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
- 텍스트 해석의 문제와 사회상의 반영에 대하여 -
이동철, 박상욱
1. 텍스트 해석 다양성의 문제, 그리고 그 가능성
헨젤과 그레텔(Haensel und Gretel)은 그림 동화집의 15번째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그림형제가 헤센에서 채집한 구전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으로 사실상 얼마만큼의 수정과 변형이 있었는 지는 알 수없다. 특히 동화(Maerchen)의 특성상,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교육적인 의도와 낭만주의적 민족성 이데올로기가 가미되어 있음을 전제로 해야한다. 분명 재구성 당시 어린이에게 부적당한 표현(색정적이거나 상스러운 부분, 사회 비판적 부분등)을 삭제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고 의식적으로 기독교적 윤리의 바탕하에 작품들을 다듬었음에 틀림없다.
헨젤과 그레텔의 원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신화와 비슷하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원형적 텍스트를 편집자(그림형제)의 의도에 따라 문서화된 작품으로 대하는 우리로서는 상당부분 추리 비슷한 해석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이고, 심리주의 비평과 맞물려 '다시 읽기'내지는 '뒤집어 읽기'의 작업이 필요하게 된다. 이 부분과 관련해 현대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마치'무삭제된 그림동화'같은 책들이 시중에 나와 재해석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다소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경향에도 불구하고 동화가 가지는 '새롭게 읽기'의 가능성을 짚어주고 있다.
먼저 본 교재 Griesbach, Rosmarie의 "Deutsche Maerchen und Sagen, fuer Auslaender bearbeitet"중 Haensel und Gretel 에서 보면 몇개의 모티브들이 생략되어 있는 것을 볼 수있는데, 흰새, 반짝이는 자갈, 오리같은 건 일단 차치하더라도 계모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뒤집어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일단 헨젤과 그레텔의 주된 모티브를 살펴보자.
a. 집안의 가난탓에 아이들이 숲속으로 버려진다.(계모에 의해)
b. 첫번째는 가는 길에 자갈을 뿌려놓음으로써 집으로 돌아오지만, 두번째는 실패한다.
c. (흰새와 반짝이는 자갈 덕분에) 아이들은 과자로 만든 집에 다다른다.
d. 마녀가 헨젤을 잡아먹으려 한다. 헨젤은 살찐 손가락을 기대하는 마녀에게 뼈다귀와 나뭇가지를 내밀어 살아 남는다.
e. 그레텔이 기지를 발휘해 마녀를 아궁이에 집어넣고 죽인다.
f. 마녀집에 있는 보석을 챙겨 나온다. 강가에서 오리가 도와준다.
g. 집에 돌아와보니 계모는 이미 죽어 있었고 그 세명은 행복하게 살아간다.
작품내에서 현대적인,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용인한다면 '시미즈 마사시( 그림동화 X파일>의 저자)'가 보여주는 시선은 대단히 흥미롭다. 헨젤과 그레텔에서는 유아살해, 유기와 카니발리즘 (식인행위)가 저변에 깔려있고(a, d부분에서 강조), 계모와 마녀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비롯하여(e, g) 헨젤의 살찐 손가락은 성숙한 남성의 성기(d)로, 그레텔이 일하는 아궁이는 여성의 그것으로 상징화하여(e) 무척 에로틱하게 연출되고 있다고 밝힌다.
또한 '이링 페처(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의 저자)'는 이 동화를 하나의 범죄이야기로 보고 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노인을 살해하고 집안을 강탈한 것을 가장하기 위해 꾸민 거짓된 작업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e, f). 동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무시하면서까지 개연성을 들먹이는 부분은 좀더 생각해 볼일이지만, 만약 마녀라고 단정짓기 힘든, 외롭게 살고 있는 한 노파를 살해했다는 사건에 대한 은폐와 은닉을 본 텍스트의 비의(秘義)로 친다면 그가 말했듯 '독일의 파시즘적 박해'와 맥을 같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심리주의적 비평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의 가능성을 진단한 것뿐이기 때문에, 이와같이 동화에 현실성을 주입시키데 있어서는 오류를 전제하고 출발하여야한다. 이를 감수한다면 현대의 독자에게 있어서 '인식 지평의 확장' 차원에서 동화의 세계는 넓어진다. 그림동화의 제작 동기가 어떻든 간에 이 일련의 '뒤집어 읽기' 작업은 현대인에게 있어 당시의 숨겨져 있던 의미 찾기로서 그 재미가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2. 사회상의 반영
2.1 봉건제 속에서의 생활상.
