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중세기사 자료실

십자군 비판론 - 십자군의 그늘

작성자Lord|작성시간04.11.02|조회수403 목록 댓글 22

이번 편에서는 중세 유럽 최악의 이벤트 십자군만 다루도록 할란다.


광신의 북소리에 놀아난 한 바탕 춤사위라고 해야 할 이 현상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우리는 이 일들이 가진 공통적인 배경에 대해 함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중세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이 두 사건의 배경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라는 유럽/서양/백인 문명 특유의 개념이 극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지난 편들에서 열거했듯이 드라마틱하게 나눠어진 '선과 악의 대립체로서의 세상' 이란 사고방식은 중세 게르만 기독교 유럽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십자군과 마녀 사냥이라는 2 대 사건은 이런 관념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념이야말로 동서양의 전통적 정신세계를 구분짓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아는 바와 같이 동양의 사상에는 선과 악이 이런 식의 극단적이고도 이원적인 대립 개념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순자의 철학적 배경으로 일컬어지는 성악설에서의 악도 '성나는 대로 행동하고 예의를 어기는'?차원의 것이지 서양의 악마 같은 괴기하고 무시무시무시한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중세는 물론 현재까지도 서양의 악에는 흔히 그 뒤에 신의 대립자로서 초자연적인 인격적 존재-악마-가 쉽게 상정되곤 한다는 점에서 동양 철학의 '삶의 윤리' 로서의 선악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행동에 쉽사리 초자연적인 것을 결부시키는 것이야말로 다름 아닌 광신으로 인한 망상적 상태의 특징이기도 하다.
서양의 관점에서 신과 악마, 천사와 마귀로 상징되는 선과 악은 항상 극단적인 정점에 있는 초인간적 대립물이다.

1.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증오의 표출

전술한 '악' 의 존재에 힘입어, 중세 유럽은 사랑을 설파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존재들을 악의 표상으로서 드러내놓고 증오하고 공격하였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 있어서 구체적인 악의 역사로 인식된 이교도나 이단에게까지 적용되는 관용과 사랑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2. 수백년의 기간 동안 유럽 전역에 걸쳐 일상화

십자군 원정은 11 세기 말부터 13 세기 말에 이르는 200 년간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고, 마녀사냥은 15 세기 초부터 17 세기 초까지 유럽 거의 전역에서 횡횡하였다. 200 년이라는 기간은 7 세대에 해당하는 긴 시기로, 이 상황들이 결코 짧은 순간에 광풍처럼 불어닥친 국지적, 순간적인 오류가 아닌 중세 유럽의 정신적 기저를 대변하는 장기적인 이벤트라는 점을 증명해 준다.

3. 약자를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

십자군 원정과 마녀 사냥의 가장 악질적인 측면은, 명분상 타켓으로 하는 이슬람과 마녀뿐 아니라 그 힘과 명분을 빌미삼아 이와는 아예 무관한 사람들까지도 괴롭히고 학살하는 도구로 오용되었다는 점이다.

4. 절대성의 획득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들인 만큼 그 권위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따라서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부작용들은 묵인되었다. 그러나 실은 그 부작용들이야말로 이들 이벤트의 본질이나 다를바 없었다.

...이 정도 정리해 놓고 십자군 원정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

흙먼지 날리는 황토의 전장. 흰 갑옷과 투구를 쓴 채 말에 높이 올라탄 용맹한 전사들. 가슴팍에 그려진 붉은 십자가는 석양을 받아 더욱 빛나고...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정의의 사나이들! 머나먼 고국에서 기다리는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리지만, 이대로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성지를 사수하고 신의 영광을 지상에 구현하기 전에는...!

