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25. 서른아홉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모옥희 집사(549)
성경말씀 로마서 2:17~29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믿음의 봉인 Sphragis
찬송 908 용서하소서
광고 9月 대표 기도(수요예배 포함)- 김복순, 모옥희, 박이순, 이원예, 박명숙, 박영수 집사
백춘자, 조분례, 임명화 권사님, 장성자 집사님 가족 방문
제가 평화의 동산 집회 부흥강사 (10월 27일 오후 7시)- 피종진 목사님께서 요청
제1기 GMB TV 방송 실무 교육(평화의 동산, 27일, 오전 10시~오후 5시)-100명
28(수) 서울 방송국 본사 사옥 시찰(기도)
찬송 826 심령이 가난한 자는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지난 주간에도 서울을 오가면서 바빴습니다.
그러면서 좋았던 것은
기차를 타고 오가면서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을 풍경이었습니다.
널따란 가을 들녘이 황금색으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랑 가을 하늘이 황금 들녘을 더 아름답게 물 드렸습니다.
이럴 땐 목사님이 화가가 아닌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화가이었더라면
논두렁에 앉아서 훠이 훠이 노래를 부르며
하얀 도화지에 황금 들녘을 그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옹졸해서 좁다란 목사님의 가슴도 황금 들녘처럼 넓어지지 않겠습니까?
17절입니다.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절,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절,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절,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절,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절,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절,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절,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 할례가 되느니라
26절, 그런즉 무 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절,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절,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절,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 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 서니라
지난 주간에도 우리 국민의 기대를 무너트리지 못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유엔 참석차 해외 순방길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참 말도 많았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심지어 불쌍하기까지 했습니다.
해외 순방 길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웬 쌍욕입니까?
그래서 평소 습관이 무섭습니다.
검사 시절 발을 책상에 올리고 죄인 잡도리 하면서 억압하던 말투가
자신도 모르게 미국 바이든 대통령 앞에서 뱉어낸 것입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
목사님도 농담을 좋아하니 이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뜨끔했습니다.
말조심하자!
19절입니다.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절,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절,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절,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목사님 가슴이 뜨끔합니다.
지금 이 말씀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율법의 문제입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도 율법의 사슬에 붙들려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평생을 검사로서 법의 칼잡이였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어서까지 대한민국을 검찰 공화국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내 김건희 등 가족, 측근들은 모두 법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율법의 역사적 배경을 읽어 보겠습니다.
창세기 17장 1절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절,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이르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절,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절,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절,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절,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절,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절,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절,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
15절,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절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오 하고
18절,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아니다
1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율법의 문제 곧 할례의 문제입니다.
바울이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동안 고뇌할 때에 할례가
이렇게 심각하리만큼 복음의 본질에 도전이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할례는 기원전 2,300년 경에 이집트에서 돌에 새겨진 것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 전승 기록 이전의 유물입니다.
목사님이 어릴 적에 집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당시 동네에 산파 역할을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산파는
유리, 새금 팔 조각 등으로 제왕절개 수술 caesarean section을 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아프고 비위생적이었습니까?
그런데 할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약 당시 할례는 지금처럼 의료 시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막의 차돌 조각으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프고 비위생적이겠습니까?
할례 받고 곪아 터져서 많이 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할례가 사도바울이 복음 증거에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문제였지만 전통이고 율법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도 이렇습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도 검사스럽게도
법적인 문제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경영하려 합니다.
세상이, 대한민국이 법과 힘만으로 다스려지겠습니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력으로 세상을 이기려 합니다.
미국도 자국 우선주의로 세상을 지배하려 합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입니다.
돈만 있으면 무죄고, 돈이 없으면 유죄로 처벌받습니다.
80%가 넘는 국민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이게 전혀 아닙니다.
사랑의 힘, 용서의 힘, 나눔의 힘입니다.
결국, 율법보다는 사랑이 세상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우리 권사님들을 주물러 드릴 때
사랑을 느끼며 건강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우리 권사님들을 꼭 안아 드릴 때
목사님의 따뜻함을 느끼며 즐거워하십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서로 얼굴을 보면서 고백합시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3절입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절,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절,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 할례가 되느니라
26절, 그런즉 무 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 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절, 또한 본래 무 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절,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절,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 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 서니라..
율법의 무력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 방식은 검사스럽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법으로 흥한 자 법으로 망합니다.
창세기 22장 1절입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절,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절,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8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절,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절,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절, 여호와의 사지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절,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절,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절,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 준비되리라 하더라
눈물이 납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나의 가장 소중한 것
아들까지도 드릴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거룩합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부터 이미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은 아브라함처럼 타고나야 하는 가 봅니다.
그래서 목사도 타고나야 하는가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목사님은 목사가 아닙니다.
목사님은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아브라함의 신들메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26,27절입니다.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할례의 의미는 아브라함 시대에 구원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72,73절입니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결국,
할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맹세를 기억하라는 언약의 징표입니다.
그리고 할례는
종족 번식 fertility cult과 관련된 고대 이집트의 제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절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절,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절,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절,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절,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예수 믿는 성도들이 성경책 옆구리에 끼고서
큰 교회, 대형교회만 다닌다고 그리스도라 칭함을 받겠습니까?
우리 몸에 할례의 흔적 때문에 구원을 받겠느냐? 이 말입니다.
절대 아니올시다.
29절입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 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 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동안 뗄 수 없는 삶의 무게처럼
죽을 때까지 지고 가야만 하는 이 삶의 덩어리를
그리스어로 Sphragis라 합니다.
짝짓기 후 마개, 곧 봉인입니다.
봉인 Sphragis은
호랑나비가 짝짓기 후 다른 수컷과 짝짓기 할 수 없도록 만든 수태낭受胎囊입니다.
암컷이 이미 교미交尾를 했으니 다른 수놈들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시각적 표시입니다.
우리 사람도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이것과 같은 의미가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 곧 봉인 Sphragis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믿는 징표이어야 합니다.
좀 어려운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과 짝하며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좋은 가을날에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찬송이
우리의 영혼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만큼이나 성숙해지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