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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본문

성례 : 세례와 성찬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7.06.04|조회수268 목록 댓글 0


성례 : 세례와 성찬

 

오래 전부터 그리스도의 교회는 두 가지 예식을 가져왔었습니다. 세례와 성찬입니다. 이를 성례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예전이란 뜻에서입니다.


1. 세례

 

본래 세례와 성찬은 특별한 형식을 잘 갖춰 제도화된 예식의 성격도, 예식의 형태도 아니었습니다. 세례의 시작은 세례요한이라고 불리는 요한에 의해서 행해졌습니다.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1:4).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일을 했다는 것에서가 아닙니다. 그는 세상 죄를 담당하여 지고 가실 어린양을 하나님께서 보내셨음을 증거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회개에 있게 하는 것에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 그는 자신 뒤에 오시는 분이 지닌 큰 능력을 함께 증거하였는데, 그분은 성령으로(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3:11; 1:8; 3:16). 예수께서는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심으로(3:13; 1:9; 3:21),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3:17). 예수께서 자신을 세상에 보내시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온전히 이루심으로 아들에게 품으신 하나님의 의를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세례를 베푸시는 것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승천 후 온 유대인이 맞이한 오순절에 성령으로 강림하셔서 세례요한이 증거했던 바인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성령의 임하심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빌립, 베드로, 바울 등은 이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임하심으로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 모두의 하나님도 되셨다고 하는 사실을 증거하였습니다.

 

세례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기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통해서 세례를 받는 자는 성령께서 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의 죄를 사하여 깨끗하게 하시는 것에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고 있는 한 곳을 봅니다.

 

사도행전 826-40/ 26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없음) 38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사도 시대의 에디오피아에 여왕 간다게를 곁에서 섬겨 지키며 국가의 재정을 맡은 큰 권력을 쥔 내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 예수를 믿게 하므로 그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참된 신이심을 믿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주님이신 예수님에까지 알지는 못했으며, 따라서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지는 못하였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드리러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빌립에게 한 지시를 내리게 하여 빌립을 예루살렘에서 가사 광야로 통하는 길까지 남쪽으로 내려가게 하여 그와 만나도록 섭리하여 빌립의 증거를 통해 전해지는 주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 그에게 임하심으로 빌립이 전하는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아 알게 하였습니다.

 

빌립은 선지자 이사야서 537-8절에 예언되어 있는 고난당하는 종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하여 설명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학대와 고문을 당하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그 고통을 다 참았으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하고 털 깎는 자 앞에 선 어미 양처럼 입 한번 열지 않고 모든 고난을 다 참았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들 가운데 오셔서 그들과 함께 하셨지만 그들은 그를 체포하여서는 재판에 넘겨 부당하게 사형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렇게 그 모든 굴욕을 당하고서도 잠잠하여 입 한번 열지 않았습니다만. 사람들은 그분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철저히 외면하였습니다.

 

