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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이야기

작성자싸갈탱이|작성시간04.12.31|조회수208 목록 댓글 0

 베네치아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의 도시” 베네치아, 한번쯤 가본 사람이라면 다시 가보고 싶고, 가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베네치아는 인구 약 30만의 도시로서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의 북동쪽, 아드리아해(海)의 맨 끝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118개의 섬과 이를 잇는 400여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이러한 섬들은 약 4km의 대수로인 카날 그란데 Canal Grande 의하여 크게 두 부분으로 양분되어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건물들 사이사이로 나 있는 작은 수로인 리오 Rio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수로들은 물을 잘 통과시키는 목적과 더불어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이곳에서 매우 중요한 교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속에 감추어진 찬란한 역사를 알아보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단지 물 속에 이루어진 베네치아 만이 갖는 독특함과 분위기, 그 건물들의 웅장함과 화려함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베네치아 인들의 삶을 보는 것 만으로도 그 의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1. 초기에서 800년대까지

현재의 베네치아 모습은 수세기를 걸친 끝에 거의 16세기 말이 되어서야 이루어진 것이다.

로마시대 말기에 이르러 야만족의 침입이 잦아지게 된다.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의 북동쪽에 살고 있던 베네토 지역의 사람들은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의 침입을 피하던 중에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다에 이루어진, 베네치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모래 언덕에 피신하게 된다. 야만족이 물러간 후에 피난민들은 다시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가곤 했으므로 이러한 모래 언덕들은 일시적인 피난처로 사용되었으나, 경우에 따라서 아예 이곳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습격 당하기에 매우 어려웠던 지역이었던 만큼 사람들이 생존하기에도 매우 힘든 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조그만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고, 초기에 이들은 라벤나 Ravenna에 거점을 두고 이탈리아를 지배한 동로마제국의 속국이 되어 지냈으며, 이 후에는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697년에 자체적인 선거를 통하여 ‘도제 Doge’라고 일컬어지는 총독을 선출함으로써 국가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고, 이는 1797년 나폴레옹의 지배에 놓일 때까지 1100년 동안 지속되는 공화국의 시초가 된다.

810년에 베네치아인들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대관한 프랑크족의 왕 카를로마뇨 Carlomagno의 아들인 페팽 Pipins이 비잔틴 제국에 소속되어 있는 베네치아를 지배하고자 침략하나 이를 무찌르게 되고, 1년 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로마뇨와 비잔틴 제국의 황제 사이에 조인된 조약에 의하여 카를로마뇨가 공식적으로 베네치아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함으로써 베네치아는 비잔틴 제국에 계속 속하게 된다. 이 조약은 이미 인정되고 있던 비잔틴 제국 영내에서의 교역의 자유와 함께, 베네치아 상인에게, 그리고 무역에 국가의 장래가 걸려있다고 내다보고 있던 베네치아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현재의 리도 Lido섬에 위치한 말라모코 Malamoco에서 여러 섬 중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지대가 높아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는데 유리한 리알토 Rialto지역으로 수도를 옮김에 따라, 리알토 지역은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구실을 하게 되었으며, 제 10대 파르테치파치오 Partecipazio 총독은 선두에 나서서 나라 전체를 이곳으로 옮김으로써 현재의 베네치아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2. 900년대에서 1500년대까지

잠시동안 평화를 누렸던 베네치아는 976년에 이르러 바다보다는 육지를 점령하는데 개인적인 관심이 많았던 칸디아노 P. Candiano 총독에 대항하는 강력한 민중들의 반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로 인하여 산 마르코 대성당을 비롯한 총독관저와 거의 나무로 지어진 300여 채의 집들이 전소되었으며, 새 총독으로 오르세올로 P. Orseolo 총독이 선출되었다.

7세기 말부터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던 베네치아는 9세기경에 이르러 이미 아드리아해(海)에서 활발한 동서 중개무역, 즉 선진적인 동(東)지중해 지역과 후진적인 서유럽세계를 잇는 무역을 독점함으로써 엄청난 부(富)를 축적하게 된다. 또한 1096년경부터 시작된 십자군전쟁으로 인하여 유럽에서 파견된 십자군들과 결탁하여 달마치아와 동(東)지중해의 여러 지역에 대한 상권과 더불어 영토, 거류지 등을 획득하였다. 특히 1201년에서 1204년에 이루어진 제 4차 십자군 원정 때, 엔리코 단돌로 Enrico Dandolo 총독은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른 십자군들과 더불어 콘스탄티노폴리를 공격하여 승리함으로써 그리고 동방 라틴 제국을 건설하는데 기여함으로써 동방무역을 더욱 확대하게 되었고 더욱 큰 세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1240년에는 이탈리아 내륙의 페라라 Ferrara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베네치아는 포 Po강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본토에 대해서도 상업적인 지배를 확실히 해 나가게 되었다.

이미 아드리아해(海)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베네치아는 당시에 지중해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던 제노바 Genova와 1257년 경부터 지중해 패권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의 격렬한 대립을 시작하게 된다. 14세기 중엽에서 15세기 초에 이르러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며, 총독이 머무는 두칼레 Ducale 궁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건축물들이 완성되었다.


3. 1600년대에서 현재까지

1500년대 말에 이르러 베네치아는 투르크족의 침입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하여 동부 지중해에서 베네치아의 세력이 점차 약해지게 되고 1600년대 초에는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이 베네치아에서도 유행하여 약 20만 정도이었던 인구가 거의 절반으로 줄게 되었다. 이러한 흑사병의 유행은 한편으로 살루테 성당 Chiesa della Salute 등의 유명한 건축물을 탄생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베네치아는 1797년에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점령되는 것을 시작으로 1866년에 통일 이탈리아에 속하기까지 반세기 이상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베네치아는 19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부인 Veneto 베네토 지역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항구를 이용한 물자 수송의 중심부로서 그리고 조선 공업 지역으로 발전되었다.

이탈리아는 국토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주위에 유리세공업으로 유명한 무라노 Murano섬과 휴양지로 유명한 리도 Lido 섬 등이 있는 베네치아는 산 마르코 광장의 산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적들이 즐비하다. 또한 베네치아는 예술적으로 문화적으로 풍부함을 자랑하는데 사계(四季)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 비발디 Vivaldi, 수 많은 여인들과의 이야기 유명한 카사노바 Casanova, 건축가인 팔라디오 Palladio, 화가 티치아노 Tiziano, 작가 Goldoni 등을 들 수 있다. 세계적 문호인 몽테스키, 괴테 그리고 멜빌은 각각 『베네치아 여행』, 『이탈리아 여행』, 『이탈리아 일기』에서 베네치아를 그리고 있으며, 1900년대 중반에는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하루도 같은 베네치아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매일 매일의 날씨에 따른 하늘 빛이 바닷물에 비쳐져 그 모습에 비친 베네치아는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이라.
 

출처-네이버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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