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루시퍼 (이사야 !4:14)
늦은 비 운동으로부터 나온 '새 계시' 중에서 가장 해롭고 매우 폭넓게 영향을 미친 것은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Manifest Sons of God)'의 가르침이다. 이 교리는 성도들이 하늘에서 예수님의 육체적 임재 앞에서 부활하고 휴거된다는 정통적인 가르침을 부정한다. 대신 바로 이 땅에서 '기름부음' 받고 불멸을 입어서 크리스천 슈퍼종족이 되며, 이들을 슈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집단이 이끈다고 한다. 이런 초교회(슈퍼교회), 이 땅 위의 '집단 그리스도, the corporate body of Christ/역자주)'은 대환난 기간 중 모든 대적을 물리칠 것이다. 이 초교회가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고 맞이할 것이며, 그제서야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놓여져' 초교회 다스리기를 확립할 것이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불멸을 입을 수 있다는 이 생각은 프랭클린 홀의 이단적 가르침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반복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지켜질 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잠자는, 기초 없이 지어진 교회'를 '참 뜻과 부르심을 향해' [깨워야 하며] 그 때 뒤늦게 쏟아지는 억수같은 의의 비가 내릴 것이다. 수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 속에서 말해 왔던 땅에 내리는 불멸(Immortality)의 비." (강조는 저자에 의함)
이미 보았듯이 프랭클린 홀과 그의 저서들은 늦은 비 '부흥'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얼마 되지 않아서, 성도들이 이 땅에서 불멸과 휴거를 받는다는 홀의 가르침이 늦은 비 일원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교리를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하시려는 '새 일'이라고 받아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늦은 비 부흥에 참여했던 세실 코우젠(Cecil Cousen)이라는 목사는 그 당시 노스배틀포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이와 같이 말했다:
나는 호틴 형제가 빠르게 이상한 교리들에 빠져들어 갔다고 생각한다....
리차드 리스에 따르면, 제임스 와트(James Watt)는 노스배틀포드로부터 나오던 일부의 가르침 떄문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는데, 특히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극단적 입장'라고 그가 이름붙인 것 떄문이었다.
가르침과 계시, 그리고 행위가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서 확실히 벗어나고 있음을 본 그는 리더들에게 도전했다. 리더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에 대한 극단적 입장을 계속 장려하고, 성경말씀과 비교해 보지도 않고 계시와 예언을 받아 들이자 이 작가는 물러났다...
비록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에 대한 극단적 입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와트는 설명하지 못했지만, 이 교리가 대중 앞으로 나오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49년 4월호 샤론스타에 이 교리의 기원이 드러났다:
... 갑자기 경고 없이 강한 바람이 건물을 휩쓸었다. 크레인 형제는 수업을 가르치며 서 있다가 거의 넘어질 뻔 했다. 그 영은 한꺼번에 온 학교 위에 내려 왔고 모두는 함께 예언하기 시작했다. 이 놀라운 현상은 이 시대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환상과 동반되었다. 이 강력한 군대는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정복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픔과 질병이 사라지고, 모든 악한 영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승리의 권능 앞에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내가 아는 바로는, 마지막 날에 교회가 강력한 정복군대가 될 것이라는 가르침이 여기서 처음으로 다루어졌다. 이 개념이 거짓 선지자로부터 나왔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확하다 - 이 시대의 마지막에 교회는 핍박받는 "남은 자"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이 택하신 자들은 대환난 기간동안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다만 적그리스도와 큰 음녀(거짓교회)에 의해 작살나는 것뿐이다.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요한계시록 13:6-7)
환난의 성도와의 전쟁에 있어서 짐승, 적그리스도의 최고 대리인은 거짓 교회가 될 것이다. (큰 음녀는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에 묘사되어 있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요한계시록 17:6)
환난의 성도에 대한 이 전세계적인 핍박의 결과는 예수를 위한 무수한 순교자들의 무리로 나타날 것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7:9-14)
분명히, 이 시대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대리인들의 손 안에서 큰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말씀 어디에도 교회가 그 앞의 모든 것을 정복하는 강력한 군대가 될 것이라는 개념이 나온 곳이 없다. 이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과 겨루어 견디지 못한다. 이것은 분명히 틀린 것이고, 샤론의 형제들로부터 심판되고 배척되었어야 했었다. 코넬리우스 제넨에 의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 교리에는 심령술적인 경향이 확실히 나타난다. 이 교리는 에드몬튼 노스웨스트 성경학교(Northwest Bible Institute)의 E. 크레인(Crane) 목사의 예언적 대언(predictive prophesying)으로부터 기원되었다. 그는 그가 강력한 군대로서의 승리하는 성도들을 환상으로 보았다고 믿었다... 그의 전체 학급은 그의 믿음에 영향을 받았고 멀지 않아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지금 이 땅에서 '구속의 몸'을 받게 되며 모든 죽은 자들은 '구속의 몸을 착복'하지 못했으므로 '승리자들'의 한 명이 아니었다라는 교리가 자라났다. 결국, '승리자'가 되는 것은 샤론 그룹과 제휴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제휴한 것만으로 '나타남'의 희망을 준다고 믿었다.
