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인 이야기]중세의 동물지와 중세 미술의 종말

작성자sulla|작성시간06.08.21|조회수1,496 목록 댓글 1
중세시대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 이론을 이콘(Icon) 같은 정교한 방식으로 표현했고, 신의 말씀을 의미하는 이미지를 수도원이나 교회를 통해서 전달했다. 그래서 상과 이미지로 가득 채워진 교회나 수도원은 그 자체가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성서였다. 이러한 신의 말씀은 자연을 관찰한 꽃이나 동물의 세부 묘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 매튜 패리스, <코끼리와 사육사>, 1225년경  ⓒ 

 
중세 미술가들은 성경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을 묘사하는 고대의 공식을 따랐고, 그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는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러나 중세 미술가들의 임무는 다른 방식으로 변해 갔다. 그들은 다른 기술을 사용해 자연을 스케치하고, 자연의 모든 것을 그의 그림에 담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스케치북 사용을 희구했고, 그 곳에 아름다운 동식물의 스케치를 그려서 모으기 시작했다.
 
미술사에서 13세기 중엽에 영국의 역사가 매튜 패리스가 그린 코끼리 그림은 중세의 새로운 경향을 잘 보여준다. 당시의 사람들은 전통적인 견본이 없을 때 직접 실물을 보고 그림을 그린 것 이외에, 사람이나 물건을 앞에 놓고 실물을 그린다는 사실 자체를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매튜 패리스의 그림은 다소 예외적인 경우였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프랑스의 왕 루이 9세가 1255년에 영국의 왕 헨리 3세에게 선물로 보낸 것으로, 그 선물 덕택에 영국에 코끼리가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 <성 게레온, 빌리마루스, 갈 및 성 우르술라와 일만 일천 명 처녀들의 순교>, 1137-47년  ⓒ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화가가 정확한 비례를 얻기 위해서 대단히 고심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코끼리가 다소 엉성하게 그려져 있으나, 당시 사람들도 비례라는 개념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코끼리의 다리 사이에 라틴어로 “여기에 그려진 사람의 크기를 보고 당신은 이 짐승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쓰인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중세의 사람들이 무지해서 비례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중시한 것만큼 그들에게 비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예외적인 경우로 시작한 매튜 패리스의 작품은 이후 통례적인 경우로 변했다.
 
중세인들이 새롭게 추구한 방식, 아름답고 섬세한 사물을 관찰한 후에 그 주변 세계를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은 당시의 “달력”에도 잘 나타나 있다. 먼저 독일의 수도원에서 12세기에 작성된 필사본 달력을 보면, 중세인들은 10월에 기념하게 될 성인들의 주요 축일들을 글뿐만 아니라 그림으로 표현했다. 맨 위와 아래에 있는 이상한 그림들은 두 순교자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 시기의 회화는 그림을 통해 글을 쓰는 형식을 취했다. 이후 미술이 자연의 세밀한 재현을 강조하게 되자, 이러한 잔인한 장면들은 소름끼치는 세부적 묘사로 발전하기도 했다.
 

▲ 랭부르 형제, <11월: 돼지에게 도토리를 주다>, 1410년경  ⓒ 
 
 
또한 중세의 카톨릭 신도들은 기도에 필요한 교본인 시도서(horae)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성모 마리아 숭배와 성인들을 위한 축제가 한창이던 때에 시도서는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 중요한 물품이었다. 이러한 시도서는 귀부인과 공주들의 혼수 예물로 제작되어 호화로운 미장본을 남겼는데, 그 중 1410년경에 만들어진 베리 공의 시도서는 그 첫 부분이 1년 12개월의 달력으로 꾸며졌다. 그 달력에 달마다 바뀌는 일, 즉 씨를 뿌리고 사냥을 하고 추수를 하는 등의 작업 광경들이 세부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달력은 당시 사람들이 자연을 그릴 때 생명력과 관찰력을 어느 정도 중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렇듯 중세의 미술가들은 성경 이야기를 가장 명료하고 인상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에서 자연의 일면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방식으로 점차 변했다. 그것은 15세기 중반에 북부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피사넬로가 그 당시에 유행했던 세밀화의 양식을 따라서 살아 있는 동물들을 그린 방식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일반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연을 묘사한 화가의 기교나 그의 그림 속에 얼마나 많은 양의 뛰어난 세부 묘사가 들어있는지 여부로 미술가를 평가하는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 안토니오 파사넬로, <원숭이 습작>, 1430년경  ⓒ 
 
 
중세에 세밀화 양식을 도입해 자연의 동식물을 표현한 것은 과학사 연구에도 중요한 <동물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동물지>의 기원은 고대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플리니우스의 <자연사>인데, 중세시대에 출간된 작자 미상의 <피지올로구스>는 기독교의 동물 사전적 역할을 했다. <파지올로구스>는 55가지의 동식물에 대한 상징적, 종교적 의미를 설명했고, 성서에 등장하는 자연에 관한 신학적 의미를 담았다. 이외에 중세의 <동물지>는 상상동물과 실제동물, 경험과학적 관찰과 도덕적인 내용들을 수록했다. 특히 12세기에 씌어진 <여우 이야기>등의 우화는 동물들의 삽화를 통해서 도덕적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중세의 <동물지>의 특징은 기독교적 상징이자 연금술적 완성태를 의미하는 “살라만더”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뱀 또는 용의 상징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살라만더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불꽃을 이기는 유일한 동물로서 화염 속에서 살고,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맹독이 있는 동물로서 독을 가지고 있는 모든 생물들 중에서 가장 힘이 세다. 살라만더의 두 가지 특징은 중세 시대에 출판된 <피지올로구스>의 판본에 기록되기도 했다.
 

▲ 살라만더, 미하엘 마이어 <달아나는 아탈란타> 중에서, 1614년  ⓒ 
 
 
살라만더가 불 속에서 산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했고, 중세 이후에 다양한 의미로 변했다. 파라켈수스의 따르면, 살라만더는 물질적인 불이 아니라 ‘자연의 영적인 불’안에 산다. 그래서 살라만더는 ‘불의 원소’를 관장하는 정령으로서 연금술적 완성태를 의미했다. 또한 살라만더는 불 속에서 견딜 수 있고, 타고난 힘으로 불길을 죽인다는 점에서 인내와 정숙함의 상징으로서 기독교적 성스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중세의 <동물지>는 과학과 철학, 현실과 상상이 혼재된 기술방식, 자연과학적이고 경험적인 관찰과 상상 속의 행위들, 도덕적이자 교훈적 내용들이 혼재된 서술 형태를 보였다.
 
중세 미술가들은 성경 속 이야기를 그대로 모사하던 수준을 벗어나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자연에서 관찰한 꽃이나 동물들을 세부적으로 묘사했고, 그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가들이 시도했던 인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조각과 그림을 제작하려 했다. 이렇듯 중세 미술가들의 관심이 변하면서, 중세 미술은 종말을 고하기 시작했다.
 
 
공하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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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ull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6.08.21 관련 책으로 최정은씨의 <<동물. 괴물지. 엠블럼, 중세의 지식과 상징>>을 같이 읽어 보면 좋습니다. 형상언어를 통해 중세의 의식, 상징, 은유, 환상, 수사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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