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1643년에서 1715년에 걸친 루이 14세의 치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길고 위대한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에 프랑스는 자신의 권력을 유럽 대륙의 모든 경쟁자들 사이에서 최상의 위치로 굳건하게 세웠으며 동시에 프랑스의 문화를 서구세계에서 지배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교양인들 사이에서는 프랑스어가 라틴어를 대신하여 일상어로 자리잡았으며 베르사이유 왕궁은 전 유럽에 걸친 소군주국의 모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 모든 것들은 외관상으로는 루이 14세와 그의 재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정부 체계의 결과로 보인다. 태양왕의 정부는 왕은 절대적이라는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즉, 국가내에 왕의 권력을 제외한 다른 어떠한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권력은 신으로부터 왕에게 주어진 것이고 왕은 이 권력의 사용에 대하여 오직 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왕은 과거 로마의 가장(家長)처럼 글자 그대로 그의 백성들의 아버지이고 그의 "자녀"들에 대한 생사의 권한을 가졌다.
놀랍게도 절대주의는 적어도 루이의 치세 초기 단계에서는 완벽하게 받아들일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한 우리의 놀라움은 그 대안들을 연구할 때 사라지게 된다. 거의 두 세대동안 프랑스는 특히 가혹하고 잔인한 동란과 종교전쟁에 의해 몰락하였다.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 위그노파 - 는 그들에게 일련의 특권을 주도록 왕권을 강요할 수 있었고 이러한 특권으로 인해 프랑스의 일부 지역에서는 반독립적인 프로테스탄트들의 지역을 형성하곤 했다. 루이 13세의 재상인 추기경 리셜리외는 위그노들의 독립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들은 1660년 루이 14세가 22살의 나이로 실질적인 지배력을 획득한 시기에도 여전히 프랑스 국가의 본체로부터 떨어져서 존재하고 있었다. 위그노들의 정치적 특권을 수립하게 했던 전쟁은 오직 종교적인 문제로만 싸웠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중세동안 왕권을 공유했던 대귀족 가문들은 화약과 같은 군사적인 혁신과 중산층 혹은 부르조아지의 재정적인 지원에 의해서 나타난 왕의 증가한 권력에 대해 점점 더 시기하였다. 루이 14세가 어렸던 시기에 이러한 질투는 또 다른 내란으로 분출하였는데 이번에는 왕에 대항해서 나타난 귀족들의 야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프롱드 혹은 당시에 불리웠던 것처럼 "침실용 변기의 전쟁"은 희극적인 전쟁으로서 통치에 대한 귀족들의 총체적인 무능함을 완전히 드러낸 전쟁이었다. 또한, 분명히 나타난 것은 정부의 합법적인 진행을 혼란시킬 수 있는 귀족들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바로 이 점이 프랑스인의 대부분에게 충격을 주었다. 한 사람의 강력한 왕이 내부의 평화와 규율 그리고 안정을 보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절대적인 권력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그렇게 되었다.
루이에게 귀족들의 위협은 명백한 것이었다. 그는 프롱드난 동안 어린 시절 그의 침실에 적대적인 사람이 침입한 것을 일생동안 기억하고 있었고 다시는 그러한 le"se majeste"(최고 반역)를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맹세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에 착수하였고 이것은 프랑스 내의 모든 경쟁적인 권력들로 하여금 제거되거나 혹은 왕의 통재하에 들어오게 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위해 왕은 먼저 귀족들을 복종시켜야만 했고 이 일은 베르사이유의 거대한 궁전이 건설되는 것으로 끝이 났는데 이 곳에서 루이는 모든 중요한 귀족들을 기거하게 할 수 있었고 문자그대로 그들을 눈 아래에 둘 수 있었다. 이것은 루이의 천재적인 정치적 재능의 특징인데 이를 통해 그는 사실상 중요한 귀족들을 베르사이유에 불러 모으고 그의 치세동안 그 귀족들을 복종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지방을 통치하기 위해 루이와 그의 재상 콜베르는 왕에게만 책임을 지는 관료제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이 관료제 조직을 통해 흘러나온 모든 정보는 루이와 콜베르에게 이르렀고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루이는 프랑스 국가전체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통제를 행사하였다.
17세기 프랑스 정부에 대해 숙고하면 즉각적으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 번째는 실제적으로 루이가 얼마나 절대적이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그 명령들이 실행되는 것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었던 베르사이유에서 명령을 내리는 것이 한 가지였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일련의 명령계통을 따라 밑으로 전해져야만 하고 왕의 면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수행되어야만 하는 명령을 내리는 일이었다. 루이는 과연 그가 생각하던 만큼 절대적이었을까?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절대권을 희석시킨 사람들을 누구였는가? 그들은 어떻게 이것을 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큰 문제없이 이루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잇는 사료들에 대해 질문되어야할 것이다.
두 번째로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절대권력이 집중했던 그것의 사용에 대한 문제이다. 의심할 바 없이 1660년에 프랑스인 전체는 절대권력을 좋은 것으로 느꼈다. 하지만, 1715년에도 여전히 그들이 그렇게 느꼈을까? 루이는 진정으로 그의 국민에 대해 "아버지" 였을까? 아니면 문자 그대로의 "폭군"이었을까? 루이 14세의 치세는 누구에게던지 - 루이 14세와 같이 능력있고 열심히 일한 왕조차도 - 절대권력을 현명하게 행사할 수 있다고 맡길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정치 이론에 대한 몇몇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The Theory of Absolutism
Jacques Benigne Bossuet(1627-1704)는 주교이고 대중설 교가이며 루이 14세의 재위 시기에 세자의 교사였다. 그의 정치 저술들은 왕권신수설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다.
성서의 말씀에서 나온 정치들
세자저하에게
신은 왕중의 왕입니다. 그리고, 왕들을 가르치고 왕들을 대리인으로 조직하는 것은 그의 직무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성경을 통해 왕들에게 주는 교훈을 잘 명심하십시오. 저하. 그리고, 신으로부터 왕의 통치의 기본이 되어야하는 규칙들과 예들을 배우십시오.
1권
국가를 형성하고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안 1
사람들이 동일한 국가에 거주하거나 동일한 언어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열정의 폭력성으로 인해 비사교적이 되기 때문이고또, 서로 다른 기질 때문에 서로서로 용납하지 않으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 전부를 규제하는 하나의 정부에 그들 모두가 속하지 않는 한 하나로서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없이는 아브라함과 롯이라도 함께 살아갈수 없을 것이고 떨어져 살 것을 강요받을 것입니다.
만일, 서로 가까운 가족인 두 사람이 즉, 아브라함과 롯이 그들의 하인들 때문에 서로 같이 살아갈 수 없다면 더 좋지 않은 상태의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떤 종류의 혼란이 일어나겠습니까?
정의는 다름아닌 권위와 권력에의 복종으로만 유지됩니다.
바로 규율이 지나친 자유를 제한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자신의 욕망만으로 스스로를 통제한다면 모든 것이 혼란으로 끝나버릴것입니다.
* * *
제안 3
오직 정부의 권위에 의해서만 사람들 사이의 화합이 이룩될 수 있다.
이러한 정당한 명령의 효과는 성경에서 자주 언급된 다음의 말들로 잘 나타납니다. 사울의 지휘권과 정당한 권력의 지휘권에 대해 "모든 이스라엘은 한 사람처럼 복종했다. 그들은 사천명이었고 그 모든 군중이 마치 하나와 같았다." 이것은 각각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지를 포기하고 그것을 군주나 최고위자의 의지로 가져가 그것과 결합할 때 사람들의 통일성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반면에 통일성이 없다면 사람들은 흩어진 양떼처럼 방랑자로서 헤메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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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5
정부의 수단에 의해 각각의 개인은 더욱 강해진다.
그 이유는 각각이 도움을 받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모든 힘은 하나로 집중되고 최고위의 지도자는 그것들을 재조직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최고위의 지도자는 그에게 스스로 복종할 것을 감수하는 국가 내의 모든 힘들을 그의 손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개인은 억압이나 폭력으로부터 방해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군주라는 무적의 보호자를 가지고 있고 군주는 그 개인을 억압하려는 시도를 하는 그 어떤 이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최고위 지도자의 고유한 관심은 힘으로 국가내의 모든 개인을 지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의 것이 아닌 다른 힘이 사람들 사이에서 우세하다면 그의 권위와 그의 생명은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 * *
제안 6
법은 신성불가침한 것이다.
법의 성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에 대해 잘 말한 모든 이들이 그것의 기원을 생각했다면 점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즉, 법의 기원은 조약이며 엄숙한 협정인데 이것을 사람들은 그들의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군주의 권위하에서 동의하였읍니다.
법의 권위는 사람들의 동의와 목인에 의존한다고 언급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위치 때문에 공공의 이익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관심도 없는 군주는 국가내의 현명한 이들의 도움을 받았고 지나간 세기들의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2권
제안 7
왕정은 가장 일반적이고 오래된 그리고, 가장 자연스러운 정부 형태이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정부의 존재로서 왕정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모든 나라들처럼 우리를 재판하기 위해 왕을 만들어주소서"
만일 신이 불쾌했다면 그것은 그때까지 그가 스스로 백성들을 통치해왔고 또 그가 백성들의 진정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이 사무엘에게 "그들은 너를 거부하지 않았지만 나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에 덧붙여서 이 정부는 매우 분명히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초기부터 모든 민족들에게서 발견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스러운 역사에서 보았지만 이교도들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아도 공화국에서 사는 이들조차 처음에는 무엇보다도 왕의 치하에서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로마는 그러한 방법에서 시작했고 종래에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인 왕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스의 도시들이 그들의 공화국을 형성한 것은 오직 그 후에 조금씩 조금씩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스의 오래된 견해는 호머에 의해서 일리어드에서 표현된 유명한 문장입니다. "많은 군주는 좋지 않은 것이다. 오직 한 사람의 군주와 한 사람의 왕만이 존재하게 하자."
지금 현재 한 때 왕정의 아래에 있지 않았던 공화국은 없습니다. 스위스는 오스트리아 왕가의 군주들의 지배를 받았고 프로방스 연맹은 부르군디 가문과 스페인의 지배에서 이제 막 벗어났을 뿐입니다. 독일의 자유도시들은 전체 독일 공동의 우두머리인 황제가 아니라 그들 각각의 지배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루돌프 황제 시기에 스스로 공화국으로 바뀐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실상 자신들의 자유를 황제로부터 구입했습니다. 건국에서부터 공화국이었다고 자랑하는 베네치아 조차도 황제의 지배를 받았는데 샤를르마뉴 치하에서부터 그 이후 오랫 동안 그러했습니다. 그 이후 베네치아는 인민국가가 되었고 그로부터 오늘 날 우리가 보는 국가가 된 것은 최근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두가 왕정으로 시작했고 그리고, 거의 대부분이 그것을 가장 자연스러운 정부의 형태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지배에는 그것의 모델과 근거가 있음을 이미 보았고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자연이 스스로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지배받는 백성으로 태어나고 그들을 복종하게 길들이는 온정적인 권위는 또한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한 사람의 우두머리만을 가지도록 길들입니다.
제안 8
왕정이 최선이다.
만일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그 결과로 이것은 가장 지속적이고 또, 그로 인해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국가 최악의 해악이고 가장 분명한 몰락의 원인인 분열에 가장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 자신에 대항해 분열되는 왕국은 몰락에 이르게 되고 그 자신에 대항해 분열되는 모든 도시 혹은 가문은 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우리 전하가 정부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따랐다는 것을 보았고 또한 전하께서는 왕령지와 도시들에게 자연이 가족들 속에 심어주었던 것과 같이 그들 스스로를 통합해주는 동일한 수단을 보여주기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일 가족들이 국가의 일부가 되기 위해 연합하려 할 때 그들이 거의 자동적으로 그들에게 적합한 정부에 합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국가가 형성되었을 때 연합하려는 충동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한 사람의 지도자 아래에 있는 것 이상의 연합이 없었고 또한, 이 경우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행해지므로 그것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3권
왕실 권위의 본질과 특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는 장.
제 1항
왕실의 권위에는 네 가지의 성격 혹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로 왕실의 권위는 신성한 것입니다. 둘째로 그것은 온정적인 것이고 셋째, 그것은 절대적이며 넷째 그것은 이성에 의한 지배입니다.
제 2 항
왕실의 권위는 신성한 것이다.
제안 1
신은 왕들을 그의 대리인으로 삼고 그들을 통해 백성을 다스린다.
우리는 이미 모든 권력이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덧붙여 성 바오로는 "군주는 너에게 좋게 하는 신의 대리인이다. 그러나, 만일 네가 악한 일을 행한다면 그가 검(劍)을 헛되이 지니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가 신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죄악을 저지른 이에게 천벌을 내릴 복수를 두려워하라"
그래서, 군주는 신의 대리인처럼 그리고, 지상에 있는 그의 부관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그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왕실의 옥좌가 인간의 옥좌가 아니라 바로 신 그 자체의 옥좌임을 보았다.
그래서, 신은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고 비록 더욱 특별하고 더욱 명쾌한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했지만 그들의 왕을 모두 주었읍니다.
제안 2
왕이라는 인물도 신성하다.
왕이라는 인물도 신성하고 그의 목숨을 노리는 시도를 하는 것은 신성모독입니다.
신은 마치 그가 자신의 제사장과 축성된 제단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언자들로 하여금 왕들에게 축성된 기름을 부어 그들을 신성하게 했읍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기름 부음이 없이도 왕들은 신성한 위엄을 대변하는 존재라는 그의 임무로 인해 여전히 신성하고 그의 계획을 실행하는 섭리에 의해서 대리됩니다.
그리스도의 직함이 왕들에게 주어졌고 그들은 어디에서던지 그리스도들이라 불리거나 혹은 신에 의해서 기름으로 축성받은이들이라 불립니다.
3 항
왕실의 권위는 온정적인것이고 그 고유 성격은 선량함이다.
이미 언급된 것들에 비추어 이 진실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왕은 인류의 진정한 아버지인 신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 존재한 최초의 권력에 대한 생각은 아버지의 권력에 대한 것이었음도 보았고 또 왕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남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은 공공의 권력에 대해 행하는 복종이 십계명 중에서도 오직 그들의 부모를 공경하게 시키는 격언에서 발견된다는 것에 일치합니다.
그래서, 이로부터 왕의 이름은 아버지에 대한 이름이고 선량람은 왕의 가장 자연스러운 특성임이 당연한 결과로 나타납니다.
제안 3
군주는 백성의 필요를 충족하여야만 한다.
백성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왕실의 권리입니다. 군주의 부담으로 이일을 떠맡는 사람은 왕의 위엄도 떠맡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바로 그 말이 확립된 이유입니다. 백성들을 돌보아야 하는 의무는 군주가 그의 지배민에 대해서 가지는 모든 권리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백성들은 그들이 필요할 때 군주에게 의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4권
1항
왕실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이 말을 혐오하고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은 절대적인 정부와 자의적인 정부를 혼동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이 두 가지 보다 더 명료한 것은 없습니다.
제안 1
군주는 자신이 명령란 것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지지않는다.
"나는 너에게 왕의 계명과 신의 선서에 관한 것을 준수하라고 충고한다. 신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경솔하지 마라. 그리고, 사악한 것들편에 서지마라. 왜냐하면 신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기 때문이다. 왕의 말이 있는 곳에 권력이 있다. 누가 감히 신에게 네게 한 일들을 이야기하겠느냐? 그만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사악한 것들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 절대적인 권력없이 왕은 선한일을 할 수도 없고 사악한 것을 누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권력이 아무도 그로부터 탈출하기를 바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되어야 하고 결국에는 공공의 권력에 대한 개인의 유일한 방어는 그들의 순진함이어야 합니다.
군주는 그의 책무에 의해 백성들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그의 위대함으로 인해 사소한 이해의 위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더나아가 그의 모든 위대함과 자연스러운 이해심은 백성들이 보존하여야하는 것입니다. 한 번 백성들이 그를 저버리면 그는 더 이상 군주가 아닙니다. 따라서, 국가 자체의 위대함과 보존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국가의 모든 권력을 주는 것보다 나은 일이 없습니다.
제안 4
왕은 이것으로 법위에 서 있지는 않다.
"너희는 모든 슬기로움으로 왕을 너희들의 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해 말(馬)을 늘리지 않을 것이고 아내를 늘려 그의 선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금과 은을 자신을 위해 크게 늘리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그가 왕국의 왕좌에 앉았을 때 그는 이 법을 그 이전에는 사제들의 것이었던 것에서 벗어나서 한 권의 책으로 그를 위해 적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그와 함께 두고 그것을 그의 생애동안 매일 읽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 주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배울 것이고 이 법의 말씀들과 백성들에게 행해야 할 규범들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을 통해 그의 마음은 그의 동포들위에 서있지 둽을 것이고 그는 오른 손 혹은 왼손에 대한 계명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의 왕국에서 그의 치세와 그 자신 그리고, 그의 자녀의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법은 종교만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고 다른 이들 만큼이나 혹은 그의 의지의 정당함으로 인해 다른 이들보다 더 군주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왕국의 법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이 점이 군주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왕들은 따라서 다른 사람들처럼 법의 공정성에 지배를 받는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명정대해야 하고 또, 그들은 백성들에게 정의를 수호하는 본보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법의 형벌을 받는 대상은 아닙니다. 즉, 신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들은 법의 지배를 받는 대상이지만 법의 강제적인 권력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법의 지도적인 권력에 지배받는 대상입니다.
루이 14세가 그의 후계자에게 보내는 편지
루이 14세는 자신의 왕정의 진행에 대해 기록한 일지를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는 자신이 일상을 통해 배운것들에 대한 교훈을 그의 계승자들에게 전해주는 것에도 관심을 가졌다. 다음의 글은 나이 22세에 그가 최초로 국가에 대한 전체적인 지배 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신이 달성한 것들에 대한 회고 를 하고 있는 그의 왕정 마지막까지의 기간동안 그가 생각한 바를 보여주고 있다.
