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임금이 치르는 전쟁 비유에서 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자
누가복음 14장 31-33절 / 31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본문은‘한 임금이 치르는 전쟁 비유’입니다. 이것은 앞서 누가복음 14장 25-30절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있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큰 군중을 향해 예수께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망대 비유’에 이어서 해 주시고 있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망대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은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서라도(지불하고서라도/처리하고서라도) 소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본문은‘망대 비유’에 이어서 또 하나의 비유인‘임금이 치르는 전쟁 비유’를 들어서 앞서 해 주시고 있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거듭하심으로써“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그러니“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고자 하면 무릇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할 것이다”라는 것을 더욱 강조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임금이 치르는 전쟁 비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임금이 전쟁을 치를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임금은 적진의 군대가 얼마나 되는지를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정탐하고서 돌아온 군사는 적군이 족히 2만 명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거느리고 있는 군사는 불과 1만 명 정도입니다. 이에 임금은 전쟁에 임하기 전에 2만 명의 적군을 1만 명으로 상대할 전략을 참모들과 앉아서 의논하여 목숨을 바쳐 죽기를 각오하고 나라를 지킬 충성의 뜻을 모읍니다. 그렇지 않고 임금은 무작정 전쟁에 군사를 내보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럴 경우에는 손자병법에 나오는‘지피지기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1)이란 병법의 전략을 무시하는 것으로 전쟁에서 큰 패배를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적은 군대의 세로 많은 수의 적군을 상대하여 싸워 이길 전략을 참모들과 의논하여 온 군사가 목숨을 다하여 적과 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하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전쟁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에 의한 각오에 있지 않은 한에는 2만 명의 적군을 1만 명의 군사로 상대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니 무슨 전쟁을 치르겠는지요, 적군이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절단을 보내어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자는 화친을 청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유를 들어 예수님은 결론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지금 예수님이 길 가시는 여정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행하시기 위해서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길에 있으신 것으로 이러한 예수님과 함께 하며 따른다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것에서여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시는 것에서 입니다.“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 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너희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놔두고, 그에 따라서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보다도 더 예수님을 사랑하여 즉시 예수님을 따름에 응하였던 열 두 제자들에게서 그 실예를 보게 됩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16-22)
이와 동일하게 예수님에게서“너는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았으나“재물이 많으므로”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못하고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난 한 부자 청년(마 18:22)에게서“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하신 실예를 보게 됩니다.
한 부자 청년과는 달리 예수님의 열 두 제자에 속한 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떻게 예수님을 따름에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놔두고 즉시 응했는지요. 그것은 예수님에게서 보고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부르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 1:35-42)
그리고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 1:43-51)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이 즉시 자기의 모든 것을 놔두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곧 누구신지를 알았기 때문이며, 그분이 하실 일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턱대고“너희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앞뒤 분별과 생각도 없이 자기의 모든 것을 놔두고 예수님을 따름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혹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여 버리고 따라야 한다며 무조건적인 순종과 헌신적인 희생을 촉구하면서, 그러한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실 것이라고 말하며 유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놔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돌아올 축복을 기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예수님을 따름에 응한 것은 예수님에게서 그분의 존재의 본질과 그 하시는 일,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오셔서 메시야 사역을 하시는 분이심을 보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들이 알게 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이들은 자기들이 일하고 있던 배와 그물을 그대로 놔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한 자기와 함께 하고 있던 아버지의 곁을 떠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 당시에는 예수님은 한 곳에 계시면서 메시야 사역을 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이곳저곳 지역을 오르내리시고 각 동네를 다니시면서 메시야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베드로는, 안드레는, 빌립은, 나다나엘은, 그리고 예수님의 열 두 제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는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었을 때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배도 그물도, 그리고 밭도 소도, 또한 그들이 거느리고 있던 부모와 처자식과 형제자매도 모두 놔두고 즉시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동행동거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에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한 임금의 전쟁 치르는 비유’를 통해서“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하는 기쁨을 맛봄에 있게 할 자들에게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름에 있게 하십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가 지니지 못한 참되고 영원한 가치를 예수님에게서 보기 때문입니다. 