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nights of the Round Table 영국 아서왕전설에서 아서왕을 받들던 12명의 기사. 즉, 원탁에 앉을 자격이 있는 기사를 말하는데, 원탁은 앉는 위치에 따른 상하의 차별이 없는 평등성을 시사한다. 원탁에 관한 최초의 기술은 1154년경 와스가 프랑스어로 쓴 《브루트》에서였으며, 기사들의 우위다툼을 멈추게 하기 위해 아서왕이 고안해냈다고 한다. 원탁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아서의 아버지 유서 펜드레곤이 카메리아드왕 레오데그란스에게 주었고, 그의 딸 기네비아가 아서와 결혼하였을 때 100명의 기사와 더불어 축하선물로 보냈다고도 하며, 성배(聖杯)를 손에 든 아리마태의 요셉 최후의 만찬을 본딴 것이라고도 한다. 이 원탁에는 150명의 기사가 앉을 수 있다고 했으며, 여기에 앉을 수 있는 기사는 그리스도교적 사명에 불타는 뛰어난 기사로서, 잃어버린 성배를 찾는 것이 그들 지상의 목표였다. 원탁에는 <위험한 자리>라고 불리는 빈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무사히 앉을 수 있는 뛰어난 기사를 위해 비워져 있었다. 마침내 빈 자리에 앉게 된 기사는 갤러해드였다. 원탁은 잉글랜드 남부 윈체스터성에 보존되어 있는데, 13세기 무렵의 것으로 생각된다. 원탁의 기사는 여러 나라를 순례하며 성배를 찾고, 무용을 연마하여 약한 자 특히 여성을 도와주는, 중세 기사도를 구현하는 존재였다. 기사들의 무용담에 관해서는, 12∼15세기에 영국·독일·프랑스를 중심으로 많은 시와 산문이 쓰여졌다. 대표적인 기사는 용기와 정절의 상징적인 존재 란슬롯, 그의 아들이며 성배를 찾아낸 갤러해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 이졸데와의 비련으로 알려진 트리스탄,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성창(聖槍)을 보았다는 퍼***, 숙부인 아서왕을 배반하여 왕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모드레드 등이다. 원탁의 기사에 얽힌 이야기는 유럽 중세문학의 중요 부분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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