나의 몇몇 노력들, 특히 내가 가장 크게 관심가지는 것이라 스스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많은 그리고, 그 모두 중요한 이유들이 나로 하여금 나의 왕실과 나의 주된 행동들에 대한 이 회상록을 너에게 남기게 결심시켰다. 나는 단 한번도 모든 온정적인 애정을 스스로 느끼는 왕들이 예시와 깨달음으로서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아버지들의 공통적인 의무로부터 제외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반대로 너와 나, 우리가 위치한 이러한 높은 계층에는 개인적인 의무에 공적인 의무가 더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받고 있는 모든 존경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풍부함과 광채 - 이것들은 단지 우리에게 맡겨진 국가와 백성들에 대한 관리라는 직무에 대한 보상으로 하느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다 - 의 가운데에서 이 고민은 만일 우리가 우리 다음에 통치할 이들에게 우리들의 모든 교훈을 전달함으로써 우리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결코 고상한 것일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목적에서 내가 지구상의 누구보다 너와 결과적으로는 또, 내 백성들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나보다 더 능력 있고 경험있게 통치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며 또, 그렇게 프랑스를 통치한 사람은 더욱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위치가 높아질수록 그 위치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해하거나 조망할 수 없는 것들의 수효는 많아진다고 너에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자주 내가 경험한 것들 즉, 네 주위에서 제마다 자신의 목적으로 너를 압박하는 군중들, 무관심한 조언을 발견함으로써 네가 겪을 어려움에 대해 고려하였고 너에 대한 것 이외에는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고 또 너의 위대함에 대한 열열한 바램 이외에는 어떠한 바램도 가지지 않은 아버지에게 네가 느낄 수 있는 완전한 자신감을 또, 생각하였다.
* * *
그래서, 나는 왕의 조건 - 이 점에서는 힘들고 엄격한- 에 대한 몇 가지 생각할 점을 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왕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전세계와 이후 세기에 대해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공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은 잡다한 그 모두를 자신들의 크나큰 이해들에 대한 희생없이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자신들의 통치에 대한 비밀스러운 이유들을 노출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리고, 내 왕국의 안팎에서 내가 맡았던 얼마간 중요하고 주목할 만한 일들이 언젠가는 작가들의 열정과 재능에 지금과는 다르게 작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충실하게 옮겨지지 않거나 나의 계획과 그 동기들을 잘 예측하지 못 하여 실수하거나 잘 못 해석될 경우를 대비해 나는 이 회상록 안에서 역사를 바로잡을 수단을 포함시킨것에 대해 너에게 사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직 마음이 작은 사람과 늘 실수하는 사람만이 다시는 실수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고 더욱 더 자주 성공할 만한 장점을 지닌 이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는데서 일종의 관대함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나는 내 좋은 의도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조차 그것들을 너에게 왜곡없이 설명할 것이다.
* * *
나는 국가내의 모든 서로 다른 파벌들에 눈을 돌리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전혀 관심없이 본 것이 아니라 경험의 시각을 가지고 보았으며 나에게 떠맡기를 강요하지 않는 것에는 강하게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그 일들의 조건과 이유가 허용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주의깊게 보았다. 모든 곳에 무질서가 있었다. 나의 궁정은 전체적으로 네가 발견하리라 믿는 정서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귀족들과 관리들 그리고, 장관들은 계속되는 음모에 익숙해져 있었고 장관들은 그러한 음모와 그것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에 대해 혐오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모든 것들에 대해 가공의 권리를 행사했다. 통치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도시의 지사들은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기대하고 두려움을 가지게 했던 어떠한 요구도 과거의 불만과 불만스러운 이들의 미래에 대한 암시없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친절은 이 사람·저 사람에 의해서 기다려지기보다는 요구되어졌고 강요되어졌고 언제나 무시하지 못 할 것이었으며 더 이상 한 사람에게 매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은 더 이상 그들이 나에게 거부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을 학대하기 위해 유일하게 유용한 수단으로 간주되지도 않았다.
왕정의 조직에 움직임과 행동을 제공하는 재정은 대부분 소모되어서 우리가 수단과 방법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나의 가문과 나의 개인적인 금고에서 가장 필요하고 가장 특권적인 지출의 대부분은 적절하게 조정된 것 이상으로 지불이 연장되어 있거나 계속되는 부담에 대해 신용만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동시에 낭비는 공공의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보여졌는데 마치 그들에 대해서 내가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이 한면으로는 모든 종류의 술책을 동원해 그들의 배임행위를 감추었으며 다른 한 면으로는 그들의 오만하고 방자한 사치를 드러내었다.
교회가 그들의 일상적인 문제외에 학교에 관한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의 논쟁이후에 지식에 대해 허용한 것은 누구의 구원에도 불필요한 것이었다. 또한 교회는 그들 마음의 고집스러움과 흥분을 통해 매일매일의 일치하지 않는 논의점들과 지속적으로 생기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흡수하여 마침내는 더욱 더 위험한 사람들에 의해 분열이 초래되기 쉬운 위험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쓸모있고 또, 공적이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고 또 그들 스스로는 덜 완고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몇몇 개인이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교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관할구에서 발생한 주교들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그들의 뒤를 따르는 많은 군중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들은 평판이 좋은 사람들이었고 경건한 사람들이었으며 교회의 의견에 복종하고 친절과 자비와 겸손으로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Retz 의 추기경과 파리의 보좌주교는 잘 알려진 국가의 동기로 인하여 나로서는 왕국내에 남아있도록 할 수 없었는데 이들은 이해관계와 성향을 통해 모든 이러한 봉기하고 있는 분파들을 자극하였고 그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았다.
귀족계급의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그 외의 폐혜들은 특권을 가질 아무런 권리도 없는 무수한 고리대금업자들에게 그것이 공유되고 있거나 대가를 받을 만한 아무런 봉사 없이 그것을 돈으로 사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지방의 일부에서 귀족들이 그의 가신들과 이웃에게 행하는 폭정은 더 이상 참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엄격하고 호된 모범을 통하지 않고는 억누늘 수 없는 것이었다. 결투의 원인이 되는 분노 - 다소간은 최후 규정에 대한 정확한 준수를 통해 수정되었고 이것에 대해 나는 언제나 확고하였다. - 는 이러한 고질적인 질병으로부터 잘 회복되고 난 지금에 와서야 주의를 기울일 만한 것이고 따라서 회복을 포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다른 이들을 개혁하여야할 사법제도는 그 자체로 가장 개혁하기 어려운 것으로 내게 비췄다. 무수한 것들이 이러한 상황의 원인이 되었는데 함부로 이루어지거나, 능력에 따른 선택보다는 돈에 의한 임명, 일부 판사들에게서 나타나는 빈약한 경험과 지식의 부족등이 그것이고 나이와 직무에 따른 규정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교묘히 회피되었으며, 수세기 동안 단단하게 굳어버린 속임수, 대부분의 건전한 법을 피하는 수단의 풍부함등이 또한, 그 원인들이다. 그리고, 특별히 이러한 상황을 이끈 것은 탐욕스러운 상류사회의 무리들이 소송을 선호하였고 그것을 자신들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조장하였으며 자신들에게 그러한 특성을 증가시키고 연장시키기 위해 전념해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나의 고문과회의에서도 다른 사법권을 감독하기 보다는 너무나 자주 다수의 상반되는 규정들을 쟁점화시켜 단지 혼란을 이끌었을 뿐이고 비록 내 원칙적으로는 명령에 의해서라 할지라도 모두 내 이름 아래에서 이러한 일들을 함으로써 혼란을 더욱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모든 폐혜와 그로 인한 결과과 부작용들은 기본적으로 백성들에게 전가되었는데 그들은 더욱이 세금의 부담을 지고 있었으며 일부는 가난에 짖눌리고 또 다른 이들은 평화로 인한 그들의 게으름으로 인해 많은 부족을 겪고 있었으며 고통을 덜하게 할 수 있고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몇몇은 이겨낼 수 없게 보이던 이러한 많은 어려움의 가운데에서 세 가지 이유가 나에게 힘을 주었다. 첫째로는 이 문제에서 그것들이 과거에 스스로 이루었던 완벽성에 이르는 것은 왕의 능력 안에 - 그것들은 사람의 문제이고 또 그러므로 그것들은 사람들과 관계하여 행동하여야 하므로-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우리의 빈약함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의 완수에 대한 불가능하다고 하는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지 않는데 대해서는 빈약한 이유에 불과하고 이 어려움이 언제나 진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더 이것은 이것에 대한 사용없이는 존재하지않으며 영광없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모든 타당한 계획과 시간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일 또, 하늘의 도움에는 일반적으로 수 천개의 방법이 있고 그 속에서 우리가 찾지 않았던 수 천개의 도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나에게 영감을 주는 목표에 모든 것을 배치함으로써 그 도움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으리라 자연히 보이는 것이다.
사실, 모든 지역이 고요하였다. 아무런 움직임이나 공포도 없었으며 내 왕국에서 나의 계획들을 방해하거나 반대할 어떠한 조짐도 없었다. 이웃들과는 평화가 이루어져 있었고 당시의 우세한 작업의 조건으로 인해 내가 그것을 바라는 한은 모두에게 그렇게 보였다.
나의 젊음과 나의 군대의 우두머리로서의 기쁨이 나로 하여금 외국과 관련된 더 많은 일들을 원하게 만드는 이 시기에 수세기 동안 드물게 만나는 이러한 완벽하게 평안한 조건을 내가 그것들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이유로서 바꾸지 못 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이러한 조건을 잘 못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개혁에 대한 주된 희망이 나의 의지에 기초하고 있었으므로 처음에 그것들의 토대는 나의 의지를 절대적으로 만드는데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나는 복종과 존경을 강요하는 통치를 했으며 내가 의무를 지니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정확한 정의를 주었고, 호의를 베푸는데 있어서는 내가 베풀려고 하는 사람 누구도 강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것들을 주었다. 또한,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면 나의 이후 행동은 비록 내가 아무에게도 내 통치의 이유를 말하지 않지만 내 스스로를 이성에 따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견해에 따르면 부여된 직무 즉, 은혜를 베풀고 장점을 취하여 승진시키는 일 - 한 마디로 바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단지 가장 큰 걱정거리가 아니라 군주의 가장 큰 즐거움임을 다른 이들에게 알게 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두 가지의 사실이 필요하였는데 한 가지는 내 입장에서 매우 힘든 업무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지지할 만한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업무에 대해서, 나의 아들아. 아마도 네가 이 회상록을 읽기 시작할 때는 사람이 어떤 것을 사랑하기 보다는 더욱더 그것을 두려워하는 습관을 지닌 나이일 것이다. 그리고, 단지 너는 너무 행복해서 교사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으로부터 벗어나고 또, 더 이상 계획된 시간들을 가지지 못할 것이고 너를 위해 마련된 길고 미리 계획된 공부의 시간도 더 이상 가지지 못 할 것이다.
이 서두에서 나는 너에게 단지 절대권력이 이것에 의해 통치하고 이것을 위해 통치하는 바로 그 노고라는 것 그리고, 이처럼 높은 지위에서 때때로 네게 힘들고 성가신 것으로 보이는 왕의 조건이 만일 네가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즐거움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리라는 사실만을 훈계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것들이 더 있다. 나의 아들아. 그리고, 나는 너의 개인적인 경험이 그것을 너에게 절대 가르치지 않기를 바란다. 만일 네가 불행하게도 시작하면서부터 공공의 업무에 흥미를 잃고 그 다음은 즐거움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게으름 자체에 대해 흥미를 잃음으로써 빠지는 큰 게으름보다 더 힘든 것은 없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먼저, 수고하고 일하지 않은 휴식과 여가의 달콤함은 절대 발견될 수 없는 것을 성과 없이 도처에서 찾는 것이라 한다.
나는 스스로 매일 두 번씩 규칙적으로 일하는 규율을 부과하였다. 그리고, 매 번 두시간에서 세 시간동안 다른 사람들과 내가 개인적으로 혼자 보낼 시간과 때로 발생할 수도 있는 특별한 일에 바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규칙을 부과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긴급하다면 자신들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언제나 주었다. 다만 외국의 장관들은 예외였는데 그들은 때때로 그들에게 허용된 친밀함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획득하기에 너무도 유리한 시간을 찾았고 미리 준비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이러한 해결책을 취함으로써 어던 성과를 즉시 얻게 되었는지는 너에게 이야기 할 수 없다. 나는 스스로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적으로 향상되고 사기가 왕성한 것으로 느꼈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을 발견했고 너무 오랬동안 그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못 했음을 기쁘게 자책했다. 특히, 대중에게 연설을 할 飁에 나에게 처음에는 고통을 주었고 또, 약간의 자기 판단이 만들어낸 최초의 이러한 소심함은 곧 사라졌다. 그리고, 그 때 유일하게 내가 느낀 것은 나는 왕이고 또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나는 표현하기 어려운 매우 재미있는 감정을 경험했는데 너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맛보기 전에는 스스로 알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아들아. 너는 국가의 일이 마치 모호하고 가시 많은 배움의 행로라고 상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한다면 마음은 스스로 분발하기 위하여 그 한계를 넘어 노력할 것이고 자주 아무런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도구 혹은 외견상의 도구는 그것의 어려움만큼이나 우리에게 불쾌한 것이다. 왕의 기능에는 기본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훌륭한 분별력에 존재하는데 이 경우 통치는 언제나 자연스럽고 별다른 수고로움이 없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은 때때로 우리가 오직 즐거움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보다 덜 힘이 들때가 있고 그것의 유용성은 언제나 뒤따른다. 능력있고 그의 대리인들을 밝혀주는 왕은 이후에 나타날 효과없이 직접 업무에 손을 댈수 없다. 모든 점에서 받아들일만한 성공은 가장 작은 일에서도 가장 큰 일에서 만큼이나 우리를 기쁘게 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에 의해서 스스로 계획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복과 위대하고 고귀한 계획에서 매일 매일 진보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만족은 없다. 이 일을 위해 가장 필요한 모든 것들은 또한 동시에 받아들일만한 것이었다. 나의 아들아 이것은 즉, 온 세상에 대해 열린 한 사람의 눈을 가지는 것이고 매 시간 모든 지방과 국가에 대한 새로운 사항과 모든 궁정의 비밀, 모든 군주들과 외국 재상들의 약점과 분위기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무수한 일들에 대하여 잘 알게 되는 것이고 우리 백성들로부터 그들이 최고의 주의를 기울여 감추고 있는 것을 꺼집어 내는 것이며 우리 신하들의 가장 외딴 의견을 발견하고 우리와는 매우 반대되는 직업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 이들의 감추어진 관심을 발견하는 일이다. 비록 호기심이 우리에게 기회를 준다고 할지라도 나는 우리가 이 일을 위해 단념하지는 않을 즐거움에 대해서 잘 알지 못 한다.
나는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 의도했던 것보다 더 오래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보다는 너를 위해서 더욱 생각하였다. 내가 너에게 이 방법과 알리는 동안 즉, 왕실의 가장 큰 걱정을 완화시키는 것에 대해 알려주는 동안 나는 세계의 눈을 위해 내가 희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점을 경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봇 하였다. 하지만, 나의 아들아. 이 문제에 대해서 너의 명예는 나의 것보다 더욱 귀한 것이다. 만일 신께서 네가 아직 이러한 응용의 기질과 내가 말하고 있는 공공의 일에 대한 능력을 가지지 못 하고 있는데도 통치할 것을 명한다면 모든 종류의 방법에 대해 너에게 베풀고 있다고 감히 말하는 아버지의 조언에 대해 보일수 있는 너의 최소한의 복종은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시작했다면 비록 강제와 혐오 아래에서라도 그것을 너에게 애원하는 나의 사랑을 생각하고 또, 너 자신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여 너의 일생동안 네가 할 일들을 한 동안 계속하는 것이다.
나는 4명의 장관에게 나에게 보고하지 않고는 더 이상 어떤 것이던지 결제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고 재정감사관에게도 역시 그렇게 했는데 그는 내 곁에 항상 있어야할 장부에 등록되지 않고서는 그리고, 어떤 때에도 요약된 형식으로 기록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재정상의 일들도 허가할 수 없도록했다. 그래서, 나는 한 눈에 재원의 상태와 과거와 미래의 재정 상태를 볼 수 있었다.
재상도 비슷한 명령을 받았는데 즉, 나의 명령없이는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인장을 찍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재상에 대해 나의 명령과 함께 또 하나의 예외가 되었던 것이 고등법원의 문서였는데 왜냐하면 이것들을 거부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 한 일이고 일의 진행을 위해서는 원칙보다는 형식에 관한 것을 더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행정과 명백하게 용서할 만한 사건들에 대한 특사의 권한을 재상들에게 허용하였다. 하지만, 이 특사에 관한 나의 견해는 그 후 바뀌어졌으며 적당한 자리에서 이에 대해 너에게 이야기 하겠다. 나는 또한 만일 그것이 오직 나의 호의에 의존하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실의 성격이 어떠하건간에 직접적인 결정은 내가 행해야함을 알게 했고 나의 모든 백성들에게 차별없이 자신들의 문제를 언제던지 나에게 청원이나 구두로 제출할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처음에 청원은 많은 양이 제출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축시키지는 못 하였다. 나의 직무가 자리잡은 무질서는 매우 생산적이었다. 진기함과 기대는 헛되거나 부당하거나 간에 적지 않게 유혹적이었다. 많은 수는 법정 소송과 연계되어 제출되었는데 이것에 대해 나는 내 앞에서 판결하기 위해 공식적인 법정으로부터 이것들을 가져올 수도 없었고 가져와서도 않되었다. 그러나, 외견상 이익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일들에서조차 나는 큰 유용성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 것을 수단으로 나는 내 백성들의 상태에 대한 세세한 사항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았고 무엇으로도 이보다 더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 공식적인 법정에 대한 다른 이들의 압력은 내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바람직하다고 나에게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제출될 수 있었는데 이 정보들은 나로 하여금 그들이 요구할때 특별한 조치를 취하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 두 개의 이러한 예들은 수천개의 비슷한 폐해를 예방하였다. 하지만, 거짓되고 부당하기까지한 불만들은 더 성실하고 정당한 사람들에게 나의 관리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저지하였다.
나의 업무에 보조하는 것이 의무인 사람들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던지 수상을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만일, 나의 아들아 네가 나를 믿고 따르고 너의 후계자들이 또 나를 믿는다면 그 수상이라는 이름은 프랑스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한 쪽편에 모든 내각을 두고 다른 한 편에 단순한 왕의 직함을 두는것보다 더 품위없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의 믿음과 내 명령의 수행을 한 사람에게 완전히 주는 일 없이 그들의 재능에 따라 다른 신분의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일은 군주들이 가질 수 있는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선물이다.