분명히, 노스베틀포드의 부흥의 이교적/광신적 성질에 대한 걱정이 커져갔다. 노스배틀포드에서 나오는 비성경적 교리들에 대한 커져가는 염려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그 곳의 형제들은 교정받기를 거부했고, 그들의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샤론 고아원-학교와 거기에서의 부흥의 중심인물인 죠지 호틴은 후에 이렇게 적는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 위대하고 축복된 하나님의 움직임이 두 살도 되기 전에 분파의 영이 추한 머리를 들어 보이기 시작했었음을 나는 이제 확실히 볼 수 있다... 우리는 분파하지 않았음을 큰소리로 외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점점 좁아져가는 우리의 울타리 안에 있지 않는 누구와도 교제를 가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참 교회였다. 우리가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었다. 우리는 기초 위에 섰었고 나머지는 모두 가라 앉는 모래 위에 섰었다. 우리를 따르지 않는 누구도 귀신을 내쫓으면 안 되었다. 우리로부터 기원되지 않은 어떤 가르침도 가르치려고 시간을 들일 가치가 없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영적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왕국에서 다스릴 것이며 지금도 이미 다스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들을 가졌으며, 우리는 대환난 때 지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첫사랑을 잃었으며 회개해야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이 고래 뱃속으로부터 토해내어진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바벨탑을 멀리서 볼 수 있게 되기 전에는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깊이 가라앉았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 떄문이다. 그제서야 바빌론의 음탕한 딸로부터 해방된 것을 우리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것이다.
이런 영적 엘리트주의의 분위기 안에서 '늦은 비/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신학이 탄생되었다.
나는 이 늦은 비 신학이, 사도 바울이 휴거와 적그리도의 출현 전에 교회에 오리라고 경고한 큰 배교의 기원과 기초가 되었다고 믿는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데살로니가후서 2:3;9-12)
1949년 가을 죠지 워녹(George H. Warnock)이 '사무를 보조하고 성경학교와 지역교회를 도우는 역할로' 노스배틀포드의 스탭에 합류했다. 워녹은 언 백스터(Ern Baxter)의 개인비서로 일한 적이 있었었다. 그는 샤론스타에 실린 몇 개의 글을 썼는데, 그가 '늦은 비/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운동으로부터 나온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인 '초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장막절)'을 쓴 것은 확실히 이 기간 중이었다. 1951년 출판된 이 책은, 짐 와트(Jim Watt)가 1948면 6월에 샤론캠프미팅에서 처음 제안한, 이스라엘 삼대명절 중의 세번쨰 것-초막절-이 교회에서 성취될 것이라는 가르침을 전개했다. 워녹에 따르면:
유월절 명절(축제)를 구성하는 세 가지 이벤트가 어떻게 함께 어울려 교회의 첫번째 명절를 이루는지 돌이켜 보자. 거기에는 유월절, 누룩 없는 빵, 그리고 첫 열매의 다발이 있었다: 서로 다른 이벤트이지만 섞여서 한 명절를 이룬다 -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그의 죽음을 통해 가능해진 새 삶의 아름다운 전형이다. 자 이제 마지막 명절에서 이벤트들은 삼중적인 성질을 가진다: 나팔불음, 속죄의 날, 그리고 추수의 축제이다. 다시 이 세가지 이벤트가 함께 어울려 하나의 큰 축제, 교회시대의 마지막 대부흥을 이룬다. 우리는 이 성령의 은사와 사역의 대부흥이 초막절의 성취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는 이 성취의 약속이자 계약금이며, 마지막의 시작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 성령의 움직임이 (많은 체질과 시험과 시련을 통해)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초막절 자체가 완성되도록까지 일어나야 하기 떄문이다.