빌립은 이러한 사실을 전하면서 이 일이 무엇으로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분이 그러한 일을 당하신 것은 그의 백성의 허물 때문에 죽게 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해서 말이죠. 그의 백성의 죄악이 그를 죽였으나 그분은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여 그들의 죄로부터 깨끗케 함으로 구원해 주었다며 그분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내시가 빌립에게 물었습니다.“그분이란 대체 누구를 가리킵니까? 이사야 자신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분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까?”이에 빌립은 이 구절에서 시작하여 많은 다른 성경 구절들을 들어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타고 있는 마차가 물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였습니다.“보시오. 여기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나에게 세례를 베풀어주십시오!”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성경인 개역개정성경에는 37절은 (없음)이라고 되어 있어 생략이 되어 있지만, 고대 사본 중에는 내시의 청이 있자 빌립이 대답하는 말과 그에 따라 내시가 신앙고백 하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그럼요. 만일 당신의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가 구주이심을 믿는다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빌립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시는 주저하지 않고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라고 신앙고백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시는 마차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내시와 함께 물속으로 들어가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를 베풀고 두 사람이 물에서 올라왔을 때 주님의 영이 홀연히 빌립을 데려가셨으므로 내시는 다시는 빌립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시는 기쁨에 넘쳐서 가던 자기 길을 갔습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빌립은 아소도의 여러 도시를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뒤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여기에서 보는 대로 빌립이 세례를 베풀며 내시가 세례를 받는 것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인데 주님의 영이신 성령이 임하셔서 주 예수님이 행하신 십자가의 구속 사역에 의해 죄 씻음(죄 사함)의 구원이 주어짐에 믿음을 갖고 그 고백에 있게 하시는 것에서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성경 여러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22:16)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8-10)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자는 성령에 의해 예수께서 행하신 죄 사함의 구원에 있음으로 다시는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함이 우리에게서는 죄가 산산이 부숴지는 것에 날마다 있게 됩니다. 이는 말이죠. 주 예수께서 베푸시는 성령으로 세례 받은 자는 주와 함께 연합한 몸에 있으므로 그의 의에 의하여 입는 하나님의 권능의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 받은 자는 죄에 대하여 죽은 주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함께 장사되었기에 죽음에 갇혀 있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주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같이 우리도 그분의 새 생명을 얻어 살게 되었으며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장차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죽음의 멸망에서 구원 받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우리는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으므로 모두가 다 그리스도로 한 옷을 입은 하나님의 한 자녀 입니다. 그러니 같은 마음으로 한 분 주님을 섬기는 한 믿음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서로 나뉨(분리)이 없이 하나 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선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의 선한 일을 도모함에 있어야겠습니다. 그러니 말이죠. 세례는 단순히 몸을 물로 깨끗하게 씻음에 의미를 두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 이사야에 의해 예언된 고난 당하는 종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세상 죄를 지신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께로 돌아와 죄 사함 받음에서 갖게 되는 선한 양심에 의해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의 약속에 있는 것입니다.(6:3-4; 고전 12:13; 3:27; 2:12; 벧전 3:21)


2. 성찬

 

세례와 함께 교회가 갖는 성례전(聖禮典)에는 성찬이 있습니다. 성찬의 본래적 의미는주의 만찬입니다. 유월절(과 함께 무교절)을 지키는 동안에 음식을 먹는 규정은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며 제자들에게 새롭게 제공하신 음식과 음료를 먹게 하신 이후주의 만찬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시작된주의 만찬은 일반적인 만찬과 구별하는 것에서성만찬이라고 부르며,‘성찬이라는 용어로 사용합니다. 이 성찬의 시작은 본래는 오늘날 교회가 시행하는 것에서 갖는 제도화된예식’(예전)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몸으로서의 연합으로 모일 때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음에 있으면서 기쁨과 감사에 넘쳐 음식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2:3). 그러나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시대 이후 어느 때부터는 세례와 성찬 이외에 5가지가 더해져서 모두 7가지인 칠성례(칠성사)1)가 예식(예전)의 형태와 형식을 갖추고 행해져 왔습니다.

 

그러한 것을 종교개혁 이후의 개혁교회는 본래의 두 가지인 세례와 성찬만을 인정하고 행하여왔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오랜 세월 속에서 로마교회는 세례와 성찬을 교회가 갖는 상황에 의해 예전의 형식을 갖추고 이를 지키는 것에서 유효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믿음에 있음을 주장해왔습니다만, 개혁교회는 성령의 사역에 의해 행해진 하나님의 은혜의 지속적인 효력에 담긴 의미인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대하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며 그 의미의 본질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믿음으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제91문답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91: 성례가 어떻게 구원의 유효한 수단이 됩니까?

