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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장 6-7절 / 그리스도인의 주일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22.03.15|조회수278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인의 주일

 

사도행전 20장 6-7절 / 6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7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본문 내용

 

사도 바울은 A.D. 52-57년에 걸친 제3차 전도여행 때 맞이한 무교절 기간이 끝나는 즉시로 그리스(헬라)의 북쪽에 있는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닷새 후에 드로아로 가 그곳에서 한 주간을 지내는 중에 주일에 성만찬을 나누려고 한자리에 모였으며, 그 다음날 떠날 예정이었으므로 밤중까지 설교를 계속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다루는 내용에서 ‘그 주간의 첫날’이란 말을 보게 되는데, 현대어성경에서는 이를 ‘주일’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곳에서 ‘주일’이란 용어를 처음 대합니다. 이 날은 ‘안식 후 첫날’, ‘매주일 첫날’로, ‘주의 날’로 불렸습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의 전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절기는 안식일을 포함하고 있으며 안식일과의 연관에서 진행이 되고 있는데, 안식일은 엿새 동안에 창조 사역을 마치신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계명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며 이 일이 하나님에 의해서 있는 일임을 알게 하시고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주로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해 나가실 것을 알려주시는 것에서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율법의 강령을 말씀해 주신 것에서 알 수 있으니, 다만 하나님을 경배하며 부모와 이웃을 공경하며 사랑하게 할 것인데 그 일을 메시야 – 그리스도 – 를 통해서 해 나가실 것이 언약되어 있습니다.1)

 

이것에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것과 또한 부모와 이웃을 사랑할 것의 계명 사이에 제4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안식일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할 것(레 25:2)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 계명을 받고 여호와 앞에서 안식에 있는 것은 애굽에서 종으로 있었을 때는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으며, 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애굽 왕이 주인이고, 애굽인에게서 억압당하며 애굽을 위해서 중노동을 하면서도 궁핍 속에서 낮과 밤의 나날을 보냈었기에 말입니다. 그런데 자유한 자가 되어 안식일을 갖고 하나님이 주신 복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모와 이웃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한 백성이 되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생명에서 나오는 온 힘으로 갖는 경배에 있습니다.

 

안식일은 그 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안식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립니다. 이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날에 있는 것을 ‘주의 날’, 즉 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이 주일의 시작은 안식일 계명에서 보는 주기적인 날에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우주와 만유의 주로서 하늘은 앉으신 보좌요 땅은 발 딛고 있는 발판이니 그 앞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복에 있으면서 이러한 날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을 거룩히 여깁니다(사 66:1-2; 행 7:48). 유다가 로마의 지배에 있던 당시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있어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신체의 자유에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가 주께 가진 믿음과 그 믿음으로 주와 함께 하는 신앙의 자유마저 매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자유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상황의 처지에 있을지라도 매여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섬겨 믿음으로 따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에게 일어난 구원의 은혜를 기리며 평안에 있습니다. 몸은 억압 속에서 힘들고 괴로움에 있는 날을 살아가는데 그가 함께 하는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자유한 생명에 있는 날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런 주와 함께 하는 날에 있는 모든 날이 ‘주의 날’입니다.

 