이 책에 워녹은 노스배틀포드에서 체계를 잡은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교리를 적어 넣었다:
'주께서 스스로 하늘로부터 큰 소리와 함께 내려 오시고' 성도들이 그와 함께 영원히 있도록 잡혀가는 날이 오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휴거를 기다리는 현재에도 휴거가 있다는 것과 부활을 기다리는 지금 여기에서도 부활이 있다는 것을 교회가 모르기 때문에 교회의 영광을 빼앗기고 있음을 확신한다.일어날 일들의 순서와 부활의 성격에 관해 장차 계시하시려고 하나님이 많은 것을 비밀로 두고 계심에 대해서는 어떤 의심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만은 자신한다: 소망의 휴거와 부활이 일어나기 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의 삶의 유산을 지금 여기에서도 전유(專有)할 승리자들의 집단이 일어날 것이다.예수께서 모든 원수를 그의 발 아래에 둘 때까지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하늘에서 그의 오른 쪽에 두셨다. (시편 110:1, 고린도전서 15:25-26) 거기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며 남아 계신다 - 성령 안에 있는 그들의 유산을 가지고서 세상, 육체와 마귀의 모든 대적을 정복할 사람들이 일어날 때까지. 우리는 그 성도들이 영광의 몸으로 다닐 것으로 추측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육체의 장막을 입고도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의 바로 그 삶에 도달하고 그 삶을 전유하는 성도이며, 성령 안에서 그들의 유산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멜기세덱의 제사장직과 왕국에 참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내주하심으로 인해 그분 자신의 흠 없고 완전한 바로 그 삶을 사는 것이다. (강조는 저자에 의함)
워녹은 그가 "그 성도들이 영광의 몸으로 다닐 것으로 추측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적기를:
역사적 부활? 물론, 그들은 이를 믿을 수 있다. 그리스도, 메시아? 물론, 그들은 이를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믿음으로는 아들로서 충만한 데까지 이르지 못하며, 지금 여기서의 신적 삶을 참으로 전유하기에 부족하다.
만약 누가 나에게 나는 '지금 여기서 신적 삶'을 '전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것을 이런 의미로 받아 들일 수밖에 없다 - 주께서 부활 후에 되셨던 것 같은 영광되고, 영적이고, 완성되고 영원한 상태로 내가 되거나, 아니면 내가 실제로 신과 같이 된다는 뜻으로! 적어도 이것이 많은 "말씀-믿음(Word of Faith)" 교사들이 이런 문장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보인다. 분명히 그들은 '지금 여기서의 신적인 삶을 참으로 전유하기'를 '말하고 주장하고'하고 있다:
('말씀-믿음' 또는 '믿음의 말씀' 교리는 믿음 안에서 성도가 말하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이루어진다는 번영신학의 일종임/역자)
케네스 해긴(Kenneth Hagin)은 주장하기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라 불린다...우리는 그렇다. 우리가 그리스도이다!..." 케네스 코플란드(Kenneth Copland)는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한 이유는 그 자신을 복제하고 싶어서였다...그는 하나님을 조금 닮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거의 하나님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심지어 종속적이지조차 않았다."라고 선언한다. TV 선교사인 존 아바자니(John Avazani)는 성령께서 "시대를 통한 영원한 목적이...그 자신을 땅에서 복제하는 것이라고 오늘날 땅에서 선포하셨다"라고 주장한다. 모리스 세룰로(Morris Cerullo)는 : "태초부터 하나님의 모든 목적은 그를 복제하는 것이었음을 아셨습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서, 누구입니까? 어서, 말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들! 어서, 말하십시오! 형제여,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것은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가지심의 표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섰을 때 당신은 모리스 세룰로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케네스 코플란드가 "하나님께서는 당신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입니다."라고 말할 때, 베니 힌(Benny Hinn)이 "나는 세상에 걸어 다니는 작은 메시야입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들이 지나친 이단사설을 가르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비록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지지자들 모두가 '나타난 아들들'이 실제로 하나님이 된다고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사실상 그렇게 한다. 우리가 영광을 받으면 죽지 않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된다는 이 이설은 '아포테오시스(Apotheosis, 신격화)'로 알려져 있다:
