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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 1-10절 /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과 남은 자 사상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22.10.02|조회수440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과 남은 자 사상

- 이중 예정론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음 -

 

로마서 11장 1-10절 / 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신 선택의 은총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선민 삼으셨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함에 있었다. 이는 예수님 당시에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에게 보는 바대로 외식으로 나타났다. 이런 유대인에 대해서 바울은 그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써 예수께서 선언하신 “화가 있을 것이”란 멸망의 대상이었지만 그 중에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자들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비록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가 소수에 불과할 것이지만 이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단절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원리에 따른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기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미리 아신‘은 하나님의 예정 예지적 활동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나님 자신에게서 기원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에 포함되는 자들인 이스라엘의 일부인 남은 자들이다. 이들이 참 이스라엘로 섭리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이스라엘이라는 이유로 하나님께로부터 거절당하지 않은데 있지 않다. 동일한 원리로 이방인은 그들이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하나님께로부터 거부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배척했을지라도 그들 중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선택에 포함된 자들이 있음을 바울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이와 관련하여 1절에서의 자신의 예와 더불어 엘리야의 예를 들고 있다. 엘리야가 선지자로 활동하던 때 온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그들 앞에서 하나님의 의를 항변하는 자신만이 홀로 있는 것으로 알았으나 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바알에게 무릎을 끓지 않은 사람 7천명을 남겨 두셨다(왕상 19:9-18).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두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미리 아신 자기 백성‘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둘째는,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의 선택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지금도’는 남은 자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전해 주려고 하는 것에서 이다. 바울은 당시(신약)에도 남은 자가 어떻게 있게 되는지에 대하여 답을 주는 말을 하고 있다. 그것은 ‘은혜의 선택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이다. ‘은혜’란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한 하나님의 확실한 구원 행위의 본질일 뿐만 아니라 또한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구원 사역의 모든 결과들의 본질이다(롬 3:24). 그리고 ‘선택’이란 말은 독점적인 하나님의 선택 행위에 대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엘리야 때의 남은 자들에 이어서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택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구원이 함께 하는 남은 자들이 된 이스라엘과 관련시켜 말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된 것이 그들 스스로의 결단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을 따라 된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이해를 잘못 가져나가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완고하게 하나님의 뜻을 거부해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복음을 통해서 오는데 그 복음에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에 있으면 복음을 통해서 내버려 두심인 유기에 있게 하시는 것이다.

 

해서, 바울은 6절에서 이 은혜의 선택을 따라 남은 자가 된 것의 은혜성을 행위와 대조하여서 부각시킨다. “은혜로 된 것이라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이미 은혜가 아닌 것이다.” 바울은 9장 29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두시지 아니하셨더면 - 몇 사람이라도 건져주시지 아니하셨더라면 -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라고 하는 이사야 1장 9절의 인용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완고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지 않음으로 멸망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남은 자들을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셨는데, 이제 이곳에서 그것이 이미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입은데 따른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만일 선택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 아니고 선을 행해서 된 행위의 문제라고 한다면, 그것은 일을 해서 얻는 것과 같아서 값없이 주는 선물이 될 수 없을 것이니 이미 은혜가 아니다.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는 말은 ‘더 이상 행위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라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만약 선을 행하는 사람의 행위에 따른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되지 못한다는 것으로서 앞에서의 ‘은혜로 된 것’을 사실상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사실을 구약 성경을 들어 설명하였다.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심판권(주권)을 행사하셔서 로마서 11장 9-10절에서 인용하고 있는 시편 69편 22-23절인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35편 8절인 “멸망이 순식간에 그에게 닥치게 하시며 그가 숨긴 그물에 자기가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에서 예언해 주시고 있는 약속을 행사하시니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에 있게 하시는 것에 의해서 하신다.  그 때문에 그런 자들은 구원자를 기다릴지라도 자기 목전에 나타나신 주를 보고도 메시야로 알아보지 못하고, 주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며, 마치 사냥꾼이 설치한 올가미에 동물이 걸려들어 기운이 빠지고 맥이 풀려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듯이 복음을 믿지 않고 행함으로 구원받으려는 율법주의를 고집하는 유대인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마음에 있어 그리스도를 보고 듣는 눈과 귀에 있으며, 율법주의의 올가미가 없이 자유한 믿음에 있는 것은 그를 은혜로 선택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

 

 

2022년 10월 2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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