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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있는 개혁

작성자eden|작성시간06.06.15|조회수107 목록 댓글 0
*생명력있는 개혁*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은 많지만 개혁의 의지와 힘(이 힘에 관하여는 아래에서 설명키로 함)을 갖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러한 현상은 개혁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의 내용은 파스칼이 그의 대표적인 저서 팡세에서 정의에 관하여 설파한 내용입니다.

“옳은자가 복종을 받는 것은 옳다. 가장 강한자가 복종을 받는 것은 필연적이다. 힘 없는 정의는 무능하고 정의 없는 힘은 압제다. 힘 없는 정의는 반항을 받는다. 왜냐하면 언제나 무법자가 있기 때문이다. 정의 없는 힘은 탄핵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의와 힘을 결합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옳은자를 강하게 하거나 강한자를 옳게 해야 한다. 정의는 논박을 받기 쉽고 힘은 승인 되기 쉽고 논박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의에 힘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힘은 정의에 반항하고 옳은 것은 자기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옳은 것을 힘있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힘있는 것을 옳다고 하였다.”(298)

시대적인 변천에도 불구하고 위와같은 파스칼의 논리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되며 정의와 힘에 관한 함수관계는 인류사회에서 늘상 대두되는 상관관계에 놓여있으며 특히 교회의 개혁을 할 때에 반드시 짚어 보고 적용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근간에 교회개혁의 바람이 예전보다는 많이 보편화 되어 있음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그것이 교회의 현장이 아닌 외곽지대에서 맴돌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외곽지대란 주로 온라인을 지칭하는 것인데, 물론 온라인은 개혁운동에 있어서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식을 익히고 계층을 조성하는 등 개혁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온라인에 언제까지나 머물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며 우리가 익힌 지식은 실제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의 관념에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일찍이 어느 철학자는 머리에 머물고 있는 지식자체는 길가에 버리워진 차거운 돌맹이와 다를 바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위에서 파스칼이 정의와 힘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부분과 일맥상통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열정을 갖고 이루려고 하는 개혁이 교회안이 아닌 뒷전에서의 이론으로 일관한다면 이는 힘 없는자들의 변론으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이곳 저곳에서 개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론과 지식이 무성하지만 정작 교회가 달라진 것이 없다면 발걸음을 멈추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반드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교회문제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거나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행동하는 사람이 적다면 그 원인을 찾아야 하며 만일에 그 원인이 파스칼이 지적한 정의가 힘을 갖추지 못한것에 있다면 이제 그 힘을 갖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따라야 할 것입니다. 교회문제에 있어서 힘을 이야기하면 사실 거부감이 먼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힘으로 되어지는곳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성령의 역사로 세워지는곳이 교회인데 힘의 논리를 거론한다면 인본적 또는 물리적인 방법으로 들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견이나 지식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그것이 남에게 설득이 안되고 받아들여지지 아니할 때 그리고 그 원인이 교회안에서의 자신의 영향력의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고 결국은 힘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과연 그 힘이란 무엇을 뜻하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힘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상당한 이론이나 설명이 요구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힘 있는자가 누구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 힘있는 자를 통하여 힘의 실체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힘은 어떤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외에는 힘에 관하여 누구나 인식하고 있기에 힘에 관한 설명보다는 힘의 중요성에 관하여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힘은 무엇을 결정하고 움직이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개혁을 추구할때 그 힘의 중요성에 관하여는 큰 관심을 갖지 못합니다. 힘 있는자들이 정의를 갖추지 못한 것 만큼이나 정의를 바라는 사람들이 힘을 외면하고 있음은 심히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힘에 관하여 관심을 갖지 아니하고 힘을 소유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개혁이라는 과제는 뒷전에서의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 이기에 진정으로 교회를 세우고 정의를 구현하기를 바란다면 이제는 최선을 다하여 힘을 갖추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힘을 갖추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의 몇가지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지식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격언이 있듯이 지식이 없으면 결코 개혁자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지식은 성경에 관한 지식을 뜻함은 말할 나위가 없으며 온라인은 이 부분에서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는 교회에서의 위상입니다. 교회에서의 위상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는 직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론 반드시 직분자가 위상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수긍하지 않을수 없는 부분이기에 교회에서의 위상과 직분과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직분의 정도가 신앙의 척도는 아니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는 직분을 도외시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충실한 교회생활(신앙생활과는 다른 의미)을 통하여 대내외적으로 위상을 갖추지 않는다면 힘을 갖기는 여려울 것입니다.

셋째로는 교회에서의 신임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고 직분이 있어도 교인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면 결국 지지를 얻지 못할 것 이며 개혁의 내용이 대체적으로 목회자와 관련된 것을 염두해 본다면 교회안에서의 신임도는 개혁의 성공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속담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아무런 힘이나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개혁을 외치는 것은 정말 나약하고 무능한 모습이 아닐수 없습니다.

넷째로는 용기입니다. 의를 위해 의연하게 싸울수 있는 용기가 없으면 위에서 언급한 모든조건을 갖추었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교회에서 지식이 있고 직분이 있음에도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소신껏 행동하지 못하여 지탄을 받는 직분자들이 많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젊은 목사들이 선배목사 눈치보는 것 이나 장로들이 목사와 더불어 눈앞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비굴한 모습으로 소신있는 행동을 하지못함은 심히 개탄스러운 현실입니다.

그 밖에도 힘의 다른 조건들을 열거할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위와같은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였다면 힘을 나타내기는 어려울 것이며 결국 개혁은 하나의 관념으로 그치고 말 것이기에 이제는 개혁을 바라는 성도라면 힘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여 당당하게 의의 병기로 쓰임받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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