정통신학을 결정짓는 또 다른 포인트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수태와 탄생)의 독특성과 관계가 있다. 그리스도 한분만이 신인(God-man)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인성은 우리와 함께 하지만 신성은 다르다. 그는 그의 신성을 그의 백성에게 분여(impart)하지 않는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고 일하시지만, 그 내주하심이 우리를 신의 몸으로 만들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신격화('신이 됨')의 이단으로 알려진 많은 현대 영지주의자들은 다른 누구도 알지 못한 무엇을 그들은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이 직관의 섬광이 이천년동안 때때로 이교도들에 의해 표명되어져 왔다는 것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나 자신을 믿기'라는 테입 시리즈에서 시애틀 기독신앙센터(Christian Faith Center)의 목사 케이시 트리트(Casey Treat)는 말하기를:
아버지, 아들과 성령께서 회의를 하신 후 "우리와 똑같이 복제한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 말은 나에게 시동을 겁니다! 하나님의 정확한 복제! 크게 말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정확한 복제이다" [청중은 주저하며 자신없게 따라 한다] 어서 말하세요! [제창하도록 유도한다] "나는 하나님의 정확한 복제이다" 다시 말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정확한 복제이다" [모임은 몰입한다. 크고 대담하게, 매번 더 열정적으로] 진심으로 말하십시오! [그는 이제 소리친다] "나는 하나님의 정확한 복제이다" 크게 외치세요! 소리치세요! [그들은 하라는 대로 따른다] "나는 하나님의 정확한 복제이다" "나는 하나님의 정확한 복제이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거울을 들여다 보면 나를 보십니다! 내가 거울 안을 보면, 나는 하나님을 봅니다! 오 할렐루야!.. 때로는 사람들이 나에게 화가 나서 나를 비하합니다.. "자기가 무슨 하나님인 줄로 아는군!" 맞아요! 할렐루야! 바로 맞았어요! "네가 예수라도 되니?" 맞아요! 듣고 있나요? 젊은이들, 여기 돌아 다니며 하나님인 것 같이 행동하나요? 왜 못해요? 하나님이 그러라고 하셨어요!... 나는 하나님의 정확한 복제이니까요, 나는 하나님 같이 행동할 겁니다!
'말씀-믿음' 운동 전체가 '늦은 비/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교리에 크게 영향을 받아 온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에 따라 가르침에 약간의 변동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것 하나가 있다 - 그리스도께서 실체로 이 땅에 재림하시기 전에 바로 이 땅에서 교회, 즉 '집단 그리스도(the corporate body of Christ/역자주)'이 부활을 경험할 것이라는 워녹의 중심 가르침이다. 대부분은, 워녹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이 있어서 교회로 하여금 이 세상을 정복하고 왕국 자체를 도입하기까지 그리스도는 이 땅에 재림하지 못한다고 실제로 가르친다;준다. 워녹은 쓰기를:
믿음으로 모든 일은 가능하고 가능하게 될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성령에 의해 나아가서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게 될 때, 섭리 그 자체는 강한 장벽과 방해물이 되지 않는다. 에녹이 이것을 했다. 엘리야도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도 할 것이다. 믿음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잡을 것이며, 그들은 지금 이 삶에서조차 부활과 삶을 전유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안하면 그리스도는 이 땅에 재림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편 110:1) 그리고 마지막 원수는 죽음이다!" (강조는 저자에 의함)
이 예수께서 이 땅에 실체로 돌아 오시기 전에 이 땅에서 성도들에게 일어난다는 영적 휴거와 부활에 관한 이 가르침의 기초가 되는 말씀은 로마서 8장에서 찾을 수 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로마서 8:18-22)
이 모든 말씀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이 그의 천년왕국에 들어오면, 창조시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내리셨던 많은 저주가 거두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사야 65:20-25)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교리의 비성경적 본질에도 불구하고 이는 늦은 비 운동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곧 캐나다 오순절성회는 노스배틀포드에서 시작된 부흥을 비난했고, 이는 캐나다와 미국 전역의 오순절 교회에 신속하게 퍼졌다. 노스배틀포드 샤론 그룹의 지도부는 교단 내의 지도부와 한동안 사이가 나빴던 것 같다. 래리 토마스(Larry Thomas)는 적는다:
늦은 비는 영적 주장 이전에 조직상의 분열이었다고 서캐나다성경학교(Western Canadian Bible College)의 전 교장이었던 토마스 홀드크로프트(Thomas Holdcroft)는 말한다. 다툼으로 인해 씨뿌려졌고, 반항 속에서 태어났고, 논란의 교리들에 의해 키워졌다. 새스카츄원 캐나다 오순절성회(PAOC)의 후원을 받았던 [베델성경학교(Bethel Bible Institute)]의 교수진 중 몇명은 몇가지 면에서 지역지도부와 충돌했다. "책임있는 지역행정관들의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경향과 조심스러움에 대항해 싸웠던 학교 직원들의 거리낌 없는 열심이 대부분의 이 초기의 충돌의 기본적인 쟁점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홀드크로프트는 1980년 썼다. 오늘날에는 조금 다른 시나리오룰 볼 수 있다! 무책임한 교단 리더들과 '슈퍼처치' 목사들의 가리낌 없는 열심이 다소 겁먹은, 어찌보면 입막음 당한 하나님의 성회와 기타 오순절 교단의 보수측 사람들에 대해 싸우고 있다. 학교가 학문적으로 탁월해지려는 접근에 미온적인 반면 논란거리 교리에 정신을 빼앗기고 정진한다는 점에 대한 걱정이 일었다. 이런 교리의 한 예로, 마귀들림 현상으로 기독신자들의 삶 속의 많은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견해를 들 수 있다. 오늘날의 많은 현상들이 영적 전투의 이런 비성경적 가르침에 편승해서 들어 오게 되었다. 학교 교수들에 반대한 사스카툰 지역담당관의 입장은 1947년 여름 컨퍼런스에서 승인이 났으며, 반항자들은 학교를 떠나 서스캐처원 노스배틀포드로 옮겨 갔고, 거기에서 '샤론 어린이집과 학교'를 설립했다. 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서스캐처원을 떠나서 새로운 일에 그들의 교수들을 따라 왔다. 늦은 비 운동의 확산을 일으킨 영적 움직임은 1948년 2월에 시작되었다. 4일에 걸친 예배집회 동안, 리더들은 모임의 멤버들을 불러내어 예언을 동반한 안수를 통해 영적 은사들을 분여(impart)하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이 작업이 - 교육기관으로서 유지되기 위한 노력을 포함한 - 샤론 사역의 모든 일보다 우선순위가 되었고, 노스배틀포드 캠퍼스는 영구적인 캠프미팅센터가 되었다 (펜사콜라가 사역을 위한 트레이닝 센터와 성령의 비공식 본부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회의 지도부가 이 '부흥'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교리들과 행위들에 대항해서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고 느끼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1949년 2월 24일 하나님의 성회는 계간서신(Quarterly Letter)을 발행했는데, 거기에서 미국 하나님의 성회 대감독 어니스트 윌리엄스(Ernest S. Williams)는 '은사의 수여'라는 제목의 간략하지만 상당히 포괄적인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는 분명히 '늦은 비'의 문제에 대한 공공연한 언급은 회피하면서 이 주제에 관한 수용가능한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성원들 내부에서 이 운동에 교정을 가하려던 하나님의 성회 지도부의 이런 시도에 대한 반응은 어땠었나? 반항이었다! 래리 토마스는 적는다:
몇몇 캐나다 교회와 소수의 미국교회가 늦은 비와 기존 오순절운동 사이의 전쟁터가 되었다. 비록 캐나다 오순절성회는 새 운동에 6개 정도의 교회를 잃은 데 그쳤지만, 많은 지역교구는 늦은 비 교회들에 교인들을 잃고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오늘날 미국의 많은 하나님의 성회는 되살아난 늦은 비 때문에 비슷한 손실을 입고 있다. 분열적인 늦은 비 그룹은 캐나다 오순절성회(P.A.O.C.)의 기존 교구들에 대한 그들의 계획의 골격조차 갖추지 못했다. 기실, 그 운동은 'PAOC 교회를 접수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팜플렛을 출판했다.
오순절성회의 지도부가 늦은 비 운동으로부터 나오는 교리상의 탈선을 점차 발견하게 되자 이에 대한 점증하는 우려가 공개적으로 표명되었다. 어니스트 윌리엄스는 1949년 '오순절복음(Pentecostal Evangel)'에 '영적 은사'라는 기사를 썼다:
이제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날 사도들이 있는가? 그 용어가 오직 '사자' 또는 '보내어진 자'를 의미한다면 전도자들이나 선교사들로 불리우는 사람들은 사도들이다. 나는 성경적 사도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기초석이었다... 고린도전서 12장의 9가지 은사에 관해 신중하게 읽으면 그 각 은사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수여에 의해 온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은사들이 매개채널을 통해 주어진다는 어떠한 기록도 발견할 수 없다.