배도 그물도 밭도 소도, 그리고 부모와 처자식과 형제자매 그 모두를 소유하였다고 할지라도 이 모두가 다 합해져도 결코 줄 수 없으며, 그래서 여기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진실로 천하보다 귀한 것인 참 생명인 영원한 생명, 그 생명의 영원한 나라가 예수님에게 있는 것을 아는 지혜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름에 구속(拘束)하여 가로 막는 것을 끊어버리는 결단을 내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것은 말이죠. 예수님을 따름에서부터 시작되는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에 그도 함께 하는‘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처럼‘한 임금이 치르는 전쟁의 비유’를 들어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할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이러한 것이 없이 하나님 나라 잔치의 떡을 먹는 자는 행복할 것을 생각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것이며 부끄러움에 처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본 비유에 이어서 말씀하시게 되는‘맛 잃은 소금비유’(눅 14:34-35)에서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인 밖에 버려질 것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보는‘망대 비유’에 이어지는‘한 임금이 전쟁 치르는 비유’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 두 비유에서 드러나지는 것은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참된 생명인 영원한 생명과 그 생명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보며 그 믿음에 있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확고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밭을 들이밀고 소도 들이밀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포기되어지는지요. 부모와 처자식과 형제자매의 끈이 예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게 하는지요. 아닙니다. 밭과 소, 그 모두로 인한 얽매임으로부터 끊어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얻고자 합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에서“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3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0장 32-39절에서는“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에 있지 못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집안 식구가 있는지요. 예수께서는“사람의 원수는 제 집안 식구이리라”라고 하셨는데, 과연 집안 식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지 못하게 하는지요.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그 여자를 남자인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셔서 아담이 자신에게 나아오는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아 알게 하셨습니다.“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창 2:23). 남자와 여자는‘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인 한 몸의 연합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남자에게로 여자를 나아오게 하여 한 몸에 되게 하는 것이 어떻게 있게 되는지를 알게 해주셨습니다.“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이 원리는 교회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에게로 우리를 이끄셔서 그분과 한 몸을 이루게 하는데 말입니다. 제 집안 식구를 떠나 그리스도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하심은 땅에 속한 지체를 끊고 하늘에 속한 몸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예수께서 말씀하신“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란 말씀의 성취에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반대하며 배척하는 자들은“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란 말씀의 성취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지에 대하여 밭이나 소, 그리고 결혼한 가정으로 예를 들고, 또한‘큰 잔칫집 비유’,‘망대 비유’,‘한 임금이 치르는 전쟁 비유’를 들어서 말했지만, 이 모든 것들에서 예수님이 의미하고 있는 실체는 모세의 율법을 들며‘장로들의 유전’에 묶여 있으면서 예수님을 배척함에 있는 유대주의적 신앙(종교)을 질책하는 것입니다.“너희는 결코 내 제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요.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할 것이란 선언은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되지 못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이죠.“너희 중에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 잔치의 떡을 먹지 못할 것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그분이 가시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가고자 함이 없이“하나님 나라 잔치의 떡을 먹는 자는 참으로 복이 있겠습니다”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예수님의 질책입니다.
그러한데,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형제들에게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림에 있으며 자기의 목숨까지도 내어줌에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모두가 행해지는 것에서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는 주님의 제자들을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형제들에게서 보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는 행복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는 지속적인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를 짊어짐에 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세계에서 사는 것에서만 보이는 특징적인 색깔을 띱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바울의 권면에서 듣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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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피지기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이란 말은 본래는“적군의 군사력을 비롯하여 전략을 알고 이에 대처하는 아군의 상태를 알아 잘 비교하고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는 뜻에서‘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병법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知彼知己百戰百勝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