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 것을 말씀하시다(8)
- 여섯 번째 화 : 회칠한 무덤을 들어 전적 부패한 인간의 상태를 알려주시다 -
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을 이야기 해 주시는 말씀은 계속되어 여섯 번째 화에 이릅니다.
화 있을 것이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는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 차 있다(27-28절).
‘회칠한 무덤’이란 석회칠이 된 무덤(묘)들을 말합니다. 유대인이 무덤에 석회를 칠하는 것은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회칠한 무덤에는‘죽은 사람의 뼈’와‘모든 더러운 것(부패한 시체)’로 채워져 있어 썩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유대인이 사용하는 무덤은 초기에는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 무덤이 주로 쓰였습니다만 후기에 오면서 토굴 위주로 바뀌었는데,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안장된 무덤과 그 주위의 땅은 부정한 곳으로 규정(민 9:7)되기 때문에 그 부정과 접촉되는 것을 막고자 무덤에 석회를 칠하는데, 특히 겉으로 드러난 무덤 벽을 매년 봄마다 석회를 칠해서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띄게 합니다. 이는 매장(토장)의 경우에서도 그러합니다. 누가복음 11:4에 의하면“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의‘평토장한’은‘회칠한 무덤’에 대비되는 표현으로 ‘숨겨져서 보이지 않는(눈에 띠지 않는)’을 뜻하는데,‘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없는 무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렇게 평토장이 될 정도로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없게 무덤이 평평하여졌을 경우에 그 무덤이 있는 땅을 지나갈 경우 길 인줄 알고 무의식적으로 무덤을 밟음으로써 부정한 자가 될 수 있기에 이를 방지할 목적으로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평토장한 무덤을 매년 석회칠을 해 두게 됩니다. 이렇게‘회칠한 무덤’은 희고 깨끗하므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의 실상은 전혀 다르니,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으로 전체가‘부정’(不淨)합니다.
예수님은 이 ‘회칠한 무덤’을 들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실상인 속마음의 사정이 어떤지를 알려주십니다.“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28절)라고 말입니다. 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회칠한 무덤과 똑같이 닮았다는 것으로, 그들의 속은 부패한 죄로 가득 차 있어 악한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은폐하여 감추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이고자 외적 행위에만 힘쓴다는 것을 의도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외식과 불법은 그들의 악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고발하는 증거가 되니,“너희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저주하신 재앙을 머리서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온전히 뒤집어쓰게 됩니다.
이렇게 화를 당함에 있게 될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리고 그들을 따라 함께 외식하는 유대인들이 정결할 수 있는 방법의 길이 있겠는지요.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을 섬김이 없는,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과 매일반입니다. 그러기에 “너희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그 누구도 화를 당하지 않는 정결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그처럼 정결하지 못하고 부정한 원인을 알았습니다. 그는 시편 51편에서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1-4절) 라고 하면서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5절)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자들 중에서 종종 “나는 모태 신앙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할 때 그의 신앙은 태중에 있을 때인 어머니의 믿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에서 하는 말이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영원 전에서부터입니다. 그런 그는 어머니가 모태에서 잉태하여 죄악 중에서 출생한 모태 죄인입니다.
그런 다윗은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7절) 라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비로운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정결하게 하소서…정하리이다”, “씻어주소서…깨끗하리이다” 라고 하는 반복 속에서 정결케 되는 요인이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밖으로부터 자신 안에 일어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슬초는 물을 잘 빨아들이는 흡수력이 좋은 식물로, 유월절에 피를 찍어 문지방에 바를 때 사용합니다. 또한 우슬초는 출산, 월경, 유출병, 문둥병, 음란과 간음에 의한 부정한 성관계 및 악행, 죽은 시체와의 접촉 등에 의해 부정한 자로 규정되며, 무엇보다 우상숭배는 가장 크고 심각한 부정에 있는 이 모든 부정한 자의 정결의식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율법은 부정한 사람이 희생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레 7:19-21), 제사와 제물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은 부정한 자의 정결 의식을 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루었습니다. 그들은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를 멘 적이 없는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 불사른 재를 거두어 보관해두었다가 부정한 자의 정결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였는데, 재를 물과 섞어 우슬초로 뿌림으로써 의식상 깨끗하게 하였습니다(민 19:1-19). 우슬초는 문둥병자의 정결 의식에서도 사용되었음을 기록해 주고 있는데, 이것으로 새의 피와 물을 찍어 집과 사람에게 뿌리며 정결을 선포하였습니다(레 14:4, 6, 49, 51, 52). 그리고 속죄 의식을 비롯한 제사 의식에서 사용되었으며, 성막 기구들의 정결 의식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의식적(적儀式的)으로 부정하게 된 자들을 위해 구약의 제사장들이 뿌린 피와 재에 의해서 정결하게 됨은 염소와 황소의 피, 그리고 암송아지의 재가 메시야(그리스도)의 구속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서 정결 의식은 의식상의 정결만 나타내어 알려줄 뿐이며 그것 자체가 사람의 본성과 그 본성에 의한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는 미치지 못합니다. 구약 희생제사가 줄 수 있는 것은 의식적 정화뿐입니다. 그런 까닭에 희생제사에 의한 정결의식이 상징하여 의미하고 있는 실체로 그 실체에 의해서 직접 정결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해서, 히브리서 9장에서는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물에 타서 붉은 양털과 우슬초로 찍어 두루마리(언약의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렸다고 하였는데(9절), 그 ‘피 뿌림’에 있는 의미를 7절과 10절에서 죄와 그 허물을 위한 것으로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육체의 예법일 뿐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 하나의 규례일 뿐으로 더 크고 좋은 것인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않고 오직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려 희생한 피로 단 한 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김에 있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영원한 언약으로 주셨습니다. 이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기에 ‘언약의 피’로 불립니다(20절, 참조. 마 26:28; 막 14:24). 이 언약의 피를 따라 의존함에 있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단지 정결의식을 가져나가는 것으로서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옛언약에 의해서 알려주신 새언약의 피 흘림에 있는 속죄에는 믿음이 없이 다만 의식상의 정결만 가져나가는 사람에게는 속죄가 없으니 또한 죄사함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참된 믿음에 있는 그리스도인인인 우리는 그렇게 속죄에 의한 죄사함의 은혜를 입음이 없이 “너희 외식하는 자들”로 불림에 있게 지내서는 안 되겠으며, 이런 모습이 보이며 알게 될 때마다 속히 돌아섬에 있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