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예고에 갖는 의문이 풀어지지 않는 제자들
마태복음 17장 9-13절(막 9:9-13)
마테복음 17장 9-13절 /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제자들에게 변화산에서 본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심
변화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주의는 바로 얼마 전에서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이끌어 내시며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인식시키시고, 장차 자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알려주신 후, 자신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습니다(마 16:20).
그런데 이번에는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그들의 눈으로 직접 본 것을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변형하신 모습은, 본문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이라는 말을 전제하신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부활하심으로써 입게 될 하나님의 크신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로서 자신의 영광을 취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본체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 앞으로 자신이 메시야(그리스도)로서 죽음을 당하신 후에 이르게 될 영광을 예표하심으로써 제자들이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올바르게 이해하고서 그 길을 따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야 사역을 행하신다는 것 자체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상태에서 예수 주변에 맴돌던 대중적 메시야 기대 열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말하여 알리면 알릴수록 그 길을 막는 방해가 나타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간곡히 만류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이었기에 대적자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신 것은, 자신이 메시야이심과 메시야로서 입으실 영광이 그때까지는 비밀에 붙여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 마음이 더욱 강퍅해지는 것이 죄의 본성에 이끌림을 받는 인간의 상태이심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에 그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입으실 영광의 실체는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야 공개적으로 선포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변화산에 함께 올라가 본 세 명의 제자들 외에는 심지어 다른 제자들에게까지도 비밀에 붙여져야 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비밀이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음으로 해서 어느 정도 나타내 알게 해 주신 것이 사실이지만 변화산에서 있었던 신적 광경에 대한 정보가 하락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들도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는 것을 본 후에야 비로소 제자들이 본 것을 말하는 변화산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은 단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그래서 이 사람의 귀에서 저 사람의 귀로 전달된 대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그 행하신 분명한 사역의 결과가 듣는 자로 하여금 믿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점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과 함께 변화산에서 본 광경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주의를 받은 제자들은, 그럼에도 아직도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에서 내려오면서 예수께로부터 들은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었습니다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곧 풀리지 않은 의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번 기회에 그 문제를 거론하여 의혹을 해소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의혹은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의혹은 당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활관과 맞물려 더욱 큰 의혹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두 가지의 부활관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활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또 하나는 부활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마 22:23). 이들은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주장합니다(행 23:8). 반면에 부활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또한 천사도 있고, 영도 있다고 주장하여 사두개인들과 정 반대의 견해를 갖습니다(행 23:8). 이 중에서 당시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부활관의 주류는 바리새인들의 주장입니다. 이들이 가진 부활관은 세상 마지막 날에 겪게 될 부활이었습니다(참조. 요 11:24 ).
그런데 예수께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음을 당할 것이고, 그러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이어야 부활이 있을 터인데 아직은 그 때가 아닌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구약을 가르치던 율법선생들은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해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메시야의 도래를 예비할 것(말 4:6)이라고 가르쳤으며, 아직 엘리야가 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고 또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해 주고 있는데다가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을 가까운 시기에 하실 것으로 말씀하시므로 혼돈 속에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메시야가 죽음을 당한다는 것도 이해를 못하고 있고, 또 그 후에 하실 부활이 갖는 의미도 이해를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쟁점은 “아직 엘리야가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메시야가 죽으실 수 있고, 또한 부활하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진 이해를 정리하자면, 구약에 예언된 엘리야가 와서 메시야 길을 평탄케 할 것이고, 메시야는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며, 마지막 날에 메시야를 따른 모든 자들을 부활시키실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메시야가 죽음을 당한다는 이해를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에 앞서 오실 것이라는 엘리야는 이미 왔는데 그는 세례 요한이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으며, 세례 요한이 닦아 놓은 길에서 메시야는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행하실 것에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실 것이며,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제삼일 만에 다시 살리는 부활을 하게 하실 것이고, (이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상에 실현시키시는 것이 될 것이며, 그에 따라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의인은 생명의 부활을 악인은 사망의 부활을 하게 하실 것인데,)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에 의해서 의인이 입을 하나님의 크신 영광을 예표적으로 보여주시는 일을 변화산에서 자신의 변형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하시는 것에서 나타내주셨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에 제자들의 믿음이 있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답변: 엘리야가 이미 왔다!
제자들에게서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답변을 하셨습니다.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서기관들이 하는 말 자체는 옳다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과연 그들이 알고 있는 대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켜 놓는 일을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에 왜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다.” 라고 했는지를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서기관들이 말하는 대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인데, 그러면 성경에는 무엇 때문에 인자가 고난과 온갖 모욕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해 놓았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즉 너희는 서기관들이 말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는 일을 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지, 성경에 그 일이 있은 후 인자가 고난과 온갖 모욕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한 것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중요시 여기고 알고 있어야 할 것은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함으로써 인자가 고난과 온갖 멸시를 받으신다는 것이며, 이 사실을 지금 주님의 자신에 대한 죽음과 부활의 예고에서 깨닫는다고 하면, 이 일은 이미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켜 놓은 상태에서 있게 되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야 되지 않느냐, 그런데도 엘리야가 이미 온 것을 모르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다.” 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는 이 부분을 의미상 좀 더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마 17:12). 이미 선지자가 말한 엘리야가 와서 회복의 사역(눅 1:17)을 하였지만, 사람들은 그의 외침을 듣고서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했고 또한 그가 하는 말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임의로 대우하였습니다. 즉 무례하고 방자하게 대하였으며, 적대감을 가지고 경멸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를 죽였습니다(마 14:3-12).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불의를 지적한 후 그들이 이미 온 엘리야를 임의로 대우한 것과 동일하게 메시야에게도 대할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인자도 그들 손에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은 다시 한번 성경에 기록된 대로 겪으실 메시야로서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에 이르자 그제서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한 이미 온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4절에서 이미 세례 요한을 와야 할 엘리야로 호칭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새겨지지 않았었습니다. 즉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알고 마음에 담아 두고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한 귀로 듣고 그냥 흘려보낸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번에서야 비로소 서기관들이 말한 와야 할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닫고서는 더 이상 엘리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신앙관
이번의 일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바르게 알고 그 이해에 의해서 좀 더 진지하고 분명히 가져야만 했습니다. 메시야에 앞서 선구자로 와야 할 엘리야로서의 세례 요한과 메시야이신 예수님과의 관계가 명확해진 이상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메시야가 받을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을 당한 후에 하나님의 영광을 입으실 것을 보게 될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곧 닥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도 당황하거나 흔들림이 없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성취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위대한 성업에 자신을 드려 가는 태도를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져야 할 이 태도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성경을 보는 안목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것이 가져다 준 의와 생명과 연합하여 힘 있게 의존하는 믿음 속에 있게 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작 관심을 갖고 바라보아야 할 주님의 구속 사역이 아닌 다른 것에다 마음을 쓴다고 하면, 이는 자신의 영적인 안목을 가리우는 일을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일로 얼마나 많은 교우들이 헛된 믿음을 좇고 있는지요. 복도 좋고, 은사도 좋고,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만, 성경에 예수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는지, 또한 예수께서 무슨 일을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에 대해 믿음을 가질 것이 아니겠는지요. 초대 교회는 사도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 할 사람’(행 1:22)이라고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는 사도의 직임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들이 갖고 있는 신앙관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그들의 신앙의 기초 위에서 같은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조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믿는 믿음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아닌 다른 것을 좇는 것이라고 하면,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바른 복음 신앙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엡 4: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