나는 또한 다른 것들에 대한 해결책도 미련했다. 비록 모든 일에는 우리의 위치와 또한 우리의 자존심이 그렇게까지 내려가기를 일반적으로 허락하지 않는 일단의 세부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지배에 대한 모든 권위를 나에게만 더 잘 모으기 위해서 나는 계획을 세웠다. 즉, 내 장관들에 대한 선택을 하고 그들 각각과 함께 때때로 일들에 착수한 후에 그리고, 그들이 그 일들에 대해 가장 적은 기대를 가질때 내가 동시에 다른 백성들에게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하기 위해 게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와 함께 단지 우연히 공식적인 통치보다는 휴식을 위한 몇 몇 세부사항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는데이것들은 조금 조금씩 큰 노력없이 그것들의 사용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수 천개의 일들에게 유익한 것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해결해야 할 일들에 대해 우리가 스스로 알아야하고 행해야만 하는 일들은 단지 한 사람만으로도 알 수 있었고 또, 그가 모든 것을 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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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은 내가 믿어야 하는 것들을 보여주었고 나는 10년동안 충실하고 지속적으로 내가 보기에는 동일한 경로를 휴식없이 따라가고 있다. 모든 것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잘 유지하고 내 백성의 가장 작은 부분도 잘 듣고 있고 언제라도 내 군대의 숫자와 능력 그리고, 요새화된 도시의 상태를 알고 있으며 내 명령에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한 논쟁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외국의 재상들과 동시에 관계하면서 급한 공문서를 받고 또, 읽고 있으며 일부는 직접 답장을 하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나의 비서에게 전달한다. 국가의 수입과 지출을 조정하고 내가 중요한 자리에 임명한 이들과는 직접적으로 나에게 결과보고할 것을 요구하며 내 일들을 과거에 나 이전에도 그랬던 것만큼 나 스스로 관리한다. 내 스스로 선택한 대로 은혜를 나누어 주었고 만일 내가 실수하지 않는다면 비록 그들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혜택을 주긴 하지만 최고위의 장관으로의 승진하는 것과 그러한 장관들의 권력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소박한 위치에서 나에게 봉사하는 이들을 계속해서 고용하였다.
이 모든 일들에 대한 다른 이들의 관찰은 의심할 바 없이 세상에서 나에 대한 몇 몇의 견해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아무도 이토록 짧은 시간에 군주의 평판이라는 부분에서 이처런 큰 결과를 이룰수 없었음을 볼 때 이 견해들은 내가 이전에 맡았던 일들의 성공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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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과의 개인적인 토론을 통해 완벽하게 정보를 얻은 후 나는 더욱 더 대담하게 실제적인 행동에 착수하였다. 내 백성들의 조건을 완화시키는 것보다 더 나를 압박하는 것은 없었다. 특히, 지방의 가난과 그들에 대해 내가 느낀 동정심은 나를 강하게 몰아세웠다. 이미 네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나의 재정상태는 이 일에 방해가 되는 듯 이 보였고 어떤 경우에라도 늦출 것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잘 하기 위해 서둘러야했다. 내가 하려하는 개혁은 공공에 유익한 것이었지만 많은 수의 개인들에게는 분명 그들을 지루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의할수 있을 만한 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당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미래에 대한 더 큰 희망을 약속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미끼가 뒤따르지 않고서는 평화의 이름으로도 더 이상 유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고려사항들을 제치고 미래의 조건완화에 대한 보증으로 이미 계획되어 징수를 기다리고 있던 다음 해 세금 300만 리브르를 면제하였다.
동시에 이전보다는 더 잘 관찰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나는 금과 은을 의복에 착용하는 것에 대한 규칙을 갱신하였다. 그리고, 일종의 부담금이었던 수 천의 외국의 사치생활품들에 대한 규칙도 갱신하였다. 이러한 사치 생활품에 대한 부담은 외견상으로는 자발적인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의무적인 것이었고 이것은 특히 내 백성들중에서도 가장 실력있는 사람들이나 궁중에 있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외국에 지불하는 것이었는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사치와 허영에 지불하는 것이었다.
수 천개의 이유 때문에 그리고, 몹시 필요한 사법행정에 있어서의 개혁의 길을 포장하기 위하여 고등법원의 권위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결에는 이론(異論)이 없고 또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그 판결은 최고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최후의 호소라는 점을 구실로 삼아 스스로를 마치 분리되고 독립된 주권처럼 간주했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거만함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했다. 파리의 Cour des Aides 가 최초로 그 의무와 어느 정도에서는 그 재판권에서 월권을 행사하였고 나는 가장 반항하는 관리중의 일부를 귀양보내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나는 만일 이러한 조치가 초기부터 완전하게 사용된다면 동일한 조치를 차후에 빈번히 적용하는 필요성을 덜어줄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의 행동은 성공적이었다.
그 이후 즉시 나는 최고회의에서 제정된 엄숙한 법령을 통해 그들에게 나의 의도를 더 잘 이해하게 했다. 하지만, 이 두 지배권들 즉, 최고회의와 고등법원이 법과 포고에 의해서 규정된 서로 다른 그들의 기능때문에 서로서로를 조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 전에는 이들을 서로 평화롭게 살게 하는 것으로 충분했고 혹은 그들 사이에서 특히 사적인 개인의 문제로 차이가 나타나는 상황은 매우 드문일이었고 조정하기에도 어렵지 않아서 왕들은 장관들의 보고에 말로써 그것에 대해 스스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장관들은 소수로 구성되었고 이러한 문제들이 왕국에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책임이 있었으나 궤변에 능하였다. 이 임무는 원칙적으로 프랑스의 재상과 이미 너에게 얘기한 정무회의에 맡겨졌다. 이제 이 필요한 관리들은 다른 사법권들로부터 이들이 나에로부터 받아서 가지고 있던 권력을 넘겨받음으로써 그들을 조정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허가를 받았다.(그리고, 또한 때때로 우리가 공공의 유익과 우리의 고유한 직무를 위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조정을 할 수 있었고 그것들에게 특별한 승인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기충족의 정신과 당시의 혼란으로 인하여 그들은 그들에게 좋게 보이는 경우에는 단지 양보하였고 매일같이 그들의 권한을 넘어섰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제한 대신에 모든 종류의 사건들에서 자주 그들은 다름아닌 법령이나 포고들에 포함된 형식에서 왕의 의지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한은 충분히 진행하였다.
이 법령은 통해 나는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불만을 토로할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고 나의 권위에 의지한다면 그들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내 고문회의의 결정에 반대되는 결의를 그들의 판단이나 그들의 개인적인 능력 등 무엇이던간에 어떠한 구실로도 못하게 했고 또한 그들에게 그렇게 명령을 했다. 왜냐하면, 나는 단지 그들로 하여금 내 백성에게 정의를 수행하게 하였지 그들만의 정의를 만들라고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고 이러한 것은 왕에게 매우 가까이 모인 통치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고 왕만이 가진 특권이어서 다른 어떤 이들과도 나누어질수 없는 것이기 飁문이다.
같은 해에 하지만, 조금 늦게, 일반적으로 모든 기록사무소의 재정과 관련된 일들 그리고, 파리 의회의 기록사무소와 관련되어 재산이 그 기관의 관리들에 속해있었고 때때로 의원들 전체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감히 관철하지 못 했던 일들에 대해서 내가 매일매일의 순서들을 너무 가까이에서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 관리들이 공통의 법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봉사에 대해 보상을 주는 일이 나를 기쁘게 하므로 아무것도 내가 그들을 법으로부터 면제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대략 비슷한 시기에 법조계의 귀족들이 그 때까지 그것을 통해 매우 크게 이익을 보고 있었고 그들의 마음이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야기된 최근의 문제로부터 획득한 중대한 일들로만 가득 차 있었으므로 나는 매우 대담하게 보이는 일들도 행했다. 나는 새로이 저당잡힌 것을 3/4에서 2/4로 줄였는데 이러한 저당은 내 세입에 부담을 지웠고 전쟁 시기에는 엄청난 세금에 영향을 미쳤으며 내 농장의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치웠다. 물론, 이 농장의 많은 부분은 도시 자치조합의 관리들이 구입하였는데 이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농장을 자신들의 생생한 이익을 위해서 가능한한 가혹하게 다룰 수 있는 좋은 대상으로 여기게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행동의 기저는 완벽하게 공정한 것이었는데 2/4는 그들이 진척시킨 일들에 대한 보답으로는 여전히 큰 분량이었고 개혁은 반드시 필요했다. 나의 업무는 내가 그들의 원한에 대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그러한 상태에 있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는 시기가 바뀌었고 내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어떤한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적절한 일이었다. 다른 이익관계로 인해 도시조합들이 이 시기에 나를 이길 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도시조합이 나에게 마땅히 복종을 하는 것을 통해 정 반대의 것을 배우게 되었다.
* * *
그 때, 나는 또한 나의 왕가에 대해서도 변화를 시도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왕국의 모든 귀족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절반이상의 수습기사들을 증가시킨 나의 주 마굿간과 같이 행애져야만 했고 또한 선택이 훨씬 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했으며 그들이 그 이전 보다 더 유능하다는 것때문에 더욱더 노력해야 했다.
능력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종류의 지위에 대해 희망하는 것을 막는 것은 가족들의 모든 신분을 통해 이 지위가 그들에게만 허용되었고 추천되었다는 용이성과 내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으로서 그들에게 제공된 기회의 희박성, 또는 거의 감지되지 않게 나타나지만 그들의 직무에 있어서 그들을 완벽하게 만드는데서 나타나는 나태함등이라는 사실에 나는 주목하였다. 이 모든 것을 치유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수습기사를 선발하는데 나 자신이 관심을 가지기로 했고 그들을 나에게 배당된 사적인 수습기사들과 함께 모든 가정의 일에 함께 하게하였으며 그들을 위해서 왕국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를 선택하였다.
대중을 고려하여 내가 얻고자 희망했던 것은 많은 수의 귀족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고 또, 나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언제나 이 학교로부터 능력있고 일반적인 백성들보다 더 잘 준비된 사람들을 공급받아 내 업무에 투입시킬 것을 희망하였다.
나는 아직 기본적으로 자산가들을 생각하는 나의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것의 효과는 왕국전체에 널리 퍼졌다. 나는 막대한 금액이 사적인 개인들에 의해서 소비되고 또 그것이 끊임없이 외국에서 생산된 레이스의 교역을 통해 국가로부터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이 작업을 스스로 하기 위한 공장이나 원료들을 원하고 있지 않음을 보았고 만일 이 일을 현장에서 한다면 그렇게 먼 거리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물건들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판단하에서 나는 프랑스에서 공장을 세울 것을 결정하였는데 이것의 효과로는 먼저 귀족들이 자신들의 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백성들은 부자들이 소비하는 것의 모든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국가내에 남아있게 되는 막대한 금액은 느끼지 못 한채 그대로 유지되면서 부차적인 풍족과 부를 생산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 이상으로 이 일은 직업을 찾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침체에 빠지거나 혹은 외국으로 직업을 찾아 떠나는 많은 백성들에게 직업을 주게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칭송받을 만한 일이라도 반대가 없이는 달성되지 않으므로 나는 레이스 무역상인들이 그들의 모든 힘을 다해서 반대하리라는 사실을 미리 예상하였다. 왜냐하면 무역상들은 먼 거리에서 온 물건을 파는 것이 그들에게 더 큰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이 곳에서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서 생산된 제품에 비해 그 제품들은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권위를 동원하여 그들이 사용할 모든 농간들을 잘라내었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나의 법이 공포되기 이전에 자신들이 가진 외국레이스들을 팔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이 기간이 만료되었을때 그 때까지 여전히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들을 나의 금지법 이후에 수입한 것으로 간주하여 압수하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제품들로 가득 찬 상점을 열게 하여 사적인 개인들이 그들의 소비를 이 곳에서 하도록 의무지웠다.
짧은 기간동안의 이러한 예를 통해 많은 다른 물건들, 예를 들면 종이, 유리, 거울, 비단 스타킹, 그리고 그 외의 물건들의 공장을 내 국가안에 세웠다.
나는 내 백성들의 해상무역을 증가시키고 보장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항구들을 안전하게 만들고 또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기 위한 장소를 찾는 특별한 계획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절대 덜 중요하지 않은 다른 계획에 착수했는데 그것은 운하로서 지중해와 대양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바다에서 다른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 더 이상 스페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현명한 일이었다. 이것은 착수하기에 거대하고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이것을 통해 내 왕국이 전체 유럽 무역의 중재자로서 중심에 서게 할 만큼 내 왕국에 무한히 유리한 일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성과 없이 이 일에 착수하였던 위대한 사람들에 비해서 스스로 이 목표를 세우고 달성한 나에게는 더 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 * *
나는 너에게 우리가 종교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큰 경의와 우리가 종교의 대리인들에게 특별히 그들의 임무 즉, 성스러운 신비를 기념하고 성경의 교리를 설교하는 일과 관련하여 보여주어야 하는 복종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실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회와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칫하면 그들의 직업에 관련하여 유리한 점에 대해 약간이나마 주제넘게 상상하고 있고 또, 때때로 자신들의 마땅한 직무를 경감하기 위해 그것들을 이용하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이 문제에 관련하여 중요성을 가지는 몇 가지 점에 대해서 설명해야할 의무를 느낀다.
첫 번째로 왕들은 절대적인 군주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격으로부터 왕은 세속의 것이던 교회의 것이던 모든 재산을 완전하고 자유롭게 처분할 권한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현명한 분배자로서 사용할 수 있다. 즉, 국가의 필요와 일치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아마도 사람들이 너를 현혹시키려할 교회의 자유와 참정권이라는 신비한 용어는 공통의 어머니의 똑같은 아들이라 할 수 있는 세속인과 성직자 중 누구던지 신앙이 깊은 모든 이들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용어는 성서에서 정확히 복종하라고 명하고 있는 주권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있다.
세 번째로 교회 재산의 특정한 향방이나 기금기부자의 의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의 말은 근거없이 단순한 양심의 가책을 말하는 것일뿐이다. 왜냐하면 재산의 기부자는 자신들의 계승자에게 상속할 때 지대로부터 면제되거나 특정한 군주에게 지불되어야 하는 다른 의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더욱 강력한 이유에 따라 그들은 군주 혹은 만물의 지배자에게 전체 왕국의 복지를 위하여 지불하여야 하는 최초의 의무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
네 번째로 지금까지도 성직자들이 그들의 의회에서 그들이 행해야할 의무에 대해 심사숙고한다면 그들은 이 관습을 자신들의 특별한 권리탓으로 돌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자유가 몇 몇 지방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 지방에서는 과거 세기의 성실에 대한 형식적인 증거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정의가 충분히 개인들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해야하는 일을 고무할 수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세속인과 성직자이 그들의 고유한 자유의지의 의무를 강요할 때 이것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다 섯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만일 나라안에서 자신들의 재산을 고려하여 다른 이들보다 더욱더 우리를 위한 직무에 묶인 주민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 손에 맡기고 이익을 얻으려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혜택만큼이나 오랫 동안 공고히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왕국의 초기 기간동안 유지한 우리의 권리가 있다. 심지어 우리로부터 그러한 권리를 박탈하려고 노력한 교황들 조차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야심적인 요구에 대한 정확한 철회사실을 명백히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서 어떠한 권리나 예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스러운 공정함만으로도 이 점을 나타내 보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왕국의 방어를 위해서 그들의 봉사와 피를 바쳐야한다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그리고, 귀족들은 자주 그들이 책임을 맡은 기관들의 유지를 위해 자신들의 자원을 소비하여야 하고 (적은 자원을 가지고 많은 입을 채워야하는)백성들은 게다가 모든 국가의 지출에 대한 부담을 지는 것이 타당할까? 반면에 자신들의 직업 때문에 전쟁의 위협과 사치품의 풍부, 그리고, 가족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직자들이 일반적인 대중이 필요한 것에 대해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고 일반 대중이 누리는 잇점을 풍부히 누리는 것이 타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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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전쟁을 우리 왕국에 어울리는 자존심과 고압적인 자세로 치루어냈다. 그리고, 귀족들의 용기와 백성들의 열성으로 인해 국가의 이익을 위해 내가 달성해야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차지하였다. 나는 나의 모든 관심과 열성을 성공적인 결과에 이르기 위해 투자하였고 내 의무를 달성하고 백성들에 대한 나의 사랑과 친절을 알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수단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내 왕국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휴식을 줄수 있는 평화를 나의 업무 수행을 통해 획득함으로써 나에게는 그들의 복지 이외에는 어떠한 관심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 제국의 변경을 확장하고 내가 획득한 중요한 요새로서 국경을 보호하고 난후에 나는 나에게 제안된 평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아마 나는 이 때 그렇게 위대한 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신중함의 한계를 넘어섰던 것같다. 그리고, 나는 내 고유한 성격과 조화되지도 않았고 내 백성들에게 휴식을 구해주기 위해서 나 자신에 대해 극단적인 폭력을 가했던 것 같다. 즉, 나는 내 평판 혹은 적어도 내 개인적인 만족을 바쳤고 아마도 내 명성도 투자하였던 것같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이러한 명성을 가지게 해준 이들의 유익을 위해 내 명성을 위기에 빠트렸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여야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지금 나의 가장 격렬한 적이 오로지 나와 경쟁하기만을 바라고 있고 나를 속이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며 그들의 동맹자들은 그들의 무분별한 야망이 명령하는대로 무제한적인 지출을 그들에게 강요하고 하고 있음을 볼 때 나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또, 적들에게 그들이 프랑스를 압도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무력과 수단을 통해 합친 그들의 모든 힘보다 전체적으로 통합된 프랑스가 더 강력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릴지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문제도 돌보지 않는다. 나는 국가의 안전과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지출에 부합하는 금액을 확보하기 위해 실제 행동에 들어갔다. 국가의 모든 자원이 거의 소진된 이 시점에서 나는 어디로부터 안전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너에게 조언과 도움을 청한다. 우리의 적들은 우리가 함께 도출해 낼 노력으로부터 우리가 그들이 믿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요구하고 있고 또, 필요불가결하다고 믿는 그 도움을 통해 우리는 그들에게 평화를 맺으라고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화는 우리 자신에게 영광스러운 일이고 우리의 편안함을 유지하게 할 것이며 또한 모든 유럽의 군주들이 동의할 만한 것이리라. 이것이 내 백성에 대해서 내가 언제나 가졌던 행복과 복지에 대한 압박만큼 강한 전쟁에 대한 압박에속에서 그 결말에 이르른 이 시점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이고 또, 이것은 내 일생의 마지막까지 나의 가장 크고 심각한 염려로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다.
