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 것을 말씀하시다(6-1)
마태복음 23장 23-24절 / 1…23(4)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도다.
예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에서 보게 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게 되는 외식은 그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게 되는 외식은 그들이 입을 재앙인 네 번째 화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라고 하면서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고 있다1)”(마 23:23-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외식하는 자들로 불리는 사례는 십일조 생활에서도 잘 나타났습니다. 십일조 규례는 이것이 주어지게 된 역사의 배경을 갖는 흐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지는데, 밭에서 나는 곡식과 나무의 열매, 그리고 소와 양 등의 가축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리게 하셨습니다(레 27:30-33). 예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외식을 책망하는 것으로 그들이 십일조를 드렸던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언급하셨는데, 이렇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있었으면 “외식하는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겠는지요. 그렇지 않은 외식하는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십일조 생활을 하는데 이처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이 행한 외식에 있는 십일조를 하며, 그렇게 십일조를 드리는데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십일조를 따르는 것이 아니면 화를 당함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십일조에 대하여 먼저 올바르게 잘 알아야겠습니다. 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 것을 말씀하시는 것에서 보게 되는 십일조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명하신 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은 레위기 27:30-34에서 입니다. 이 구절에서 보는 십일조를 말씀해 주시기 전에 앞서 먼저 이스라엘에게 주신 절기를 말씀해 주시는데 안식일, 안식년, 희년을 다루시는 것에서 묶여 있던 것에서 해방되어 풀려남에 있음으로 억압당함에 있지 않은 자유한 자임을, 그리고 이 일을 행하신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곡식의 맏물, 가축의 맏배, 곧 곡식의 첫 단, 가축의 처음 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것으로 규정하시며 하나님께 바치도록 하시는 것에서 소유한 모두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십니다. 사람과 그 사람이 소유한 모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사람에게 소유하게 한 모든 것으로 그들의 복이 되게 하십니다. 사람은 그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공경함에 있는 것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탐하지 않으며 하나님께로 돌려 드립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잘 알고 그 은혜를 따름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나타내 주시고 있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
2022년 6월 5일 주일. 본 글은 게시판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방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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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고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에서의 ‘하루살이’는 ‘모기’, ‘각다귀(gnat)’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인데, 본문에서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발효해 만든 포도주에서 번식하는 모기류를 일컫는다. 이러한 곤충은 사람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율법에서 부정하여 먹어서는 안되는 동물로 규정되었다.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오직 날개가 있고 기어다니는 곤충은 다 너희에게 가증하니라. 이런 유는 너희를 부정케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주검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레 11:20, 23, 24). 그리고 ‘걸러 내고’는 원어의 의미가 ‘여과기로 완전히 걸러내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발효되는 포도주에 번식하는 모기를 철저하게 걸러내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동사를 분사 현재형으로 사용하여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유대인들은 포도주를 담근 후 마실 때 거기에 번식해 있거나 달라붙어 있는 하루살이와 같은 곤충들을 채로 걸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규정한 곤충들을 먹음으로써 자신이 부정하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한편, 낙타(약대)는 팔레스틴 지방의 가축 중에서 가장 큰 동물로서 역시 율법에 부정한 동물로 규정되었다. “새김질하는 짐승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이라도 다음과 같은 것은 먹지 못한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레 11:4). 그런데 낙타를 삼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과장된 표현이다. 이는 율법에 어긋나는 엄청나게 큰 부정한 행동조차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한다는 풍자적 의미이다. 사람이 작은 입으로 자기 몸집보다 휠씬 큰 낙타를 삼킬 수는 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익히 알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는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전도된 가치관을 꾸짖었다. 그들은 하루살이를 삼키는 것과 같이 사소하고 작은 율법 조항 – 이것조차도 그들이 자의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 에 저촉되는 것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았다. 일례로 안식일은 900미터 이상 걷지 않았으며세탁 할 때도 정해진 양만큼의 물만을 쓸 정도였다. 반면 약대를 삼키는 것과 같이 정작 중요한 율법의 근본 정신인 인. 의. 신 등은 너무나 쉽게 저버리는 큰 악을 자행했다. 이에 대해 윌리암스(A. L. Williams)는 “주님은…아주 사소한 의식상의 더러움을 피하고자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저들의 모순성을 지적하신다”는 말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중심을 꿰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