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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태복음 5장 21-22절/ 지옥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2.05.20|조회수2,228 목록 댓글 0

지옥

 

마태복음 5:21-22/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본문은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제자들에게 임한 천국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왜 더 나은 의인지를 가르치시기 위하여서 유대인들이 조상 대대로 들어온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서 자신들을 의롭다고 여기고 있지만 그러한 그들이 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 불에 들어가는 악한 죄에 있는지를 말씀하신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신약성경에서는 처음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지옥 불’이란 말입니다. ‘지옥(불)’이란 지옥을 말하는 직접적인 용어는 여기서 처음 봅니다만 ‘지옥’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는 마태복음 3장 10절, 11절 두 곳에서 ‘불’이란 말로도 말해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에 던져지리라.”

 

마태복음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 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에 태우시리라.”

 

이렇게 ‘지옥(불)’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지옥(불)’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옥(불)’은 신약성경에서 모두 13번 나오는데,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옥(불)’이란 말 외에도 이것을 나타내는 직간접적인 용어로는 ‘불’로도, 그리고 ‘불못’(계 20:14, 15), ‘둘째 사망 곧 불못’(계 20:14), ‘유황 불 붙는 못’(계 19:20), ‘불과 유황 못’(계 20:10),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 20:18), ‘꺼지지 않는 불못’(마 3:12; 병행구절 눅 3:17; 막 9:43), ‘영원한 불’(마 18:8; 25:41), ‘영원한 멸망의 형벌’(살후 1:9), ‘영원한 불의 형벌’(유 1:7), ‘영원한 심판’(히 6:2)이라는 말로 다양하게 말해지고 있습니다. 해서, 이 ‘지옥(불)’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옥

 

혹자는 ‘지옥’이란 정말, 과연 존재하는가? 라고 의문히 여기는 질문을 갖습니다. 전에 한 책에서 옛날에 어떤 사람이 그러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기억하기는, “하나님은 ‘지옥’이 정말 존재하는가? 라고 말하는 사람을 지옥에 보내기 위해서 지옥을 만드셨다.” 라고 말입니다. 지옥은 ‘존재의 증명’으로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지옥은 존재하는 곳으로 증명되며, 성경은 이 지옥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옥’이라는 말은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히브리어로「게 힌놈」입니다. 이 말은『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동남(東南)에 있습니다(수 15:8, 18:16). 그곳은 우상을 섬기던 가증한 곳이었던 만큼(왕하 16:3; 21:6; 대하 28:3; 33:6; 렘 32:34, 35) 요시야 왕이 훼파하였고, 제사장들은 그곳을 불결한 곳이라고 불렀습니다(왕하 23:10) 예레미야는 이곳을 가리켜 예언하기를 그곳이 무서운 살륙의 골짜기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렘 7:32; 19:6) 외경인 에녹서에는 이곳에서 모든 악인들이 심판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 힌놈의 골짜기는 악인들이 사후(死後)에 벌 받을 곳의 이름으로 여겨졌습니다.

 

지옥에 대한 이름이 땅위의 한 지명(地名)과 관계되었다고 하여 우리는 지옥의 내세적 존재를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내세에 대한 이름도 이 세상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개념 밖에 다른 것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세에 대하여 말할 때에 별 수 없이 이 세상 개념으로 말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 명칭 때문에 그 가르치는 사상이 약체화(弱體化)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이런 문제에 대한 명칭의 유래나 성격 때문에 그 문제의 포함한 사상이 약해진다면 우리는 내세와 같은 이 세상 아닌 것에 대하여는 말을 안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대하여도 우리는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대한 명칭인 ‘신(神)’이란 말도 그 어원을 따질 때에 그리 신통한 말이 아니며 이교(異敎)에서도 많이 사용합니다. 그뿐 아니라 ‘게힌놈’에 대한 우리의 번역도 신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옥’이란 말은 ‘땅 속의 옥’이라는 말이니 죽은 자들의 영들이 흙으로 된 옥 속에 갇혀 있겠습니까? 또한 마귀와 그 사자들이 그런 옥에 갇혀 있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지옥의 원어 “힌놈의 골짜기‘란 것이 예루살렘의 동남쪽에 있는 곳의 명칭이라고 하여서 그것이 가르치는 내세 사상을 약체화하여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지옥의 존재에 대하여 반대하는 이론이 몇 가지 있으나 그것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지옥 형벌 교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충돌되며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드는 그릇된 교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인정 깊은 분이 다시 없으되 그분이 지옥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는 사랑이 있는 동시에 공의(公儀)도 있는 것인 만큼 죄악을 벌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시는 것으로 행해지며 또한 충족된 그 공의 속에서 의로운 자에게 풍족히 베풀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옥 불’의 의미

 

‘지옥’을 ‘지옥 불’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지옥’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불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합니다(신 4:24; 9:3; 사 33:14)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들이 갇히는 곳인데(마 25:41) 거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가장 심하게 나타납니다(살전 1:10; 히 10:31)

 

우리는 지옥을 생각할 때에 거기 있는 불이나 어두움(마 8:12)이나 죽지 않는 구더기(막 9:48)나 영원한 고통(마 25:45)같은 것을 어떤 실유(實有)로 여겨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하나님의 진노가 그 모든 두려움과 고통의 근본 요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있는 곳에 그 모든 환경도 불안과 불유쾌로 나타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바입니다. 그것은 특별히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지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인에 대한 불행의 근본요소가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은 내세에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6:15-17을 보면 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수 가 없어서 돌<바위>더러 명하여 자기들의 머리 위에 떨어지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지옥 갈 죄