절대주의의 실제
루이 16세가 프랑스 귀족을 길들인 방법 중에 하나가 귀족만이 예의를 아는 완전히 인공적인 사회를 베르사이유에 건립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귀족들에게 어떠한 정치권력을 양도함 없이 그들의 지위를 승인했다. 이러한 사회는 당시의 관행에 관해 간단히 살펴봄으로써 평가될 수 있다.
빛나는 세기: W. H. Lewis
궁정예절은 궁정생활의 연구였다. 예를 들면, 누가 베르사이유에서 노크를 하는 것이 가장 나쁜 예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당신은 왼쪽 새끼 손가락으로 문을 긁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손톱을 길게 길러야 한다. 혹은 당신은 왕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로 친한 친구에게 친근하게 말해서는 안된다. 만약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하인이 당신에게 소식을 전한다면, 당신은 서서 받아 보거나 모자를 쓰지 않아야 할까? 당신은 노크를 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에 있는 대저택에 당신이 처음으로 방문할 때, 당신은 손톱으로 문을 긁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안된다. 당신은 노크를 해야만 했었다. 다음으로 당신이 손잡이를 덜거덕 덜거덕 거리면 한 지나가는 멋쟁이는 당신에게 상류층 부인의 문은 한 번만 두드려야한다는 것도 모르느냐고 모욕적으로 질문 할 것이다. 만약 부엌에서 테이블로 가는 도중 왕족의 정찬을 부딪치게 되면, 당신은 왕에게 하듯 절을 해야만 하고 모자의 깃털로 바닥을 쓸어야하고,낮고 공손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 전하의 고기입니까? "라 말해야만한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 신출내기 궁정신하는 다윗의 탄식처럼 "얼마나 자주 예의에 어긋나는지!" 라는 말을 반복할 것이다. 예의를 어기지 않는 것은 당신의 의무이다. 왜냐하면 왕은 독수리 같이 정확하고 완벽한 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예의범절이라도 어기면 아무리 높은 귀족이라도 왕의 질책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날 밤 저녁 만찬에서 루이 14세의 수다스러운 친구가 왕 앞에서 그의 손가락을 음식에 빠뜨렸을 때, 왕은 쌀쌀하게 "너는 너의 혀와 마찬가지로 손도 통제할 수 없구나"라고 말했다. 한 번은 Marly에서 장관 부인인 Torcy부인이 만찬에서 공작부인보다 상석에 앉았다. 루이 14세는 그녀가 극도로 불편하게 식사동안 계속해서 그녀를 주시했다. 루이14세는 맹트넝(Maintenon) 부인의 방에 도착했을 때 화를 폭발시켰다. 그는 도저히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참을 수 없는 모욕적인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상류층부인으로써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욕이었다. Maintenon 부인과 Burgundy공작은 루이 14세를 달래기 위해 남은 밤을 보내만 했다.
확실히 왕에게는 무례하거나 실수를 할 수 없었다. 또한 정신들은 아침 잠자리에서 꾸물거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왕이 깨어나는 8시까지 대기실에 도착하려면 일찍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당시의 부인들이 9시까지 꼼짝도 않고 침대있으리라 여기고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 정신들은 그의 후견인과 왕의 아침 인견에 참석하기 전에 정성들여 분을 바르고 화장을 하기 위해 자신만의 화장도구 일체를 가지고 다닌다. 왕의 방에서 하루는 8시 15분전부터 시작되는데, 일등 시종관은 그 방에서 자고 그의 간이 침대를 치울 것이다. 겨울이라면, 두명의 왕궁 장작지기는 왕의 화로를 지피기 위해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1,2 분 후에 왕의 시계의 태엽을 감기 위해서 왕의 시계공이 뒤를 이어 들어올 것이다. 옆문으로는 왕의 가발사가 들어오는데, 옆방은 왕의 가발이 진열되어 있는 방으로 그 안에는 사냥용 가발,회의용 가발,저녁용 가발, 사냥용 가발 등 끝없이 진열된 가발들이 있다. 그러나, 바로 그때 가발사는 왕이 옷을 입는 동안 쓸 짧은 가발과 그날의 첫 번째 가발 2개만을 가지고 온다.
이 시간에 루이 14세는 항상 그의 성가신 습관으로 여름과 겨울에는 침구를 그의 엉덩이 밑에 깔고 잠들어 있거나 잠든 체 하곤 했다. 8시의 첫 번째 종소리가 울렸을 때, 시종은 루이를 깨우고,폐하가 기상했다는 소식은 거의 꽉찬 대기실에 전해져 마치 여름 미풍에 익은 옥수수 들녘 처럼 정신들로 하여금 바삐 움직이게 한다. 동시에 수석 내과의와 수석 외과의가 왕실 간호원들과 함께 방에 들어와서, 간호원들이 침대로 다가가 그에게 키스를 하고 문안을 여쭙는 동안 두 의사는 왕을 마사지하고 그의 셔츠를 갈아 입힌다. 8시 15분에 시종장이 귀중한 입장 특권을 가진 정신들과 함께 들어오고 루이는 성수를 선물받는다. 지금이 왕에게 부탁할 때인데 이런 점에서나 다른점에서나 왕의 심리상태는 다른 보통 사람의 심리상태와는 상당히 달랐다. 만약 내가 루이시대에 루이였다면 한 순간도 편안한 순간이 없었을 것이다. 왕이 성무일도를 하는 동안 들어온 정신들은 물러나고, 그 후 그들은 왕이 겉옷과 가발을 입고 쓰는 것을 보는 특별한 즐거움을 위해 다시 들어와도 되도록 허락받았다.
몇 분후 귀족의 무리가 떼를 지어서 루이가 옷을 입는 것을 보기 위해 방을 가득 메운다. 우리는 루이가 승마용 바지를 입을 때 매우 영민하고도 우아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그들 중 한 명에게 감사해야한다. 루이가 셔츠를 입는 순간이 되면, 그 셔츠는 일등 시종관에 의해 상급자에게 건네지고, 그 상급자는 매우 황공해하면서 셔츠를 왕에게 바친다. 여기까지, 우리는 1640년 같이 오래전에 상류층 사람들은 매일 얼굴 씻듯 손을 씻도록 된 사실에도 불구하고, 목욕은 커녕 세수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물론, 위험한 행동으로 간주되어 물로 씻는 것은 안되고, 희석되고 향수처리된 알콜에 다가 면을 적셔 얼굴을 문질렀다. 아마 루이는 면도를 할 때에만 물로 세수를 했을 것이다. 시종이 그의 앞에 거울을 가져다 주어 면도를 한 후, 그는 와인과 같은 알코올을 섞은 물로 세수를 하고 시종의 도움없이 얼굴을 말린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이발사는 자유롭게 궁정에 기숙할 수 있는 500명의 시종들 중 하나였다. 아마 루이가 목욕을 했던 것은 저녁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가끔은 한 사람을 데리고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목욕을 할 때,제 1 주방 5부의 관리가 공기를 향기롭게 하기 위해, 뜨거운 스푼위에 향수를 끓이면서 서 있었다는 사실에서 추론되어질 수 있는 드문 사건이었다. 이 부서는 두명의 장작 나르는 자를 포함해서, 건장한 45명의 신사는 왕실의 변기를 비우는 특권을 지니고 있었다. 이때쯤이면, 왕의 출현에 대한 경외감은 사그라들고, 대화는 대개 사냥에 관한 것으로 변한다.
생시몽 공작의 비망록
생시몽공작은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귀족가문의 한 사람이다. 여러면에서 그는 루이 14세가 절대권력하에 길들인 봉건귀족의 전형이었다. 그의 비망록은 1739-1751년에 쓰여졌고, 1788년에 프랑스에서 처음 출판되었는 데, 거기에는 궁정생활이 묘사되어져 있고, 루이 14세의 귀족 통제방법들에 대해 상당히 잘 통찰되어져있다.
루이 14세는 화려한 궁정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용모, 용기, 우아함, 수려함, 당당한 풍채, 심지어 목소리와 인격의 위엄과 자연스러운 매력은 Bee왕처럼 죽을 때 까지 그를 두드러지게 했다. 또한 만약 그가 일개 보통의 신사로 태어났더라도 그는 축제나 오락,무용에 있어서 모두를 능가했을 것이고, 사랑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루이 14세의 유년기에-Soissons 백작이 여왕의 왕실 감독자로서, 궁정의 중심인물로서 튈리히 궁정에 머물고 있었을 때-말려들어갔던 음모와 위기는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후에 성공적으로 싸울 수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때부터, 영리하고 교육을 많이 받고, 귀족적이며, 높은 도덕심을 지닌 사람들을 루이 14세는 의심하게 되었고, 미워하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통치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그의 끊임없는 시기심은 약점이되었다. 그는 사실 중요한 일에는 소홀하고 사소한 일에만 영향력을 미쳤다. 심지어 사소한 일 조차도 그는 종종 통제하지 못했다. 그의 통치 초기 장관과 장교들의 유능함에 그는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어떠한 형태든지 그보다 나은 자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장관을 선임할 때는 지식있고 능력있는 자가 아니라 무식하고 무능한 자를 선임했다. 그는 장관들을 다듬어 가는 것을 좋아했고 아주 사소한 것들 조차도 그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했다. 장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장관들과 장교들을 가르친다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았다. 내각으로 하여금 루이 자신이 모든 군대를 통솔 ,지도한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는 군대,궁전, 저택들의 가장 작은 부분들까지도 간섭했다. 심지어 그의 숙련된 요리사들도 초보자들처럼 가르쳤다.
이러한 허영과 끊임없는 비이성적인 욕구가 그의 패망의 원인이었다. 장관,장교,그의 연인,정신들은 곧 그의 약점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경쟁적으로 루이를 찬양했고 그를 망쳤다. 찬양- 실은 아첨-은 가장 비열하고 야비한 것이 받아들여질 정도로 루이를 기쁘게 했다. 그것만이 당신이 루이에게 접근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루이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끊임없는 아첨으로 루이의 사랑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그의 장관들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쥐게 되었고 그에게 아첨하고 모든 것을 그의 덕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배우는 척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순응과 비열,찬양적이면서도 의존적이며 아첨하는 방법, 무엇보다도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것이 그를 찬양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독이 퍼졌다. 심지어 보통사람들 보다도 지능이 낮았지만 완전히 분별없지는 않았고 경험도 풍부한 왕자에게도 그 독이 미쳤다. 음악적인 지식도 좋은 목소리도 없으면서 그의 찬양으로 가득한 오페라 프롤로그의 한 줄을 노래하곤했다. 그는 허영에 빠져들었다. 아주 깊게.
정식만찬에서 모든 궁정인, 음악가들 모두와 그는 음악에 반주에 맞추어 목소리를 죽이며 이와같은 찬양을 부르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공식적이었더라면 그는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비록 그의 지능이 보통사람들보다 낮을 지라도 그것은 교정될 수도 있었다. 그는 영광을 사랑했고 질서와 규칙을 좋아했다. 그의 성격은 신중했고 온화했고 분별력이 있었으며 그의 행동과 말을 통제할 수 있었다. 믿겨지는가? 그의 성격은 또한 선했고 공정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충분히 좋은 왕이 될 수 있는 자질을 주었다. 아마도 참을성이 있는 위대한 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성격 이외에서 잘못된 것 같다.
그의 조기교육은 너무나도 소홀해서 아무도 그의 집에 접근 할 수 없었다. 그는 종종 당시의 신랄한 말을 듣고 말했다. 어느날 저녁 그는 Royale 정원분수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거의 읽고 쓰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너무나 무식해서 대부분 친근한 역사적 사실이나 그외의 것들을 완전히 몰랐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대중 앞에서도 가장 상스러운 무식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스페인왕의 죽음을 핑계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그의 영광에 대한 허영심과 욕망 때문이었다. 결혼 동맹이라는 가장 최근의 절제와 주의 깊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플랑드르로 행진해 들어갔다. 그는 이곳을 빨리 정복했다. 라틴강의 횡단은 경탄 할 만 했다. 영국, 스페인 , 홀란드 3자 동맹만이 그를 고무했다. 한 겨울에 그는 엑스-라-샤펠 조약 평화기를 재건함으로써 프랑슈 콩트를 획득했고 ,그는 플랑드르 정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때는 제국내에 모든 것이 번영했었다. 모든 곳이 부유했다. 콜베르는 재정,해군,상업, 제조업 , 심지어는 문학에서조차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였다. 이 당시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처럼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인사들이 많았다. 심지어 향락에 있어서도. 그래서 우리는 이 군주를 위대하고 부유하고 정복적이며 유럽의 조정자로서 알고 있다. 정말로 명성을 떨칠만한 장관들과 대령들이 존재하던 한은 경외와 존경을 받았다. 이러한 재상과 대령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정치기구는 계속해서 얼마 동안은 그들의 영향으로 움직여졌다. 그러나 얼마후 우리는 표면 아래를 보았다. 결점과 실수들이 증가되었고 부패가 엄청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전제군주가 그렇게 모든일을 다 하려고하고 스스로 모든 일들을 지도하려고했으며,국내의 공포를 증가시킴으로써 해외에서의 불명예를 보상하려고하는 것에대해서 잘못이 지적되지도 않았다.
Enclos 양의 죽음 직후, 끔찍한 시련이 Louvois의 맏아들 Courtenvaux에게 일어났다. Courtenvaux는 친위대의 지도관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다. 비록 그가 점잖고 존경할 만했지만 어리석고 욕심 많고 싸움을 좋아했다. 요컨데 그는 매우 어리석은 자였다. 상식이상으로 통행자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기를 원했던 왕은 Bontemps에게 문과 공원 정원의 배치권과 스위스 용병 고용권을 주었다. 이러한 수행원들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복도와 통로 계단 심지어 사적인 장소까지도 순찰하도록 명령받았다. 날씨가 좋으면 정원과 뜰도.
또한 비밀리 사람들을 감시, 미행해서 그들이 가는 장소를 알아내고 누구와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그들의 대화내용을 엿들어 캐낸 것을 왕에게 보고하도록했다. 이러한 일은 베이사이유, Marly,Trianon, Fontainebleau와 왕이 있는 모든 궁에서 주도면밀하게 행해졌다. 이러한 새로운 수행원들은 Courtenvaux에게 상당히 거슬렸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한 새로운 유입자들에 대한 통제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Fontainebleau 에서는 원래 친위대와 근위대의 방을 새로운 군대가 완전히 차지했다. 그 방은 성안의 모든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공개 논쟁장 안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곳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감시하기에 매우 적당한 곳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로인해 점점 성가시게 된 Courtenvaux는 이 새로운 군대를 그의 권위에 대한 새로운 잠식이라고 간주했고 새로운 군대에게 격렬한 분을 터트렸고, 그들에게 단호히 욕을 퍼부었다.
신병들은 Courtenvaux가 노발대발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았다. 그들은 규칙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너무나 영리해서 Courtenvaux의 분노로 방해를 받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을 들은 왕은 즉시 Courtenvaux를 불렀다. 그가 방에 들어오자 마자 그가 다가올 겨를도 없이 방의 저쪽 끝에서 왕은 그에게 소리를쳤다. 분노가 너무나 심해서 그와 그 방안에 있던 왕자와 공주 그리고 모든사람들이 모두 떨었다. 왕으로부터 물러가라는 위협과 가장 심하고도 엄청난 말이 그에게 빗발치듯 퍼부어졌다. Courtenvaux는 거의 공포로 기절할 것 같았고, 곧 땅에 엎드려서 무슨 말을 할 지 몰랐다. 그러한 질책은 왕의 "물러가라"는 말에 의해 끝났다. Courtenvaux는 명령을 따를 힘도 없었다. 이러한 이상한 사건의 원인은 Courtenvaux가 공연한 소란으로 왕이 일으킨 변화에 온 궁정인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사건의 목적은 뻔하다. 왕은 그의 스파이체제를 주도면밀하게 감추려고 했고 이런 변화가 알려지지 않기를 원했다. 그런데 Courtenvaux의 소란으로 모든사람들에게 알려지자 그는 미친 듯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던 것이다. Courtenvaux는 남은 여생동안 다시는 왕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 만약 그의 가문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분명히 추방되고 관직을 박탈당했을 것이다.
이 해 초에 Vatteville 신부가 죽었는 데 그의 깜짝 놀랄만한 삶으로 인해 약간의 소동이 일어났다. Vatteville는 프랑스 프랑슈 콩트집안의 작은 아들이었다. 초년기에 그는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수도사가 되었고 성직에 임명되었다. Vatteville는 매우 영리했지만 성급한 사람이었고 곧 신앙생활의 속박에 안달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신앙생활의 속박에서 벗어나 몇가지 세속적인 습관과 사격, 승마를 즐겼다. 그가 사다리를 이용해 수도원벽을 막 뛰어 넘으려는 바로 그 때, 수도원 원장이 그의 방에 들어왔다. Vatteville는 소란을 피우지 않고 곧 총을 쏘아서 원장을 죽이고 교묘하게 도망쳐 버렸다.
