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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성사의 비밀- 뒤믈린 신부와 네포목 신부

작성자류해욱|작성시간14.12.12|조회수985 목록 댓글 4

   고백 성사의 비밀- 뒤믈린 신부와 네포목 신부

 

   전의 나누었던 글을 조금 고쳐 다시 나눕니다.

   고백성사는 신비입니다. 신비라는 말은 어떤 어감으로 느껴지나요? 그리스어 ‘mysterion’의 어원은 휘장으로 덮여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와 침묵이라는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고백성사가 신비인 까닭은 무엇보다 고백성사의 비밀에 관한 절대성 때문이지요. 고백성사에 관한 모든 사항은 절대적인 비밀이고 따라서 고백성사를 들은 신부는 물론이고 고백을 한 사람도 완전한 침묵을 지켜야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도 신비입니다. 고백성사의 절대적인 비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고, 그 비밀에 관한 일화는 수없이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두 가지 일화를 통해 고백 성사의 비밀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며, 이 성사 안에 있는 특별한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는 비교적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뒤믈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전에 다녀온 체코의 성 네포목 신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의 뒤믈린 신부님에게 일어난 사건은 19세기가 저무는 때, 1899년이었습니다. 뒤믈린 신부님은 새로 성당을 건립하기 위해 동분서주 애쓰고 있었답니다. 뒤믈린 신부님이 가정 방문을 하기 위해 외출을 한 어느 날이었지요. 새 성당 건립 기금 모금의 어려움을 알게 된 어느 신자 할머니가 자기의 재산을 성당 건립을 위해 기부하기로 하고, 본당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외출하고 안 계시자 그 신자는 성당 문지기에게 자기의 전 재산을 성당 건립을 위해 봉헌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 돈을 신부님께 전해 달라고 맡기었답니다. 그 할머니는 원해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 평생 근면절약하여 모은 돈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성경에서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고생하며 모은 돈을 모두 성당건립기금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견물생심과 호사다마라고 했던가요? 질투가 많은 악마가 교묘하게 큰돈을 본 성당 문지기에게 유혹의 잔을 넘실거렸고, 그 성당 문지기는 유혹의 잔을 받아 마시고 악마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그 돈에 대해 자기 밖에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성당 문지기는 그 할머니만 없애면 그 돈은 자기 돈이 될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그 할머니를 망치로 머리를 때려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뒤믈린 신부님이 돌아오자마자 그 문지기는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청하였습니다.

   악마의 하수인이 된 그는 고백성사의 비밀을 교묘하게 이용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악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미 악마의 하수인이 된 자가 악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고 고백하다니, 정말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악마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지기의 고백을 들은 뒤믈린 신부님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에게 경찰에 자수하여 죄에 대한 처벌을 기꺼이 받을 것을 권면하고 보속을 주었습니다.

   그 문지기가 신부님의 말을 따랐을까요? 천만의 말씀이지요. 진실한 고백이 아닌, 악마의 교묘한 술책이었으니, 그럴 리가 없지요. 그는 누명을 신부님께 씌우기 위해, 망치를 사제관 에 감추어 두고 돈을 가지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할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경찰이 뒤믈린 신부님이 머물고 있는 사제관으로 들이닥쳤습니다. 경찰은 가택수사를 했고, 신부님의 서재를 뒤지다가 서랍 속에서 피 묻은 망치를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너무나 분명한 물증이라고 생각하고, 신부님을 체포했습니다. 신부가 고백성사의 비밀은 절대 누설하지 않는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악마의 수법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모든 언론은 들끓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민심을 자극하고 센세이션을 일으키는데 주력하나 봅니다. 요즈음 정말 가관이지요. 조양희 씨 딸 사건 등 언론이 가지고 노는 일을 언론이 담당했습니다.

   가톨릭 신부가 살인을 저질러서 체포되었다고 대서특필했습니다. 경찰이 뒤믈린 신부님을 심문했습니다. 그 할머니를 죽였느냐고 물었고, 뒤믈린 신부님은 자기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피 묻은 망치가 사제관 서재 서랍에서 나왔는지 물었지만 신부님은 다만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고백 성사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는 한 마디도 변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결국 뒤믈린 신부님은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살아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죽음의 섬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뒤믈린 신부님은 그 섬에서 중노동을 하면서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을 수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신부의 유배생활 25년이 거의 끝나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파리시 빈민촌 어느 허름한 판자 집에서 어느 늙은 병자가 남긴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뒤믈린 신부님이 살인죄로 종신유배된 것은 억울한 일이다. 그때의 살인은 성당 문지기로 있던 내가 저지른 것이다. 살인한 직후 내가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하였기 때문에 신부님은 고백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지 못하고 종신형을 받았다. 진짜 범인인 나는 곧 죽는다. 제발 신부님이 누명을 벗고 다시 돌아오도록 해 달라.”

