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3)
- 예수께서 입을 열어 제자들을 가르치심 -
마태복음 5장 1-2절/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예수께서는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로 모여든 것을 보시고 따로이 제자들을 데리고 산 위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설교는 마태복음 5-7장에 걸쳐 되어졌는데, 이를 ‘산상수훈’, ‘산상보훈’, ‘산상설교’로 다양하게 말해집니다.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용어인 ‘산상수훈’, 또는 ‘산상보훈’보다는 ‘산상설교’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때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준비하시고 마침내 유대 땅과 사마리아 지역을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하신 후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그곳에 있는 나사렛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스불론과 납달리 지방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이동하시며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이 지역이 영광에 가득 차 어둠 속에서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인데 그 빛이 죽음의 그림자에 덮여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것으로 있는 것으로 이 일이 선지자 이사야가 한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가르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고 주의 은혜의 해가 시작된 것으로 온갖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치시는 이적을 행하심으로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온 큰 무리의 군중이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많은 사람이 예수께 모여든 것을 보시고 따로이 제자들을 데리고 산 위에 올라가 앉으시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 위에 올라가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 나온 많은 무리의 군중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신 자들만 따로이 데리고 산 위로 올라가셔서 그들에게만 있게 된 일을 알 수 있게 해주시는 것으로서의 가르침을 주시는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만을 따로이 불러 모으시고 그들에게 산상설교를 하시게 된 배경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산상설교의 직접 배경이 되는 요인으로 있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심을 온 세상에 드러내시고 그 아들이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는 것에서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된 ‘여자의 후손’과 ‘뱀’(사단) 사이의 적대적 긴장 관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갈릴리 지역에서의 전도를 통해 흑암에 있는 그 지역이 예수님의 전도로 죽음의 그림자를 덮는 큰 빛의 비추임으로 많은 사람이 볼 것이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에 따른 것임을 가르치심이 당시 이 지역이 놓인 상황이 예수님에 앞서 온 자로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사자로 보냄을 받은 세례 요한이 분봉왕 헤롯에 의해 체포되어 구금되어 처형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시작되고 있는 것에서 흑암의 세력에 짓눌려 있던 많은 사람이 빛에 의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게 됨으로 있는 필연적인 적대적 관계의 전투적 긴장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입을 열어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으로 산상설교가 행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상설교는 그 첫 설교가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제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으로 참으로 복 있는 자라면서, 이런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서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을 받으나 이는 빛을 싫어하는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적대를 당하는 것으로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 때 천국을 소유한 행복으로 천국을 즐긴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상설교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도래한 천국을 소유한 자가 참으로 복 있음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입을 열어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산상설교를 잘못 이해하여서 주님이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그릇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 작금의 교회 실정입니다. 왜냐하면 산상설교를 윤리적 강령과 방편으로 다루면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추구할 윤리적 실천으로 제시하며 이것을 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산상설교를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지침서 정도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정은 한국교회에서 전반적으로 갖는 공통된 이해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만일 산상설교가 윤리적 강화라면 예수님의 설교 내용이 윤리적 내용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산상설교를 하시게 된 배경과 그 내용의 뜻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산상설교는 결코 윤리적 강화를 위해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며,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추구할 윤리적 실천을 위한 방안으로 주어진 말씀도 아닙니다. 산상설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래서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하여 그분의 능력을 힘입고 있는 자에게는 그분의 능력으로 천국에 힘있게 들어가서 천국이 지닌 능력이 적대감을 갖고 대적하는 세력에 대하여 어떻게 발휘되어 나타나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곧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신 것은 이렇게 자신의 나라의 임함으로 있게 될 그 나라가 힘있게 발휘하여 펼쳐나갈 능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천국의 임함으로 인하여 그 새로운 세계가 그들에게 힘있게 진행됩니다. 이것을 말씀해 주시고자 해서 예수께서는 입을 열어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신 말씀을 듣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참으로 복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이곳저곳 여러 동네에서 예수님을 따라 나온 큰 무리의 많은 군중들로부터 따로 불러내어 오직 그들만이 들을 수 있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큰 무리의 많은 군중들에게는 그들을 보시고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으나,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큰 무리의 많은 군중이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한, 그래서 결코 그들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듣고 그 깨달음에 있는 가르침을 주시는 것으로 입을 여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입을 열어 하신 말씀은 그 듣는 대상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무리의 군중들에게는 그들을 보시고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그들로부터 따로 불러내 그들만이 듣고 알아야 것을 전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무리가 모인 것에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 무리들이 자신을 좇아 모이는 것을 보시는 것으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주로 받아 섬기며 따르는 천국 백성인 제자들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 백성인 제자들이 듣고 알아야 것인 천국의 진리를 가르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입을 열어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다”는 표현은 특이한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러한 표현을 잘 쓰고 있지 않습니다. 대개는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수께서 입을 여셨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말씀하실 때 쓰고 있습니다. 특별히 입을 열었다는 단어를 쓸 때는 확신을 가지고 아주 중요한 이야기, 또는 중대한 발표를 이야기 할 때 이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5절에 보면,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라고 하였으며, 사도행전 8장 35절을 보면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에서의 ‘내가 입을 열었다’, ‘빌립이 입을 열었다’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이렇게 ‘입을 열었다’는 표현을 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창세부터 감추어 온 것인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는 비밀을 말할 때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밀을 말하는, 뭔가 중대한 사실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입을 열었다’는 하나님을 찬양할 때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눅 1:64).