그림형제가 옛 이야기를 수집하는 과정, 즉 전승되는 설화와 민담을 통해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 이야기 Kinder- und Hausmaerchen>를 출간하는 구체적인 시기는 19세기 초이지만 그 작품들의 자료가 되는 민담 설화 민요와 같은 전승되는 옛이야기들의 배경은 중세시기 내지 그 이전으로 거슬러간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그려지는 사회의 모습 또한 중세이후 그리고 근세 초의 농민들의 생활 상이 그 배경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담과 같은 옛이야기들을 탄생시키고 전승해 갔던 근세초 농민들의 생활에 주목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본 작업에서는 민담에 대해 문화사적으로 접근한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과 알렉산드르 비동의 이론과 견해를 참조하여 보고자 한다.
단턴에 따르면 근세 초 프랑스의 농민들은 전쟁과 흑사병, 기근, 그리고 농민 내지 농노들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한 영주제도, 원시작인 농사기술, 가혹한 세금,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계모와 고아의 세계이며 비정하고 끝없는 노동의 세계, 거친 동시에 제어된 잔인한 감정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가족 전체가 침대 하나나 두 개에 끼여 들어가 추위를 막기 위해 가축들에 둘러싸인 채 잠을 잤다. 어린이들이 부모의 성행위를 구경하게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 당시의 어느 누구도 어린이가 순진한 피조물이라고 생각하거나 어린 시절이 특별한 양식의 옷이나 태도에 의해 사춘기, 청년기, 성인과 구분되는 사람의 단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걸을 수 있을 때부터 부모의 옆에서 일을 했고, 10대에 도달하자마자 농가의 일손이나 하인, 또는 도제로서 성인의 노동력에 합세했다. 이런 사정은 독일도 다를 바 없었다.
대부분의 농민들에게 마을의 생활은 생존 경쟁이었고, 생존이란 빈자와 극빈자를 나누는 경계선(세금, 십일조, 영주에게 바칠 공물 등) 위에 있다는 것을 뜻했다. 18세기 경 유럽 사람들의 45% 정도는 10세가 되기전에 죽었다. 죽음때문에 결혼은 평균적으로 15년 정도 지속되었다. 과부의 재혼율은 열명 중 하나 꼴 이었으니 계부보다는 계모가 많았다. 프랑스 판 헨젤과 그레텔 엄지 소년>에서 보면 그와 같은 상황을 여실히 알수있다.
"옛날에 나무꾼과 그 부인이 살았는데 그들에게는 일곱 명의 자식이 있었고 모두 아들이었다..... 그들은 무척 가난했고 일곱명의 자식들은 하나도 자신을 돌볼 만큼 크지 않아서 큰 골칫거리였다.....흉년이 왔고 기근이 심해서 그 불쌍한부부는 아이들을 내다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이러한 사실적 어조는 유아 살해 및 유기가 근세 초의 프랑스에서 얼마나 통상적인 일이었는 지를 암시한다. 페로는 그의 이야기를 1690년 중반, 17세기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위기가 절정에 달했다고 서술하였다. 엄지 소년>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헨젤과 그레텔에서의 부모와 계모는 17세기와 18세기에 수 차례 농민을 압도하였던 문제, 즉 페스트의 창궐, 기근 등으로 인한 인류의 재앙기에 살아남는다는 문제에 대처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알렉상드르 비동을 위시한 중세연구자들은 의견을 달리한다. 단턴이나 필립 아리에스는 중세당시 아동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중세의 부모들은 자녀에 대해 교육적인 배려를 하지 않았고 애정도 느끼지 않았다고 했으나,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미 중세에도 아동기는 명확한 용어들과 독특한 자질들로 잘 정의된 기간이었고, 부모의 사랑을 보여 주는 흔적들도 많았다고 한다. 중세 남녀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으면 둘 모 두 아이들을 자상하게 돌보았다는 기록도 있었다.