   악마의 하수인이 된 그가 잘 살았을까요? 그 문지기는 당시에 할머니로부터 빼앗은 돈은 금세 다 탕진하고 결국 유랑생활을 하다가 빈민촌으로 흘러 들어와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자기의 죄를 깨닫고 진실을 밝히고 죽은 것입니다. 아마 순간적으로 악마의 달콤한 유혹의 잔을 마신 것을 한평생 후회하면서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겠지요.

   그 문지기의 유서를 통해 진실이 밝혀진 뒤 뒤믈린 신부는 죽어서야 돌아온다는 죽음의 섬에서 다시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의 몸은 25년의 중노동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되어 거의 죽음 직전이었고, 돌아온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뒤믈린 신부님은 이 사건을 통해 자기를 욕하고 성당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게 된 것으로 만족하고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성 요한 네포묵에 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성지 순례기의 형식으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체코의 현지 가이드는 세레나씨라는 아주 쾌활하고 설명을 잘 하는 좋은 분이었습니다. 세레나 씨는 우리가 성 요한 네포묵의 이름을 잊지 말라고, 청포묵이 아니라, 네포묵이라고 하면서 성인의 이름을 각인시켜 주려고 노력하였지요. 청포묵을 네 개 드신 성인으로 기억하면 잊지 않을 것입니다. 보헤미아의 네포묵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성은 뵐플라인인데, 후대 사람들이 고향 이름을 따서 성 요한 네포묵이라고 불러 아예 성처럼 되었지요. 성 이냐시오 로욜라처럼요.

   그는 프라하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그는 아주 명석하고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서품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프라하의 대주교 요한 젠젠슈타인의 총대리로 발탁되었고, 왕실의 고백신부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이드 세레나씨는 1탄, 2탄, 3탄에 걸쳐 성 요한 네포묵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지요. 우선 제 1탄은 성 요한 네포묵의 성화 앞에서 해 주었습니다.

 

   제 1 탄의 내용입니다. 당시 보헤미아를 통치하고 있던 왕은 벤첸슬라오 1세라는 어느 인간을 닮은 쥐새끼 같은 인간이었답니다. 왕은 폭군이면서 아주 잔인한 성격의 인물이었지만 그의 왕비 요안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경건한 신앙을 지니고 있었고, 오로지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서만 즐거움을 찾는 온순한 부인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왕과 왕비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겠지요. 왕에게는 왕비를 사찰하는 염탐꾼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왕비가 고백 성사 보는 것까지 사찰을 했나봅니다. 그런데 요즈음 사찰에 망원경까지 동원했다고 하던데 당시에 벌써 투시경이 있었는지, 아니면, 고백소를 나온 후에 본 것인지, 하여튼 고백성사를 들은 요한 네포묵 신부님이 우시는 것을 사찰하여 왕에게 일러바친 것입니다.

   왕이 요한 네포묵 신부를 불러 고백 내용을 말하라고 다그쳤답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의 고백을 들었기에 눈물을 흘렸는지, 이실직고하라는 것입니다. 세레나 씨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처음에 왕은 요한 네포묵 신부님이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말을 안 하는지 알고, 저녁에 다시 은밀하게 불렀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서 이제 사람들이 없는 곳이니, 어서 말하라고 했답니다. 요한 네포묵 신부님은 이 방에 있는 오로지 한 영혼에게만 말할 수 있다고 했답니다. 왕은 그 영혼이 당연히 자기인지 알았는데, 신부님은 그 방에 있던 개를 가리켰답니다. 개에게만 말할 수 있다고 한 것이지요.

   당신은 개만도 못하다는 은유가 아니었을까요? 정말 개 같은 사람도 있고, 개만도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부인까지 사찰을 했으니, 개만도 못한 사람, 쥐새끼 같은 인간이지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왕은 신부님의 혀를 뽑고, 우리에게 몰다우 강으로 더 잘 알려진 블타바 강에 돌을 매달아 던져버렸답니다.

 

   제 2탄은 성당 안쪽으로 조금 돌아 무덤 앞에서 해 주었습니다. 정말 아름답게 꾸며진 무덤입니다. 온 국민이 성금을 하여 그 무덤을 봉헌했다고 합니다. 무덤은 은장식으로 꾸며져 있는데,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거룩함이 느껴지는 놀라운 예술품이기도 합니다. 무덤은 온 백성이 봉헌하고, 주위를 지키는 천사상과 포목은 당시 왕비가 봉헌했다고 합니다.

   제 2탄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도 블타바 강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곳입니다. 신부님이 살해당한 다음 날, 한 낚시꾼이 새벽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별이 다섯 개 떠 있어 이상하게 여겼답니다. 세레나씨의 표현 그대로 빌리면 가방끈이 짧은 그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 그래도 가장 가방끈이 긴 본당 신부님께 여쭈었답니다. 본당 신부님도 고민을 하다가 문득 성경 구절을 떠올렸답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이르신 말씀이지요. “그물을 던져라.”