예수께서는 이 비밀인 참으로 중요한, 그렇게 중대한 말을 전하여 가르치시기 위해서 제자들을 무리로부터 따로 불러내 자신이 전하는 말을 듣게 하기 위해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이들은 천국에 대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을 듣는 귀가 있고 그 전하는 말씀에서 천국을 보는 눈이 있고 그 말씀을 깨달아 천국 백성으로 사는 그 마음이 있게 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그 가르침을 받아 그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는 예수께 가까이 나아오게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있어서 천국을 소유함으로 천국의 도리를 들을 수 있 마음에 있는 사람만이 예수님이 입을 열어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신 말씀을 듣고자 그 말씀을 전하는 분에게로 가까이 나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그 마음에 심히 기뻐하며 행복에 있습니다. 가령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자 예수님의 발 앞에 바싹 다가와 앉고 귀를 곤두 세우는 사람은 마리아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는 기쁨에 부엌에서 분주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께서 입을 열어 전하시는 말씀에 마음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을 귀담아 듣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마리아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 좋은 일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0:42). 그런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서 주의 장사[장례]를 예비하였습니다(요 12:1-8). 그런가 하면 여기의 제자들은 주의 복음을 전파하며 주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에 있는 것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아니면, 그래서 천국을 소유한 백성이 아니면, 오히려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인하여 마음에 근심을 갖습니다. 정말 값진 것인 영생, 주의 제자, 이 값진 것을 얻고자 원한다면 자기 소유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마음이 없는데, 그래서 이것이 자기 소유의 모든 것보다 존귀하다고 하는 인식이 없는데, 자기 소유를 포기하는 자라야,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하니, 그것을 꼭 쥐고 있어 포기할 수 없으니 심히 근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고자 하였던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근심이 되어서 크게 번민하면서 예수님에게서 떠나 돌아갔습니다. 아무리 선한 것을 소원하며 구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받는 마음에 있지 않으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인하여 더 근심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 있어 천국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어서 천국이 그의 마음이 되어 있는 자이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자 하며, 귀담아 듣고자 하여 그 몰입에 들어가는 자세에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이 입을 여심으로 나오게 되는 하나님의 비밀을 듣게 되어 있으며 거기에 관심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에서도 보게 되는 것입니다만, 무리들은 예수님이 전하시는 ‘생명의 떡’에 대하여 전혀 귀담아 듣지도 관심을 갖지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우리에게는 그렇게 귀하게 여겨지며, 이 생명의 진리 안에 있는 것이 꿀송이보다 달다는 생각을 갖지만 말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항상 무리를 짓고 앉아 있을 뿐이며 자기들에게 가져다 주는 떡을 받아 먹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다만 자기들의 배를 부를 수 있게 해주실 수 있기를 원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입을 열어서 하시는 말씀에 목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비밀에 대하여 알게 되며, 그래서 영생케 하는 떡이 주께 있음을 알고 주를 떠나지 않고 주와 함께 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주께서 천국을 소유케 한 마음에 있는 사람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천국의 비밀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을 듣는 마음에 있으며 그 행복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에게로 불러 모으시고 자신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따름에 있게 하신 제자들을 무리로부터 따로이 분리하여 있게 하시고는 그들에게 입을 열어 그들에게 임한 천국에 대한 말씀을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