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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복식

작성자Lord|작성시간04.10.21|조회수1,337 목록 댓글 0

* 중세복식

서로마가 멸망한 5세기 후반부터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전까지의 약1000여 년간을 중세라 
한다. 중세는 종교적인 금욕주의의 영향으로 몸을 완전히 감싸는 형태의 의복을 착용하였으
며 색상과 문양도 크리스트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비잔틴시대 
복식 비잔틴 시대의 복식은 동양의 영향을 받아 비단을 많이 사용하였고 자수와 보석 등으
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남자 복식으로는 팔루다멘툼, 달마티카, 튜닉이 대표적이었다. 팔루
다멘툼(Paludamentum)은 사다리꼴 또는 반원형의 천으로 왼쪽어깨는 완전히 감싸고 오른쪽 
어깨는 장식 핀으로 고정시킨 것이다. 달마티카는 단순하고 소박하였는데 신분이 높은 사람
들은 달마티카(Dalmatica)에   클라비(Clavi)라는 줄을   붙였다. 튜닉   위에 화려한   맨틀
(Mantle)을 걸치고 금, 은, 보석세공의 관을 썼다. 여자복식은 장식에 치중하여 길이가 땅에 
끌릴 정도로 길며 소매도 길이와 품이 넓게 되었다. 주로 달마타카, 스톨라,팔라를 착용하였
다. 
 
  
(2)로마네스크시대 
복식 유럽문화가 싹트고 남북교통이 좋아짐에 따라 복식도 남방과 북방계통이 혼합된  형이 
되어 갔다. 십자군의 원정으로 서구는 동방문화를 받아들였는데 특히 견직물의 수입과 소비
가 증대되었다. 이 때부터 의복의  형태가 복잡해지고 색채도 풍부해졌는데  이러한 경향은 
여자복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남녀 복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십자군  기사가 추위와 
무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입은 심을 넣은 조끼가 남자들  사이에 유행되기 시작하였다. 남
자복식으로는 전체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허리에 벨트를  맴으로써 아름다운 주름이 나타난 
블리오(Bliaud),속옷으로 블리오 밑에 착용한 튜닉형 세엥즈(Chainse)가 있었다.  여자복식은 
남자와 같이 세엥즈, 블리오, 외투인  맨틀을 기본복으로 착용하고 인체의 곡선을  나타내기 
위한 꼬르사아쥬(Corsage)를 입었다. 블리오는 남자 것보다 좀더 장식적이었다.  
    
(3)고딕시대 
이 시대는 봉건주의 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형식과 의례가 중요시 여겨졌다. 복장은 점차 
인공적으로 발달되어 갔는데 14세기에는 소매와 몸통이 꼭 끼고 스커트는 플레어인 로우 웨
이스트 드레스 를 착용하였다. 남자복식은 다리에 딱 맞는 호즈에 상의는 몸에 맞는 쟈께뜨
를 착용하였다.  호즈는  좌우 색깔이  다른  것도 있었고,  신은  끝이 뾰족한  긴  뿔렌느
(Poulaine)를 신었다. 꼬따르디(Cortardie), 우쁘랑드(Houpplande)와  같은 긴 의복이 착용되
었다. 14세기의 여자복식은 허리선이 아주  높고 목둘레는 V자형, 원형, 사각등으로  대담한 
스타일이었다. 



얇고 부드러운 직물로 인체의 윤곽선을 나타내 주던 12세기의 의상이 13세기에 흑사병과 천
재지변을 겪은 후 밀착된 의상에 대한 반발로 잠시 무겁고 헐렁하게 인체를 감추는 듯 하였
으나, 다시 부드러운 직물을 사용하여 육체의 곡선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의  직물
로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고운 린넨(linen), 브로케이드(brocade), 수놓은 벨벳(velvet) 등이 
사용되었고 모피가 유행하였다. 

이전의 정적인 생활에서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활동적인 생활로 바뀌자 복식도 합
리적인 형태를 추구하였다. 수세기 동안 거의 없었던 남녀 의복의 성차(性差)가 14세기에 처
음으로 뚜렷해져서, 남자의 의복은 짧아지고, 여자의 의복은 몸에 꼭 끼게 되어 몸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화려하게 장식을 하기 시작하였다. 

