 멀쩡히 뜬 채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사람이 있겠느냐? 보는 즉시 우물에 뛰어 내리든 끌어올릴만한 무슨 물건을 갖고 우물에 내려가든지 해서 바로 구원하지 않겠느냐?”그들은 예수님의 이 이야기를 해주심에도 이렇다 저렇다 하는 아무 대답도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궁지로 몰아가기 위해 책잡으며 반박할 어떤 빌미도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을 통해서 죄 아래 있어 마귀의 차지가 되어 있는 자를 구원하시는 것에는 안식일법이 규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엿새간의 창조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끝내셨다는 것에서 안식이 말씀되고 있는 것에 근거하고 있습니다(창 2:2-3). 그리고 또한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이 안식이 이 날을 복 주어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에서 말씀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의 주님이 되시며 피조물은 그분의 다스림에 놓여 있는 것에서 거룩의 복됨에 있습니다. 그러한 안식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안식과는 다르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휴일이 되어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고 하는 개념을 갖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 되었던 430년의 기간을 끝내고 애굽에서 빠져나오게 하신 유월절이 시작된 밤에서 시작되어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출애굽 한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에서 이레 동안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다가 이레째 되는 날은 여호와의 절기로 갖는 무교절을 지키게 하셨으며(출 12:-13:10), 그 절기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섯째 다음 날이 안식일임을 주지시켜 안식일임을 인식할 수 있게 하신 후(출 16:22-30:), 시내산에서 두 돌판에 기록하신 열 가지의 언약인 십계명을 주셔서 제4계명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것을 명시화 해 주신 것에서 입니다(출 20:1-17). 이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완성에 의한 안식을 근거로“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출 20:8-12)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기에서는“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4-15) 라고 말씀하여 하나님의 크시고 강한 팔과 손, 곧 하나님의 권능이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애굽으로부터 해방시켜 인도하여 내신 것에 근거해서 안식일을 지키게 하시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자신과 그의 자녀, 그리고 그의 소유인 종과 소, 나귀 등 그가 기르는 가축, 그리고 그의 집에 머물고 있는 나그네(외국인)까지도 똑같이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모두는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그들의 안식이 들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과연 이 안식에 있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날에 집중하게 하는 것에서 아무 노동 할 것이 없도록 그들의 생명을 안전히 보살펴 가실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것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필요한 생명의 보존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나가시는 이적을 행하실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것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비롯해서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가축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는 안식일에는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완성하심에 의한 안식, 그리고 그들을 애굽의 종 되었던 날을 끝내심으로 해방되어 자유자가 된 구원의 날에 따른 것으로, 이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는 안식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 안식을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안식에 자신이 택한 백성이 영원히 있게 하기 위해서 열 가지 언약인 언약의 율법, 곧 십계명이 지닌 뜻(하나님의 본의)에서 약속해 주심으로 바라봄에 있게 하신 언약의 메시야를 보내셔서 죄와 사단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을 구속 사역을 수행하게 하십니다. 그에 따라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엿새 동안은 물론이거니와 안식일에도 죄와 사단의 종 되어 속박되어 있는 자들을 압제자로부터 해방시켜 풀려나게 하여 자유한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레째 되는 날에는 안식하게 하신 안식일 계명이 의도하고 있는 죄, 불의가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충만한 참된 안식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에 따라서 다시는 죄 아래 있지 않으며, 다시는 사단의 종으로 매여 있지 않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끝내셨으며, 주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안식하는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런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거룩한 안식일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낸 장로들의 전통인 안식일법(39개항)에 의해서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사단으로부터 풀려나게 하는 의롭고 선한 일을 꾸짖으며 비난하면서 행하게 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베풀고 그 자비를 입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악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죄와 사단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훼방하여 가로 막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입니다. 자기 아들이나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 우물에 빠지면“큰일 났다! 이를 어떻게 하냐?”며, 앞 뒤 안 가리고 그 우물에 뛰어 들어서 건져내 살리려고 합니다. 자기 자식이니까 그렇게 하고, 자기 재산이니까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큰 일인 자기 자식과 자기 재산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영원히 건져내는 하나님의 구원을 베풀지 못하게 하고 그 선한 일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말이죠. 자기들의 욕심에만 생각이 미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선한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우물에 빠진 아들과 가축을 비유로 하여 말씀하심으로써 이 악한 세대를 책망하시는 것이요,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에서 안식일에 관한 율법에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진정 좋아하시는 것, 곧 하나님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말이죠. 이스라엘이 아말렉 족속과 전쟁을 치르게 될 때 아말렉 족속을 없앨 때 사람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딸린 것은 남자와 여자를 비롯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까지 모두를, 그리고 소와 양과 낙타과 나귀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짐승도 하나라도 아끼지 말고 모두 죽일 것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울 왕이 어겨 아각 왕과 짐승을 살리고“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라고 변명하여 말하는 것에 대해(삼상 15:15, 21),“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라고 선지자 사무엘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꾸짖으시며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 이들은 안식일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눈을 뜨고 있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아무런 관심도 깨달음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이 만든 안식일법에만 관심을 갖고 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으며 존경을 받으며 대우를 받는 것을 좋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안식일법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만든 안식일 율법을 거스림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대적하는 악을 행함에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실체를 안식일에 수종병 든 자를 고치시고“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라고 물으심으로 그들의 마음에 숨어 있는 악한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내심으로 그들을 부끄러움에 두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들 중 누구도 예수님의 물으심에 아무런 대답도, 대꾸도 하지 못하고 다만 묵묵부답함으로써 자신들의 악함을 스스로 인정함에 있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안식일에 수종병 든 사람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에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하신 것이 지닌 뜻인 본의적 의미를 알게 해주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지를 알리시는 예수님 자기 계시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에 있는 당시의 악한 세대로 규정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율법교사가 예수님에게 가진 악함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게 해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4. 끝맺는 말
예수님이 수종병 든 자를 고치는 이적을 행하신 것은 그 병자를 위하여 자비를 베푸시는 것도 있으나 이것의 목적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안식일관에 대하여 본래의 안식일이 지닌 참된 뜻을 드러내 알려주시며, 우물에 빠져 생명의 위험에 처한 아들이나 소를 주인이 구출하여 생명의 보전에 있는 안식의 평안에 있게 하는 것이 옳듯이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쳐 집에 돌아가 가족의 품에서 안식의 평안에 있게 하신 것에서 예수께서 하시는 일이 사단에게 매인 자를 풀어 하나님의 나라의 안식에 있게 하시는 구속 사역을 해 나가시는 것에서 이 일을 이루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계신 것임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