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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태복음 5장 17-19절/ 산상설교(15)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란 진의(眞意)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1.03.10|조회수1,709 목록 댓글 0

산상설교(15)

-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란 진의(眞意) -

 

마태복음 5장 17-19절/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는 것이며,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룰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기 위해서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나타내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지닌 의미를 완전하게 드러내시며, 여기에서 알게 해 주신 대로 반드시 다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들 중 누구도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고 보잘 것 없이 여기며 이를 지키지 않고 어기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이를 경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거나 또는 계명을 어기도록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율법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어 알게 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계명을 하찮고 보잘 것 없이 여기며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기며 그러한 계명이라고 하여서 지키지 않고 어기거나, 계명을 어기도록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천국 - 하늘나라 -에서 그 또한 가장 작은 자, 곧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율법을 그렇게 하찮고 보잘 것 없이 여기며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무시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천국에 있는 것은 예수님이 그 율법을 다 이루시고, 율법을 다 이루신 그 의로 함께 하셨기 때문으로 여기에는 그들의 어떤 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의의 공로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그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은 천국에서 큰 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율법을 존귀히 여겨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그 또한 천국에 높음(존귀)에 있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첫째는,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까닭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를 ‘천국’, 곧 하늘나라에 있는 자라고 하는 의도를 드러내시면서, 제자들을 장로들의 유전을 좇는 일로 인해서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계명이라 하여 보잘 것 없이 여기면서 이를 지키지 않고 어길 뿐만 아니라, 어기도록 가르치는 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계명에 근거해서 자신들이 만들어낸 많은 계명을 엄격하고도 철저하게 지키는 전통을 좇으면서도 정작 율법과 선지자의 말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겨 하찮고 보잘 것이 다룸으로 잘 지키지 않는 것을 예수님은 지적하면서 제자들에게는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그들처럼 하찮고 보잘 것 없이 다루지 말며 순종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더욱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보다 큰 것과 작은 것, 중요한 것과 다소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여 크고 작음과 중요함과 사소함으로 나눌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전통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정작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잘못에 있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행동은 그들이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마음은 멀다는 것과 그들이 무시하는 지극히 작은 계명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계명은 그들의 죄를 정죄하며 심판할 것을 보여줍니다. 계명(율법과 선지자의 말, 그리고 여기에서 나온 계명의 모든 것)에서 명령하시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킴으로써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만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에 있는 자신들의 실체가 드러날 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계명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줄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이신 예수께서는 그런 그들을 받아들이시며 죄 없다고 선언하시며 그들의 의가 되십니다. 비록 죄 속에 있음으로 해서 결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자일지라도 예수께서는 죄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은총으로 값없이 자신을 따르는 모든 믿는 자들의 죄를 없애심으로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보잘 것 없이 여기며 지키지 않는 계명 하나 하나에서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율법 외의 하나님의 한 의에 있습니다(롬 3:21-24).

 

여기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율법관과 이들과 대조되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율법관과의 차이점이 말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은, 곧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보잘 것 없이 여기며 지키지 않고 어긴다는 것이요 자신들이 그러는 것처럼 또한 백성들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친다는 것인데, 이는 그들이 가진 잘못된 율법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계명을 크고 작은 것으로 구분하여 큰 계명을 중요하게 여기며 작은 계명은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버렸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가지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지키기 위하여 그들 스스로 세세한 계명을 만들어 그 준수에 있고자 하면서 이것을 내세워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외면하여 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계명을 철저하고 엄격히 준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작은 것도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가령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바치며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는 등에 철저함과 엄격함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임으로써 자신의 공적을 자랑함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에만 관심 있었을 뿐입니다. 또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잔과 접시의 겉을 항상 깨끗하게 닦아 놓는 철저함을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것에서 그들의 마음속에 정작 있어야 할 의와 인과 신은 없고 항상 방탕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것들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주시고 있는 의와 인과 신은 버림으로 사실상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이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은 버린다고 하였습니다(마 23:23-26). 이것이 예수께서 그들이 지키지 않는다고 하신 계명의 진의(眞意)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이러한 율법관에 의한 ‘사람의 의’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들과 대조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들이 그보다 ‘더 나은 의’인 ‘천국의 의’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율법이 뜻하는 바인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의미를 완전하게 드러내심으로써 예수님은 올바른 율법관에 있으십니다. 그리고 율법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을 예수께서는 온전히 성취하십니다. 율법의 모든 계명, 곧 하나 하나의 계명은 ‘다 이루리라’는 그 목적에 도달할 때까지 죄 아래에 있는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으로 끌고 갈 것인데,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율법을 다 이룰 자신 안에 두고 ‘천국의 의’에 있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이죠. 예수님이 완전하게 드러내신 그 율법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 율법을 다 이루실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것에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순종에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율법을 존귀히 여김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처럼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에 있음으로,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을 존귀히 여김에 있음으로 그들은 자신들을 부르시고 함께 해주시고 있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있는 존귀한 자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둘째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에서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는 자’와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는 자’가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의 진의(眞意)입니다.