13세기 기본 복식은 튜닉(tunic)이나 꼬뜨(cotte)를 입고  그 위에 쉬르꼬(surcot) 종류 중에
서 한 가지를 입기도 했으며, 아래에는 호즈(hose)라는 긴  양말을 신었다. 14세기에는 주로 
꼬따르디(cotehardie)를 입고 그 위에 쉬르꼬나 맨틀을 입었다. 

꼬뜨(그림 20)는 로마네스크 시대 블리오(bliaud) 대신에 나타난 상체가  꼭 맞는 남녀 공용
의 원피스 드레스형의 튜닉으로, 상체가 비교적 여유있게 맞고  스커트 부분이 넓어져서 자
연스러운 주름이 생겼고, 길이는 주로 발등을 덮을 정도의  길이가 많았으며 여자들의 것은 
좀더 길었다. 소매는 끝이 좁아지는 돌먼 슬리브(dolman sleeve), 소매통이 전체적으로 좁은 
기모노 슬리브(kimomo sleeve), 혹은 꼭 끼는 타이트 슬리브(tight sleeve)도 있었으며, 팔꿈
치에서 소매 부리까지 단추를 잠그는 형 등 모양은 여러 형태이었다. 

꼬따르디는 꼬뜨의 변형으로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어 유행되었다. 이 옷의 특징은, 몸통
에서 허리에 걸쳐서는 꼭 맞게 하여 신체의 곡선이 잘 나타나도록 한 후 단추를 촘촘하게달
거나 끈으로 매어 꼭 끼게 하였으며,  목선은 어깨 근처까지 크게 하였다. 남자의  옷길이는 
무릎길이거나 더 짧았으며, 여자의 것은 스커트가 풍성하고 길이는 바닥에 끌리게 길고,  다
른 폭의 무(gusset)를 대어 플레어(flare) 스커트처럼 퍼지게  했다. 꼬따르디의 소매는 타이
트하게 만들고 부분적으로 색을 달리하기도  하였으며 팔꿈치에서 손목까지 단추로  잠그게 
되어 있었다. 팔꿈치에는 좁고 긴 천을 달아 무릎까지 늘여  뜨렸느데, 이 천은 티펫(tippet)
이라 불리는 일종의 장식천으로 주로 금실로  섞어 짠 견이나 모, 린넨(linen),  모피 등으로 
만들어졌다. 색은 주로 흰색이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안팎의 색을 달리하기도 하였다. 15세기 
이후부터 티펫은 장식적인 행잉 슬리브(hanging  sleeve)로 변하게 되었다. 꼬따르디 위  힙
(hip)부분에 보석으로 장식한 금속판 벨트를  하였는데, 이것은 재산의 많고  적음을 나타내 
주었다. 

쉬르꼬(그림 21)는 13세기의 가장 특징있는 의복으로 남녀  모두 착용하였는데 외출시 꼬뜨 
위에 입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 강한 햇빛의 반사와 눈, 비, 먼지로부터 갑옷을 보호하기 위
해 병사들이 갑옷 위에 입기  시작하였고, 초기에는 두 개의 직사각형  천을 양쪽 어깨에서 
꿰매어 걸쳤는데, 후에는 옆솔기선을 꿰매기도 하고 가슴부터 스커트 단까지 풍성한 주름을 
잡아 넓히는 등 실루엣이 다양해졌다. 쉬르꼬는 장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옷감도 아름
답고 꼬뜨와의 조화를 고려하였다. 쉬르꼬 뚜베르(surcot-ouvert)는 쉬르꼬의 변형으로 꼬따
르디 위에 입는 옷으로 오늘날의 점퍼 드레스(jumper dress)라고 할 수 있다. 이 옷은 진동
이 크게 벌어져 허리선이나 힙(hip)까지  보였으며, 목둘레선은 턱밑 부분이  파여진 것부터 
어깨까지 깊게 파여진 것 등 다양하였다. 스커트 앞자락에는 양손을 넣어 앞자락을 들어 올
릴 수 있는 슬릿(slit)이 있는데 이것은 의상에 주머니가 생기는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쉬르
꼬의 또 다른 변형인 시클라스(cyclas)는 호화로운  옷감으로만 짜여진 쉬르꼬를 말하며 귀
족 계층에서 주로 의식용으로 입었다. 옷감은 안에 착용한 옷감과 같은 것을 사용하였고, 신
셈  앞뒤를 덮어 도련이 바닥까지 끌리게 하였으며, 옆선은 전부 터져 있으나 겨드랑이에서
부터 꿰맨 것, 전부 꿰맨 것, 단추로 채운 것 등 다양하였다. 