조금 후 윌리엄스는 '은사에 대해 조금 더'라는 또다른 글에서 이렇게 썼다:
... 우리 몸의 부패와 그로 인한 병의 침투는 악령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약하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가서 그가 악령에게 사로잡혔기 떄문에 아프다고 말한 다음, 악령의 이름을 대며 쫓아내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이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오갖 종류의 악령에 들린 사람들로 만들 수 있다. 당하는 사람의 심리적 반응을 생각해 보라!
교단 지도자들로부터의 비판이 계속 거세지자 이에 대한 반항도 거세어졌다. 늦은 비 교회들은 장로들의 교정에 복종하기보다 하나님의 성회 교단으로부터 철수했다. 1949년 8월 24일, 미시간 디트로이트에 있는 베데스다선교교회(Bethesda Missionary Temple)는 하나님의 성회 교단에서 탈퇴했다:
마크 굿윈(Mark Goodwin)은 미발표 졸업논문 '늦은 비'에서 베데스다 선교교회의 탈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와중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비올 자매가 멤버였던 하나님의 성회가 늦은 비에 반해서 섰다. 늦은 비의 축복받은 분출로 인해 놀랍게 시작된 하나님의 성회 교단이, 이제 그들을 주류교단들로부터 데리고 나와 그들이 느끼는 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유로 이끌었던 바로 그것에 반하는 공개적인 입장에 섰다. 왜일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사람들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을 운영하는 것을 원치 않기 떄문이다. 그들은 아주사 거리에서 만났던 성령으로부터 권능 받은 조직체에서 미조리 스프링필드의 회의실에 모인 사람으로부터 권능 받은 조직으로 바뀐 것이다. 이 회의실에서 일단의 사람들은 디트로이트의 부흥에 반하는 입장을 취했다. 비올 자매는 그녀의 이름을 성회로부터 탈퇴시키고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간 (히브리서 13:13)" 다른 이탈자들과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1949년 워싱턴주 시애틀 총회에서 하나님의 성회(the Assemblies of God)는 "늦은 비의 새 질서"의 행위를 공식적으로 불인정하는 7번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결의문은 이렇다:
과거 하나님의 강림하심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증거에 감사하며,
영적으로 새롭게 하심과 성령의 나타나심을 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배고픔을 인식하는 입장에서 이와 같이 결의한다.
성경적 바탕이 없으며, 같은 소중한 믿음의 교제를 가르며,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간의 혼동과 분열을 조장할 뿐인 이 극단적 가르침과 행위를 불승인한다. 23차 교무총회는 소위 '늦은 비의 새 질서'를 불승인함을 알리는 바이다. 아래의 것들이 보임으로써:
1. 안수와 예언(대언)을 사용하여 은사를 분여(임파팅), 식별, 수여, 확인하는 것을 과도하게 강조함
2. 교회가 오늘날의 사도와 선지자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는 잘못된 가르침
3. (실행되고 있는 바) 사람에게로의 죄의 고백과 해방에 관한 '새 질서'로 옹호되는 극단적인 가르침. 이는 그리스도에게만 속하는 권한을 사람에게 대리함을 주장함
4. 선교사역을 위한 특별한 도구로써 언어의 은사를 분여하는 것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
5. 언사(발언)은사를 통한 개인인도를 분여 또는 강요하는 극단적이고 비성경적인 가르침
6. 그 외로 성경해석에 있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가르침과 실행에 반하는 비틀음과 왜곡들
나아가 결의하는 바, 우리는 우리 사이에 평화를 만드는 것을 따르고,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될 때까지 성령의 하나됨을 애써서 서로를 세워주도록 하는 교리와 행위를 우리가 따르도록 권하는 바이다.
