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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신부] 2026년 6월 14일 (녹) 연중 제11주일

작성자록은|작성시간26.06.14|조회수20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4일  (녹) 연중 제11주일

-조 재형 신부




 
제1독서; 탈출19,2-6ㄱ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그 무렵 이스라엘 자손들은 2 시나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진을 쳤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그곳 산 앞에 진을 쳤다.
3 모세가 하느님께 올라가자, 주님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는 야곱 집안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
엘 자손들에게 알려 주어라. 4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 5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
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6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제2독서; 로마5,6-11 <아드님의 죽음으로 화해하게 되었다면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형제 여러분,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7 의로
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
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
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
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
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복음; 마태9,36-10,8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을 보내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36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
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
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
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
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5 예
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
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
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너희가 거저 받
았으니 거저 주어라.”


숫자에는 상징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3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복 삼자’라고 말하곤 합니다. 
셋째 딸은 따지지 않고 며느리 삼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도 셋째 아들입니다. 반면에 4는 죽음을 뜻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엘리베이터에 4층이 없는 곳도 있습니다. 숫자 4와 한문의 죽음을 뜻하는 사(死)와 음이 같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성경에도 상징적인 숫자가 있습니다. 오늘은 ‘40’이라는 숫자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40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정화와 준비, 회개와 변화’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시작을
이루십니다. 노아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40일 동안 비를 내리셨습니다. 

 
타락한 세상을 씻어내는 심판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여는 정화의 시간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구원의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비가 그친 후에 노아는 40일이 지난 후에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이제 물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무지개’를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는 40과 관련이 많습니다. 40년은 이집트에서 왕자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40년은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삶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습니다. 모세는 40일 동안 시나이산에서 기도하였고,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물은 심판과 구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군사들은 물로 심판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도 40일 동안 걸어가면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요나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진다.”라고 선포했지만, 그 무너짐은 회개를 통한 변화의 기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며 기도하신 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이처럼 40이라는 시간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변화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줍니다. 
같은 40이라는 시간이라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세 왕,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은 모두 40년을 통치했습니다. 똑같은 40년이었지만 그 결말은 서로 달랐습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점 하느님보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그의 마음을 지배하였고, 결국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졌습니다. 
같은 40년이었지만, 
사울의 삶은 점점 무너져 갔습니다. 

다윗도 40년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큰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할 줄 알았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눈물로 돌아섰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의 주인공이 되었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같은 40년이었지만, 다윗의 삶은 회개를 통해 거룩함으로 나아갔습니다. 

솔로몬 역시 40년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지혜를 받았고, 성전을 건축한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교만해졌고, 
결국 이방의 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좋았지만, 끝이 아쉬운 삶이 되었습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왕은
모두 같은 40년을 살았지만, 그 삶의 방향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쩌면 이 ‘40’이라는 숫자는 우리의 인생과도 닮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길고 짧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음을 전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받은 은총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불평하며 살 수 있고,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있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인생의 시간, 이 ‘은총의 40’은 하느님께서 주신 기회입니다. 이 시간 안에서 우리는 정화되고, 
회개하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사울처럼 흔들리는 삶이 아니라, 다윗처럼 회개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솔로몬처럼 시작만 좋은 삶이 아니라, 끝까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 전체가 하나의 ‘구원의 방주’가 되어,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미주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성당/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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