특히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와 관련해서 유아 살해나 식인행위는 중세 시기에 만연했던 일은 아닌듯하다. 우리가 흔히 판단하듯 중세의 관행을 과장하지는 말아야 할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 덕분에 그런 유형의 살인은 크게 제한되었다. 어느 나라나 시대를 불문하고 부모의 생존마저 힘들어 지는 경우 갓난아이들의 생명은 보장할 수없었다. 당시 공의회인들은 함께 자는 아이들을 깔아 죽인 부모들이나, 젖먹이를 불 가까이에 두어 태워 죽게 한 어미들을 정죄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들은 대부분 부주의의 결과일뿐, 고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앞서 말했듯, 비록 중세에 영아 살해가 존재했다고는 해도, 그것은 결코 대대적인 현상은 아니었으며, 대개의 경우 적빈이나 간통의 발각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많은 경우 가난한 여인들은 아이들을 죽이기보다는 버리는 편을 택했으니, 키울 수 없는 아이들과는 그냥 헤어지는 편이 좀더 그리스도 교도다운 해결책이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극빈자들의 아동 유기를 허용했고, 다른 방도가 없는 부모들에게는 아이를 공공 장소, 특히 교회 문 앞에 가져다 두도록 권장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들은 별로 많지 않았고, 대다수의 가정들은 아이를 원했기 때문에 그런 대로 균형이 유지되었다.
2.2 가부장제하에서 신음하는 여성들, 그리고 마녀 탄생의 과정에 대하여
그림 형제의 민담에 그려지는 여성상은 아름답고 여리며 수동적인 천사형과 사악하며 적극적인 악녀형으로 양극화되는 경향이 짙은데, 헨젤과 그레텔>의 경우,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한 모습이 허용되는 아버지와는 달리, 계모와 마녀는 후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중세에서 근세 초, 시민사회까지 지속되어온 가부장적 질서의 가족관에 기인하는 데, 더 엄밀히 들어가면 기독교 윤리아래 비하의 대상이 되어온 여성상(성경에서는 타락과 유혹을 이브, 즉 여성으로 본다)이 그 근간을 이루는 탓이다. 여성 비하의 극대화된 형태로 마녀 재판과 마녀 사냥이 있었다. 다음 글은 참고의 목적으로 마녀의 탄생에 관해 좀더 상세히 조사한 부분이다.
마녀가 중세에 와서 생겨난 개념은 아니다. 이미 기독교가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유럽에서는 마법의 존재를 믿었으며, 기원후 1,2세기 로마인의 저술에서도 밤하늘을 날아다니고, 기성을 지르고, 불쌍하게 걸려든 인간들의 피와 살을 즐겨먹는 괴물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스트리지(stryge, strigae - 밤의 마녀들)라고 불린 이 괴물은 올빼미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어떤 여자들이 변신한 것으로 되었다. 황금나귀>같은 프랑스 민담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테살리의 부인 팡필르는 밤이 되면 새처럼 변하곤 하였다. 새처럼 되기 위해 그녀는 월계수와 회양을 물에 녹여 마시고 이 액체를 피부에 발랐다. 그러면 피부는 깃털로 뒤덮이고 코는 부리가 되며 손발톱이 새의 발톱처럼 된다. 그렇게 변하면 그녀는 올빼미 같은 소리를 내면서 정부(情夫)사냥을 나간다. 그녀는 굉장한 색녀가 되어 거절하는 남자는 모두 심하게 혼내주었다."
낮에는 보통 여자였다가 밤이 되면 사람 잡는 음탕한 새가 되는 이 마녀가 사실은 상상속
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당시 지식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13세기까지 지식인들은 마녀들의
존재를 믿지않았지만, 민중 사이에서는 이것에 대한 믿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211년경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오토 4세의 소일거리용으로 책을 한 권 저술한 영국인 제르베는 밤에
남녀가 먼 거리를 날아다닌다는 생각이 당시 사람들 사이에 만연했다고 말한다.
특히나 여자들이 밤에 날아다니는 것은 다른 민간 신앙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에서 주목해
야할 부분은 중세인들이 밤에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가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
인 여왕에 복속되어 있는 여자들이 있다고 믿는 일반적인 견해이다. 밤에 날아 다니면서 여
자들을 지휘하는 여왕을 다이아나(Daiana) 또는 헤로디아(Herodias), 때로는 홀다(Holda)라
고 불렸다.
사실 중세 초기까지 다이아나 숭배사상이 남아있었다. 다이아나는 달의 여신이자 밤의 애
인으로서, 몇몇 특징으로 보면 마술의 여신 헤카테와 비슷하다. 헤카테는 밤이 되면 편히 잠
들지 못하는 영혼들을 거느리고 말을 타며 공중을 날아다니곤 한 것으로 알려진 존재였다.