 

예수님의 말씀대로 보아 지옥에 갈 죄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마태복음 5:22에 있는 대로 극히 작은 죄라도 지옥 갈 죄라는 것입니다. 그 분문 22절은 다음과 같으니 곧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형제에게 노한다’ 라고 하는 것은 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같이 믿는 형제에게 대하여 증오를 발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가 지방 관청의 판결을 받을 만한 죄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라가’ 라고 말하는 자란 분노가 악담으로 나타난 것인데 ‘라가’라는 말은 ‘바보’, ‘어리석다’라고 욕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이 죄는 예루살렘에 있는 최고 치리회(재판소)인 공회에 붙일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놈’이라는 것은 아주 나쁜 욕설이니 하나님을 모르는 놈이란 내용을 가진 것으로서 저주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보면 죄가 다루어짐이 일층 악화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러한 죄는 지옥 불 가운데 던져질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처음 두 가지의 죄가 각각 심판(지방 재판)을 받음과 공회에 잡힘(유대의 최고 재판을 받음)의 벌을 받는다는 말씀은 세상 재판관이 그 죄들을 그렇게 단속해야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재판은 단지 세속적 개념에서가 아니라 율법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서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증오심을 그렇게 형벌을 받아 마땅한 죄로 간주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세 가지 죄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은 죄의 세 가지 등급을 논하는 것에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 가지는 거의 같게 작아 보이는 증오의 죄악인데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들은 5장 21절과의 연계에서 살인죄와 동일한 처벌에 해당한 것들입니다. 비록 그들이 지은 죄가 작게 보이는 것 같아도 실제적 살인죄가 받는 벌과 같은 동일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증오하는 마음속에서 이미 상대방을 죽이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두 가지 죄는 지옥 형벌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이 본문이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것들로 셋째 죄와 같이 지옥 형벌을 받을만하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작아 보이는 죄들이 다 같이 지옥불의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뜻이 이 본문에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에는 사람이 작은 죄를 범하여도 지옥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상이 있습니다. 이런 사상에 관하여 지옥 형벌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들이 그릇된 이론을 합니다. 곧 “지옥 형벌이란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충돌된다. 인간이 잠간되는 이 세상에서 범죄한 것 때문에 영원히 지옥에서 고난 받는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죄에 대한 오해에서 갖는 것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작은 죄들이라 할지라도 지옥 가는 것은 그 죄의 행함 그 자체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근본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은 죄의 사람인 까닭이며, 그에게서 끊임없이 발휘되는 죄의 세력에 그의 몸이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죄의 사람이요 죄의 종으로 있어서 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은 그것이 단지 표면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헤르만 바빙크는 말하기를 “죄는 그 근원으로 보아서 불법이므로 하나님을 적대한 것이고 그의 권리와 권위와 그의 존재까지 부정함이다. 죄는 한정 있는 피조물과 한정 있는 시간에서 범함이 된 것만큼은 그것 자체도 한정이 있다. 그러나 죄는 어거스틴이 바로 말한 것과 같이 그 범함이 된 시간의 장단(長短)으로 그 벌 받을 표준을 삼을 것이 아니고 그 내부적 성격으로 표준을 삼아야 한다. 사람이 한 시간의 부주의로 인하여 여러 해 동안 슬피 울게도 된다. 일순간의 죄로 인하여 일평생동안 수치와 벌을 받는 일도 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번한 죄는 내부적으로 살필 때에 절대적이고 끊임없이 벌 받을 악이다 하나님은 죄악의 내면적 성격에 의하여 정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살인하지 않았어도 마음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증오, 욕설, 저주가 지옥 불에 들어가는 죄가 되는 것은 단지 어떤 죄를 행했다고 하는 조목조목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부패하여 죄의 세력에 지배받고 있으며 그 죄의 세력에 이끌려서 행한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악 허물로 죽은 죄인이게 때문에 (엡1:1)그 인간의 죄악된 마음으로부터 나와 행하는 모든 범죄는 죄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비록 작은 죄라 할지라도 심상치 않게 여기며 조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끊임없이 영원히 계속되는 형벌의 저주 세계인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은 큰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작은 죄를 범하였어도 들어가게 되는 것인데, 그런 작은 죄를 범한 것 까지도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은 그 죄가 나오는 우리가 죄의 근원인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죄는 아무리 작아 보이고 한 가지 놀음거리 같으며 무의식적이고 순간적으로 행해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뱀과 같은 무서운 죄의 근원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작은 죄를 대수롭지 않고 예사롭게 여기는 자는 그 가볍게 여기던 작은 죄에 의하여 필경은 망하고 맙니다. 결국 인간은 율법을 범하지 않았어도 지옥 불에 들어갈 죄인이며, 율법을 다 지켜 행하였을 지라도 그 마음에 품은 죄의 근원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율법을 범한 자가 되고 맙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데, 이에 대한 유일한 해결은 ‘하나님의 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 속에 있으면서 이 의로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알고 있지 온 세상의 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여 배척함에 있는 그 죄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갈 것임에도 그 죄에 대한 인식이 없는 자들에게 그들이 그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지극히 하찮고 작게 여기는 무시되는 죄라고 할지라도 그 죄가 그들을 물고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좇음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로 받아 섬김의 따름에 있는 제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천국의 의’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는 것이 이러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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