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중세기사 자료실

중세의 여성

작성자싸갈탱이|작성시간04.12.31|조회수728 목록 댓글 0

대게, 중세유럽에서의 여성의 직위나 역할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조선시대의 여성들을 생각하면서 중세유럽의 여성은 집안일만 허락받은 사회적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라는 관념이 널리 펴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중세여성들은 남자와 완전히 동등하지는 않아도, 가사를 제외하고도 중세사회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으며,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오히려 근세나 근대의 여성의 위치보다 훨씬 중요한 지위에 있었습니다.


각설하고, 중세유럽 여성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중세유럽인들은 여성을 어떻게 평가했나?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중세의 학자들은 여성을 선과 악의 양극단으로 나누어서 평가 했습니다.  어떤이들은 여성을 성모마리아 처럼 순수하고, 경건하며, 독실한 천사에 가까운 이미지로 표현했고, 다른 성직자들은 여성을 이브의 악함을 물려받아 남성을 유혹하는 음탕한 종족 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여성에 대한 평가가 중세학계의 주류를 이루다가, 기록된 최초의 여성전문작가 이자 페미니스트 였던 15세기 프랑스의 크리스틴 드 피산(Christine de Pisan) 이라는 여성은 "The Book of City of Ladies" 라는 책을 출간해 이러한 평가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집니다.  그녀는 여성은 성모마리아 적인 천사도 아니고 이브의 피를 이어받은 요부도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여성에게는 남성보다 우월한 부분이 많이 있으며, 여성들은 남편의 종이 아닌 파트너 로써 남편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당연히 남성학자들은 이에 대한 반론을 늘어놓지만, 여성으로써 병서까지 집필한 정도로 박식했던 크리스틴의 논리적인 반론에 의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또한 중세의 작가 중 가장 현실에 근접하게 중세여성에 대해 묘사해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귀족여성들의 활약
일반적으로 중세의 귀족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대게 12-3세가 되면 정략결혼의 재물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세 귀족여성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귀족여성이 남편에 종속된 몸이었지만, 그녀들은 남편의 부재시에는 영주대리로써, 영지의 대소사를 관할했습니다.  이 권한은 중세유럽에서 영주들이 잦은 전쟁으로 자주 영지를 비웠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남편이 있는 경우라도 일반적인 백작의 경우 백명이 넘는 궁정의 고용인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남편의 보조로써의 권한을 제하고 나서라도 귀족부인은 기본적으로 남편영지의 30퍼센트 정도에 관한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귀족여성들은 진정으로 남성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는데, 바로 영지의 상속인인 경우나, 남편은 사망하고, 그 자식들은 미성년일 경우 귀족여성은 영주의 직위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독립된 영주로써의 여성의 비율은 14세기 프랑스를 기준으로 대영주 중에서는 여성이 5퍼센트 이상, 일반영주는 10퍼센트 이상이 여성을 가주로써 등록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직위를 지니는 현대에 와서도 사회 최고위층 중에서는 여성이 비율이 적다는 것을 감안하면, 중세사회에서의 사회고위층 여성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이 여성 대영주 들은 국왕의 어전에서 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등, 남성 영주들과 동등한 권한을 누렸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귀족여성(혹은 왕족 여성)의 권력이 왕을 압도하는 경우도 있어서, 아퀴텐 영지의 상속자 이자 프랑스의 여왕, 영국 여왕 등을 거친 아퀴텐의 엘레노아 는 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 중에 하나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녀의 힘은 국민과 귀족에게 인기가 없었던 영국의 존왕(엘레노아의 아들)을 왕위에 올려놀말큼 강력했습니다.

이 밖에도 용감한 여성들은 십자군 전투에 참전하기도 하고, 직접 군대를 이끈 여성 영주들도 많이 눈에 띄는데, 이슬람 측의 기록에 따르면, 십자군 당시 유럽군과 이슬람군 둘 다 여성전사들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여왕은 5백명의 기사를 이끌고 직접 전투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3. 평민 여성들의 사회적 직위는?

평민여성들도 귀족여성정도로 사회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경제적으로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농부의 아내는 귀족저택의 세탁을 해주는 일을 해 짭잘한 수입을 올리거나, 맥주를 만들어 가정경제를 풍족하게 만든다던가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밖에도 농사일도 남성과 함께 했습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눈을 돌려보면, 도시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아니더라도, 독립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여성 도제는 남성의 4분의 3 정도의 임금이면 고용할 수 있어서 수공업에는 많은 여성도제가 있었고, 직물업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여성만이 종사한 직종이었습니다.  직물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평균적인 농가수입의 5-7배에 달하는 수입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도시에서도 완전한 남녀평등은 이루어지지 못해서 길드의 장인은 남성 혹은 여성의 경우에는 장인의 직계가족에게만 장인의 직위를 허가했습니다.

의학분야에 들어서면,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중세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전문의는 거의 대부분이 남성이었지만, 간호사나 의사지만 의과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치료사나 약사는 대부분이 여성이었습니다.  이중 치료사는 경험있는 여성치료사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보다 뛰어난 여성도 있을 정도여서 프랑스의 사라 라는 여성치료사는 남성의사들이 고치지 못한 병도 고쳐내는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들 여성 치료사들은 남성의사들에게 심각한 위협이되, 남성의사들은 유능한 여성치료사를 마녀란 누명을 씌워 제거하기도 합니다.


4.성직자

상대적으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할 기회가 제한되었던 중세여성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직업은 바로 성직자 였습니다.  성공적으로 대수녀원장의 직위에 오를 경우 거의 대영주급에 해당하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성이 유일하게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수녀원이어서, 학문에 관심이 있는 여성이 수녀의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중세 후기에는 수녀지망생이 아니어도 고등교육을 받게 해줌.)  물론, 남성성직자에 비해서 직위가 낮은 편이었지만, 여성성직자들은 중세사회에서 상당한 지위를 누렸습니다.
 


이렇게 사회각층에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여성은 르네상스를 지나 근세, 근대에 접어들면서 급격한 지위의 하락이 있게 됩니다.  마치 우리나라 중세인 고려시대에 여성의 직위가 상당한 수준이었다가, 조선시대 들어 여성의 직위가 하락한 것처럼 말이지요.  


출처- 네이버지식인일겁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