   본당 신부님은 그 어부에게 별이 떠 있는 그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했고, 어부는 그곳에 그물을 던졌답니다. 아주 묵직한 것이 걸려 대어를 낚았는지 알고, 끌어올렸답니다. 그런데 그물에 걸린 것은 대어가 아니라 혀가 빠진 채 죽은 요한 네포묵 신부님의 시신이었답니다. 놀랍게도 시신은 조금도 상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답니다. 어부는 시신을 수습하여 본당 신부님께 모시고 왔고, 본당 신부님은 성당 마당에 요한 신부님의 시신을 안치하여 모셨지요. 본당 신부님은 왕의 짓인지 알았지만 사람들에게 알리지는 않았답니다. 그런데도 그만 들통이 나게 되었답니다. 왜 들통이 났을까요? 밤마다 별 다섯 개가 그곳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그 사실이 입소문을 타고 전해지면서 온 국민들이 알게 된 것이지요. 왕은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했지만 별이 그 사실을 밝혀준 습니다.

   네포묵의 요한이 성인품에 오른 것은 1729년 3월 19일 교황 베네딕트 13세의 시대였다고 합니다. 성인품에 오르기 10년 전, 시성 조사가 행해지던 때에 그의 무덤을 열어 시체를 검사하니 3백년 이상이나 경과되었으므로 전신은 모조리 다 썩어있었지만 혀만은 마른채로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고백의 비밀을 지킨 성인의 충실함에 대한 하느님의 존귀한 보수의 표시라고 기뻐하였습니다. 체코의 국민들은 그를 정성스럽게 황금의 성광에 모시고, 순은으로 장식하여 성당의 보물로서 영구히 보존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 성인은 다리 위에서 물속에 던져져 순교한 점에서 다리의 성인이라 칭하고 수많은 다리 위에 그의 초상을 모시게 되었답니다. 성 요한 네포묵은 보헤미아의 수호성인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모든 고백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성 요한 네포묵의 초상은 보통 사제 복장 위에 소백의와 영대를 하고 오른손에 십자가를 들고 왼편에 입을 다문 모양을 그립니다. 항상 머리 위에는 별 다섯 개가 있고요.

 

   제 3탄은 나중에 카를 교에서 해 주었습니다. 우리 순레자 일행은 골목길을 지나 카를교로 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를 교에 있는 요한 네포목 신부님의 동상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빕니다. 세레나씨 말에 의하면, 대개의 소원 내용이 이곳 프라하에 다시 오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빈답니다. 우리 순례자 일행 중에도 전에 그 소원을 빌었고, 그래서 다시 오게 되었다고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장소는 네포묵 성인이 동상이 아니라 떨어져 순교하신 장소입니다. 그곳에 성인의 작은 모습이 있습니다. 저는 잠시 그곳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서 요한 네포묵 신부님께서 고백성사를 들으시고 우셨다는 사실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면서 그 생각으로 그날 오후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의 고뇌는 죄 자체보다 죄를 짓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었겠지요. 고백의 비밀을 지키신 네포묵 신부님. 그것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 그 정신은 모든 사제들이 몸으로 익혀야 할 덕목입니다.

   성 요한 네포묵 신부님은 단순히 체코 사람들이 수호성인으로 공경할 성인이 아닙니다. 물론 성인품에 오른다는 것이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의 공경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요한 네포묵 신부님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도 더 널리 알려야 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4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만 기억하고 잊고 있었는데, 반성을 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분이고, 우리의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성인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두 신부님의 이야기를 통해 고백성사의 비밀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죄도 깊이 감추어져 있어서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신비이지만 고백성사도 절대적인 비밀, 온전한 침묵을 지켜야 하는 신비입니다. 신부나 신자들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이 신비를 대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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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곡스 | 작성시간 14.12.12 조심스럽게..경건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고백성사에 임하겠습니다..
  • 작성자수레꽃 | 작성시간 14.12.12 은총과 기다림의 대림시기에 고백성사의 은혜로움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순례의 감동도 함께...
    감사합니다.
  • 작성자테레사 | 작성시간 14.12.13 고해성사를 정성들여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황금연못 | 작성시간 14.12.13
    저 또한 비밀유지가 가장 중요한 윤리인 일을 하고 있는 터라
    두 신부님의 고백성사 신비를 들으며 그 온전한 침묵의 무게를 느낍니다.

    뒤믈린 신부님의 삶은 뜨거운 눈물로 다가오고
    요한 네포묵 신부님과 함께 한 짧은 체코 순례는
    별 신부님이 순례를 하실 때의 모습이 떠올라서 유쾌한 마음으로 따라 가다가 ....
    별 다섯개의 바다에 이르러서는 뭉클해지네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에
    저 또한 깊은 연민으로 함께 하며
    오늘도 저 문을 들어오시는 분들을 경건하게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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