 

: 성례가 구원의 유효한 수단이 되는 것은 성례 자체가 가지는 어떤 효능이나 그것을 집례하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축복하심에 의해 그리고 성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의한 것입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65문은(성령)는 복음의 선포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신다.”라고 대답하게 한 후에,“성례의 사용을 통해서 믿음을 강화시키신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일으키시는 유일한 은혜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오직 하나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령께서 듣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들음으로써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설교의 말씀을 통해서 항상 확인하고 큰 확신 속에서 우리가 주께 가진 믿음을 굳건히 가져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서성례의 사용을 통해서 믿음을 강화시키신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례에서 세례가 단순히 몸을 물로 깨끗하게 씻음에 의미를 두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듯이 성찬 또한 단지 떡을 받아 떼어 먹고 음료의 잔을 받아 마시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성찬은 떡과 음료를 통해 상징해 주시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여 여기에서 알게 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사는 것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26:26. 병행구절. 14:22; 22:19)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7-28. 병행구절. 14:23-24; 22:20)

 

예수께서는 떡을 떼어 주어 먹게 하시며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라고 말씀하셨고, 음료도 그와 같이 하시면서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시며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22:19-20). 여기서의기념하라기억하다’,‘회상하다’,‘생각하다는 뜻으로, 이에 의한 문자적인 의미는너희들은 나를 기억하도록 이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성찬의 시행은 구속주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주로서의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여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심으로 제자들을 남겨 놓으실 때도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언제나 항상 연합한 한 몸으로 함께 하고 있으면서 그들을 통해 구속 사역을 행하여 나가실 것임을 성찬을 통해 잊지 않고 그 기억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신 것인지요. 예수께서는 구속주로서의 공생애를 사실 때 열 두 사람을 제자 삼아 자기 곁에 두실뿐만 아니라 그들을 사도로 세우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에게 맡기신 위임명령인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19-20)를 따르게 하시며,“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라고 하신 지상명령을 따름에 있게 하실 것에서였습니다. 그에 따라서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받들어 따름에 있는 제자들은 자신들이 맡은 바의 직무를 충성되게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인데, 이는 예수께서 친히 성찬을 행하시며 가르치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 가는 것에서입니다. 그리고 그 성취로 세워진 것이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에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구속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의한 언약의 피 흘림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온 세상에 죄 사함의 구원과 생명의 주가 되셔서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게 한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니 말이죠. 우리는 세례를 베풀고 성찬을 행할 때마다 여기에 담긴 의미에서 알려주시고 있는 죄 사함과 하나님의 생명을 약속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 받아 그 일을 맡은 자로서의 삶을 떠올리며 받들어 갈 마음을 다지며 힘을 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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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세성사(聖洗聖事) 아직 초자연적 생명을 얻지 못한 미신자에게 베푸는 성사이다. 개신교의 세례에 해당한다. 흔히 영세(領洗)로 알려져 있 

      으 며 원죄(原罪)와 본죄(本罪, 자범죄)를 사()한다고 한다.

(2) 성체성사(聖體聖事) 사람에게 영적 양식으로 빵과 포도주 형태로 그리스도께서 자기 스스로를 제공한 성사이다. 이러한 견해에 의해서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을 말한다. 개신교의 성찬에 해당하는데, 루터는 공재설, 칼빈은 영적임재설, 쯔빙글리는 기념설의 견해를 갖는다. 필자는 칼빈의 영적임재설과 쯔빙글리의 기념설을 합한 '영적임재기념설'이란 견해를 갖는다. 

(3) 견진성사(堅振聖事) 신자에게 성령을 내려주고 신앙에 방해가 되는 세속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주는 성사이다.

(4) 신품성사(神品聖事) 교회의 사제로 성사와 미사집전, 교회에 봉사하는 직능을 수여하는 성사이다.

(5) 혼인성사(婚姻聖事) 혼인생활로 성스런 가정을 꾸미고 자녀의 교육적 양육의 은총을 주는 성사이다.

(6) 고백성사(告白聖事) 죄인의 잃은 생명과 약해진 은총을 회복하게 하는 성사이다.

(7) 병자성사(病者聖事) 중병으로 신음하는 신자와 죽음에 임한 신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성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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