2,3년 후 전국을 떠돌며 가능한한 복잡한 곳은 피해다니던 중 그는 초라한 도로가에 있는 여인숙에 도착했다. 그는 창고안에 무엇이 있는가를 물었다. "양다리와 닭다리" "좋군" 이라고 제명된 수도승이 말했다. "그것들을 구워 주시오." 집주인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한사람 몫으로는 너무 많고 집에 있는 전부라고 대답했다. 이에 수도승은 벌컥 화를 내며 어쨌든 집주인은 그가 값을 치른 것을 그에게 주어야한다고 윽박질렀다. 그리고 그는 양과 닭다리를 모두 먹어치울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들은 난로가로 다가갔고 집주인은 감히 다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요리하는 동안에, 한 말탄 여행객이 여관에 도착했고 그것들이 1인분임을 알고 매우 놀랐다. 여행객은 Vatteville의 몫을 나누어줄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그 신사가 그것을 동의할지 모르겠다고 여행객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 여행객은 위층으로 올라가 공손하게 Vatteville에게 비용의 절반을 낼테니 그와 식사를 같이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거절했고 곧 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그는 이 여행객도 수도원 원장처럼 쏴 죽였다. 그 후 그는 조용하게 내려와서 집주인과 온 집이 두려움에 떠는 가운데, 양과 닭다리를 먹었고 그 뼈를 손으로 뜯고 계산을 하고 다시 말을 타고 떠났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그는 터어키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성공하기 위하여 할례를 받고 터번을 쓰고 의용군에 들어갔다. 그의 신에 대한 불경이 그를 승진시켰고 그의 재능과 피부빛으로 그는 두드러지게 되었다. 그는 Bacha가 되었고 Morea에서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 되었다. Morea에서는 터키와 베네치아와의 전쟁이 있었다. 그는 사적인 이익을 늘리기 위하여 그의 지위를 이용하기로 하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대원수와 대화를 시작하면서 터어키의 비밀지역을 대원수에게 넘길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몇가지 조건이 있었다. 조건이란 그의 삶의 모든 범죄와 살인, 배교에 대해 교황으로 부터 면죄받는 것이었다. 샤르트뢰즈 수도회에 대한 보호조치와 다른 수도회에 대한 보호조치를 받았다. 또한 그의 시민권의 완전복구와 성직자로서 모든 종류의 성직록을 받을 자유를 얻었다. Vatteville생각에는 거래조건이 너무 좋아서 거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교회의 이익을 위해 교황은 Bacha의 모든 요구를 따랐다. 그는 자신의 조건이 받아들여질 것이 확실해지자 그가 단언했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실행했다. 그가 베네치아 군대에 투신한 직후 그는 이탈리아에 귀속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교황의 환대를 받았고 프랑스 콩테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갔으며, 샤르트뢰즈 수도회를 무시하며 즐겼다.
프랑스 콩테를 획득했을 때, 그는 황태후와 성직자와 잘 내통해서 Besancon 대주교직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교황은 그의 살인,할례, 배교의 이유를 들어 이에 강하게 반대했다. 왕은 교황 편을 들었고, Vatteville는 어쩔 수 없이 Baume의 수도원과 Picardy의 수도원에 만족하고 다른 이익 추구에 뛰어들어야만했다. 그가 항상 환대를 받는 왕궁에 들를 때를 제외하면, 그가 Baume 수도원에 머물면서 대영주처럼 좋은 사냥개를 키우고 좋은 음식과 즐거운 모임을 가지고 첩을 두고 살았다. 가장 강압적인 방법으로 그의 소작인과 이웃을 압제했다. 지사는 그에게 굴복했고, 왕의 특별명령에 의해 그의 마음대로 행동했다. 심지어 세금도 그의 마음대로 정했다. 그의 세금징수는 흔히 강압적이었다. 이러한 방법과 태도로 그는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종종 샤르트뢰즈 무리를 매질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샤르트뢰즈 수도원을 보러가는 것을 즐겼다. 그는 옴버(hombre)라는 카드놀이를 즐겼는 데 codille를 자주 획득해서 " codille주교 "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이렇게 항상 멋대로 하면서 상당한 지위를 누리면서 90까지 살았다. 그것이 바로 1706년 우리 군대의 역사였다.
상실과 불명예의 역사였다. 국고재화에 대한 그렇게 많은 수요로 보아 국고의 상태가 어땠는 지는 아마 짐작이 갈 것이다. 지난 2, 3년 동안 왕은 전쟁경비와 손해 때문에 매년 초에 왕께 바치는 선물을 삭감해야했다. 그가 보통 이방면으로 사용했던 금액은 35,000리브르였다. 1707년 이해에 10,000 리브르로 줄였다. 타격을 입은 것은 몽테스팡 부인이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왕궁을 물러나온 이후에 왕은 그녀에게 연간 20만 리브르를 주었다. 이 해에 왕은 그녀에게 단지 8리브르만을 줄 수 있다고 전언을 보냈다. 몽테스팡 부인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많이 나누어 주었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안할 뿐 이라고 말했다.
왕이 이러한 삭감을 단행한 직 후, 즉 1월 8일- Bourgogne공작부인이 아들을 낳았다. 기쁨이 대단히 컸지만, 왕은 Bourgogne가문의 장남 생일에 드는 엄청난 경비의 지출을 막았다. 이 당시에 돈에 대한 필요가 너무나 절실해서 왕은 보통사람들이 그러하듯 재원을 찾아만했다. Rodes라는 금광 투기업자는 피레네에서 광맥을 발견한 체 했었다. 그가 이러한 금광을 찾을 수 있도록 보조금이 주어졌다. 1800명의 인부가 함께 주당 1만 프랑을 생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연간 52만 프랑은 국가 세입의 상당한 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전혀 금이 나오지 않게되자 이 사업에 투자된 돈은 완전히 날리게 되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국가사업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 재정과 전쟁분야를 통솔하는 Chamillart는 이로인해 증가되는 문제와 고민거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여러 번 그는 이 두가지 일이 그에게 너무 벅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왕은 옛부터 재정과 전쟁분야간의 문제가 너무나 골치 아팠기 때문에, 일단 한 번 결합한 후에 다시 그것들을 갈라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마침내, Chamillart는 더 이상 그의 무거운 짐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우울증에 사로 잡혔다. 그는 현기증을 느꼈다. 소화도 안됐다. 그는 점점 말랐다. 그는 다시 왕에게 그의 의무에서 벗어나도록 애걸하는 편지를 썼고, 솔직히 그에게 약간의 휴식이 주어지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잘못되고 망쳐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항상 왕이 답장을 쓸 수 있도록 그의 편지에 많은 여백을 두었다. 그가 편지의 회답을 받았을 때, 이 편지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놀랐다. 왕의 친필로 이렇게 쓰여져있었다. "음- 우리 같이 망하세!" 지금은 돈에 대한 필요가 더욱 커져서 그것을 얻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이 채택되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세례세와 결혼세가 설정되었다. 이러한 세금은 가장 번거로우면서도 싫은 것이었다. 보기드문 혼란이 발생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이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지 않고 그들 스스로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정식절차 없이 그들을 결혼시킬 성직자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상호 동의하에 증인을 세우고 집에서 결혼을 했다. 이런 결과 더 이상 어떠한 세례명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세례와 출생에 대한 분명한 기록이 없었다. 내가 위에서 말한 이러한 방법으로 식을 올린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법적으로 보면 사생아였다. 그런 까닭에 이런 폐해의 탐색과 엄격한 시행이 한쪽으로 점차 편중되었다. 즉, 세금을 긁어 모으는 쪽으로 이러한 폐해가 증가되었다. 어떤 곳에서는 민중의 탄원과 불평이 폭동으로 이어졌다. Cahors에서는 사태가 너무 진전되어서,거기에 배치된 2개 대대가 무장한 농민을 진압하여 마을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스페인 전에 쓸 군대를 거기에 보내야만했다. 세금징수를 일시적으로 중단해야할 필요가 있었지만,Quercy운동이 잠잠해졌고, 함께 무장했던 농민들이 그들 마을로 돌아가게 된 것이 큰 문제였다.
농민들은 Perigord에서 봉기해서 관청을 약탈하고 그들 스스로가 작은 마을과 몇몇 성의 주인이 되었고, 신사들로 하여금 그들을 상전으로 받들도록하였다. 농민은 왕과 목사,영주들에게 기존의 세금은 내겠지만, 그외의 세금이나 괴롭힘은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언했다. 결국 온갖 괴럽힘과 부정으로 부정축재했던 세금징수자들에게는 유감이었겠지만, 세례세와 결혼세를 낮출 수 밖에 없었다.
절대주의는 왕의 뜻이 절대적인 것이고 이러한 절대권력은 프랑스에서 철저하게 시행되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루이 14세와 쟝 벱티스트 콜베르는 통치권의 최대한 확장을 위해 관료제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관료제를 통해 지방의정보가 베르사이유까지 흘러들어 왔고, 왕의 명령이 자방에까지 전달되었다. 절대주의 효율성 여부는 이 두가지의 효율성에 의해 결정되었다.
절대주의(Absolutism)
Ⅰ. 서 론
15∼16 세기까지 유럽의 각국은 근대사의 개막과 함께 절대왕정이 성립되는데 그래서, 이 시기를 절대주의(Absolutism) 혹은 절대군주(Absolute Monarchy)의 시대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물론, 절대왕정이 전형적인 정치 형태를 갖추고 고유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지만 이 시기는 봉건제의 위기가 표면화되면서 국내적으로는 종교전쟁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귀족들의 경쟁 그리고, 국외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국가간의 대립이 나타나는 시기였다. 또한, 지리상의 발견을 계기로 식민지 획득과 상품시장 개척에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즉, 이시기는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들과 변혁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시기인데 그 중에서도 절대왕정의 등장은 대표적인 정치현상의 하나였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 시기에 등장한 절대주의의 개념과 그 발생 과정을 분석하여 절대주의가 내표하고 있는 역사상의 성격을 알아보겠다.
Ⅱ. 본 론
1) 절대주의의 개념
절대주의는 "지배자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전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를 말하는데 전제주의(Despotism) 혹은, 참주정(Tyranny) 등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개념이다. 즉, 여기서의 절대주의는 일반적 의미의 전제주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사의 한 특정한 시대에 출현한 정치형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물론, 왕권신수설에 입각한 절대왕권정치는 이집트의 전제군주나 로마의 황제체제에서 이미 나타나기는 하지만 가장 과장된 형태와 세련된 이론으로 합리화된 것은 17세기 유럽의 그것이다.
절대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오래 전부터 주장되어 온 것은 계급균형론 내지는 과도 정부론이었다. 이 견해는 구귀족 및 영주의 몰락과 부유한 상인을 중심으로한 시민계층의 등장을 중시하여 절대왕정은 이 상호 대립되는 귀족과 시민의 양 균형위에서 그 양 계급의 조정자로서 독자적이고 초월적인 권력을 보유하는 과도적, 예외적 국가형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봉건사회로부터 근대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가교의 시대라고 말 할 수도 있는데 봉건제도 그 자체를 완전히 해체하거나 폐지한 것이 아니고 영주와 교회의 권력을 절대군주에게 통합시키고 또한 신흥시민계급의 지지를 받아 그 위에 군림하는 정치형태인 것이다. 그래서, 왕권은 제후들로부터도 또한 시민들로부터도 제한을 전혀 받지 않는 절대적 존재로 등장하여 그 이전부터 있어온 신분제의회마저도 그 기능이 점차 정지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절대군주에게 집중화된 절대권력은 봉건영주와 교회의 권력에는 대립되는 것이나, 봉건제도 그 자체를 폐지한 것은 아니었다. 즉, 이러한 권력의 집중은 봉건제도를 민족적, 전국적인 대규모로 재편성한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집중화된 절대왕정의 정치권력은 그 본질상 일반 개개의 영주와 교회의 정치권력 즉, 지방분권적 정치권력과도 상반되는 것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인 정치형태인 자유주의의 정치권력과도 대립되는 개념이다. 물론, 절대주의의 정치권력은 통일민족국가를 형성하여 봉건적 신분관계를 대신하는 시민적인 자유평등의 토대를 닦고 중상주의에 의하여 Guild 제도를 Manufacture 체제로 전진시킴으로서 시장의 확대를 초래하는 등 자본주의적 발전을 허용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절대주의의 정치권력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으며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시민계급 그 자체의 발전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정치권력은 봉건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에 모순된 일종의 기형적인 권력형태였다.
2) 절대주의의 성립과정
① 중세의 유럽
절대주의가 등장하기 이전 유럽의 중세사회는 봉건귀족들이 국내에 할거하여 정치권력은 분산되어 있었으며 국왕은 그들 귀족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데 지나지 않았고 대귀족들은 국왕의 행동을 제한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국왕을 제거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귀족이외의 중세인들은 자신이 어느나라의 국민인가에 대한 자각은 없었고 오직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였으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국민이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속한 작은 공동체의 일원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던 질서도 오직 신분제의 원리뿐이었다.
이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귀족, 서민이라는 신분 또는 그 신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집단에 속하고 그 집단에 주어진 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개인으로서는 누릴 수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신분사회는 개개인보다 단체가 우월한 사회였다. 그리고, 이 시대의 주요한 공동체인 동업조합, 마을, 도시 공동체들은 각각 고유한 규칙과 권리를 오랜 역사에 의해 길러진 관습으로부터 부여받고 있었다. 이처럼 중세의 유럽은 분산되고 신분제적인 질서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였다.
또한 중세에 있어서의 정치적 지배권력은 사적인 토지지배에 기초를 두고 있었으므로 영주가 영민에 대하여 직접적인 정치지배를 하고 군주에게는 그 권한이 없었다. 즉, 군주의 신하에 대한 권력적 지배관계는 관념적이고 간접적이었으므로 절대주의 성립이전의 권력구조는 지방영주들에 의한 다원적이고 분열적인 것이었이며 각 정치단위는 독립적이었다. 그러므로, 군주는 영주권을 구속하고 영지의 내부까지 간섭할 강력한 권력을 갖추지 못한 예의상 또는 종교상의 존재였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경제분야에 있어서도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나타났는데 중세시기 동안의 경제는 각 영주들의 장원 내부를 중심으로 농업을 바탕으로한 독립적이고 자급자족적인 경제활동이 전부였다. 물론, 일부의 도시를 중심으로 소규모의 수공업과 상업 활동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 역시 길드와 같은 수공업자 혹은 상인들의 공동체를 정점으로 이루어지는 폐쇄적이고 독립적인 활동이었다.
② 중세의 위기
이상과 같은 중세사회는 13세기 초반에까지 팽창과 발전을 지속해 왔으나 13세기 후반∼14세기에 이르면서 정체 내지 쇠퇴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개간 가능한 숲과 황무지가 바닥나자 인구에 비하여 토지의 부족이 심화되어 갔고 지력의 쇠퇴, 등으로 인해 생산성도 낮아졌으며 기아와 질병에 의한 인구의 감소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무엇보다도 이 시기 지배계급의 소비수준이 전투장비와 사치품 구입 때문에 수입을 초과함으로써 다수의 영주들이 재정적 위기를 겪는 14세기초 "중세의 위기현상"이 나타났다. 즉, 이것은 봉건적 생산양식이 가지는 구조적인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봉건적 생산력이 더 이상의 인구를 수용할 수도 없고 지배계급의 수입증대 욕구도 충족하지 못 하는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봉건제 자체의 구조적인 위기와 함께 1347년 이후로는 흑사병(Black Death)이라는 파국적인 국면이 중첩되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시작하여 전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인구의 격감과 노동력의 심각한 부족을 야기시켰다. 그리고, 이에 따른 식량수요의 감소는 곡가의 하락과 노동임금의 상승을 초래하였고 그래서, 이러한 위기는 소득 분배를 둘러싸고 지배-피지배계급간의 대립과 계급갈등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된 지배층의 가혹한 정책들은 농민과 수공업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게 되어 1323년 플랑드르(Flanders)지방의 반란, 영국의 외트 타일러(Watt Tyler)반란, 스페인의 까탈로냐(Catalonia) 반란 등 대표적인 농민, 수공업자들의 투쟁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며 14∼15세기에 이르자 장원제 자체가 붕괴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주들은 곡가하락, 지대하락, 임금상승, 농민의 반발에 따른 노동력확보 블능 등으로 인해 현금을 받고 직영지를 임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이것은 결국 중세의 장원제적 농업 경영의 사실상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장원제적 제반 질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또한 시민층의 성장을 촉진하고 자연경제에서 화폐경제로의 전환을 촉진시켰으며 자영농민의 출현으로 인한 농민의 사회적 지위의 향상은 봉건제도의 존립기반에 동요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③ 절대주의의 등장
앞서와 같은 유럽 사회 내부의 변화와 함께 유럽 사회 외적으로도 십자군전쟁 이후 세계로의 통로가 개척되고 15세기에 이르러 지리상의 발견등으로 항해와 무역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자 봉건사회의 붕괴를 더욱 촉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은 더욱높은 단계로 발전하여 유럽인의 시야를 더욱 넓히고 유럽인들의 경제적인 활동은 지중해에서 벗어나 전세계로 확대된다.
이러한 경제적 활동권의 확대는 상업적 활동을 더욱 촉진시켜 새로운 중산계급을 낳게 하였다. 즉, 상업자본의 발달은 봉건적인 사회관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근대자본주의 발달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신대륙에서 유입되는 막대한 양의 귀금속은 자본주의의 발달에 불가결한 화폐의 공급을 촉진하였고 아울러 새로운 시민계급을 나타나게 하였으며 이러한 상업상의 변동은 지금까지의 Guild체제 경제에서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Manufacture체제로의 전환을 야기시켰다.
이상과 같은 사회 경제적인 변화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나타났는데 앞서 설명된 "중세의 위기"는 서민층 뿐만 아니라 귀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즉, 화폐경제의 신장과 서민층의 지위향상등으로 인한 지배층의 동요는 지배층 내부의 분열을 초래하였고 이러한 위기가 내란이라는 권력투쟁을 초래하였으며 또한 이 내란이 봉건귀족의 몰락에 박차를 가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절대군주의 후보자들은 평화와 질서를 요구하는 소리에 부응하여 여러 가지 상호대립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외관상으로는 조정자로서 등장하여 내란의 종지부를 찍고 절대주의국가를 성립시켰다.
유력한 귀족중의 한 사람이 조정자를 자처하며 절대군주로 등장하는 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귀족들의 분열과 함께 성장하는 시민층 및 농민들의 협력이라는 요소가 절대왕정의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즉, 조정자로서의 절대군주는 귀족들 사이의 분쟁에 대한 조정자일 뿐만 아니라 귀족들과 서민들사이의 계급적 투쟁에 대한 조정자로서도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력의 성장과 함께 사회적 신분의 신장도 함께 추구하는 서민들의 요구는 영주에 의한 직접적인 지배보다는 한 사람 군주에 의한 간접적인 지배를 선호하게 되고 여러 귀족들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의 성립을 원하는 군주는 이러한 서민층의 원조에 힘입어 다른 귀족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이 과정에서 시민층은 자신들의 무역과 상업의 이익을 계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하여 그리고, 농민들은 영주로부터의 봉건적인 제제와 착취를 막는 수단으로서 절대군주를 영주들의 직접 지배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패로 생각하여 군주에게 협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주는 서민층이 보유한 경제적 힘을 자신의 강력한 무기로서 이용하여 다른 귀족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강력한 실권을 가지게 된 군주는 그의 절대권을 확립하는 수단으로서 다시 영주들에게도 손을 뻗어 정략적 외교수단, 통혼 등으로 점차 봉건영주들의 권한을 빼앗고 그들로 하여금 영지에 대한 직접적인 행정권을 포기시키면서 그들을 귀족화하엿고 성직계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방법을 취하였다.