한편 홀다는 19세기 독일의 민속문화에서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그녀는 보통 공중에서
생활하지만 농작에 관심이 많아 땅위에서 거처하기도 한다. 홀다가 야행을 할 때는 죽은 사
람들의 영혼이 동행하였다고 한다. 이런 '밤의 여인들', 즉 선행을 하고 인간을 보호해주는
여자 정령들을 믿는 유구한 민속 신앙으로 농민들은 이들에게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곤 했다.
위에서 언급한 세 명의 여인들은 다양한 형태로 알려진 초자연적 지도자를 가지고 있던 조
직화된 집단이었다. 이런 까닭에 중세 여자들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을 가져다 줄 이 행렬에
끼고 싶어했었다. 이와같은 미신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도 있었다. 이렇듯 중세에는 이 두
종류의 민간신앙이 공존했었고, 13세기 성직자 엘리트 집단역시도 이를 하나의 망상으로 치
부하는 등 신앙상의 큰 엄격함은 두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흘러 14,5세기 무렵엔 당시까지의 민담은 이 성직자들에 의해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제식 마술이며 전적으로 신화적으로 마지막 요소인 마왕 숭배와 교묘하게
결합되면서 마녀의 정형을 창출하기에 이른다. 일단 마왕 숭배적 행각들의 정형이 선전 작
업을 통해 확립되자, 그 정형은 언제나 마녀 탄압의 근거로 이용될 수 있었다.
즉 중세말이 되면서, 사람들이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두 가지 환상을 하나로 묶어 마녀의
무리들이 밤에 집회에 가서 사탄을 경배하고 사탄과 성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성직자 무리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마녀'와 '밤의 부인(여왕)'을 구별하지 않고 어느 것이나 똑같이 지탄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으로써 마녀 집회는 사람을 속이는 꿈이나 환상으로서
무시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없애야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기독교 선전가들은 옛날 얘기를 짜 맞추어서, 마왕과 특히 인기 있는 성행위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형태의 신앙과 행위를 꾸며내고, 이로써 금욕적이고 광신적인 기독교 생활자인들의 마음 속에 이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도록 했다.
그러나 또한 여기에서 다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의 견해도 있다. 마법이나 마왕숭배의 마녀
들이 실제로는 민중 문화속에 스며 있었던것이 아니라 성직자로서의 지식인 집단의 흥분된
상상력과 편집증적 망상 속에서만 존재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사회를 위협하는, 악마적 행위
의 증거로서밖에 해석할 수 없는 끊임없는 이단의 발생으로 식자층은 나름대로의 의식을 일반대중에게 주입했다. 결국 이는 16,7세기 마녀 사냥으로 끔찍한 결말을 불러일으켰다.
마녀 사냥, 내지 탄압에 대한 연구에서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은 상당부분 섹스와 관련되어
있다. 중세에 새롭게 탄생된 마녀는 마왕과의 의례적인 성교를 했고, 이러한 성적향연이 마법 숭배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광신자들은 마법과 성적 방탕을 동일시하면서, 죄악으로 느끼게끔 하였다. 성적 활동에 대한 기독교 사회의 엄숙한 가르침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거부하는 일련의 모습들은 당연히 지탄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특정 여성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적대감과도 결부되었다. 당시 불만 혹은 거
부의 대상이 되던 소수의 여성들 - 노파, 외따로 사는 여자 평판이 나쁜 여자, 신경질 적인
여자, 미친 여자, 심술궂은 여자, 음탕한 여자, 민간 요법을 쓰는 돌팔이 산파등 - 에게 마법이나 마녀의 혐의가 씌워진 것이다. 중세 말 사탄의 숭배자로 배척받던 여성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탄압과 고문의 형장에서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자료*
중세의 소외집단>, 느티나무, 제프리 리처즈, 1999
중세의 밤>, 이학사, 장 베르동, 1999
서양중세 문명>, 쟈크르 고프/유희수. 현대의 지성, 1992
그림형제>, 이성훈,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4
중세의 가을>, 호이징가/최홍숙, 1988
중세에 살기>, 최애리 동문선, 1998
고양이 학살 The Great Cat Massacre>, 로버트 단턴, 문학과 지성사, 1996
그림동화 X파일>, 시미즈 마사시 ,좋은책 만들기, 1999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이링 페처, 철학과 현실사, 1997
그림 형제 동화를 통해 본 동화의 전래와 그 사회적 의미>., 김경연
- 텍스트 해석의 문제와 사회상의 반영에 대하여 -
이동철, 박상욱
1. 텍스트 해석 다양성의 문제, 그리고 그 가능성
헨젤과 그레텔(Haensel und Gretel)은 그림 동화집의 15번째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그림형제가 헤센에서 채집한 구전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으로 사실상 얼마만큼의 수정과 변형이 있었는 지는 알 수없다. 특히 동화(Maerchen)의 특성상,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교육적인 의도와 낭만주의적 민족성 이데올로기가 가미되어 있음을 전제로 해야한다. 분명 재구성 당시 어린이에게 부적당한 표현(색정적이거나 상스러운 부분, 사회 비판적 부분등)을 삭제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고 의식적으로 기독교적 윤리의 바탕하에 작품들을 다듬었음에 틀림없다.
