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람' 캐더린 쿨만 (Cathryn Kuhlman)
캐더린 쿨만은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여성 사역자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1907년 태어나 1928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캐더린 쿨만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과 슬픔, 아픔과 배신, 또 육신의 연약함이라는 힘든 골짜기를 통과했으며, 이로써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과 축복을 경험한 사역자다.
그녀의 사역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가득한 가운데 언제나 풍성한 열매를 나타냈는데, 성령 충만한 그녀의 모습은 차라리 신비로울 정도였다. 수많은 청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인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숱한 치유의 간증이 그녀의 사역현장에 나타났다. 그녀가 인도하는 집회는 언제나 회중들로 가득 찼으며, 집회 장소에 들어오지 못한 수천의 사람들이 실망한 채 돌아가기도 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 혹은 낮은 사람, 다른 인종들, 다른 종교적 배경의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그들은 집회를 통해 예외 없이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을 들었으며, 성령의 치유와 기적을 체험했다. 그녀의 설교는 담대했지만, 병든 사람에게 고침 받은 사실을 알려줄 때에는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1950~70년대에 걸쳐 최고의 성령 치유 사역자 중 한 사람이었던 오랄로버츠대학의 설립자인 오랄 로버츠 목사는 캐더린 쿨만을 집회에서 만나고, 또 그녀를 그의 대학에 초청해 집회를 열었을 때에 받은 감동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느 누구보다도 캐더린 여사만큼, 말씀의 지식이 있는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은사의 세계에 대해서 눈이 열렸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통하여 이러한 말씀들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내 말을 들으라. 너의 믿음이 내게 오게 하라. 내 은혜의 이적들을 보기 원하노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오랄 로버츠대학에서 열린 그녀의 집회는 모든 교수진과 학생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이 집회 이후로 우리 모두는 이미 어제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게 됐습니다… 캐더린 쿨만 여사만큼 내 마음을 차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직도 ‘성령님, 제가 결코 주님께 불순종하는 일이 없게 해 주세요!’라고 외치는 그녀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녀와 같은 사람은 아직까지는 없었습니다…”
캐더린 쿨만 여사와 관련하여, 그녀가 무엇보다 베니 힌 목사에게 끼친 영향은 잘 알려졌다. 베니 힌 목사는 그가 캐더린 쿨만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할 정도였다.
(「베니 힌 그 능력의 근원」:베니 힌 지음 은혜출판사). |
- 회복교회의 설교 로마가톨릭의 실체를 들으시면 캐더린 쿨만이 로마가톨릭의 첩자라는 증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니 힌은 한국교회에 신사도 물결을 퍼트린 장본인입니다.
결국.. 신사도란 로마가톨릭이 복음을 변질시키려 만든 악마의 신학임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