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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태복음 7장 15-20절/ 산상설교(48)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 열매를 보고 그나무를 안다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2.03.11|조회수1,103 목록 댓글 0

산상설교(48)

-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 -

 

 

마태복음 7장 15-20절/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예수님은 앞서 마태복음 7장 13-14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좁은 문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 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지를 않고 멸망으로 들어가는 넓은 길을 따라서 넓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에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고 협착하므로 그 길 끝에 있는 문도 작고 좁아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해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인 동시에 예수님이 함께 하는 제자들은 그러한 아무도 찾지 않는 좁고 협착한 길을 걸으며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문에 들어감에 있는 자라고 하는 것이며, 이렇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실행되고 있는 것에서 좁은 문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자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좁은 문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왜 그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넓은 길을 택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 있는 이 넓은 길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 넓은 길을 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처한 운명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또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단지 길이 넓고 걷고 편하므로 그 길 끝에 있는 넓은 문이 지옥<멸망>으로 들어가는 문인데도 알지 못하고 마냥 좋아하면서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사람들을 이렇게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고 있는 ‘선지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전할 예언의 말씀을 맡은 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맡긴 예언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해 주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자입니다. 선지자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인데, ‘거짓 선지자’가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참 선지자가 아닙니다.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세운 선지자가 아닙니다. 거짓 선지자는 사람이 세우거나, 또는 자기 스스로 마치 선지자 인양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맡긴 예언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예언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말을 만들어서 합니다. 그러면서 마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하는 것인양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 거짓 선지자는 악한 영에 의해서 부림을 받는 자입니다. 즉, 악한 영의 종입니다. 이렇게 악한 영에 의해서 부려지고 있는 거짓 선지자는 자기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는 것인양 말을 만들어서 합니다. 거짓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 악한 행위를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미혹을 받아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됩니다. 요한계시록 20:10, 12-15; 21:8; 22:15에서 이르는 마귀와 더불어 생명의 책에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은 악한 사람은 영영한 불못에로 내던져져 그곳에서 영원히 고통 중에 있을 것으로서 거짓말을 하는 자 - 거짓말을 좋아하는 자/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자 - 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악한 영인 마귀는 이렇게 자기와 더불어서 영영한 불못에 던져질 자들을 끌어 모으는 일을 거짓 선지자를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그 문도 커서 이 넓은 길을 택한 많은 사람이 다 이 넓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그렇게 거짓 선지자가 하는 말에 미혹을 당하며 그들이 하는 말인 거짓말에 넘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에서 말씀되고 있는 대로 거짓 선지자들은 본래는 교활하고 사나운 이리 같은데 순진한 양의 탈<가면>을 쓰고서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까닭에 그 실체를 알지 못하는 고로 마치 순진한 양이 하는 말로 알아듣고 따르는 때문입니다.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본 모습을 감추고서 드러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본 마음은 노략질 하는 이리 같아서 미혹 당하는 자들을 찢어 삼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이 아무리 양의 옷을 입고 - 또 다른 한글성경에서는 양의 탈을 쓰고 라고 번역하고 있다. - 사람들을 미혹하는 말을 할지라도 그들의 정체는 그들이 행하는 일을 통하여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여실히 그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서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령 말입니다. 다음에 하는 말이 예수님이 하신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는 것을 이해하고서 설명하는 말인지, 그래서 맞는 말인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했던 것을 가지고 예로 들겠습니다. 언젠가 모시골길을 밤에 걸어가면서 길 옆에 있는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를 서리 한 적이 있습니다. 