헨젤과 그레텔의 원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신화와 비슷하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원형적 텍스트를 편집자(그림형제)의 의도에 따라 문서화된 작품으로 대하는 우리로서는 상당부분 추리 비슷한 해석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이고, 심리주의 비평과 맞물려 '다시 읽기'내지는 '뒤집어 읽기'의 작업이 필요하게 된다. 이 부분과 관련해 현대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마치'무삭제된 그림동화'같은 책들이 시중에 나와 재해석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다소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경향에도 불구하고 동화가 가지는 '새롭게 읽기'의 가능성을 짚어주고 있다.
먼저 본 교재 Griesbach, Rosmarie의 "Deutsche Maerchen und Sagen, fuer Auslaender bearbeitet"중 Haensel und Gretel 에서 보면 몇개의 모티브들이 생략되어 있는 것을 볼 수있는데, 흰새, 반짝이는 자갈, 오리같은 건 일단 차치하더라도 계모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뒤집어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일단 헨젤과 그레텔의 주된 모티브를 살펴보자.
a. 집안의 가난탓에 아이들이 숲속으로 버려진다.(계모에 의해)
b. 첫번째는 가는 길에 자갈을 뿌려놓음으로써 집으로 돌아오지만, 두번째는 실패한다.
c. (흰새와 반짝이는 자갈 덕분에) 아이들은 과자로 만든 집에 다다른다.
d. 마녀가 헨젤을 잡아먹으려 한다. 헨젤은 살찐 손가락을 기대하는 마녀에게 뼈다귀와 나뭇가지를 내밀어 살아 남는다.
e. 그레텔이 기지를 발휘해 마녀를 아궁이에 집어넣고 죽인다.
f. 마녀집에 있는 보석을 챙겨 나온다. 강가에서 오리가 도와준다.
g. 집에 돌아와보니 계모는 이미 죽어 있었고 그 세명은 행복하게 살아간다.
작품내에서 현대적인,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용인한다면 '시미즈 마사시( 그림동화 X파일>의 저자)'가 보여주는 시선은 대단히 흥미롭다. 헨젤과 그레텔에서는 유아살해, 유기와 카니발리즘 (식인행위)가 저변에 깔려있고(a, d부분에서 강조), 계모와 마녀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비롯하여(e, g) 헨젤의 살찐 손가락은 성숙한 남성의 성기(d)로, 그레텔이 일하는 아궁이는 여성의 그것으로 상징화하여(e) 무척 에로틱하게 연출되고 있다고 밝힌다.
또한 '이링 페처(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의 저자)'는 이 동화를 하나의 범죄이야기로 보고 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노인을 살해하고 집안을 강탈한 것을 가장하기 위해 꾸민 거짓된 작업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e, f). 동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무시하면서까지 개연성을 들먹이는 부분은 좀더 생각해 볼일이지만, 만약 마녀라고 단정짓기 힘든, 외롭게 살고 있는 한 노파를 살해했다는 사건에 대한 은폐와 은닉을 본 텍스트의 비의(秘義)로 친다면 그가 말했듯 '독일의 파시즘적 박해'와 맥을 같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심리주의적 비평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의 가능성을 진단한 것뿐이기 때문에, 이와같이 동화에 현실성을 주입시키데 있어서는 오류를 전제하고 출발하여야한다. 이를 감수한다면 현대의 독자에게 있어서 '인식 지평의 확장' 차원에서 동화의 세계는 넓어진다. 그림동화의 제작 동기가 어떻든 간에 이 일련의 '뒤집어 읽기' 작업은 현대인에게 있어 당시의 숨겨져 있던 의미 찾기로서 그 재미가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2. 사회상의 반영
2.1 봉건제 속에서의 생활상.
