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네 번째 예고(3)
- 유월절 잔치를 끝내시고 새로운 축제의 날을 여실 예수 그리스도 -
마태복음 26장 1-2절 / 1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막 14:1; 눅 22:1)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이틀 앞에 둔 시점에서 이제 배반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것이 무엇을 위해서 있게 되는 것인지를 제자들에게 알려주시는 말씀을 하셨으니, 제자들은 예수님이 당하는 일을 보게 되는 것에서 그동안에 있어온 이스라엘의 명절 곧, 축제의 절기인 잔치의 날 유월절이 종결되고 새로운 축제의 날로 있어가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해 주십니다. 그것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베푸시는 거룩한 만찬, 곧 ‘주의 성찬’으로 행해져 앞으로 자신이 세운 온 교회에서 시행하게 될 것에 대해서 입니다.
유월절이 가까이 다가오게 되면 유대인으로 성인된 남자는 모두가 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원근 각처, 그들이 어느 땅에 살고 있든지 간에,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지 간에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당도합니다. 이 유월절은 축제와 잔치 분위기에서 지켜집니다. 그러니 참으로 많은 유대인들로 거리를 채우고 있으며 복잡하고 분주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 명절을 어떻게 지키는가 하면, 세례요한이 증거에 있었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바라보는 것은 없고 단지 어린 양을 희생제물로 드리고 그날 밤에 고기를 구워서 누룩을 넣지 않은 떡과 쓴 나물과 함께 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월절 명절을 지키는 이들의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유월절은 여호와의 절기로서의 명절인데, 절기와 함께 하는 제사에서, 그리고 그 제사가 드려지는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계시에 의해서 바라봄에 있어야 할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속죄주 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은 빠져 없고 단지 종교적 의식 행사에 분주하고 그 기간에 어린양을 잡은 고기를 먹고 즐기는 잔치를 벌여 배부름만 남아 있는 지극히 의식적(儀式的)이요 형식(形式)과 형태(形態)만 남아 있는 사람의 명절로만 남았습니다.
이러한 유월절 명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없습니다. 아무리 매년 정해진 대로 지키고 축제와 잔치 분위기에서 흥겨움을 갖고서 지킬지라도 죽음의 재앙만이 마치 둑을 무너뜨릴 지경에 이르기까지 물이 차 있어 넘치는 상태와 같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짐승인 어린 양을 희생제물로 삼고 그 고기를 구워서 누룩 없는 떡과 쓴 나물과 함께 먹는 것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매년 정기적으로 빠짐없이 먹을지라도 또 먹지 않으면 안 될 생명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는 먹지 않아도 되는 생명의 떡이 함께 하는 유월절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믿음이 없어 그들의 머리에로 쏟아질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인 죽음의 재앙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창세 이후로 아무도 먹지 못한 영생케 하는 생명의 떡을 자신의 몸으로 나눠주어 먹을 수 있게 하고자, 그래서 다시는 짐승의 고기로나 땅에서 나는 떡과 쓴 나물로 먹지 않아도 되는 참 양식을 제공하고자, 이제 이틀 후에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반을 당하여 대제사장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무리들 손에 넘겨지고 로마 정부에로 다시 넘겨져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죽음을 당하는 일을 행하실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 예수님을 하나님은 영원한 단 한 번의 희생제물로 받으시고 그를 다시 살리셔서 그에게 있는 참 생명인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안에로 하나님의 택한 모든 백성을 불러 모아 그 생명이 함께 하는, 그래서 영생하는 자로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실 때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마 1:21) 라고 하신 ‘예수는 구원이시다’는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에서 있게 될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제물에서 온전케 될 것이었습니다.
이것의 구체적인 진행으로 있는 일이 바로 그 무렵에, 유월절 이틀 전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백성의 장로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저에 모여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소동이 없이 예수를 잡아서 죽일 수 있을 것인지 그 방법을 모색하여 기회를 찾고자 하는 음모를 가졌습니다. 그리고는 머리를 맞대어 음모한 결과 “유월절 기간 중에는 예수를 잡아 죽여서는 안 된다. 만일 그랬다가는 군중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그 수습을 감당키 어려우므로 이 기간만은 피합시다”라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그러한 결과에도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신 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준비해 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