손만 뻗으면 얼마든지 사과 열매를 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이 따지 못하고 몇 개만 땄습니다. 밤이지만 달과 별의 빛에 의해서 그래도 길은 훤히 보였으며 사과나무 또한 잘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 눈엔 사과나무는 보고 있지만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아니면 나쁜 나무인지를 보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를 보는 내 눈은 단번에 그 사과가 좋은 것인지를 압니다. 아주 알차게 열렸거든요. 그리고 사과를 맛보니 달아 아주 맛있습니다. 사과 열매가 이러나 이 사과를 열리게 한 사과나무는 분명히 좋은 나무입니다. 사과나무 상태가 좋지 않고 나빠서야 그렇게 달고 맛있는 사과가 맺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말이죠. 사과 열매를 보고 사과나무가 좋은지 또는 나쁜지를 압니다.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아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것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는 것을 설명한다면, 참으로 그럴 듯한 말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데 따른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식으로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 행실<열매>을 보아서 그의 신앙<나무>이 좋은지 나쁜지를 안다는 것으로 말해 나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면서 좋은 신앙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좋은 행실 착한 행실에 있어야 한다며 할 수 있는 대로 좋은 행실 착한 행실을 많이 하여서 자신이 좋은 신앙에 있다는 것을 보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좋은 행실 착한 행실에 있는 것에서 좋은 신앙을 말하려고 하며, 좋은 행실 착한 행실을 갖는 것에서 좋은 신앙에 있다는 것을 내세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예수께서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과 열매가 탐스럽게 열렸으며 사과가 참으로 맛있는 열매인 것을 보고 사과나무의 상태가 참 좋다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과는 전혀 그 성격을 달리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는 “나무에서 어떤 열매가 열리는 것이냐?”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가시나무에서 열리는 것은 포도가 아닙니다. 포도 열매가 열리는 것은 포도나무에서이죠. 엉겅퀴에서 딸 수 있는 것은 무화과가 아닙니다. 무화과 열매는 무화과나무에서 딸 수 있는 것이죠. 여기서 가시나무와 엉겅퀴는 전형적인 잡초들입니다. 이것들도 자기 종(種)의 번식과 번성을 위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가시나무가 내는 열매이며 엉겅퀴가 내는 열매입니다. 그러나 포도와 무화과는 과실입니다. 가시나무가 내는 열매와 포도는 확연하게 다르며 그 차이가 분명합니다. 그렇듯이 엉겅퀴가 내는 열매와 무화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다른 것에서 다른 것이 열릴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가시나무와 포도는 전혀 다른데, 이 서로 다른 것에서 다른 열매가 열릴 수가 없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가 열리지 않는데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겠으며, 엉겅퀴와 무화과는 전혀 달라서 이 서로 다른 것에서 다른 열매가 열릴 수 없으므로 엉겅퀴에서 무화과라는 열매를 딸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비유를 드신 것은 거짓 선지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가 열매로 열리지 않으니 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딴다는 것은 결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엉겅퀴에서 무화과라는 열매가 열리지 않으니 이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딴다는 것 또한 전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란 과실의 열매를 딸 수가 없는 것이죠. 그렇듯이 말입니다. 가시나무와 엉겅퀴로 비유되고 있는 거짓 선지자에게서 포도와 무화과 같은 좋은 열매로 비유되고 있는 참된 선지자가 말하는 말인 하나님께서 맡기신 예언 계시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말은 그들에게서 결코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참된 선지자가 말하는 말은 전혀 들을 수가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란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나옵니다. 즉, 나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란 나쁜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즉,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자신이 거짓 선지자라는 것을 밝히지 않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노략질하는 이리 같습니다. 순진한 양의 탈을 쓰고 양의 옷을 입고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서 사람들을 속여 자신에 대해서 호감을 갖게 하고 호의적인 마음에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끌며 사로잡습니다만, 이들은 양이 아닌 처음부터 이리로 말할 수 있는 노략질하는 악한 자들 입니다. 그러한 그들은 삼킬 기회를 갖기 위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말을 만들어서 합니다. 이들에게서는 말이죠. 처음부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꺼내어서 말을 합니다. 이들에게서 백성이란 자신들이 노략질하여 찢어 삼킬 대상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과 함께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갈 대상을 끌어 모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넓은 길을 택하는 것은 양의 탈을 쓰고 양의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그들이 하는 말인 거짓 예언을 따르는 때문입니다.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분간하듯이 그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이 악한 자인지를 분간할 수가 있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가 열리지 않으며, 엉겅퀴에서 무화과가 열리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아는 법인데, 포도와 무화과 열매로 비유되고 있는 좋은 말, 선한 말을 보아서 이것이 나오는 나무도 알 수 있습니다만, 가시나무에서 열리는 열매, 엉겅퀴에서 볼 수 있는 열매로 비유되고 있는 나쁜 말, 악한 말에서 이것을 맺는 나무를 알게 됩니다. 