그림형제가 옛 이야기를 수집하는 과정, 즉 전승되는 설화와 민담을 통해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 이야기 Kinder- und Hausmaerchen>를 출간하는 구체적인 시기는 19세기 초이지만 그 작품들의 자료가 되는 민담 설화 민요와 같은 전승되는 옛이야기들의 배경은 중세시기 내지 그 이전으로 거슬러간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그려지는 사회의 모습 또한 중세이후 그리고 근세 초의 농민들의 생활 상이 그 배경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담과 같은 옛이야기들을 탄생시키고 전승해 갔던 근세초 농민들의 생활에 주목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본 작업에서는 민담에 대해 문화사적으로 접근한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과 알렉산드르 비동의 이론과 견해를 참조하여 보고자 한다.
단턴에 따르면 근세 초 프랑스의 농민들은 전쟁과 흑사병, 기근, 그리고 농민 내지 농노들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한 영주제도, 원시작인 농사기술, 가혹한 세금,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계모와 고아의 세계이며 비정하고 끝없는 노동의 세계, 거친 동시에 제어된 잔인한 감정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가족 전체가 침대 하나나 두 개에 끼여 들어가 추위를 막기 위해 가축들에 둘러싸인 채 잠을 잤다. 어린이들이 부모의 성행위를 구경하게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 당시의 어느 누구도 어린이가 순진한 피조물이라고 생각하거나 어린 시절이 특별한 양식의 옷이나 태도에 의해 사춘기, 청년기, 성인과 구분되는 사람의 단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걸을 수 있을 때부터 부모의 옆에서 일을 했고, 10대에 도달하자마자 농가의 일손이나 하인, 또는 도제로서 성인의 노동력에 합세했다. 이런 사정은 독일도 다를 바 없었다.
대부분의 농민들에게 마을의 생활은 생존 경쟁이었고, 생존이란 빈자와 극빈자를 나누는 경계선(세금, 십일조, 영주에게 바칠 공물 등) 위에 있다는 것을 뜻했다. 18세기 경 유럽 사람들의 45% 정도는 10세가 되기전에 죽었다. 죽음때문에 결혼은 평균적으로 15년 정도 지속되었다. 과부의 재혼율은 열명 중 하나 꼴 이었으니 계부보다는 계모가 많았다. 프랑스 판 헨젤과 그레텔 엄지 소년>에서 보면 그와 같은 상황을 여실히 알수있다.
"옛날에 나무꾼과 그 부인이 살았는데 그들에게는 일곱 명의 자식이 있었고 모두 아들이었다..... 그들은 무척 가난했고 일곱명의 자식들은 하나도 자신을 돌볼 만큼 크지 않아서 큰 골칫거리였다.....흉년이 왔고 기근이 심해서 그 불쌍한부부는 아이들을 내다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이러한 사실적 어조는 유아 살해 및 유기가 근세 초의 프랑스에서 얼마나 통상적인 일이었는 지를 암시한다. 페로는 그의 이야기를 1690년 중반, 17세기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위기가 절정에 달했다고 서술하였다. 엄지 소년>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헨젤과 그레텔에서의 부모와 계모는 17세기와 18세기에 수 차례 농민을 압도하였던 문제, 즉 페스트의 창궐, 기근 등으로 인한 인류의 재앙기에 살아남는다는 문제에 대처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알렉상드르 비동을 위시한 중세연구자들은 의견을 달리한다. 단턴이나 필립 아리에스는 중세당시 아동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중세의 부모들은 자녀에 대해 교육적인 배려를 하지 않았고 애정도 느끼지 않았다고 했으나,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미 중세에도 아동기는 명확한 용어들과 독특한 자질들로 잘 정의된 기간이었고, 부모의 사랑을 보여 주는 흔적들도 많았다고 한다. 중세 남녀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으면 둘 모 두 아이들을 자상하게 돌보았다는 기록도 있었다.
