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노예제도에 대한 전문 연구가인 모시스 핀리에 따르면, (로마서가 기록되던 당시의 경우에 해당될 수 있는) 네로 치하 로마시의 행정장관인 루키우스 페다니우스 세쿤두스는 그의 시내 저택에서만 400명의 노예들을 소유하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로마시는 그 수도의 관리를 위해 '건축가들'을 포함하여 700여 명의 노예들을 상비 직원으로서 보유하였다.
[Demosthenes 27.9-11, Lysias 12.19, Tacitus, Annals 14.43, Frontinus 9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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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노예제의 발전- 스타르타쿠스의 난, 노예 인구와 종류, 사회적 법률적 위치
Boulanger Gustave Clarence Rudolphe The Slave Market 1882
타키투스가 얼마간 상세하게 전하고 있는 한 사건(Annals 14.42-5)은 당시 도시들의 혼란스런 사회적 상황에 의해서 야기된 갈등은 물론 그 모호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원후 61년에 로마시 행정장관인 페다니우스 세쿤두스(Pedanius Secundus)가 침실에서 그의 노예들 가운데 한 명에 의해서, 아마 개인적인 원한관계로 살해되었다. '조상전래의 관습(vetus mos)'에 따라서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같은 지붕 아래의' 모든 노예들이 그 벌로서 처형되어야만 했다. 그 수는 400명 이상을 헤아렸으며 반대여론이 비등하였다. 즉 평민들은 처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원로원은 공식적인 논의를 가졌다. 법률 면에서의 어떠한 변화도 반대하는 쪽이 과반수를 득표하자, 처형을 막기 위한 가두시위가 있었다. 결국 네로가 개입, 군대를 출동시켜 형의 집행이 이루어졌다. 정확한 법률적 상황에 관한 증거 면에서 난점들이 있다.
[M.I.Finley, Ancient Slavery and Modern Ideology, Chatto & Windus, 1980]
모시스 핀리가 소개한 바와 같이 노예들의 운명은 바로 주인의 손에 달려있는 단면을 볼 수 있다. 노예들의 경우, 여러 부류로 나뉘어 지지만, 주인의 뜻에는 절대 복종해야 하는 운명에 속해 있음을 블랙우드가 소개한 글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예들이 노를 젓는 갤리선(Galley)이나 채석장의 노예들의 상태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였으나 가정의 노예 생활은 상당히 편안할 수도 있었다. 어떤 노예들은 신임을 받아 중책을 맡는 위치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모든 노예들이 해야 했던 혹독한 노동이나 잔혹한 고통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의 뜻에는 절대 복종해야 했다."
[Andrew W. Blackwood, Jr., The Epistles to the Galatians(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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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VLL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07.24 핀리가 말하길...노예란 "공동체로부터 뿌리 뽑힌 사람" 이며 로마법 학자 레비 브륄도 "모든 노예는 외국인"이라 했습니다...제국의 노예수급 정책들을 고려해 보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임 경 또한 제국의 노예시장이 "외국인 전쟁포로들로 넘쳐났다"고 한 바 있는데요...이 모두가 고대 노예제의 약탈적.폭력적 특징들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지적들입니다. 가정에서 일하는 노예들이 가난한 도시 하층민들 보다 물질적으로 괜찮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잣집 노예라도 노예는 노예죠. 장시간의 노동과 변태적인 학대,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과 굴욕, 더러운 욕설과 무시무시한 매질 등이 그들과 함께 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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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로하스 작성시간 08.07.24 우리 카페의 스타이우스들의 실태를 조사해 보고서를 올려 주시길..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