뿌르뽀엥(pourpoint, 그림 22)은 누빈 옷이란  뜻으로, 영국에서는 더블릿(doublet)이라고 불
리웠으며 지뽕(gipon)이 변형·발달된 것이다. 앞중심선은 트여 단추가 연속해서 달려  있으
며, 팔꿈치에서 손목까지도 단추가 촘촘하게  달려 있다. 一자인 단추 구멍은  동양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그 후 서양 남성복에 널리 사용되었다.  옷감으로 견, 벨벳, 브로케이드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뿌르뽀엥 안쪽에는 고리나 끈이 달려 있어서 쇼오스(chausses : 일종의 양
말)가 흘러 내리지 않도록 고정시키기 위한 기능을 하였다. 후기에는 옷길이가 매우 짧아졌
으며, 소매 디자인은 어깨에 퍼프(puff)를 넣어 어깨선이 위로 올라가고 어깨가 넓어 보임으
로써 아래의 꼭 끼는 호즈(hose)와 대조를 이루어 색다른 남성미를 나타내었다. 뿌르뽀엥은 
오랫동안 남성만이 착용했던 특유의 의상으로 이것으로부터 남녀 성차가 의복에 뚜렷이  나
타나기 시작했다. 

우쁠랑드(houppelande, 그림 23)는 14세기 말부터 나타난  특수한 모양을 가진 원피스 드레
스로 남녀 모두 뿌르뽀엥 위에 착용하였다.  이 옷의 특징은 소매의 디자인에 있는데,  소매 
끝이 바닥에까지 끌리며 깔대기처럼 거창하게 넓어지고 가장자리가 꽃잎이나 잎사귀 모양으
로 매우 장식적이었다. 옷길이는 무릎 길이인 것과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것이 있었고,  벨
트를 매기도 했다. 옷감은 호화로운 견이나 수놓은 견, 얇은 모, 벨벳 등이 주로 사용되었고, 
겉감과 대조적인 색의 안감을 사용하였으며,  르네상스 시대에 로브(robe)로 명칭이  바뀌었
다. 

브레(braies)는 바지, 쇼오스(chausses)는 양말을 말하는데, 14세기에  와서 남자들의 상의가 
짧아짐에 따라 브레가 점점 위로  올라 가면서 길이가 짧아지고, 쇼오스는  점점 길어져 힙
(hip)까지 올라 가게 되었다. 따라서 브레는 속옷으로 바뀌고 쇼오스가  바지로 되어 뿌르뽀
엥과 함께 한 벌의 남자 의복이 되었다. 쇼오스는 좌우 색을  달리하는 것(parti-color)이 많
았다. 


머리 장식과 신발 

13세기 남자는 머리를 중앙에서 나누어 컬을 해서 어깨까지 늘어 뜨렸고 그 위에 로마네스
크 시대의  것이 그대로   내려온 프리지앙 보닛(phrygian   bonnet), 깔로뜨(calotte), 토끄
(toque)를 쓰거나, 시대 감각에 맞게  새로운 형으로 변한 샤쁘롱(chaperon),  샤뽀(chapeau) 
등을 썼다. 14세기에는 의복이 전보다  점차 화려해지고 사치해지므로 머리  형태와 장식에 
새롭고 과장된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고딕 시대 여자의 모자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에넹(hennin, 그림 25)으로, 고딕 건축의 뾰족
함을 가장 잘 살리고 있는데,  높이는 점차 높아져서 높이에 따라  착용자의 사회적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신발은 고딕 건축  스타일의 뾰족한 감각이 그대로 반영되어 발달한  것으로, 
구두의 길이는, 평민은 13∼15㎝, 중류층은 30㎝, 왕은 60㎝로 신분을 나타내었다. 끝이 뾰족
한 신발은 발끝이 너무 길어 동여 매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쁠렌느(poulaine, 그림 25)라 하
였다. 이 시대에는 복장보다도 신발을 더 중요시하여 제작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
으며, 재료는 부드러운 가죽, 펠트, 벨벳, 브로케이드, 두꺼운 견 등이 사용되었다.

츨처: <SF & FANTASY (go SF)>, 글쓴이:임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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