짧은 토론 끝에 결의는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 결의로 '늦은 비의 새 질서'의 비성경적 교리를 품었던 사람들은 성회로부터 그들 자신을 분리시키고 독립해야만 하게 되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교회들은 이 이슈로 인해 서로 갈라지고 편들기 시작했다. 리차드 리스는 쓰기를:
하나님의 성회 교단에 충성한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젊은 사역자는 자신의 전망을 교단의 총회에 편지했는데, 그 중 일부내용은 1950년 3월 계간서신을 통해 발표되었다. 그의 전 목사는 늦은 비에 참여하기 위해 조직에서 탈퇴했다. 젊은 사역자는 이렇게 썼다: "전 지금 나를 헷갈리고 당황스럽게 하는 충격적인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는 저희 목사께서, 내가 하나님의 성회로 들어 오게된 그 교회와 함께, 총회로부터 탈퇴했다는 보고입니다...나는 자세한 사항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는 나를 혼돈스럽게 합니다... 이런 분열 뒤에는...자기중심의 영이 있습니다. 이기주의자들은, 이유는 달라도, 모두 한 틀에서 나왔으며, 한 테이블에서 한 음식을 먹고, 한 길을 여행합니다, 그들의 독립성에 있어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에게 보여주신 공공연한 '새 빛' 덕분에, 그들 생각에 교회에 가장 좋은 것을 따라 무엇이든 모든 것을 설명하고 고치고 더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의 성회 교회가 그들의 연주에 따라 춤추지 않으면, 연주를 그칠 뿐 아니라 다른 부류를 찾아서 그들의 이기적인 마음 속에 있는 연기나는 비밀계획을 실행하려 합니다. 지금 이 날까지 그들은 '독립적'이 되어 그들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확립하고 있는데, 그러는 중에 그들은 모욕하고, 조롱하고 오랫동안 그들을 먹이고 입혀온 손을 깨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리도 강력하게 축복받아 왔던 하나님의 성회 같은 놀라운 조직보다 누군가가 더 커지면 그 사람은 조직의 존중도 존경도 받기에는 오로지 너무 큰 것입니다. 그가 총회에 어떤 의미였든지 간에 이것은 맞습니다." 물론, 늦은 비에 집착한 하나님의 성회 목사들은 종종 조직으로부터 탈퇴하라는 상당한 압력을 받았고, 몇몇은 탈락했다, 어쩌면 그들의 회원자격기한이 만기가 되도록 갱신하지 못하도록 함으로 인해서... 늦은 비를 피해 가라는 엄청난 압력이 교단 목사들에게 가해졌고, 연루된 목사들은 매우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여졌다. 많은 사람들이 부인선언을 하고 그들이 늦은 비와 전혀 연관이 없다고 공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로 하나님의 성회로부터 탈퇴한 목사들은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탈퇴이유를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확실하게도, 래리 토마스가 언급했듯이 늦은 비는 "다툼으로 인해 씨뿌려졌고, 반항 속에서 태어났고, 논란의 교리들에 의해 키워졌다." 많은 사람들은 늦은 비 운동은 하나님의 성회로부터 공식적으로 견책받고 배제된 후 빠르게 사라져 없어졌다고 잘못 믿고 있다. 이는 사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늦은 비 운동은 단지 잠시 땅 속으로 숨었고 '은사 갱신'으로 다시 번성했으며, 오늘날 토론토/펜사콜라의 '부흥'을 통해 그리고 선지자와 사도운동을 통해 다시 공개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래리 토마스를 다시 인용하면:
늦은 비 운동의 전성기는 1950년대 중반 즈음 지나가 버렸지만, 운동은 결코 죽지 않았다. 방향을 조금 바꾸고, 가르침과 방침들의 이름을 조금 바꾸고, 조금 더 엘리트주의로 변했지만 결코 죽지 않았다. 늦은 비 신학은 아직 매우 건재하며 토론토/펜사콜라의 리더들인 하워드 브라운, 아놋, 윔버, 킬패트릭, 힐, 케인과 브라운 등에 의해 옹호되고 있다.
역주
- '선십(아들됨, Sonship)'은 종말의 때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에 따른 궁극적 아들들의 모습을 일컬으며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과 같은 뜻으로 사용됩입니다.
- 'corporate'와 'corporate body'는 한 목적의 사람들의 인격적 모임이라는 뜻에서 'company'는 비슷하게 한 목적의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에서 앞으로는 이 두가지 모두를 함께 '집단'으로 번역합니다. 단, "Corporate Christ"는 "그리스도"들의 모임의 의미로 "집단(集團) 그리스도"로 번역하겠습니다.
(역자참고)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한 릭 조이너의 글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yoochinw/130033626138
[출처] 3장 선십(아들됨)과 반역 (SONSHIP AND REBELLION)|작성자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