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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태복음 19장 13-15절, 6장 24-34절 /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20.07.12|조회수687 목록 댓글 0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1913-15/ 13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마태복음 624-34/ 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들어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의 어느 날에 있은 일입니다.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실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선생님을 귀찮게 하여 괴롭히지 말라고 나무라면서 그들을 돌려보내려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광경을 보고 제자들을 꾸짖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누가복음에서는 여기에 다음의 말씀이 추가되어 있습니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고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복을 빌어 주셨습니다(19:13-15).

 

어린 아이들의 부모가 자신들의 아이에게 예수께서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실 것을 바라는 것은 예수님에게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인데 그것이 무엇이었겠는가요. 그리고 또한 예수님이 그 어린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신 기도는 무엇이었겠는지요.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에서 알 수 있는 바이니 자신들의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예수께서 기도해 주실 것을 청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부모의 손에 이끌려 기도 받기 위해 나아오는 어린 아이들을 들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가르침을 실행하시는 것으로 어린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 기도를 예수님이 이루시는 것으로 (1)하나님의 권능의 이끄심에 의해 예수께 나와 (2)예수님이 주시는 (3)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는 (4)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누구든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든지 주 예수께 나오는 자의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의 성취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것을 말씀하시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의 시작에 들어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하신 후(4:17), 산상설교의 첫 번째 말씀인 마태복음 5:1-12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함으로 복 있는 사람이 될 것임을 알리시면서, 마태복음 6:33에서 먼저 그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각각의 구함이 아닌 같은 하나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함에 있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의를 구함에 있는 것입니다.“와 그의 의라는 문구는 바로 앞의 문구에 대한 설명의 보조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예수께서 구하게 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함에 있는 것은 또한 예수께서 가르치신 진정한 뜻인 진정한 의를 구함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먼저 구할 것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에서먼저란 말은무엇보다도라고 하는 말로, 강조적인 용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함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의는 우리의 삶에서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인 삶의 위치를 차지하여야 할 것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당시 이 구함에 있어야 할 유대인들이 이것에 먼저 있지 않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에 먼저 있지 않고 다른 것을 먼저 우선시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본문의 내용이 전개되고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1)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2)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무엇을 입을까 :)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여기에서 보는 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두 주인을 섬김에 있지 못할 것이어서 오직 한 주인만을 사랑하여 섬김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의 상황은 하나님과 재물 중에서 하나님 한 분을 주로 섬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그가 섬기는 주인으로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 것이며 무엇을 마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의복으로 입을 것인지를 염려하는 것에서 역력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기 위하여 갖는 염려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그야말로 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이 염려되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화려하며 사치한 옷을 입는 것이 사람을 의식하여 그들 앞에 자신의 유여함을 보이기 위한 생각이 많아서 갖는 염려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바뀌는 계절마다 입을 옷이 걱정되어서 갖는 염려이기도 하는데, 이처럼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에 염려함에 있어 이것을 먼저 구함에 있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며 몸을 보살펴 돌보아 줄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며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의 염려에 있는 것은 이방인이 되어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방인이 아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 아니냐? 그러한 너희들의 목숨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있는데, 왜 이방인이 되어서 살려고 하느냐?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한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시니 하나님의 보살핌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에 맡겨라. 내일 일 또한 하나님의 보살핌에 있을 것이니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의 것으로 족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오해하여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에 있는 자에게는 그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도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인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더하여 주시니, 천국의 축복과 함께 물질의 축복도 함께 주신다고 설명하는 것을 봅니다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의 의도는 그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목숨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먹을 것과 마실 것에 있지 않으며 몸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옷에 있지 않으니,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입을 것의 모든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것에서입니다. 제자들의 목숨에 필요하며 또한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그들의 주이신 하나님과 그의 나라요 그의 의입니다. 이것으로 그들이 사는 날은 참으로 길 것이니 영원한 생명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너희들의 목숨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있다. 너희의 몸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잘 아신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또한 모든 날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보살핌에 있는 너희이다. 그러한 너희가 항상 마음에 두고 구할 것이 무엇이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이 아니냐? 그런데 왜 자기 목숨을 지키며 자기 몸을 돌보아 보살펴 줄 것이 먹을 것과 마실 것에 있고 입을 옷에 있다고 생각하여 오직 이것을 자기들이 구할 전부로 삼고 이것에 신경을 쓰며 그 염려로 사는 이방인이 되어서 살려고 하느냐? 이방인이 구하는 그 모두는 그 날에 족하니,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의 것으로 족하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먹고 마시며, 입는 그 날의 필요한 것을 좇아서 사는 염려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에 있지 않아서야 되겠는지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에 있은 믿음의 사람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알지 못하며 신앙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어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아닌 재물(재산)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차지할 자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차지하고 있어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에 뿌려지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미워함에 있으며 배척합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에게서 보는 모습이 유대인들에게서 나타나고 있으니, 그들의 마음에서 끌어져 내쳐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재물이 주인 되어 있는 자에게서는 그 재물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리고 그 재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며 귀하게 여깁니다. 민족과 국가도, 빵과 지식과 과학과 예술도 재물이 될 수 있는 방편이 되고, 그 재물과 이것과 함께 하는 부와 권력으로 그 모두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한 재물은 그에게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주인으로 섬김에 있는 재물은 먹을 거리를 위해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공중의 참새와 같으며, 잠시 피었다가 지며 아궁이에 던져지는 꽃 한 송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방인은 주인으로 섬기는 재물과 함께 그들 자신의 운명을 같이 하니 영원히 없어지게 됩니다. 주인으로 섬긴 재물이 그들의 운명에 아무런 돌봄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에 있는 자는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있는 영원함에 의해서 생명의 보존에 있으니 곧 영생입니다. 그러니 생명 없는 것과 생명 있는 것 둘 중에서 어느 것을 최우선시하여 먼저 구함에 있어야겠는지요. 히브리서 11장에서는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11:1-2)라고 말씀하면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에 있은 믿음의 사람들을 열거해 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벨을 비롯하여서 믿음으로 산 인물인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사라 등을 열거하며, (1)하나님의 약속(언약)을 따라 믿음으로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자기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기쁨으로 기다렸으니, (2)그들은 세상이 참 고향이 아니고 다만 자신들은 잠시 이 땅에 나그네로 와 있다는데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서 자신들의 본향인 하늘을 그리워하였습니다. (3)그들은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달콤한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했다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었으며 얼마든지 그 달콤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으니 거절하고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4)하나님은 언제나 그러한 그들의 주가 되셔서 그들의 하나님으로 불리는 것을 몹시 기뻐하며, 그들을 위해 하늘의 도성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에 따라서믿음으로 (아벨……아브라함과 사라 등) 산 인물들은 자기들이 바라본 본향에 영원히 함께 하고 있는데, 우리 또한 두 눈으로 우리가 영원히 거할 하나님의 나라를 똑똑히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말씀하신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1) 라고 하신 그 날,“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라고 고대에 있는 그 날에 분명히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날이 임할 고대의 열망에 있으면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에 있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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