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50)
-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 -
마태복음 7장 24-27절/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산 위에 올라가 앉으시고는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신 산상설교는 이제 본문에서 하신 말씀으로 그동안 가르쳐 오신 모든 말씀을 끝맺습니다. 그러니까 산상설교의 결론에 이른 것인데, 예수께서 이처럼 말씀을 마치는 것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앞서에서 예수께서 함께 하시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주님이 되심으로써 주가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되었으며 주님의 다스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의에 그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 이런 제자들은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에서 참생명인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있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은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 섬겨 그 이름을 부름에 있지 않고 거짓 선지자가 하는 말에 미혹되어서 그들을 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 그들을 심판하는 불에 영영히 내쳐짐을 당할 것이기에, 누구에게서 나오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름에 있는 것이냐에 의해서 그들의 운명이 주님과 함께 생명에 있는 지혜로운 자인지 아니면 거짓 선지자를 따라서 멸망의 심판에 있는 어리석은 자인지가 좌우될 것임을 집을 짓는 건축자를 들어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사람을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 - 슬기 - 로움으로 비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음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종종 집을 쌓아올린 땅의 지반이 약하여서 많은 비가 내린 후에나 겨울철이 지나 봄이 오는 해빙기에 언 땅이 녹아 물러져서 담이 무너져 내렸다거나 집이 기울고 벽이 갈라졌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하물며 모래 위에다가 집을 짓는 건축자는 없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 무너져 내릴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건축자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땅을 굳게 다지고 돌 위에 기둥을 세워 집을 지어 나갑니다. 이러한 집은 백년을 지나 천년이 지나도 굳게 서 있습니다. TV에 광고되고 있는 한 장면을 보니 돌을 쌓아서 만든 다리는 거친 풍파와 드센 홍수를 견디며 천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에 튼튼히 서 있는데, 시멘트로 만든 다리는 그 수명이 300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모래 위에 만든 다리는 얼마나 가겠는지요. 비 한번 내리면 그것으로 다리는 수명을 다하고 맙니다. 만일에 그럼에도 모래 위에다가 집을 짓는다면, 모래 위에다가 다리를 세운다면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건축자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참으로 어리석은 것인지는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이 휘몰아치면 여실히 드러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이 휘몰아쳐도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지만,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이 휘몰아치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며 그 무너짐의 상태는 그 피해가 심히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건축자를 비유로 든 것은 그 당시의 건축 기술과 관련해서입니다. 예수께서 산상설교를 하신 곳은 갈릴리 근처입니다. 이곳은 갈릴리 바다<호수>에서 밀려와 쌓여진 모래가 뜨거운 여름날에는 햇빛의 열기로 표면이 단단합니다. 지혜를 가진 건축자는 비록 표면이 단단하다고 해서 그 위에다가 집을 건축하지는 않습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모래 지표면을 10피트(3.048m)를 파고 내려가 최하층의 바위에다가 집의 기초를 놓습니다. 그것은 겨울비 - 예수께서 묘사한 비나 창수는 팔레스틴의 겨울철의 호우를 일컫는 것인데, 그것은 대개는 폭풍우를 동반한다 - 가 내려 바다로 흐르는 요단 강이 강둑을 넘쳐 흐를 때 충적된 모래 표면에 세운 집들은 안정할 수 있는 기초가 없습니다. 하지만 모래 속 깊이에 있는 바위에 세운 집들은 홍수를 견뎌댈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지역에서 1970년 후반에 가진 고고학 발굴대가 고대 건물의 기초에 분명히 사용된 현무함으로 된 돌을 발견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이러한 건축 기술을 잘 알고 계시기에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건축자를 비유로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리석은 건축자와 같은 경우가 예수님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산 위에 올라 한 곳에 앉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는 산상설교를 시작하시자, 산 아래에 모여 있던 무리들(마 5:1)은 차츰 차츰 한 사람 두 사람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 수는 어느새 제자들이 있는 예수님의 주변까지 올라와 둘러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말이죠. 제자들이 듣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가르침에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그 가르치시는 것이 서기관들과는 달리 매우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마 7:28-29).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 뒤를 따랐으며(마 8:1), 이후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비롯해서, 백부장의 하인의 병, 혈루증을 앓는 여인, 두 소경과 벙어리,그리고 많은 병자를 고치셨으며, 귀신을 쫓아내셨고, 거친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등 많은 능력<이적>을 행하시는 것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만, 예수님은 모여든 군중을 보시며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마 8:2-9:38).
예수님에게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행해지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보고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말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습니다만 그러고도 예수님을 주로 섬겨 따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그들이 따를 주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천국복음의 전파와 천국복음의 가르침과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들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시는 것에서 나타내신 능력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거기에 단단한 반석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가 있습니다. 여기에 그들의 믿음이 서 있어야 합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천국복음의 전파와 그 가르침과 능력에서 그것이 지닌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놀람에 있게 되는 신비한 기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말이죠.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시며 하시는 말씀에서 생명을 영원히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가 없는 단지 자신들의 몸에 필요를 위해서 예수님의 뒤를 좇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이들에게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 - 언약 - 하신 생명의 주를 보내신 것에서의 ‘주님’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존귀하신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주님’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랍비’로 호칭하며 ‘선생’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인식의 차원에 있거나 그보다는 좀 더 높은 차원 - 예수님을 선지자로 보는 관점 - 에서 예수님을 존경하는 표현에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주’라고 불려지는 자들과는 그 호칭이 지닌 성격과 개념을 전혀 달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여, 주여’ 라고 부르면서 그 뒤를 좇는 ‘주’라고 불려지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며, 이들이 주라고 불려지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합니다만, 이들이 하는 그 모두에서는 ‘반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가 없습니다. 이것이 없는 그들이 하는 말과 능력이라는 것은 단지 ‘모래’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 의가 없이 강하고 건강하고 귀신에 시달리지 않는 몸이란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이 휘몰아치면 여지없이 무너지는 집과 같은 운명의 마침에 있습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이 악한 자들아, 내개서 물러가라!”와 동일한 운명으로, 포도가 열리는 포도나무가 아닌, 무화과가 열리는 무화과나무가 아닌, 불에 던져지는 가시나무와 엉겅퀴와 동일한 운명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에서 자신이 함께 하는 제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다음의 말씀을 통해서 주지시키시고 있습니다. “내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든든한 반석 우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쳐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아니하였으니, 그것이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라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없이 하나님의 의가 없이 ‘주’를 찾는 것은 일시적인, 참으로 잠간의 유익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며 그 따름에 있는 자는 예수님이 구함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서 있는 것에서 그들의 생명을 그들이 서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안에서 안전히 지켜 보존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며 그분을 따르는 제자란 것은 이렇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에 있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제자들의 생명의 주로서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합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에 있는 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