티비 만화나 각종 미디어가 만들어낸 십자군의 이미지는 대충 위와 같은 것이다. 머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십자군 하면 무조건 따라오는 개념은 항상 선하고 순수한 그 무엇이다. 예를 들어 '우주 십자군' 이라고 했을 때 열분들 머리 속에 떠오르는 모습은 백이면 백 흉칙한 모습을 한 악마 군단에 대항하는 정의의 군대지, 흰 갑옷이 붉게 물들도록 피칠갑을 한 채 지구를 향해 쳐들어오는 무시무시하고 악랄한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서구 기독교 사회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덜 미화된 편이다. 현실에서 이들은 과연 정의의 사도였던가?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고 십자군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세 유럽에 있어서의 이슬람-십자군의 주적이었던-을 일단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슬람이란 단어에서 떠오르는 심상들은 대체적으로 앞의 십자군과는 반대의 것들이다. 흔히 광신, 음모, 폭력, 맹목, 협잡, 비문명 등으로 대변되는 이들 이미지는 분명 선보다는 악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이런 정서는 전적으로 중세 내내-아마 현재까지도-이슬람의 적이었던 유럽과 백인 문명및 기독교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주관적인 입장에서, 울나라는 역사상 이슬람과 갈등 관계에 놓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에게는 아군도 적군도 아닌 그저 남일 뿐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역시 이슬람의 팩트들은 백인들에 의해 필터링된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 마디로, 나쁜 넘으로 봐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거다.

일단 중세라는 시기에 이슬람은 백인들의 유럽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문명화된 세계였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수학, 기하학과 물리학 등 자연과학에서 이슬람의 뛰어난 업적은 르네상스 이전 유럽을 압도하고 있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한 손엔 코란을 한 손엔 칼을' 이라는 표현-서양인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곡해되고 우리도 그대로 믿고 있는-과는 달리 이슬람은 정복지의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개종시킨 예가 없으며-강제 개종은 이슬람법에 위배됨- 단지 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무거운 세금을 물렸을 뿐이다. 그렇게 물린 세금조차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 제국의 일상 세금보다 가벼웠기 때문에 민중들에게서는 오히려 환영받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슬람이 빠른 시간내에 넓은 지역에 전파된 것은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지, 피에 굶주린 광신자들의 칼날 때문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슬람은 종교적으로 오히려 중세의 유럽보다 관대한 측면이 있었다.

이런 사실과 함께 십자군 전쟁의 실상을 이해하기 위해 또한 알아야 할 것은, 잘 안알려져 있는 부분이지만 이슬람의 신 알라와 유태교나 기독교의 신 야훼-참고로, 알라나 야훼라는 말은 신의 실제 이름이 아니라 그저 신이라는 말을 대신하는 단어들일 뿐이다-는 역사적으로 거의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세 종교는 모두 모세와 아브라함, 노아 등 구약의 중요 인물들을 숭상하며 많은 예언자들을 공유하고 있다. 심지어, 이슬람 교조 무하마드에게 나타나 알라의 뜻을 전했다는 천사 가브리엘은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고지한 '수태고지' 의 주인공 그 가브리엘과 전적으로 동일한 존재다.
천사 가브리엘에게서 계시를 받는 무하마드.
마호멧은 무하마드의 유럽식 표기이다. 참고로 무하마드, 하산, 후세인 등 흔한 아랍 이름은 대부분 이슬람의 예언자나 성자에서 온 것들.


문제는, 이런 이유로 인해 세 종교는 자연히 서로를 '이단'시 하게 된다는 점이다. 중국처럼 사고 방식의 체계가 완전히 다른 경우에는 오히려 첨부터 아예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보게 되니 차분하게 접근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같은 뿌리를 가지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더 예민해지고, 그만큼 불신과 증오도 첨예해지기 쉽다. 다시 말해,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중세의 중국은 하나님, 예수의 말씀이 아예 전해지지 않은 무지의 땅일 뿐이지만, 아랍인이나 유대인들은 알면서도 하나님을 왜곡한 고약하고 방종한 자들이 되는 셈이다. 어느 쪽의 죄가 더 큰지는 명약관화하다.

더욱이 이런 세 종교의 특성 때문에 구약의 중심지역인 팔레스타인 일원은 모두의 공통 성지가 되는데, 그 중심에 놓인 대표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지역이 바로 이스라엘의 구도이자 솔로몬 성전이 위치한 예루살렘인 것이다. 지난 천여 년 동안 이곳을 배경으로 세 종교간의 한 유,무혈의 쟁탈전이 끊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갈등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900 년 전에 시작된 십자군 원정은 바로 이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되었다.