이로서, 봉건제 기간동안 분열되고 독립적이었던 정치, 경제, 사회 체제는 종식되고 민족적이고 단일한 국가가 나타나고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게 된 군주는 무역과 상업을 촉진하여 거대한 부를 형성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많은 식민지와 해외발전을 보게되지만 서민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군주는 그들이 바라던 진정한 자신들의 보호자로서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것은 투쟁에서 승리한 군주가 지방의 영주들을 궁정 귀족화 시키고 자신의 관료제 체제속에 편입시킴으로서 여전히 그들에게 지배층의 위치를 점유하게 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Ⅲ. 결 론
역사상에서 나타나는 절대주의 국가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관료기구, 상비군, 공통된 법체계, 국민적 조세제도 등은 모두 근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과 말접하게 관련된 듯 보인다. 그리고, 이 때문에 절대주의 국가의 성격에 관해서는 일정한 한계 안에서나마 그 근대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래서, 근대사의 기점을 절대주의 국가의 성립에서 찾는 서유럽 각국의 정치사 서술은 물론 맑스주의 역사학에서도 절대왕정의 존립기반이 봉건귀족과 부르주아지의 힘의 균형에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즉, 절대군주는 양 세력 사이의 균형추 역할을 함으로써 스스로 공권력을 강화해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주의의 지배세력이 자본주의의 추진체제인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에 전반적으로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절대주의 체제는 농노제적 사회체제의 해체에 직면한 봉건지배세력이 그와 같은 경제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스스로 재편성한 봉건국가의 최종형태였다. 농노제가 약화될수록 개별적으로 농민의 잉여를 수탈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으며 이에 따라 그들은 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중적인 지배기구를 통하여 전국적인 차원에서 일반민중의 잉여를 수탈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즉, 절대국가의 전국민적인 과세는 집중된 봉건지대인 셈이다. 그리고, 근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알려진 여러 제도들도 전국적으로 직접생산자들을 지배하고 그들의 잉여를 수탈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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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 문 헌
박 무 성, {서양근대사총론}, 법문사, 1992
배 영 수, {서양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1993.
페리 앤더슨, 김 현 일 역, {절대주의 국가의 역사}, 소나무, 1993
조 경 래, "Europe Absolutism 시대에 관한 연구", {상명여사대논문집,5}, 1976
________, "Absolutism의 특성", {사 총 7}
________, "Absolutism의 특성Ⅱ," {사 총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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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3년에서 1715년에 걸친 루이 14세의 치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길고 위대한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에 프랑스는 자신의 권력을 유럽 대륙의 모든 경쟁자들 사이에서 최상의 위치로 굳건하게 세웠으며 동시에 프랑스의 문화를 서구세계에서 지배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교양인들 사이에서는 프랑스어가 라틴어를 대신하여 일상어로 자리잡았으며 베르사이유 왕궁은 전 유럽에 걸친 소군주국의 모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 모든 것들은 외관상으로는 루이 14세와 그의 재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정부 체계의 결과로 보인다. 태양왕의 정부는 왕은 절대적이라는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즉, 국가내에 왕의 권력을 제외한 다른 어떠한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권력은 신으로부터 왕에게 주어진 것이고 왕은 이 권력의 사용에 대하여 오직 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왕은 과거 로마의 가장(家長)처럼 글자 그대로 그의 백성들의 아버지이고 그의 "자녀"들에 대한 생사의 권한을 가졌다.
놀랍게도 절대주의는 적어도 루이의 치세 초기 단계에서는 완벽하게 받아들일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한 우리의 놀라움은 그 대안들을 연구할 때 사라지게 된다. 거의 두 세대동안 프랑스는 특히 가혹하고 잔인한 동란과 종교전쟁에 의해 몰락하였다.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 위그노파 - 는 그들에게 일련의 특권을 주도록 왕권을 강요할 수 있었고 이러한 특권으로 인해 프랑스의 일부 지역에서는 반독립적인 프로테스탄트들의 지역을 형성하곤 했다. 루이 13세의 재상인 추기경 리셜리외는 위그노들의 독립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들은 1660년 루이 14세가 22살의 나이로 실질적인 지배력을 획득한 시기에도 여전히 프랑스 국가의 본체로부터 떨어져서 존재하고 있었다. 위그노들의 정치적 특권을 수립하게 했던 전쟁은 오직 종교적인 문제로만 싸웠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중세동안 왕권을 공유했던 대귀족 가문들은 화약과 같은 군사적인 혁신과 중산층 혹은 부르조아지의 재정적인 지원에 의해서 나타난 왕의 증가한 권력에 대해 점점 더 시기하였다. 루이 14세가 어렸던 시기에 이러한 질투는 또 다른 내란으로 분출하였는데 이번에는 왕에 대항해서 나타난 귀족들의 야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프롱드 혹은 당시에 불리웠던 것처럼 "침실용 변기의 전쟁"은 희극적인 전쟁으로서 통치에 대한 귀족들의 총체적인 무능함을 완전히 드러낸 전쟁이었다. 또한, 분명히 나타난 것은 정부의 합법적인 진행을 혼란시킬 수 있는 귀족들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바로 이 점이 프랑스인의 대부분에게 충격을 주었다. 한 사람의 강력한 왕이 내부의 평화와 규율 그리고 안정을 보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절대적인 권력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그렇게 되었다.
루이에게 귀족들의 위협은 명백한 것이었다. 그는 프롱드난 동안 어린 시절 그의 침실에 적대적인 사람이 침입한 것을 일생동안 기억하고 있었고 다시는 그러한 le"se majeste"(최고 반역)를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맹세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에 착수하였고 이것은 프랑스 내의 모든 경쟁적인 권력들로 하여금 제거되거나 혹은 왕의 통재하에 들어오게 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위해 왕은 먼저 귀족들을 복종시켜야만 했고 이 일은 베르사이유의 거대한 궁전이 건설되는 것으로 끝이 났는데 이 곳에서 루이는 모든 중요한 귀족들을 기거하게 할 수 있었고 문자그대로 그들을 눈 아래에 둘 수 있었다. 이것은 루이의 천재적인 정치적 재능의 특징인데 이를 통해 그는 사실상 중요한 귀족들을 베르사이유에 불러 모으고 그의 치세동안 그 귀족들을 복종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지방을 통치하기 위해 루이와 그의 재상 콜베르는 왕에게만 책임을 지는 관료제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이 관료제 조직을 통해 흘러나온 모든 정보는 루이와 콜베르에게 이르렀고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루이는 프랑스 국가전체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통제를 행사하였다.
17세기 프랑스 정부에 대해 숙고하면 즉각적으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 번째는 실제적으로 루이가 얼마나 절대적이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그 명령들이 실행되는 것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었던 베르사이유에서 명령을 내리는 것이 한 가지였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일련의 명령계통을 따라 밑으로 전해져야만 하고 왕의 면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수행되어야만 하는 명령을 내리는 일이었다. 루이는 과연 그가 생각하던 만큼 절대적이었을까?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절대권을 희석시킨 사람들을 누구였는가? 그들은 어떻게 이것을 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큰 문제없이 이루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잇는 사료들에 대해 질문되어야할 것이다.
두 번째로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절대권력이 집중했던 그것의 사용에 대한 문제이다. 의심할 바 없이 1660년에 프랑스인 전체는 절대권력을 좋은 것으로 느꼈다. 하지만, 1715년에도 여전히 그들이 그렇게 느꼈을까? 루이는 진정으로 그의 국민에 대해 "아버지" 였을까? 아니면 문자 그대로의 "폭군"이었을까? 루이 14세의 치세는 누구에게던지 - 루이 14세와 같이 능력있고 열심히 일한 왕조차도 - 절대권력을 현명하게 행사할 수 있다고 맡길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정치 이론에 대한 몇몇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The Theory of Absolutism
Jacques Benigne Bossuet(1627-1704)는 주교이고 대중설 교가이며 루이 14세의 재위 시기에 세자의 교사였다. 그의 정치 저술들은 왕권신수설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다.
성서의 말씀에서 나온 정치들
세자저하에게
신은 왕중의 왕입니다. 그리고, 왕들을 가르치고 왕들을 대리인으로 조직하는 것은 그의 직무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성경을 통해 왕들에게 주는 교훈을 잘 명심하십시오. 저하. 그리고, 신으로부터 왕의 통치의 기본이 되어야하는 규칙들과 예들을 배우십시오.
1권
국가를 형성하고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안 1
사람들이 동일한 국가에 거주하거나 동일한 언어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열정의 폭력성으로 인해 비사교적이 되기 때문이고또, 서로 다른 기질 때문에 서로서로 용납하지 않으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 전부를 규제하는 하나의 정부에 그들 모두가 속하지 않는 한 하나로서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없이는 아브라함과 롯이라도 함께 살아갈수 없을 것이고 떨어져 살 것을 강요받을 것입니다.
만일, 서로 가까운 가족인 두 사람이 즉, 아브라함과 롯이 그들의 하인들 때문에 서로 같이 살아갈 수 없다면 더 좋지 않은 상태의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떤 종류의 혼란이 일어나겠습니까?
정의는 다름아닌 권위와 권력에의 복종으로만 유지됩니다.
바로 규율이 지나친 자유를 제한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자신의 욕망만으로 스스로를 통제한다면 모든 것이 혼란으로 끝나버릴것입니다.
* * *
제안 3
오직 정부의 권위에 의해서만 사람들 사이의 화합이 이룩될 수 있다.
이러한 정당한 명령의 효과는 성경에서 자주 언급된 다음의 말들로 잘 나타납니다. 사울의 지휘권과 정당한 권력의 지휘권에 대해 "모든 이스라엘은 한 사람처럼 복종했다. 그들은 사천명이었고 그 모든 군중이 마치 하나와 같았다." 이것은 각각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지를 포기하고 그것을 군주나 최고위자의 의지로 가져가 그것과 결합할 때 사람들의 통일성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반면에 통일성이 없다면 사람들은 흩어진 양떼처럼 방랑자로서 헤메일것입니다.
* * *
제안 5
정부의 수단에 의해 각각의 개인은 더욱 강해진다.
그 이유는 각각이 도움을 받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모든 힘은 하나로 집중되고 최고위의 지도자는 그것들을 재조직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최고위의 지도자는 그에게 스스로 복종할 것을 감수하는 국가 내의 모든 힘들을 그의 손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개인은 억압이나 폭력으로부터 방해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군주라는 무적의 보호자를 가지고 있고 군주는 그 개인을 억압하려는 시도를 하는 그 어떤 이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최고위 지도자의 고유한 관심은 힘으로 국가내의 모든 개인을 지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의 것이 아닌 다른 힘이 사람들 사이에서 우세하다면 그의 권위와 그의 생명은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 * *
제안 6
법은 신성불가침한 것이다.
법의 성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에 대해 잘 말한 모든 이들이 그것의 기원을 생각했다면 점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즉, 법의 기원은 조약이며 엄숙한 협정인데 이것을 사람들은 그들의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군주의 권위하에서 동의하였읍니다.
법의 권위는 사람들의 동의와 목인에 의존한다고 언급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위치 때문에 공공의 이익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관심도 없는 군주는 국가내의 현명한 이들의 도움을 받았고 지나간 세기들의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2권
제안 7
왕정은 가장 일반적이고 오래된 그리고, 가장 자연스러운 정부 형태이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정부의 존재로서 왕정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모든 나라들처럼 우리를 재판하기 위해 왕을 만들어주소서"
만일 신이 불쾌했다면 그것은 그때까지 그가 스스로 백성들을 통치해왔고 또 그가 백성들의 진정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이 사무엘에게 "그들은 너를 거부하지 않았지만 나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에 덧붙여서 이 정부는 매우 분명히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초기부터 모든 민족들에게서 발견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스러운 역사에서 보았지만 이교도들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아도 공화국에서 사는 이들조차 처음에는 무엇보다도 왕의 치하에서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로마는 그러한 방법에서 시작했고 종래에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인 왕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스의 도시들이 그들의 공화국을 형성한 것은 오직 그 후에 조금씩 조금씩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스의 오래된 견해는 호머에 의해서 일리어드에서 표현된 유명한 문장입니다. "많은 군주는 좋지 않은 것이다. 오직 한 사람의 군주와 한 사람의 왕만이 존재하게 하자."
지금 현재 한 때 왕정의 아래에 있지 않았던 공화국은 없습니다. 스위스는 오스트리아 왕가의 군주들의 지배를 받았고 프로방스 연맹은 부르군디 가문과 스페인의 지배에서 이제 막 벗어났을 뿐입니다. 독일의 자유도시들은 전체 독일 공동의 우두머리인 황제가 아니라 그들 각각의 지배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루돌프 황제 시기에 스스로 공화국으로 바뀐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실상 자신들의 자유를 황제로부터 구입했습니다. 건국에서부터 공화국이었다고 자랑하는 베네치아 조차도 황제의 지배를 받았는데 샤를르마뉴 치하에서부터 그 이후 오랫 동안 그러했습니다. 그 이후 베네치아는 인민국가가 되었고 그로부터 오늘 날 우리가 보는 국가가 된 것은 최근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두가 왕정으로 시작했고 그리고, 거의 대부분이 그것을 가장 자연스러운 정부의 형태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지배에는 그것의 모델과 근거가 있음을 이미 보았고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자연이 스스로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지배받는 백성으로 태어나고 그들을 복종하게 길들이는 온정적인 권위는 또한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한 사람의 우두머리만을 가지도록 길들입니다.
제안 8
왕정이 최선이다.
만일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그 결과로 이것은 가장 지속적이고 또, 그로 인해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국가 최악의 해악이고 가장 분명한 몰락의 원인인 분열에 가장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 자신에 대항해 분열되는 왕국은 몰락에 이르게 되고 그 자신에 대항해 분열되는 모든 도시 혹은 가문은 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우리 전하가 정부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따랐다는 것을 보았고 또한 전하께서는 왕령지와 도시들에게 자연이 가족들 속에 심어주었던 것과 같이 그들 스스로를 통합해주는 동일한 수단을 보여주기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일 가족들이 국가의 일부가 되기 위해 연합하려 할 때 그들이 거의 자동적으로 그들에게 적합한 정부에 합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국가가 형성되었을 때 연합하려는 충동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한 사람의 지도자 아래에 있는 것 이상의 연합이 없었고 또한, 이 경우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행해지므로 그것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3권
왕실 권위의 본질과 특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는 장.
제 1항
왕실의 권위에는 네 가지의 성격 혹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로 왕실의 권위는 신성한 것입니다. 둘째로 그것은 온정적인 것이고 셋째, 그것은 절대적이며 넷째 그것은 이성에 의한 지배입니다.
제 2 항
왕실의 권위는 신성한 것이다.
제안 1
신은 왕들을 그의 대리인으로 삼고 그들을 통해 백성을 다스린다.
우리는 이미 모든 권력이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덧붙여 성 바오로는 "군주는 너에게 좋게 하는 신의 대리인이다. 그러나, 만일 네가 악한 일을 행한다면 그가 검(劍)을 헛되이 지니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가 신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죄악을 저지른 이에게 천벌을 내릴 복수를 두려워하라"
그래서, 군주는 신의 대리인처럼 그리고, 지상에 있는 그의 부관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그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왕실의 옥좌가 인간의 옥좌가 아니라 바로 신 그 자체의 옥좌임을 보았다.
그래서, 신은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고 비록 더욱 특별하고 더욱 명쾌한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했지만 그들의 왕을 모두 주었읍니다.
제안 2
왕이라는 인물도 신성하다.
왕이라는 인물도 신성하고 그의 목숨을 노리는 시도를 하는 것은 신성모독입니다.
신은 마치 그가 자신의 제사장과 축성된 제단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언자들로 하여금 왕들에게 축성된 기름을 부어 그들을 신성하게 했읍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기름 부음이 없이도 왕들은 신성한 위엄을 대변하는 존재라는 그의 임무로 인해 여전히 신성하고 그의 계획을 실행하는 섭리에 의해서 대리됩니다.
그리스도의 직함이 왕들에게 주어졌고 그들은 어디에서던지 그리스도들이라 불리거나 혹은 신에 의해서 기름으로 축성받은이들이라 불립니다.
3 항
왕실의 권위는 온정적인것이고 그 고유 성격은 선량함이다.
이미 언급된 것들에 비추어 이 진실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왕은 인류의 진정한 아버지인 신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 존재한 최초의 권력에 대한 생각은 아버지의 권력에 대한 것이었음도 보았고 또 왕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남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은 공공의 권력에 대해 행하는 복종이 십계명 중에서도 오직 그들의 부모를 공경하게 시키는 격언에서 발견된다는 것에 일치합니다.
그래서, 이로부터 왕의 이름은 아버지에 대한 이름이고 선량람은 왕의 가장 자연스러운 특성임이 당연한 결과로 나타납니다.
제안 3
군주는 백성의 필요를 충족하여야만 한다.
백성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왕실의 권리입니다. 군주의 부담으로 이일을 떠맡는 사람은 왕의 위엄도 떠맡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바로 그 말이 확립된 이유입니다. 백성들을 돌보아야 하는 의무는 군주가 그의 지배민에 대해서 가지는 모든 권리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백성들은 그들이 필요할 때 군주에게 의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4권
1항
왕실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이 말을 혐오하고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은 절대적인 정부와 자의적인 정부를 혼동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이 두 가지 보다 더 명료한 것은 없습니다.
제안 1
군주는 자신이 명령란 것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지지않는다.
"나는 너에게 왕의 계명과 신의 선서에 관한 것을 준수하라고 충고한다. 신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경솔하지 마라. 그리고, 사악한 것들편에 서지마라. 왜냐하면 신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기 때문이다. 왕의 말이 있는 곳에 권력이 있다. 누가 감히 신에게 네게 한 일들을 이야기하겠느냐? 그만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사악한 것들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 절대적인 권력없이 왕은 선한일을 할 수도 없고 사악한 것을 누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권력이 아무도 그로부터 탈출하기를 바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되어야 하고 결국에는 공공의 권력에 대한 개인의 유일한 방어는 그들의 순진함이어야 합니다.