특히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와 관련해서 유아 살해나 식인행위는 중세 시기에 만연했던 일은 아닌듯하다. 우리가 흔히 판단하듯 중세의 관행을 과장하지는 말아야 할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 덕분에 그런 유형의 살인은 크게 제한되었다. 어느 나라나 시대를 불문하고 부모의 생존마저 힘들어 지는 경우 갓난아이들의 생명은 보장할 수없었다. 당시 공의회인들은 함께 자는 아이들을 깔아 죽인 부모들이나, 젖먹이를 불 가까이에 두어 태워 죽게 한 어미들을 정죄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들은 대부분 부주의의 결과일뿐, 고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앞서 말했듯, 비록 중세에 영아 살해가 존재했다고는 해도, 그것은 결코 대대적인 현상은 아니었으며, 대개의 경우 적빈이나 간통의 발각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많은 경우 가난한 여인들은 아이들을 죽이기보다는 버리는 편을 택했으니, 키울 수 없는 아이들과는 그냥 헤어지는 편이 좀더 그리스도 교도다운 해결책이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극빈자들의 아동 유기를 허용했고, 다른 방도가 없는 부모들에게는 아이를 공공 장소, 특히 교회 문 앞에 가져다 두도록 권장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들은 별로 많지 않았고, 대다수의 가정들은 아이를 원했기 때문에 그런 대로 균형이 유지되었다.
2.2 가부장제하에서 신음하는 여성들, 그리고 마녀 탄생의 과정에 대하여
그림 형제의 민담에 그려지는 여성상은 아름답고 여리며 수동적인 천사형과 사악하며 적극적인 악녀형으로 양극화되는 경향이 짙은데, 헨젤과 그레텔>의 경우,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한 모습이 허용되는 아버지와는 달리, 계모와 마녀는 후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중세에서 근세 초, 시민사회까지 지속되어온 가부장적 질서의 가족관에 기인하는 데, 더 엄밀히 들어가면 기독교 윤리아래 비하의 대상이 되어온 여성상(성경에서는 타락과 유혹을 이브, 즉 여성으로 본다)이 그 근간을 이루는 탓이다. 여성 비하의 극대화된 형태로 마녀 재판과 마녀 사냥이 있었다. 다음 글은 참고의 목적으로 마녀의 탄생에 관해 좀더 상세히 조사한 부분이다.
마녀가 중세에 와서 생겨난 개념은 아니다. 이미 기독교가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유럽에서는 마법의 존재를 믿었으며, 기원후 1,2세기 로마인의 저술에서도 밤하늘을 날아다니고, 기성을 지르고, 불쌍하게 걸려든 인간들의 피와 살을 즐겨먹는 괴물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스트리지(stryge, strigae - 밤의 마녀들)라고 불린 이 괴물은 올빼미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어떤 여자들이 변신한 것으로 되었다. 황금나귀>같은 프랑스 민담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테살리의 부인 팡필르는 밤이 되면 새처럼 변하곤 하였다. 새처럼 되기 위해 그녀는 월계수와 회양을 물에 녹여 마시고 이 액체를 피부에 발랐다. 그러면 피부는 깃털로 뒤덮이고 코는 부리가 되며 손발톱이 새의 발톱처럼 된다. 그렇게 변하면 그녀는 올빼미 같은 소리를 내면서 정부(情夫)사냥을 나간다. 그녀는 굉장한 색녀가 되어 거절하는 남자는 모두 심하게 혼내주었다."
낮에는 보통 여자였다가 밤이 되면 사람 잡는 음탕한 새가 되는 이 마녀가 사실은 상상속
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당시 지식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13세기까지 지식인들은 마녀들의
존재를 믿지않았지만, 민중 사이에서는 이것에 대한 믿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211년경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오토 4세의 소일거리용으로 책을 한 권 저술한 영국인 제르베는 밤에
남녀가 먼 거리를 날아다닌다는 생각이 당시 사람들 사이에 만연했다고 말한다.
특히나 여자들이 밤에 날아다니는 것은 다른 민간 신앙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에서 주목해
야할 부분은 중세인들이 밤에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가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
인 여왕에 복속되어 있는 여자들이 있다고 믿는 일반적인 견해이다. 밤에 날아 다니면서 여
자들을 지휘하는 여왕을 다이아나(Daiana) 또는 헤로디아(Herodias), 때로는 홀다(Holda)라
고 불렸다.
사실 중세 초기까지 다이아나 숭배사상이 남아있었다. 다이아나는 달의 여신이자 밤의 애
인으로서, 몇몇 특징으로 보면 마술의 여신 헤카테와 비슷하다. 헤카테는 밤이 되면 편히 잠
들지 못하는 영혼들을 거느리고 말을 타며 공중을 날아다니곤 한 것으로 알려진 존재였다.