7 세기에 무하마드에 의해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 일원에서 성립한 이슬람교는 동 지역과 중앙 아시아, 북 아프리카 등지에서 세력을 확대하다가 셀주크 투르크(터키의 전신이자 중국 변방 종족 중 하나인 돌궐의 후예라고도 함. 이런 이유로 울나라와 친척 관계라는 말이 나온다)의 강력한 제국에 힘입어 크게 확산되어 나간다. 1071 년 유럽의 기독교 최전선인 동로마 제국 군대가 셀주크 투르크의 공격에 의해 패퇴하고, 그 지역의 상당 부분이 이슬람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불과 이십 년 후 강력했던 셀주크 투르크의 제국이 분열되면서 틈을 보이게 되고, 바로 이때를 노려 영토 회복을 염원하는 동로마 황제 알렉시우스 1 세의 요청에 의해 교황 우르바누스 2 세 주도로 창설된 것이 바로 십자군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 와중에 명분으로 내세운 성지 예루살렘 탈환의 성스러운 임무라는 것이 알고 보면 별 실질적 의미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예루살렘은 이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이미 400 년도 더 전인 638 년에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과 함께 동로마 제국에서 이탈, 이슬람의 영토로 병합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슬람 영토 내라고 하지만 이슬람 특유의 관용적인 종교정책으로 인해 예루살렘 안의 기독교 성지들은 충분히 존중되며 관리되고 있었고, 덕택에 수많은 순례자들이 유럽 각지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데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다시 말해, 굳이 탈환해야 할 심각한 필요가 없었단 소리다.

?瀏냄〉? 불구하고 이슬람의 서진을 두려워한 교황은 동로마 황제의 요청이 있자 나름대로의 계산을 통해 유럽에서 성지 탈환의 명분을 부추기고 성전을 주창함으로써 십자군을 창조해 내기에 이르는데, 그 실제 목적은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하인리히 4 세와의 권력 경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정치적 계산과 함께, 교황의 권위가 별로 미치지 않는 동로마의 동방정교 세력을 흡수 병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십자군 원정의 실제 이유는 이미 종교적 자유를 누리고 있던 예루살렘의 탈환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적인 권력과 관련된 것이었다.
유태교의 성지 '통곡의 벽' 바로 뒤로 이슬람교 오마르 모스크가 보인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 라는 뜻과는 반대로 끝없는
분쟁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런 최고위층의 정치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렇게 만들어진 실제 십자군 조직과 군사들의 심리속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주된 정서로 자리하게 된다.

1. 동로마 제국을 야금야금 점령해가며 유럽권으로 밀려오는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

2. 그 두려움 만큼이나 강해진 이슬람과 이교도에 대한 증오

3. 바티칸과 사제들에 의해 부추겨진, 예루살렘 성지 탈환에 대한 때 아닌 배타적, 광적 열정

4. 기왕에 형성되어 있던 게르만적 비장미와 기독교적 열정의 강력한 발산

이리하여 1095 년 11 월 27 일 교황 우르바누스 2 세는 끌레르몽 공의회에서 역사적인 십자군 창설의 연설을 하고, 종군한 병사들에게는 신의 구원을 약속하기에 이른다. 전장에서 병사들의 행위의 윤리성이 아닌 '참가 자체' 를 통해 구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이런 논리는 아마도 이후 보여진 십자군의 윤리적 결함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 것이다.

200 년에 걸친 십자군 원정의 드라마는 길고도 파란만장한 것이지만 그걸 일일히 다 열거할 필요도 없고 지면도 없으니, 여기서는 우리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일부만 짚어보도록 하자.

