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다!
마태복음 19장 13-15절 / 13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15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마태복음 19:13-15과 병행 구절인 마가복음 10:13-16, 누가복음 18:15-17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누가 들어가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내용은 마태복음 19:13-15, 마가복음 10:13-16, 누가복음 18:15-17 세 곳인 공관복음서 모두에서 보게 되지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동일한 시점에서의 같은 기록인 반면에 누가복음의 기록은 마태복음, 마가복음과 동일한 시점이 아닌 다른 시점에서 해 주시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두 곳 모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의도로 질문한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과 이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신 행적에 이어지고 있지만 누가복음의 기록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내용에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에서 등장하는 본문의 내용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이 누가복음의 기록과 다른 시기에 있은 예수님의 행적이 아니라, 누가복음의 기록에서 보게 되는 예수님의 행적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생략되어 있는 가운데서 누가복음에서 보게 되는 동일한 기록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도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 곳 모두의 기록은 동일한 내용을 가진 병행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내용을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누가복음에 기록된 내용과 그 의미를 먼저 파악하고 그 연결선상에서 본문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므로 이를 다루면서 설명하도록 합니다.
예수께서 두 번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의를 입음에 대해 말씀하시다
마태복음 19:13-15을 비롯하여 공관복음 모두에서 보는 본문의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에는 누가복음 18:1-15이 있습니다. (1) 1-8절에서는‘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관과 한 과부의 청’을 비유로 들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하는 기도에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함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2) 그리고 9-14절에는 한 바리새인의 기도와 한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들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의로운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비유에 의한 한 바리새인의 기도에서 보게 되는 유대인이 하는 기도의 전형은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은 업신여겨 멸시하는 태도의 모습을 띠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말이죠.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루에 정해진 세 번의 기도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백성들이 거주하는 건물보다 지형적으로 높은 곳인 모리아 산에 세워져 있습니다. 유대인은 하루에 세 번 기도 시간을 가졌습니다. 유대인의 시각으로 삼시와 육시와 구시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보는 시각으로는 오전 9시, 정오 12시, 오후 3시입니다. 이 시각에 유대 백성들은 성전의 뜰로서‘여인의 뜰’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니 기도 시간이 되면 기도하는 장소로 있는 여인의 뜰은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며 번잡하였습니다. 한 바리새인은 이처럼 성전에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번잡한 곳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서서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하나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거리에서 보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죄인이 아닌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기 있는 세리처럼 강도나 사기꾼이 남의 재산을 빼앗듯이 강제로 빼앗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정의에서 벗어나 남을 속이는 일도 하지 않았으며, 간음의 죄를 저지른 일도 없어 깨끗합니다. 더욱이 저는 한 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빠짐없이 하고, 소득의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하나님께 철저하게 드리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한 바리새인의 기도와 대조되는 한 세리의 기도를 이야기 해 주십니다. 그는 말이죠. 감히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서서 기도하였으니, 여인의 뜰에 감히 들어오지를 못하고 그 바깥인‘이방인의 뜰’에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다만 가슴을 치면서“하나님이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구할 뿐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기도 모습만 보면, 한 바리새인은 사람들이 존귀히 여기며 모범으로 삼고자 하는 참으로 의로운 자의 전형입니다. 반면에 세리는 누구도 가까이 하며 사귀어서는 안 될 멀리해야 할 참으로 불의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의 실상은 마가복음 7장 11절, 12장 40절, 마태복음 23장 28절에 언급해 주시고 있는 대로 그의 속마음은 탐욕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으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할 것을 말하는 그들은 부모를 봉양하는 적은 돈을 빼앗음에 있으며 과부의 적은 재산을 삼키는 토색을 일삼았습니다. 그런 그들은 또한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불의한 자들이었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음으로써 이미 마음에 간음의 죄에 있어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며 가르친 하나님의 율법을 스스로 따르지 않고 파기하는 악한 죄에 있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신의 실상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인식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런 자신은 거룩하시며 의로우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소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부끄러운 자인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다만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돌아보아 주실 것을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해 주시며 예수님은“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인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들이 취할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르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 앞에로 오심에 자기를 낮추는 사람, 곧 예수님이 자신의 주님이심을 시인하고 모셔 섬김에서 주 예수님을 따름에 있으며 예수께서 구함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자비에 있는 죄 용서에 있는 그는 그로 말미암아 주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남의 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 아이와 같이 예수께 나오는 사람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19:13-15(병행구절. 