 

여기서 “천국에서 작다 일컬어지는 자”, 곧 ‘천국에서 작은 자’와 “천국에서 크다 일컬어지는 자”, 곧 ‘천국에서 큰 자’에 대해서 오해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작은 자’와 ‘큰 자’가 있는 것으로 알고, 그래서 천국에서 어떤 사람보다 권세가 있고 높은 자리에 앉은 자가 있고 그보다 못한 낮은 자리에 앉은 자리가 있는, 그렇게 차등 있는 신분에 우리들이 있을 것으로 잘못 알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그렇게 큰 자와 작은 자의 신분과 상태에 있는 자로 나뉘어 신분의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을 것이란 의도에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선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란 율법의 계명 중에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한 그렇게 하나님의 율법이 무시되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될 것이란 것인데, 이러한 말씀을 하신 의도는 예수님의 율법 재해석과 예수께서 종말론적 지상사역 -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의한 구속사역 - 에 의해서 그 율법을 다 이룰 성취에 제자들이 이제는 놓여져 있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에서 심지어 하찮게 여기는 것조차도 예수님은 견지하셨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러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이를 주지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을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고 무시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율법을 다 이룰 때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드러내신 하나님의 뜻의 이해에 있으면서 이를 받들어 섬김에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데 제자들이 예수님이 드러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받들어 섬김에 있어 오지를 못한다고 하면, 이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해 왔던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이라 하여 하찮고 보잘 것 없게 여겨 버리는 것에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버린 율법의 준수자가 되셔서 율법 아래 놓여져 있는 그들을 위해서 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린 그 위에서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그들을 주와 함께 주의 나라에 있게 하신 은혜에 의해서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피 공로를 입음에 있음을 다만 감사하며 그 의존에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천국에 있는 것이 예수님의 피 공로 외에 그의 어떤 것이 공로로, 의로 함께 한 때문이 아니며 그러한 자랑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천국에서 높임을 받고 존귀히 여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낮추고 보잘 것 없이 여길 뿐입니다. 따라서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천국에서 우리가 큰 자로 있게 되는 것이냐 작은 자로 있게 되는 것이냐를 말해 주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율법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시고 그 율법이 의미하고 있는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죄로부터 구원하여 천국에 있게 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천국의 의’의 가치와 그 존귀함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이 율법이 지닌 의미를 완전하게 드러내신 그 율법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 율법을 다 이루실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것에서 제자들은 ‘천국의 의’에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율법을 존귀히 여김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존귀히 여김에 있음으로 그들은 자신들을 부르시고 함께 해주시고 있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있는 의를 입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천국에서 존귀한 자로 있음을 의미하는 강조에서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는 천국에서 작은 자가 있고 큰 자가 있는데, 그렇게 둘로 나뉘어지는데, 누구든지 율법을 가르치고 그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은 천국에서 큰 자로 있을 것이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가 있지 않습니다. 자랑하는 다만 주님만을 자랑할 뿐인데요.

 

훗날 사도 바울은 주께로부터 받아 전한 하나님의 복음에 의해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말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고 말입니다. 이것은 천지가 없어기 전에 율법의 일 점 일 획은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란 예수님이 말씀하신 율법의 완성을 예수님이 이루셨기 때문에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아직’ 이 땅에 있습니다만, 우리는 ‘이미’ 우리가 믿는 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그분의 나라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영접한 그 때에 우리의 이름은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항상 따라 다닙니다.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우리의 이름이 영원히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항상 그 너머에 있는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바라봄에 있으며, 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을 이끕니다. 그 나라로 말입니다. 우리가 시민권을 하늘에 둔 믿음에 있으므로 천국 지향적입니다. 우리는 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천국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에게서는 우리의 시민권을 하늘에 있게 하신 예수님과 예수님이 드러내신 율법의 온전한 의미와 그 성취가 이야기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 모임을 갖고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전하며 그 믿음에 함께 있어온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들에게 어떻게 있어왔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오래도록 그 시간을 가지면서..... 여기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의 영이 아니시면 단 어느 한 순간이라도 그 사실을 느끼며 깨달아 알며 그 믿음에서 감사하며 기쁨에 있을 수 있겠는지요. 우리가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이 너무 짧은 것에, 우리가 이런 기회를 갖는 것이 너무 드문 것에 안타깝고 아쉬움을 갖는가요. 그 짧게나마 시간을 가짐이 우리를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에 있게 한 믿음으로 인해서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짧은 시간이나마 갖는 것이 우리에게는 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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