원래 계획된 십자군은 주로 기사 계급을 통한 한 정예 군단이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을 휩싸고 돈 종교적 열정으로 인해 정규군이 조직되기에 앞서 자생적 십자군들이 난무하게 되었고, 막말로 어중이 떠중이들이 모인 이들은 통제가 힘든 어설픈 조직으로 비대해지고 만다. 제대로 된 통솔하에 있는 군대도 힘과 무기를 가진 상황에서는 윤리적으로 피폐해지기 십상인데, 광신적 열정과 무지로 뭉친 채 명령계통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이런 무력 집단이 향후 어떤 식으로 변질되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들 중 주요 갈래였던 '농민십자군' 은 셀주크 투르크와 싸우러 가던 여로에서부터 이미 식량과 보급이 떨어지고 말았고, 그 결과 헝가리 등 동유럽 지역을 약탈해 부족한 물자를 충당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약탈은 물론 성전 수행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졌으나 당하는 민중들의 고통은 처절했다. 결국 농민십자군은 성스러운 군대는 커녕 이웃을 욕보이고 죽이는 집단으로 변질되어 갔다. 우여곡절 끝에 이슬람 지역에 도달, 셀주크 투르크 군대와 맞붙었을 때 이들은 이미 오합지졸의 도둑떼나 다름이 없었고 급기야는 전투에서 무력하게 대패하여 괴멸되고 말았다.

그외 다른 자생적 십자군들 역시 이슬람과 맞붙기도 전에 헝가리 등지에서 유대인 학살을 저질렀고, 그 결과 목표했던 전장에는 도착하지도 못한 채 성난 헝가리인들에 의해 전멸하는 어이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십자군 원정이라는게 초장부터 대체로 이런 식이었던 것이다.

뒤를 이은 정규 십자군 역시 그다지 나을 것이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1099 년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은 그동안 이슬람교도 지배자들이 보여주던 관용과는 정반대로, 현지에 있던 수십만 명의 유대교와 이슬람교도들의 여자와 어린애들까지 유린하고 학살함으로서 피의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십자군의 이런 무도한 행위는 셀주크 투르크를 비롯한 당시의 이슬람 국가들을 경악시키고 이들로 하여금 유럽 기독교도의 인간적 소양에 대한 회의와 의심을 촉발시키기에 이른다.

여튼 이 시점이 십자군 원정으로서는 황금기로서, 이때의 예루살렘 점령은 약 백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이슬람에 의한 예루살렘 재탈환 이후 십자군은 이런 저런 명분으로 수시로 결성되어 많은 공방전을 치루게 되지만, 대부분 큰 성과 없이 주로 민중의 삶만을 피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한편, 십자군은 그 명분과는 달리 반드시 이슬람 교도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도 아니다. 칼을 가지면 그 칼을 휘둘러 보고 싶기 마련이라는 힘의 속성에 대한 진실은 십자군 원정 내내 유감없이 발휘되었는데, 그 칼끝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유대인들은 물론 원정의 길목에 놓여있던 양민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방향을 향하게 된다.

일례로, 1201 년 인노켄티우스 교황의 위임을 받은 알비파 십자군은 1209 년 이단 혐의를 받고 있던 프랑스의 베지에 시를 공격, 2만 여명에 달하는 남녀노소 시민 전체를 학살했다. 이 사태를 이끌었던 시토 회 수도원장 아르나르두스 아밀리키는 주저하는 군대를 향해 '죽여라.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을 알아보신다' 라는 광기에 찬 명령을 남기기도 했다.

십자군 원정의 어리석음과 광기는 1212 년에 결성된 소년 십자군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종교적 신념과 낭만주의에 가득 찬 프랑스와 독일의 십대 소년들 스스로에 의해 주창된 소년 십자군은 양국에서 총 5 만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을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하지만, 원정 과정에서 노예 상인에 속아 대부분이 북 아프리카에 노예로 팔려가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고 만다.?다행히 이런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아이들 역시 배가 침몰하여 익사하는 등 비극은 이어졌다.

한 편, 1251 년 이집트의 회교도로부터 프랑스 왕 루이 9 세를 해방시킨다는 명목하에 창설된 또 하나의 자생 십자군인 '파스테롤리(작은 양치기의 무리)단' 은 양치기와 농민으로 구성된 도둑떼로 전락하여 프랑스 전역을 돌며 유대인과 양민 등을 대상으로 부녀자를 유린하고 살육과 약탈을 일삼다가 결국 프랑스 왕의 군대에 의해 격퇴되기도 했다. 이런 예는 끝이 없다.