군주는 그의 책무에 의해 백성들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그의 위대함으로 인해 사소한 이해의 위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더나아가 그의 모든 위대함과 자연스러운 이해심은 백성들이 보존하여야하는 것입니다. 한 번 백성들이 그를 저버리면 그는 더 이상 군주가 아닙니다. 따라서, 국가 자체의 위대함과 보존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국가의 모든 권력을 주는 것보다 나은 일이 없습니다.
제안 4
왕은 이것으로 법위에 서 있지는 않다.
"너희는 모든 슬기로움으로 왕을 너희들의 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해 말(馬)을 늘리지 않을 것이고 아내를 늘려 그의 선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금과 은을 자신을 위해 크게 늘리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그가 왕국의 왕좌에 앉았을 때 그는 이 법을 그 이전에는 사제들의 것이었던 것에서 벗어나서 한 권의 책으로 그를 위해 적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그와 함께 두고 그것을 그의 생애동안 매일 읽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 주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배울 것이고 이 법의 말씀들과 백성들에게 행해야 할 규범들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을 통해 그의 마음은 그의 동포들위에 서있지 둽을 것이고 그는 오른 손 혹은 왼손에 대한 계명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의 왕국에서 그의 치세와 그 자신 그리고, 그의 자녀의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법은 종교만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고 다른 이들 만큼이나 혹은 그의 의지의 정당함으로 인해 다른 이들보다 더 군주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왕국의 법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이 점이 군주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왕들은 따라서 다른 사람들처럼 법의 공정성에 지배를 받는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명정대해야 하고 또, 그들은 백성들에게 정의를 수호하는 본보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법의 형벌을 받는 대상은 아닙니다. 즉, 신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들은 법의 지배를 받는 대상이지만 법의 강제적인 권력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법의 지도적인 권력에 지배받는 대상입니다.
루이 14세가 그의 후계자에게 보내는 편지
루이 14세는 자신의 왕정의 진행에 대해 기록한 일지를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는 자신이 일상을 통해 배운것들에 대한 교훈을 그의 계승자들에게 전해주는 것에도 관심을 가졌다. 다음의 글은 나이 22세에 그가 최초로 국가에 대한 전체적인 지배 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신이 달성한 것들에 대한 회고 를 하고 있는 그의 왕정 마지막까지의 기간동안 그가 생각한 바를 보여주고 있다.
나의 몇몇 노력들, 특히 내가 가장 크게 관심가지는 것이라 스스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많은 그리고, 그 모두 중요한 이유들이 나로 하여금 나의 왕실과 나의 주된 행동들에 대한 이 회상록을 너에게 남기게 결심시켰다. 나는 단 한번도 모든 온정적인 애정을 스스로 느끼는 왕들이 예시와 깨달음으로서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아버지들의 공통적인 의무로부터 제외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반대로 너와 나, 우리가 위치한 이러한 높은 계층에는 개인적인 의무에 공적인 의무가 더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받고 있는 모든 존경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풍부함과 광채 - 이것들은 단지 우리에게 맡겨진 국가와 백성들에 대한 관리라는 직무에 대한 보상으로 하느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다 - 의 가운데에서 이 고민은 만일 우리가 우리 다음에 통치할 이들에게 우리들의 모든 교훈을 전달함으로써 우리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결코 고상한 것일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목적에서 내가 지구상의 누구보다 너와 결과적으로는 또, 내 백성들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나보다 더 능력 있고 경험있게 통치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며 또, 그렇게 프랑스를 통치한 사람은 더욱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위치가 높아질수록 그 위치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해하거나 조망할 수 없는 것들의 수효는 많아진다고 너에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자주 내가 경험한 것들 즉, 네 주위에서 제마다 자신의 목적으로 너를 압박하는 군중들, 무관심한 조언을 발견함으로써 네가 겪을 어려움에 대해 고려하였고 너에 대한 것 이외에는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고 또 너의 위대함에 대한 열열한 바램 이외에는 어떠한 바램도 가지지 않은 아버지에게 네가 느낄 수 있는 완전한 자신감을 또, 생각하였다.
* * *
그래서, 나는 왕의 조건 - 이 점에서는 힘들고 엄격한- 에 대한 몇 가지 생각할 점을 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왕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전세계와 이후 세기에 대해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공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은 잡다한 그 모두를 자신들의 크나큰 이해들에 대한 희생없이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자신들의 통치에 대한 비밀스러운 이유들을 노출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리고, 내 왕국의 안팎에서 내가 맡았던 얼마간 중요하고 주목할 만한 일들이 언젠가는 작가들의 열정과 재능에 지금과는 다르게 작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충실하게 옮겨지지 않거나 나의 계획과 그 동기들을 잘 예측하지 못 하여 실수하거나 잘 못 해석될 경우를 대비해 나는 이 회상록 안에서 역사를 바로잡을 수단을 포함시킨것에 대해 너에게 사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직 마음이 작은 사람과 늘 실수하는 사람만이 다시는 실수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고 더욱 더 자주 성공할 만한 장점을 지닌 이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는데서 일종의 관대함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나는 내 좋은 의도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조차 그것들을 너에게 왜곡없이 설명할 것이다.
* * *
나는 국가내의 모든 서로 다른 파벌들에 눈을 돌리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전혀 관심없이 본 것이 아니라 경험의 시각을 가지고 보았으며 나에게 떠맡기를 강요하지 않는 것에는 강하게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그 일들의 조건과 이유가 허용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주의깊게 보았다. 모든 곳에 무질서가 있었다. 나의 궁정은 전체적으로 네가 발견하리라 믿는 정서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귀족들과 관리들 그리고, 장관들은 계속되는 음모에 익숙해져 있었고 장관들은 그러한 음모와 그것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에 대해 혐오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모든 것들에 대해 가공의 권리를 행사했다. 통치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도시의 지사들은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기대하고 두려움을 가지게 했던 어떠한 요구도 과거의 불만과 불만스러운 이들의 미래에 대한 암시없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친절은 이 사람·저 사람에 의해서 기다려지기보다는 요구되어졌고 강요되어졌고 언제나 무시하지 못 할 것이었으며 더 이상 한 사람에게 매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은 더 이상 그들이 나에게 거부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을 학대하기 위해 유일하게 유용한 수단으로 간주되지도 않았다.
왕정의 조직에 움직임과 행동을 제공하는 재정은 대부분 소모되어서 우리가 수단과 방법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나의 가문과 나의 개인적인 금고에서 가장 필요하고 가장 특권적인 지출의 대부분은 적절하게 조정된 것 이상으로 지불이 연장되어 있거나 계속되는 부담에 대해 신용만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동시에 낭비는 공공의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보여졌는데 마치 그들에 대해서 내가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이 한면으로는 모든 종류의 술책을 동원해 그들의 배임행위를 감추었으며 다른 한 면으로는 그들의 오만하고 방자한 사치를 드러내었다.
교회가 그들의 일상적인 문제외에 학교에 관한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의 논쟁이후에 지식에 대해 허용한 것은 누구의 구원에도 불필요한 것이었다. 또한 교회는 그들 마음의 고집스러움과 흥분을 통해 매일매일의 일치하지 않는 논의점들과 지속적으로 생기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흡수하여 마침내는 더욱 더 위험한 사람들에 의해 분열이 초래되기 쉬운 위험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쓸모있고 또, 공적이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고 또 그들 스스로는 덜 완고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몇몇 개인이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교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관할구에서 발생한 주교들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그들의 뒤를 따르는 많은 군중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들은 평판이 좋은 사람들이었고 경건한 사람들이었으며 교회의 의견에 복종하고 친절과 자비와 겸손으로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Retz 의 추기경과 파리의 보좌주교는 잘 알려진 국가의 동기로 인하여 나로서는 왕국내에 남아있도록 할 수 없었는데 이들은 이해관계와 성향을 통해 모든 이러한 봉기하고 있는 분파들을 자극하였고 그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았다.
귀족계급의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그 외의 폐혜들은 특권을 가질 아무런 권리도 없는 무수한 고리대금업자들에게 그것이 공유되고 있거나 대가를 받을 만한 아무런 봉사 없이 그것을 돈으로 사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지방의 일부에서 귀족들이 그의 가신들과 이웃에게 행하는 폭정은 더 이상 참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엄격하고 호된 모범을 통하지 않고는 억누늘 수 없는 것이었다. 결투의 원인이 되는 분노 - 다소간은 최후 규정에 대한 정확한 준수를 통해 수정되었고 이것에 대해 나는 언제나 확고하였다. - 는 이러한 고질적인 질병으로부터 잘 회복되고 난 지금에 와서야 주의를 기울일 만한 것이고 따라서 회복을 포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다른 이들을 개혁하여야할 사법제도는 그 자체로 가장 개혁하기 어려운 것으로 내게 비췄다. 무수한 것들이 이러한 상황의 원인이 되었는데 함부로 이루어지거나, 능력에 따른 선택보다는 돈에 의한 임명, 일부 판사들에게서 나타나는 빈약한 경험과 지식의 부족등이 그것이고 나이와 직무에 따른 규정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교묘히 회피되었으며, 수세기 동안 단단하게 굳어버린 속임수, 대부분의 건전한 법을 피하는 수단의 풍부함등이 또한, 그 원인들이다. 그리고, 특별히 이러한 상황을 이끈 것은 탐욕스러운 상류사회의 무리들이 소송을 선호하였고 그것을 자신들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조장하였으며 자신들에게 그러한 특성을 증가시키고 연장시키기 위해 전념해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나의 고문과회의에서도 다른 사법권을 감독하기 보다는 너무나 자주 다수의 상반되는 규정들을 쟁점화시켜 단지 혼란을 이끌었을 뿐이고 비록 내 원칙적으로는 명령에 의해서라 할지라도 모두 내 이름 아래에서 이러한 일들을 함으로써 혼란을 더욱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모든 폐혜와 그로 인한 결과과 부작용들은 기본적으로 백성들에게 전가되었는데 그들은 더욱이 세금의 부담을 지고 있었으며 일부는 가난에 짖눌리고 또 다른 이들은 평화로 인한 그들의 게으름으로 인해 많은 부족을 겪고 있었으며 고통을 덜하게 할 수 있고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몇몇은 이겨낼 수 없게 보이던 이러한 많은 어려움의 가운데에서 세 가지 이유가 나에게 힘을 주었다. 첫째로는 이 문제에서 그것들이 과거에 스스로 이루었던 완벽성에 이르는 것은 왕의 능력 안에 - 그것들은 사람의 문제이고 또 그러므로 그것들은 사람들과 관계하여 행동하여야 하므로-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우리의 빈약함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의 완수에 대한 불가능하다고 하는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지 않는데 대해서는 빈약한 이유에 불과하고 이 어려움이 언제나 진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더 이것은 이것에 대한 사용없이는 존재하지않으며 영광없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모든 타당한 계획과 시간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일 또, 하늘의 도움에는 일반적으로 수 천개의 방법이 있고 그 속에서 우리가 찾지 않았던 수 천개의 도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나에게 영감을 주는 목표에 모든 것을 배치함으로써 그 도움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으리라 자연히 보이는 것이다.
사실, 모든 지역이 고요하였다. 아무런 움직임이나 공포도 없었으며 내 왕국에서 나의 계획들을 방해하거나 반대할 어떠한 조짐도 없었다. 이웃들과는 평화가 이루어져 있었고 당시의 우세한 작업의 조건으로 인해 내가 그것을 바라는 한은 모두에게 그렇게 보였다.
나의 젊음과 나의 군대의 우두머리로서의 기쁨이 나로 하여금 외국과 관련된 더 많은 일들을 원하게 만드는 이 시기에 수세기 동안 드물게 만나는 이러한 완벽하게 평안한 조건을 내가 그것들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이유로서 바꾸지 못 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이러한 조건을 잘 못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개혁에 대한 주된 희망이 나의 의지에 기초하고 있었으므로 처음에 그것들의 토대는 나의 의지를 절대적으로 만드는데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나는 복종과 존경을 강요하는 통치를 했으며 내가 의무를 지니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정확한 정의를 주었고, 호의를 베푸는데 있어서는 내가 베풀려고 하는 사람 누구도 강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것들을 주었다. 또한,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면 나의 이후 행동은 비록 내가 아무에게도 내 통치의 이유를 말하지 않지만 내 스스로를 이성에 따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견해에 따르면 부여된 직무 즉, 은혜를 베풀고 장점을 취하여 승진시키는 일 - 한 마디로 바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단지 가장 큰 걱정거리가 아니라 군주의 가장 큰 즐거움임을 다른 이들에게 알게 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두 가지의 사실이 필요하였는데 한 가지는 내 입장에서 매우 힘든 업무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지지할 만한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업무에 대해서, 나의 아들아. 아마도 네가 이 회상록을 읽기 시작할 때는 사람이 어떤 것을 사랑하기 보다는 더욱더 그것을 두려워하는 습관을 지닌 나이일 것이다. 그리고, 단지 너는 너무 행복해서 교사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으로부터 벗어나고 또, 더 이상 계획된 시간들을 가지지 못할 것이고 너를 위해 마련된 길고 미리 계획된 공부의 시간도 더 이상 가지지 못 할 것이다.
이 서두에서 나는 너에게 단지 절대권력이 이것에 의해 통치하고 이것을 위해 통치하는 바로 그 노고라는 것 그리고, 이처럼 높은 지위에서 때때로 네게 힘들고 성가신 것으로 보이는 왕의 조건이 만일 네가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즐거움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리라는 사실만을 훈계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것들이 더 있다. 나의 아들아. 그리고, 나는 너의 개인적인 경험이 그것을 너에게 절대 가르치지 않기를 바란다. 만일 네가 불행하게도 시작하면서부터 공공의 업무에 흥미를 잃고 그 다음은 즐거움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게으름 자체에 대해 흥미를 잃음으로써 빠지는 큰 게으름보다 더 힘든 것은 없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먼저, 수고하고 일하지 않은 휴식과 여가의 달콤함은 절대 발견될 수 없는 것을 성과 없이 도처에서 찾는 것이라 한다.
나는 스스로 매일 두 번씩 규칙적으로 일하는 규율을 부과하였다. 그리고, 매 번 두시간에서 세 시간동안 다른 사람들과 내가 개인적으로 혼자 보낼 시간과 때로 발생할 수도 있는 특별한 일에 바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규칙을 부과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긴급하다면 자신들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언제나 주었다. 다만 외국의 장관들은 예외였는데 그들은 때때로 그들에게 허용된 친밀함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획득하기에 너무도 유리한 시간을 찾았고 미리 준비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이러한 해결책을 취함으로써 어던 성과를 즉시 얻게 되었는지는 너에게 이야기 할 수 없다. 나는 스스로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적으로 향상되고 사기가 왕성한 것으로 느꼈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을 발견했고 너무 오랬동안 그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못 했음을 기쁘게 자책했다. 특히, 대중에게 연설을 할 飁에 나에게 처음에는 고통을 주었고 또, 약간의 자기 판단이 만들어낸 최초의 이러한 소심함은 곧 사라졌다. 그리고, 그 때 유일하게 내가 느낀 것은 나는 왕이고 또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나는 표현하기 어려운 매우 재미있는 감정을 경험했는데 너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맛보기 전에는 스스로 알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아들아. 너는 국가의 일이 마치 모호하고 가시 많은 배움의 행로라고 상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한다면 마음은 스스로 분발하기 위하여 그 한계를 넘어 노력할 것이고 자주 아무런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도구 혹은 외견상의 도구는 그것의 어려움만큼이나 우리에게 불쾌한 것이다. 왕의 기능에는 기본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훌륭한 분별력에 존재하는데 이 경우 통치는 언제나 자연스럽고 별다른 수고로움이 없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은 때때로 우리가 오직 즐거움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보다 덜 힘이 들때가 있고 그것의 유용성은 언제나 뒤따른다. 능력있고 그의 대리인들을 밝혀주는 왕은 이후에 나타날 효과없이 직접 업무에 손을 댈수 없다. 모든 점에서 받아들일만한 성공은 가장 작은 일에서도 가장 큰 일에서 만큼이나 우리를 기쁘게 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에 의해서 스스로 계획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복과 위대하고 고귀한 계획에서 매일 매일 진보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만족은 없다. 이 일을 위해 가장 필요한 모든 것들은 또한 동시에 받아들일만한 것이었다. 나의 아들아 이것은 즉, 온 세상에 대해 열린 한 사람의 눈을 가지는 것이고 매 시간 모든 지방과 국가에 대한 새로운 사항과 모든 궁정의 비밀, 모든 군주들과 외국 재상들의 약점과 분위기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무수한 일들에 대하여 잘 알게 되는 것이고 우리 백성들로부터 그들이 최고의 주의를 기울여 감추고 있는 것을 꺼집어 내는 것이며 우리 신하들의 가장 외딴 의견을 발견하고 우리와는 매우 반대되는 직업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 이들의 감추어진 관심을 발견하는 일이다. 비록 호기심이 우리에게 기회를 준다고 할지라도 나는 우리가 이 일을 위해 단념하지는 않을 즐거움에 대해서 잘 알지 못 한다.
나는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 의도했던 것보다 더 오래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보다는 너를 위해서 더욱 생각하였다. 내가 너에게 이 방법과 알리는 동안 즉, 왕실의 가장 큰 걱정을 완화시키는 것에 대해 알려주는 동안 나는 세계의 눈을 위해 내가 희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점을 경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봇 하였다. 하지만, 나의 아들아. 이 문제에 대해서 너의 명예는 나의 것보다 더욱 귀한 것이다. 만일 신께서 네가 아직 이러한 응용의 기질과 내가 말하고 있는 공공의 일에 대한 능력을 가지지 못 하고 있는데도 통치할 것을 명한다면 모든 종류의 방법에 대해 너에게 베풀고 있다고 감히 말하는 아버지의 조언에 대해 보일수 있는 너의 최소한의 복종은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시작했다면 비록 강제와 혐오 아래에서라도 그것을 너에게 애원하는 나의 사랑을 생각하고 또, 너 자신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여 너의 일생동안 네가 할 일들을 한 동안 계속하는 것이다.
나는 4명의 장관에게 나에게 보고하지 않고는 더 이상 어떤 것이던지 결제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고 재정감사관에게도 역시 그렇게 했는데 그는 내 곁에 항상 있어야할 장부에 등록되지 않고서는 그리고, 어떤 때에도 요약된 형식으로 기록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재정상의 일들도 허가할 수 없도록했다. 그래서, 나는 한 눈에 재원의 상태와 과거와 미래의 재정 상태를 볼 수 있었다.