막 10:13-16; 눅 18:15-17)은 이 일이 있고 나서 있은 일입니다. 한번은 어느 날에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실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선생님을 귀찮게 하여 괴롭히지 말라”고 나무라면서 그들을 돌려보내려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광경을 보고 제자들을 꾸짖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여기에 다음의 말씀이 추가되어 있습니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고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복을 빌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무엇을 알게 해 주시려고 이처럼 어린 아이를 들어서 말씀을 하셨는지요. 왜 어린 아이인지요. 예수님을 뒤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장년들인 나이가 든 어른들이며, 그들 중에는 별 별 재능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서 각각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이 꽤 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도 있으며 병약한 자들도 있을 것인데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부모의 손에 이끌려 나온 어린 아이를 들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그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는지요. 어린 아이가 아닌 나이 많은 어른이나 가난한 자나 병약한 자가 예수께 나왔을 경우엔“가난한 자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며,“병들고 약한 자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역시 같은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에 있는 초점은‘어린 아이’에 있지 않습니다.‘(어린 아이가/누구든지)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라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처럼‘(가난한 자, 병든 자, 약한 자 등 등 하나님의 자비를 구함에 있어야 하는 자가)내게 오는 것’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초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은‘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라거나‘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 되라’라고 하면서, 어린 아이의 특성을 들어서 단순한 사람, 순진한 사람, 겸손한 사람, 순종하는 사람 등이 될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른과 차이나는 어린 아이의 특성을 비교하여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을 말씀해 주시기 위해서 어린 아이를 든 것이 아닙니다.“너희가 나에게 나오는 이 어린 아이를 보느냐?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나에게 나아와 내가 주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를 알게 해 주시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예수께 나오는 자를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라고 해서 막고 나오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어린 아이를 들어‘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다’는 가르침을 주시는 것은 본문 앞서의 내용에서 보는 바인 일곱 번의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자비에서,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보는 바인 한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구하는 청과 한 세리의 죄인을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에서 나타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입음에 있습니다. 이는 자기를 낮추는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청(기도)에 있게 하신 죄 용서의 자비를 베풀어 주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이시니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자기를 낮춤’,‘예수께 자비를 구함’,‘어린 아이들이 예수께 나아옴’,‘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임’은 다 같은 의미에서 하는 표현입니다. 개역한글성경에서는“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든다”라는 표현으로 번역하였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자신의 공로나 노력으로써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누가복음의 기록에서는“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온 어린 아이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들 머리에 손을 얹어 부모들이 복 빌어주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어떤 내용의 기도를 하셔서 복 빌어주셨을까요?“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다!”라고 하신 그 기도에 있으신 것이 아니겠는지요. 예수님은 중보자의 기도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7: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예수님의 기도는 계속됩니다.
21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26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우리가 구할 기도에 있으신 예수님 이 구함의 기도에 있으신 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에서 보는 바인 한 과부가 구함에 있는 것을, 그리고 한 세리가 구하는 것을 예수께서 친히 구하는 기도에 있으셨습니다. 이는 산상설교에서의 주기도문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그 기도를 주이신 예수께서 친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구할 기도의 첫 번째가 되셔서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기도를 모두 모아 받들고 하나님의 보좌로 가셨습니다(참조. 롬 8:18-127; 계 8:3-4). 그 기도의 응답이“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다!”라고 하신 대로 이루어짐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구하신 예수님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1)예수께 나와 (2)예수님이 주시는 (3)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는 (4)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해서 말입니다.“누구든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든지 주 예수께 나오는 자의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의 성취에 있습니다. 기도의 성취에 있는 우리의 믿음 그것을 우리 두 눈으로 똑똑히 볼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말씀하신“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라고 하신 그 날,“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라고 고대에 있는 그 날에 분명히 그러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