그러니 열매를 보아 그 나무가 포도와 무화과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인지 가시나무나 엉겅퀴에서나 볼 수 있는 열매를 맺는 나쁜 나무인지를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좋은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열릴 수 없고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열릴 수 없습니다. 가시나무에서는 결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열리지 않으며 이는 엉겅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열매란 없습니다. 이러한 열매가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말인 거짓 예언을 주의하는 마음을 갖고 경계하며 조심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 거짓 선지자들은 나쁜 나무와 같아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은 사람들이 먹지 못하는 열매입니다. 즉, 이들이 하는 말에서는 결코 사람들에게 선이 되는 말이 없습니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으로 나아가는 좁은 길을 걷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지옥으로 들어가는 넓고 큰 문으로 나아가는 넓은 길을 걷게 하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서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넓은 길을 걷는 자는 먹지 못하는 열매를 맺는 나무는 찍혀서 불에 던져지고 마는 것처럼 그들이 넓은 길을 따라가 넓은 문으로 들어간 결과는 지옥 불에 던져지고 맙니다. 이렇게 나무나 사람은 다같이 그가 맺는 열매의 종류에 따라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말은 할 수만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따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말, 이들에게서 나오는 말은 무엇인지요.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말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는 말은 이들에게서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에 있게 하는 말은 이들에게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에게서 나오는 입술에 달려 있는 말이란 단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끌리게 하는 말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좇아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흠모하게 하여 사람의 온 마음이 여기에 집중하게 하고 그 말하는 것을 따라서 행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가 행하는 말에 있는 하나님이 맡기신 참된 예언 계시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 에서, 또는 사람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거짓된 예언 계시를 하는 것에서 그가 참 선지자인자 아니면 거짓 선지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셨으며 보내신 선지자이면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언 계시가 말해져야 하는데 그가 행하는 말에서 그 참된 예언 계시는 없고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온갖 말이 행해지는 것에서 참 선지자가 아닌 거짓 선지자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이어서 말씀하시고 있는 마태복음 7:21-23에 의하면, 종교적으로 흠이 없이 믿음이 깊은 사람처럼 행동하여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다고 하지만, 이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생명의 주’가 되심을 알고서 그 믿음에 있는 것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님을 공경한다고 하여서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 예수님을 그렇게 높이 치켜들 뿐입니다. 이러한 이들은 입술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존경한다지만, 실상은 마음은 예수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 떠나 있는 -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이들은 거짓 예언을 하고 거짓 능력을 나타내면서 마치 이것이 ‘주님’에게서 나오는 것인양 말하며 주님이 자신들을 통해서 하신 것인양 하여 거짓을 행합니다.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인 벨직신앙고백서 29장 참교회의 특징 및 거짓교회와의 차이점에서는 “(1) 우리는 마땅히 성실하고 주의 깊게 참 하나님의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 알아야만 한다고 믿는 바인데, 그 이유는 이 세상에 모든 이단도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위선자들, 비록 외형적으로는 교회 안에서 선한 성도들과 함께 존재하면서 실상은 참교회의 요소가 아닌 자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교회라고 부르는 온갖 이단들로부터 참교회의 하나 됨이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참교회임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다. 만일 복음의 순수한 교리가 전파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성례가 순수하게 이행되며,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해 죄를 징벌(권징)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는 참교회에 속하는 것이다. 요컨대, 모든 일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뤄지며 동시에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일이 제거될 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되신 분으로 인정됨으로 그 누구도 이 분에게서 벗어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야만 참교회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3) 교회의 성도에 관하여 생각해 볼 때, 다음의 몇 가지로 인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인 됨을 알 수 있다. 