한편 홀다는 19세기 독일의 민속문화에서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그녀는 보통 공중에서
생활하지만 농작에 관심이 많아 땅위에서 거처하기도 한다. 홀다가 야행을 할 때는 죽은 사
람들의 영혼이 동행하였다고 한다. 이런 '밤의 여인들', 즉 선행을 하고 인간을 보호해주는
여자 정령들을 믿는 유구한 민속 신앙으로 농민들은 이들에게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곤 했다.
위에서 언급한 세 명의 여인들은 다양한 형태로 알려진 초자연적 지도자를 가지고 있던 조
직화된 집단이었다. 이런 까닭에 중세 여자들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을 가져다 줄 이 행렬에
끼고 싶어했었다. 이와같은 미신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도 있었다. 이렇듯 중세에는 이 두
종류의 민간신앙이 공존했었고, 13세기 성직자 엘리트 집단역시도 이를 하나의 망상으로 치
부하는 등 신앙상의 큰 엄격함은 두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흘러 14,5세기 무렵엔 당시까지의 민담은 이 성직자들에 의해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제식 마술이며 전적으로 신화적으로 마지막 요소인 마왕 숭배와 교묘하게
결합되면서 마녀의 정형을 창출하기에 이른다. 일단 마왕 숭배적 행각들의 정형이 선전 작
업을 통해 확립되자, 그 정형은 언제나 마녀 탄압의 근거로 이용될 수 있었다.
즉 중세말이 되면서, 사람들이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두 가지 환상을 하나로 묶어 마녀의
무리들이 밤에 집회에 가서 사탄을 경배하고 사탄과 성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성직자 무리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마녀'와 '밤의 부인(여왕)'을 구별하지 않고 어느 것이나 똑같이 지탄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으로써 마녀 집회는 사람을 속이는 꿈이나 환상으로서
무시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없애야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기독교 선전가들은 옛날 얘기를 짜 맞추어서, 마왕과 특히 인기 있는 성행위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형태의 신앙과 행위를 꾸며내고, 이로써 금욕적이고 광신적인 기독교 생활자인들의 마음 속에 이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도록 했다.
그러나 또한 여기에서 다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의 견해도 있다. 마법이나 마왕숭배의 마녀
들이 실제로는 민중 문화속에 스며 있었던것이 아니라 성직자로서의 지식인 집단의 흥분된
상상력과 편집증적 망상 속에서만 존재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사회를 위협하는, 악마적 행위
의 증거로서밖에 해석할 수 없는 끊임없는 이단의 발생으로 식자층은 나름대로의 의식을 일반대중에게 주입했다. 결국 이는 16,7세기 마녀 사냥으로 끔찍한 결말을 불러일으켰다.
마녀 사냥, 내지 탄압에 대한 연구에서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은 상당부분 섹스와 관련되어
있다. 중세에 새롭게 탄생된 마녀는 마왕과의 의례적인 성교를 했고, 이러한 성적향연이 마법 숭배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광신자들은 마법과 성적 방탕을 동일시하면서, 죄악으로 느끼게끔 하였다. 성적 활동에 대한 기독교 사회의 엄숙한 가르침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거부하는 일련의 모습들은 당연히 지탄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특정 여성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적대감과도 결부되었다. 당시 불만 혹은 거
부의 대상이 되던 소수의 여성들 - 노파, 외따로 사는 여자 평판이 나쁜 여자, 신경질 적인
여자, 미친 여자, 심술궂은 여자, 음탕한 여자, 민간 요법을 쓰는 돌팔이 산파등 - 에게 마법이나 마녀의 혐의가 씌워진 것이다. 중세 말 사탄의 숭배자로 배척받던 여성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탄압과 고문의 형장에서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자료*
중세의 소외집단>, 느티나무, 제프리 리처즈, 1999
중세의 밤>, 이학사, 장 베르동, 1999
서양중세 문명>, 쟈크르 고프/유희수. 현대의 지성, 1992
그림형제>, 이성훈,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4
중세의 가을>, 호이징가/최홍숙, 1988
중세에 살기>, 최애리 동문선, 1998
고양이 학살 The Great Cat Massacre>, 로버트 단턴, 문학과 지성사, 1996
그림동화 X파일>, 시미즈 마사시 ,좋은책 만들기, 1999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이링 페처, 철학과 현실사, 1997
그림 형제 동화를 통해 본 동화의 전래와 그 사회적 의미>., 김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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