물론 십자군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광기에 휩싸여 살육을 일삼고 다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십자군 원정이 가져온 폐해는 분명 심각했고, 특히나 성스러운 군대니 신의 영광이니 하는 거창하고도 아름다운 명분들을 생각한다면 그 도덕적 윤리적 타락의 정도는 실로 참혹한 것이었다.

해방군, 성전, 평화를 자처하는 뭇 경우들을 포함하여 이 세상의 모든 전쟁들이 그러했듯, 십자군 원정 역시 힘에 중독되어 피를 탐닉하는 인간의 잔인성과 공격성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비극이었을 뿐이다.

놀라운 것은 실상이 이러함에도 서방 세계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군이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군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고, 그런 이미지가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울나라를 포함한 전세계에 퍼져 있다는 점이다. 이 십자군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도 잘못 된 것이지만 우리나 대부분의 제3 세계 국가와는 아무런 은원관계도 없는 이슬람을 마치 악의 화신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부당한 결과를 낳는다.

앞에서 이슬람의 면면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십자군 원정 이전 이슬람은 종교적 관용이라는 측면에서 중세 유럽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학문의 자유도 상당부분 보장되었고, 개종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교도를 죽이는 일도 없었다. 그런 이슬람을 방어적인 태도로 조금씩 바꾸어 간 것은 다름 아니라 타협과 관용을 모르고 이질적인 것을 모두 죽이고 억압하려던 중세 유럽의 잔인함과 무지였다. 지금 아랍 세계의 일부에 공격적인 면들이 보인다면 이에 대한 책임의 최소한 절반 이상은 피와 살육을 밥먹듯이 반복하면서도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오만과 광기로 일관했던 유럽의 백인 문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이렇듯 잘못 알려진 이슬람 세계의 실상에 대해, 다음에 언젠가 다시 한 번 제대로 다뤄 볼 계획이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단지 900 년 전의 비극적 역사의 한 장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십자군으로 상징되는, 이슬람이나 여타 문명에 대한 서구인들의 뿌리 깊은 몰이해, 특히나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백인 사회의 중세적 무지와 편견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더욱 심각한 문제로서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출처: [파토의 유럽 이야기] 유럽과 기독교 (5), 글쓴이: 이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knight | 작성시간 04.11.10 글쿠... 전쟁이 다 비참하지여... 피해가 없을순 없져... 전쟁나면 싸우는 병사들외에 부녀자, 애들,노약자등 민간인 피해가 크쟎아여... 지금 이라크 보세여... 중요한건 전쟁이 일어나면여... 모두 비참해 진다는 거져...
  • 작성자Lor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11.10 올린글보다 여러 기사님들의 의견을 들을수 있는것 자체가 큰 기쁨입니다. 글쎄 십자군원정은 지금까지 많은 논란을 가져온 역사라 저 역시 의견개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 작성자윤덕희 | 작성시간 04.11.11 저도 이 글은 비하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정말 순수한 신앙심으로 참여한 십자군은 몇 명 안 되었습니다. 일반 병사 정도... 위의 고위기사들은 영토나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참여한 것이죠. 십자군은 이름처럼 종교적인 성전이 아니라 흔하디 흔한 정치적 전쟁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 작성자윤덕희 | 작성시간 04.11.11 한 예로 십자군 병사들이 무슬림 뿐만 아니라 동방에 거주하던 수많은 기독교인들까지 학살하고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한 것을 들 수 있겠지요. 십자군은 기독교 윤리로 보아도 절대 용납하기 힘든 죄악입니다. 참고로, 저는 대단히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 작성자싸갈탱이 | 작성시간 04.11.11 음..윤덕희님의 시각은 십자군은 정치적 전쟁이라는 것이군요.. 네.저는 고작 중세에 대한 책을 몇권 읽었을 뿐이여서 제말이 역사학자들도 논란을 거치는 이 십자군에 어떻다.어떻다.하기엔 뭐 하군요..ㅡ_ㅡ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