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6.21. 오전 9시 주일예배 설교문
신앙고백 (3)
찬송 36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대표기도 김복순 권사 (549)
성경 말씀 마가복음 14:66~72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용서를 빌라
찬송 213 먹보다도 더 검은
새 가족 유미, 서문화(58) 선생님
가족 방문 최은수 권사님 딸 가족, 이균자 권사 목사님 아들(여수), 최은수 권사 아들 두 분
백춘자 권사 셋째 딸 부부, 김복순 권사 아들
찬송 188 만세 반석 열리니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꽃밭에서, 어효선 요, 권길상 곡
66절입니다.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婢子 하나가 와서
67절,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절,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절,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70절,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71절,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지난 금요일 아침, 북중미(북아메리카) 월드컵 A조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병상에 계시는 우리 권사님들까지 TV에 집중하면서 응원했습니다.
축구도 잘 모르는 순둥이 우리 양연순 선생님까지 응원했지만
1대 0으로 패했습니다.
그러니 초등학교 시절, 축구선수였던 목사님은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무척 섭섭함에 400평 잔디를 땀을 찔찔 흘리며 깎았습니다.
그리고 차가운 물에 샤워하고 나니 섭섭함이 조금 풀렸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66절입니다.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婢子 하나가 와서
67절,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절,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우리 사람 모두가 이렇습니다.
베드로처럼 극도로 불안하잖습니까?
그럴 땐 바스락거리는 가랑잎 하나에도 두근두근 놀랍니다.
지금 베드로 심정이 그렇습니다.
가랑잎 같은 어린 소녀의 말 한마디에 급소를 찔린 듯 주눅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나 아는지 허둥지둥 거짓말이잖습니까?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68)
그렇습니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입니다.
잠언 28장 1절입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그래서 죄를 지으면
경찰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지 않습니까?
티끌과 같은 인생,
류시화 시인의 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인생입니다.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 눈 위에 쓰는 겨울 시
69절입니다.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70절,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71절,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목사님은 전라도 사람입니다.
말씨만 들어도 전라도 사투리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가 들어도 베드로는 갈릴리 촌놈 사투리가 또렷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26장 73절입니다.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우리 인생이 이렇듯 폭폭 합니다.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옹졸 옹졸 찌질찌질할 때가 많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사님처럼 이렇게 답답하고 폭폭 하게 살고 싶습니까?
30년 전에 천국 가신 목사님 어머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입니다.
사내답게 쿨렁쿨렁 살아라!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살지 말아라!
71절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이렇게 맹세 잘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목숨처럼 사랑했던 수석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일컬어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의 이름조차 모르는 것처럼 이 사람이라 합니다.
그야말로 시치미 뚝 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 아닙니까?
이렇듯 시치미 잘 떼는 사람은 상대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72절입니다.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오늘 말씀도 북중미 월드컵 멕시코전처럼 답답합니다.
그래서 폭폭 해서 닭이 울었는가 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한계였고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지금 목사님 가슴이 미어질 듯 아픕니다.
그래서 시를 읽으며 숨쉬기를 해야겠습니다.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이루어졌거든
뒤뜰 오동나무에 목매고 죽어버려라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첫눈이 온다 그대
첫 사랑이 실패했거든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길을
맨발로 걸어가라
맨발로
그대를 버린 애인의 집까지 가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끝내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첫눈이 온다 그대
쓰던 편지마저 다 쓰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들에 나가라
온몸 얼어 저 첫눈의 빈들에서
그대가 버린 사랑의 이름으로
울어 보아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한
그대의 순결한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라 / 첫눈, 장석주
지난주일 예배 준비하려는데 유수남 권사님께서
목사님! 부르시는 겁니다.
우리 조카 취직했으니 감사헌금 5만 원을 받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권사님 믿음을 보시기 때문에 5천 원만 내셔도 충분합니다.
우리 유수남 권사님은
소아마비로 9살부터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하고
손마저 오그라져 90년 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가족도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움큼 기름 한 방울로 두말없이 엘리야 선지자를 대접했던
사르밧 과부가 바로 우리 유수남 권사님입니다.
우리 인류는 바로 이렇게 굽이굽이 이어져 왔습니다.
어떻게 똑같은 환경,
똑같은 장소에서 예수님은 불리한 증언을 들었을지라도 묵묵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오로지 살아야 할 목적 때문에 진실을 외면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이렇듯 베드로처럼 구차하지는 않았습니까?
결국, 우리 인생을 환경 탓만 해야겠습니까?
72절입니다.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그래서 닭대가리보다도 못한 우리 인생입니다.
오죽했으면
닭의 울음소리가 베드로의 새까만 거짓들을 깨닫게 했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서야 베드로는 땅에 쓰러져 슬피 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묵상, 인애하신 주님, 북중미 월드컵으로 온 세계가 즐겁습니다.
그러나 지구촌 한구석에서는 전쟁에 수십만 명이 죽어가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누구는 배불러 죽고
누구는 굶어 죽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세상 탓만 하면서 살겠습니까?
예수님은 세상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죽기까지 묵묵히 십자가 고난을 받아들였습니다.
인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인애하신 주님,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하오니 사랑하게 하옵소서.
인내하게 하옵소서.
감사하게 하옵소서.
함께 나누고 베풀게 하옵소서.
이런 믿음으로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 참 좋으신 주님, 우리는 지금까지 세상 탓만 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칠칠치 못하게 얼마나 원망했습니까?
그래서 닭이 울지 않았습니까?
이제 깨닫게 하옵소서.
이제 눈을 뜯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 참 좋으신 주님, 사르밧 과부가 우리 유수남 권사님이었습니다.
90년이 넘도록 걷지도 못하고 손 한 번 펴 보지도 못하고
불편하게 살았지만 이렇듯 감사 감사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렇듯 성숙한 우리 유수남 권사님처럼 주님께 더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부족하지만 믿음으로 헌금을 드립니다.
주일, 주정, 감사 헌금을 드립니다.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 하심이
같은 환경 같은 장소에서도 베드로처럼 비겁하게 살지 않고
예수님처럼 묵묵히 십자가 고난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는
우리 성도님들 머리 위에 그 가정 위에
그리고 새 가족이 된 유미, 서문화 선생님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