즉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받아들인 후에 죄를 멀리 하며, 의를 따라 살고 참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모든 것을 참으면서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인의 흔적을 갖게 되는 것이다. (4)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마치 허물이 전혀 없는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생활에 있어서 성령을 힘입어 모든 죄악과 싸워나가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죄를 사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죽으심, 그리고 고난당하심과 순종하심에 힘입어 살아가는 것이다. (5) 거짓교회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권위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능력과 권위를 내세우면서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르고자 하지 않는 교회이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대로 성례를 시행치 않고 그들 스스로의 생각에 맡긴 채 말씀에서 무언가를 더하는데,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보다는 사람에게 더 의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사는 자를 핍박하며, 그들의 죄와 욕심과 우상 숭배를 책망하는 자를 핍박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교회는 쉽게 알 수 있고 구별할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땅히 성실하고 주의 깊게 참 하나님의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 알아야만 할 것임”을 말하면서, 그 이유는 “이 세상에 모든 이단도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 교회라고 부르는 온갖 이단들로부터 참교회의 하나 됨이 반드시 구별되어야 할 필요성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교회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할 때 다음의 사실을 보라고 말합니다. “만일 복음의 순수한 교리가 전파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성례가 순수하게 이행되며,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해 죄를 징벌(권징)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는 참교회에 속하는 것이다. 요컨대, 모든 일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뤄지며 동시에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일이 제거될 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되신 분으로 인정됨으로 그 누구도 이 분에게서 벗어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야만 참 교회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고 있는 말이 무엇인지를 보라고 것입니다. 교회에서 나오고 있는 말에서 그 교회가 참교회인지 아닌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교회가 하고 있는 말이 무엇인지를 보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권위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능력과 권위를 내세우면서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르고자 하지 않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대로 성례를 시행치 않고 그들 스스로의 생각에 맡긴 채 말씀에서 무언가를 더하는데,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보다는 사람에게 더 의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사는 자를 핍박하며, 그들의 죄와 욕심과 우상 숭배를 책망하는 자를 핍박한다면, 그 교회는 거짓된 교회임을 쉽게 알 수 있고 구별할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참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 세상에 내신 교회는 참된 교회만 존재하는 것이지 교회가 거짓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내신 교회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세우는 교회가 있는 까닭에 하나님의 교회의 탈을 쓴 거짓된 교회가 존재하며 버젓이 활동을 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의 분별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에서 나오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보아서 알게 됩니다. 교회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세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까닭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이 없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세워서 단지 교회모양으로만 있는 까닭에 이러한 거짓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 밖에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즉 ‘사람이 하는 말’만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거짓된 교회가 하는 말에서 사람이 하는 말을 보게 되기에 그 교회가 거짓된 교회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하는 말, 교회에서 나오는 말을 귀담아 잘 들어보십시오. 아무리 홍수 같이 많은 말을 쏟아낸다고 할지라도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사람이 하는 말을 듣게 되기 때문에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마음이 붙들려 있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말은 그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탐욕으로 차 있는 말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탐욕에 그 마음이 붙들려 있게 합니다.

 

그러니 말이죠. 삼가 조심하셔야 합니다. 깨어 있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살펴 바른 믿음에 있도록 해야 합니다. 참된 교회는 말이죠. 하나님 말씀의 순전한 전파에 의하여 순전한 신앙에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된 교회는 사람의 말의 미혹을 좇아 자기의 몸을 위하여 이 땅의 것을 바라보는 우상숭배의 신앙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짓 선지자가 활개를 치며 거짓 신자들로 몰려들어 있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인산인해(人山人海)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참으로 찾는 이가 적은 자에게 있는 주님의 은혜를 입고 있는지요. 하나님의 교회가 전하는 하나님의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 우리 안에서 흥왕(興旺)하는 까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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