노예 제도가 있던 당시의 시대에서 노예 된 그리스도인이 주와 함께 하는 날이 이러한데, 신체의 자유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으므로 가족과 함께, 그리고 이웃과 함께 한 자리를 갖고 마음에 두고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위해서 하신 일을 생각하며 기리고 그 은혜를 의존함에 있습니다. 안식일 계명에서 안식일을 지켜온 율법의 전통에 있었던 그리스도인은 처음에는 그 규례를 따라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만(행 13:14, 18:4),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 중에 있는 드로아에 있을 때를 시점으로 해서는 안식일 다음날인 그 주간의 첫날 – 주일 - 에 예배를 위한 집회를 갖는 전환에 있었습니다(행 20:7). 그 후 매주일 첫날을 그리스도인은 ‘주의 날 - 주일’로 맞이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고 예배를 드림에 있어왔습니다(참조. 고전 16:2; 계 1:10).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 후 첫 날에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만나 믿음에 있게 해주신데 따른 것입니다(마 28:1; 막 16:9; 눅 24:1; 요 20:19). 이렇게 매주일 첫날이 된 것이 주일입니다. 생명의 부활을 하신 주님을 기림에 있은 그 믿음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매주일 첫날만이 아니라 이 날을 시작으로 한 주간 내내 말입니다. 그렇게 부활의 생명이 지배하는 일생을 살아가게 된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매주일 첫날은 믿음의 형제들에게서 교회를 이루는 믿음의 공동체로 서 나가는데 필요하고도 중요한 날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매주일 첫날은 믿음의 형제들이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을 이루고 이것에 필요한 생명 있는 일을 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주일공예배와 더불어 교회 모임을 가져나가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주일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종교적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7항에서는 말하기를 “그 날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이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는 한 주간의 첫째 날로 바뀌어졌다. 성경에서는 이 날을 주의 날(主日)로 부른다(계1:10). 이 날은 세상 끝 날까지 기독교 – 그리스도교 - 의 안식일로 지켜질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주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또한 부활하셔서 생명의 주가 되셨음을 믿습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이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임을 믿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게 되어도 주를 위해서 죽습니다. 이처럼 주를 위해서 사는 것에도, 그리고 죽음에도 처하는 것은 주이신 그리스도를 결코 빼앗김을 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공포를 일으키며 위협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칼로 박해하여도 그리스도를 놓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날을 빼앗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날을 영원히 굳건하게 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 믿음에 있어 나가는 믿음의 형제들인 그리스도인들은 매주일 첫날, 곧 주일이 있게 된 것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속되게 여기지 않으니 거룩히 여겨 그 날에 그리스도의 교회로 모여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에 있는 거룩에 있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복되게 하신 복에 믿음을 두고 굳건히 해 나감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없는 듯이 지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데 그리스도가 없는 듯이 살아서야 되겠는지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셔서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셨듯이,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여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그리스도로 사는 삶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함이 마음에 있는데, 그리스도 없이 혼자만의 삶을 사는 것에 있는지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기쁘게도 가족이 함께 하고 믿음의 형제가 하나 된 든든함이 있습니다. 주일은 우리를 불러내 주시고 있습니다. 그 부름을 받아 주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함에 한 몸 된 자들은 세상이 주지 못하는 오직 주께서만 주시는 복에 충만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인은 주일을 경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주일을 맞이함은 각별하니 존귀하신 주님을 경외함의 예배에 있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종교적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8항에서는 기독교의 안식일인 주일을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기를 “그러므로 기독교의 안식일인 주일 – 그리스도인의 주일 - 은 거룩히 지켜져야 한다. (1)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합당하게 준비하고, (2)그들의 일상적인 일들을 미리 정돈한 연후에, (3)그날에 하루 종일 그들 자신의 일과, 그들의 세상적인 일에 대한 말이나 생각, 그리고 오락을 중단하고 거룩하게 안식할 뿐만 아니라, (4)모든 시간을 바쳐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쓰며, (5)부득이 해야 할 의무가 있는 필요한 일과 자비를 베푸는 일을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래야 할 것입니다. (*)

 

 

*2022년 3월 6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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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은 조상들을 통해서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다(요 12:34). 사도 요한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인데, 그 율법에서 보게 되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다고 하였다(요 1:17). 그것은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것에서 이다(롬 10:4).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율법이 몽학선생 – 유모 - 의 역할을 하며 주인의 뜻을 따라 이끌어 왔으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의 마침이 되심으로 더 이상 율법의 인도 아래 있지 않고 율법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아래에 있다(롬 7:4). 그리스도는 그 율법의 마침을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제물이 되시는 것에서 하신다. 이는 율법에서 말씀해 주시는 바인 하나님의 의가 없는 전적 부패한 죄를 속죄해 주시는 것에서 이다. 이것에 예수께서 행하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원수를 악으로 갚지 않고 용서하심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 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이다.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일지라도 외면하여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게 하시고 죄인이 받을 저주의 진노를 십자가를 통해서 다 쏟아 부으신 하나님을 사랑한 사랑이요, 사랑할 자, 사랑할 수 있는 자의 사랑에서 나아가 사랑하지 못할 자, 사랑할 수 없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신 사랑에 있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에 있는 자들에게 그 사랑을 따라 같은 사랑에 있게 하셨으니, 배척과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 나가는 것에서, 그리고 교회를 세워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에 있게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피로부터 시작하여 그 피에 의해서 공급받고 있는 사랑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에게로 확대됨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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