재상도 비슷한 명령을 받았는데 즉, 나의 명령없이는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인장을 찍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재상에 대해 나의 명령과 함께 또 하나의 예외가 되었던 것이 고등법원의 문서였는데 왜냐하면 이것들을 거부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 한 일이고 일의 진행을 위해서는 원칙보다는 형식에 관한 것을 더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행정과 명백하게 용서할 만한 사건들에 대한 특사의 권한을 재상들에게 허용하였다. 하지만, 이 특사에 관한 나의 견해는 그 후 바뀌어졌으며 적당한 자리에서 이에 대해 너에게 이야기 하겠다. 나는 또한 만일 그것이 오직 나의 호의에 의존하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실의 성격이 어떠하건간에 직접적인 결정은 내가 행해야함을 알게 했고 나의 모든 백성들에게 차별없이 자신들의 문제를 언제던지 나에게 청원이나 구두로 제출할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처음에 청원은 많은 양이 제출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축시키지는 못 하였다. 나의 직무가 자리잡은 무질서는 매우 생산적이었다. 진기함과 기대는 헛되거나 부당하거나 간에 적지 않게 유혹적이었다. 많은 수는 법정 소송과 연계되어 제출되었는데 이것에 대해 나는 내 앞에서 판결하기 위해 공식적인 법정으로부터 이것들을 가져올 수도 없었고 가져와서도 않되었다. 그러나, 외견상 이익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일들에서조차 나는 큰 유용성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 것을 수단으로 나는 내 백성들의 상태에 대한 세세한 사항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았고 무엇으로도 이보다 더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 공식적인 법정에 대한 다른 이들의 압력은 내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바람직하다고 나에게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제출될 수 있었는데 이 정보들은 나로 하여금 그들이 요구할때 특별한 조치를 취하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 두 개의 이러한 예들은 수천개의 비슷한 폐해를 예방하였다. 하지만, 거짓되고 부당하기까지한 불만들은 더 성실하고 정당한 사람들에게 나의 관리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저지하였다.
나의 업무에 보조하는 것이 의무인 사람들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던지 수상을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만일, 나의 아들아 네가 나를 믿고 따르고 너의 후계자들이 또 나를 믿는다면 그 수상이라는 이름은 프랑스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한 쪽편에 모든 내각을 두고 다른 한 편에 단순한 왕의 직함을 두는것보다 더 품위없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의 믿음과 내 명령의 수행을 한 사람에게 완전히 주는 일 없이 그들의 재능에 따라 다른 신분의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일은 군주들이 가질 수 있는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선물이다.
나는 또한 다른 것들에 대한 해결책도 미련했다. 비록 모든 일에는 우리의 위치와 또한 우리의 자존심이 그렇게까지 내려가기를 일반적으로 허락하지 않는 일단의 세부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지배에 대한 모든 권위를 나에게만 더 잘 모으기 위해서 나는 계획을 세웠다. 즉, 내 장관들에 대한 선택을 하고 그들 각각과 함께 때때로 일들에 착수한 후에 그리고, 그들이 그 일들에 대해 가장 적은 기대를 가질때 내가 동시에 다른 백성들에게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하기 위해 게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와 함께 단지 우연히 공식적인 통치보다는 휴식을 위한 몇 몇 세부사항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는데이것들은 조금 조금씩 큰 노력없이 그것들의 사용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수 천개의 일들에게 유익한 것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해결해야 할 일들에 대해 우리가 스스로 알아야하고 행해야만 하는 일들은 단지 한 사람만으로도 알 수 있었고 또, 그가 모든 것을 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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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은 내가 믿어야 하는 것들을 보여주었고 나는 10년동안 충실하고 지속적으로 내가 보기에는 동일한 경로를 휴식없이 따라가고 있다. 모든 것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잘 유지하고 내 백성의 가장 작은 부분도 잘 듣고 있고 언제라도 내 군대의 숫자와 능력 그리고, 요새화된 도시의 상태를 알고 있으며 내 명령에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한 논쟁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외국의 재상들과 동시에 관계하면서 급한 공문서를 받고 또, 읽고 있으며 일부는 직접 답장을 하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나의 비서에게 전달한다. 국가의 수입과 지출을 조정하고 내가 중요한 자리에 임명한 이들과는 직접적으로 나에게 결과보고할 것을 요구하며 내 일들을 과거에 나 이전에도 그랬던 것만큼 나 스스로 관리한다. 내 스스로 선택한 대로 은혜를 나누어 주었고 만일 내가 실수하지 않는다면 비록 그들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혜택을 주긴 하지만 최고위의 장관으로의 승진하는 것과 그러한 장관들의 권력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소박한 위치에서 나에게 봉사하는 이들을 계속해서 고용하였다.
이 모든 일들에 대한 다른 이들의 관찰은 의심할 바 없이 세상에서 나에 대한 몇 몇의 견해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아무도 이토록 짧은 시간에 군주의 평판이라는 부분에서 이처런 큰 결과를 이룰수 없었음을 볼 때 이 견해들은 내가 이전에 맡았던 일들의 성공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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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과의 개인적인 토론을 통해 완벽하게 정보를 얻은 후 나는 더욱 더 대담하게 실제적인 행동에 착수하였다. 내 백성들의 조건을 완화시키는 것보다 더 나를 압박하는 것은 없었다. 특히, 지방의 가난과 그들에 대해 내가 느낀 동정심은 나를 강하게 몰아세웠다. 이미 네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나의 재정상태는 이 일에 방해가 되는 듯 이 보였고 어떤 경우에라도 늦출 것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잘 하기 위해 서둘러야했다. 내가 하려하는 개혁은 공공에 유익한 것이었지만 많은 수의 개인들에게는 분명 그들을 지루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의할수 있을 만한 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당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미래에 대한 더 큰 희망을 약속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미끼가 뒤따르지 않고서는 평화의 이름으로도 더 이상 유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고려사항들을 제치고 미래의 조건완화에 대한 보증으로 이미 계획되어 징수를 기다리고 있던 다음 해 세금 300만 리브르를 면제하였다.
동시에 이전보다는 더 잘 관찰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나는 금과 은을 의복에 착용하는 것에 대한 규칙을 갱신하였다. 그리고, 일종의 부담금이었던 수 천의 외국의 사치생활품들에 대한 규칙도 갱신하였다. 이러한 사치 생활품에 대한 부담은 외견상으로는 자발적인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의무적인 것이었고 이것은 특히 내 백성들중에서도 가장 실력있는 사람들이나 궁중에 있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외국에 지불하는 것이었는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사치와 허영에 지불하는 것이었다.
수 천개의 이유 때문에 그리고, 몹시 필요한 사법행정에 있어서의 개혁의 길을 포장하기 위하여 고등법원의 권위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결에는 이론(異論)이 없고 또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그 판결은 최고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최후의 호소라는 점을 구실로 삼아 스스로를 마치 분리되고 독립된 주권처럼 간주했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거만함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했다. 파리의 Cour des Aides 가 최초로 그 의무와 어느 정도에서는 그 재판권에서 월권을 행사하였고 나는 가장 반항하는 관리중의 일부를 귀양보내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나는 만일 이러한 조치가 초기부터 완전하게 사용된다면 동일한 조치를 차후에 빈번히 적용하는 필요성을 덜어줄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의 행동은 성공적이었다.
그 이후 즉시 나는 최고회의에서 제정된 엄숙한 법령을 통해 그들에게 나의 의도를 더 잘 이해하게 했다. 하지만, 이 두 지배권들 즉, 최고회의와 고등법원이 법과 포고에 의해서 규정된 서로 다른 그들의 기능때문에 서로서로를 조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 전에는 이들을 서로 평화롭게 살게 하는 것으로 충분했고 혹은 그들 사이에서 특히 사적인 개인의 문제로 차이가 나타나는 상황은 매우 드문일이었고 조정하기에도 어렵지 않아서 왕들은 장관들의 보고에 말로써 그것에 대해 스스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장관들은 소수로 구성되었고 이러한 문제들이 왕국에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책임이 있었으나 궤변에 능하였다. 이 임무는 원칙적으로 프랑스의 재상과 이미 너에게 얘기한 정무회의에 맡겨졌다. 이제 이 필요한 관리들은 다른 사법권들로부터 이들이 나에로부터 받아서 가지고 있던 권력을 넘겨받음으로써 그들을 조정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허가를 받았다.(그리고, 또한 때때로 우리가 공공의 유익과 우리의 고유한 직무를 위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조정을 할 수 있었고 그것들에게 특별한 승인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기충족의 정신과 당시의 혼란으로 인하여 그들은 그들에게 좋게 보이는 경우에는 단지 양보하였고 매일같이 그들의 권한을 넘어섰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제한 대신에 모든 종류의 사건들에서 자주 그들은 다름아닌 법령이나 포고들에 포함된 형식에서 왕의 의지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한은 충분히 진행하였다.
이 법령은 통해 나는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불만을 토로할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고 나의 권위에 의지한다면 그들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내 고문회의의 결정에 반대되는 결의를 그들의 판단이나 그들의 개인적인 능력 등 무엇이던간에 어떠한 구실로도 못하게 했고 또한 그들에게 그렇게 명령을 했다. 왜냐하면, 나는 단지 그들로 하여금 내 백성에게 정의를 수행하게 하였지 그들만의 정의를 만들라고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고 이러한 것은 왕에게 매우 가까이 모인 통치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고 왕만이 가진 특권이어서 다른 어떤 이들과도 나누어질수 없는 것이기 飁문이다.
같은 해에 하지만, 조금 늦게, 일반적으로 모든 기록사무소의 재정과 관련된 일들 그리고, 파리 의회의 기록사무소와 관련되어 재산이 그 기관의 관리들에 속해있었고 때때로 의원들 전체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감히 관철하지 못 했던 일들에 대해서 내가 매일매일의 순서들을 너무 가까이에서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 관리들이 공통의 법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봉사에 대해 보상을 주는 일이 나를 기쁘게 하므로 아무것도 내가 그들을 법으로부터 면제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대략 비슷한 시기에 법조계의 귀족들이 그 때까지 그것을 통해 매우 크게 이익을 보고 있었고 그들의 마음이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야기된 최근의 문제로부터 획득한 중대한 일들로만 가득 차 있었으므로 나는 매우 대담하게 보이는 일들도 행했다. 나는 새로이 저당잡힌 것을 3/4에서 2/4로 줄였는데 이러한 저당은 내 세입에 부담을 지웠고 전쟁 시기에는 엄청난 세금에 영향을 미쳤으며 내 농장의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치웠다. 물론, 이 농장의 많은 부분은 도시 자치조합의 관리들이 구입하였는데 이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농장을 자신들의 생생한 이익을 위해서 가능한한 가혹하게 다룰 수 있는 좋은 대상으로 여기게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행동의 기저는 완벽하게 공정한 것이었는데 2/4는 그들이 진척시킨 일들에 대한 보답으로는 여전히 큰 분량이었고 개혁은 반드시 필요했다. 나의 업무는 내가 그들의 원한에 대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그러한 상태에 있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는 시기가 바뀌었고 내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어떤한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적절한 일이었다. 다른 이익관계로 인해 도시조합들이 이 시기에 나를 이길 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도시조합이 나에게 마땅히 복종을 하는 것을 통해 정 반대의 것을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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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또한 나의 왕가에 대해서도 변화를 시도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왕국의 모든 귀족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절반이상의 수습기사들을 증가시킨 나의 주 마굿간과 같이 행애져야만 했고 또한 선택이 훨씬 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했으며 그들이 그 이전 보다 더 유능하다는 것때문에 더욱더 노력해야 했다.
능력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종류의 지위에 대해 희망하는 것을 막는 것은 가족들의 모든 신분을 통해 이 지위가 그들에게만 허용되었고 추천되었다는 용이성과 내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으로서 그들에게 제공된 기회의 희박성, 또는 거의 감지되지 않게 나타나지만 그들의 직무에 있어서 그들을 완벽하게 만드는데서 나타나는 나태함등이라는 사실에 나는 주목하였다. 이 모든 것을 치유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수습기사를 선발하는데 나 자신이 관심을 가지기로 했고 그들을 나에게 배당된 사적인 수습기사들과 함께 모든 가정의 일에 함께 하게하였으며 그들을 위해서 왕국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를 선택하였다.
대중을 고려하여 내가 얻고자 희망했던 것은 많은 수의 귀족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고 또, 나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언제나 이 학교로부터 능력있고 일반적인 백성들보다 더 잘 준비된 사람들을 공급받아 내 업무에 투입시킬 것을 희망하였다.
나는 아직 기본적으로 자산가들을 생각하는 나의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것의 효과는 왕국전체에 널리 퍼졌다. 나는 막대한 금액이 사적인 개인들에 의해서 소비되고 또 그것이 끊임없이 외국에서 생산된 레이스의 교역을 통해 국가로부터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이 작업을 스스로 하기 위한 공장이나 원료들을 원하고 있지 않음을 보았고 만일 이 일을 현장에서 한다면 그렇게 먼 거리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물건들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판단하에서 나는 프랑스에서 공장을 세울 것을 결정하였는데 이것의 효과로는 먼저 귀족들이 자신들의 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백성들은 부자들이 소비하는 것의 모든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국가내에 남아있게 되는 막대한 금액은 느끼지 못 한채 그대로 유지되면서 부차적인 풍족과 부를 생산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 이상으로 이 일은 직업을 찾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침체에 빠지거나 혹은 외국으로 직업을 찾아 떠나는 많은 백성들에게 직업을 주게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칭송받을 만한 일이라도 반대가 없이는 달성되지 않으므로 나는 레이스 무역상인들이 그들의 모든 힘을 다해서 반대하리라는 사실을 미리 예상하였다. 왜냐하면 무역상들은 먼 거리에서 온 물건을 파는 것이 그들에게 더 큰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이 곳에서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서 생산된 제품에 비해 그 제품들은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권위를 동원하여 그들이 사용할 모든 농간들을 잘라내었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나의 법이 공포되기 이전에 자신들이 가진 외국레이스들을 팔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이 기간이 만료되었을때 그 때까지 여전히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들을 나의 금지법 이후에 수입한 것으로 간주하여 압수하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제품들로 가득 찬 상점을 열게 하여 사적인 개인들이 그들의 소비를 이 곳에서 하도록 의무지웠다.
짧은 기간동안의 이러한 예를 통해 많은 다른 물건들, 예를 들면 종이, 유리, 거울, 비단 스타킹, 그리고 그 외의 물건들의 공장을 내 국가안에 세웠다.
나는 내 백성들의 해상무역을 증가시키고 보장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항구들을 안전하게 만들고 또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기 위한 장소를 찾는 특별한 계획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절대 덜 중요하지 않은 다른 계획에 착수했는데 그것은 운하로서 지중해와 대양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바다에서 다른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 더 이상 스페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현명한 일이었다. 이것은 착수하기에 거대하고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이것을 통해 내 왕국이 전체 유럽 무역의 중재자로서 중심에 서게 할 만큼 내 왕국에 무한히 유리한 일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성과 없이 이 일에 착수하였던 위대한 사람들에 비해서 스스로 이 목표를 세우고 달성한 나에게는 더 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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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에게 우리가 종교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큰 경의와 우리가 종교의 대리인들에게 특별히 그들의 임무 즉, 성스러운 신비를 기념하고 성경의 교리를 설교하는 일과 관련하여 보여주어야 하는 복종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실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회와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칫하면 그들의 직업에 관련하여 유리한 점에 대해 약간이나마 주제넘게 상상하고 있고 또, 때때로 자신들의 마땅한 직무를 경감하기 위해 그것들을 이용하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이 문제에 관련하여 중요성을 가지는 몇 가지 점에 대해서 설명해야할 의무를 느낀다.
첫 번째로 왕들은 절대적인 군주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격으로부터 왕은 세속의 것이던 교회의 것이던 모든 재산을 완전하고 자유롭게 처분할 권한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현명한 분배자로서 사용할 수 있다. 즉, 국가의 필요와 일치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아마도 사람들이 너를 현혹시키려할 교회의 자유와 참정권이라는 신비한 용어는 공통의 어머니의 똑같은 아들이라 할 수 있는 세속인과 성직자 중 누구던지 신앙이 깊은 모든 이들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용어는 성서에서 정확히 복종하라고 명하고 있는 주권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있다.
세 번째로 교회 재산의 특정한 향방이나 기금기부자의 의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의 말은 근거없이 단순한 양심의 가책을 말하는 것일뿐이다. 왜냐하면 재산의 기부자는 자신들의 계승자에게 상속할 때 지대로부터 면제되거나 특정한 군주에게 지불되어야 하는 다른 의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더욱 강력한 이유에 따라 그들은 군주 혹은 만물의 지배자에게 전체 왕국의 복지를 위하여 지불하여야 하는 최초의 의무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
네 번째로 지금까지도 성직자들이 그들의 의회에서 그들이 행해야할 의무에 대해 심사숙고한다면 그들은 이 관습을 자신들의 특별한 권리탓으로 돌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자유가 몇 몇 지방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 지방에서는 과거 세기의 성실에 대한 형식적인 증거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정의가 충분히 개인들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해야하는 일을 고무할 수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세속인과 성직자이 그들의 고유한 자유의지의 의무를 강요할 때 이것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다 섯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만일 나라안에서 자신들의 재산을 고려하여 다른 이들보다 더욱더 우리를 위한 직무에 묶인 주민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 손에 맡기고 이익을 얻으려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혜택만큼이나 오랫 동안 공고히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왕국의 초기 기간동안 유지한 우리의 권리가 있다. 심지어 우리로부터 그러한 권리를 박탈하려고 노력한 교황들 조차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야심적인 요구에 대한 정확한 철회사실을 명백히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서 어떠한 권리나 예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스러운 공정함만으로도 이 점을 나타내 보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왕국의 방어를 위해서 그들의 봉사와 피를 바쳐야한다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그리고, 귀족들은 자주 그들이 책임을 맡은 기관들의 유지를 위해 자신들의 자원을 소비하여야 하고 (적은 자원을 가지고 많은 입을 채워야하는)백성들은 게다가 모든 국가의 지출에 대한 부담을 지는 것이 타당할까? 반면에 자신들의 직업 때문에 전쟁의 위협과 사치품의 풍부, 그리고, 가족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직자들이 일반적인 대중이 필요한 것에 대해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고 일반 대중이 누리는 잇점을 풍부히 누리는 것이 타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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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전쟁을 우리 왕국에 어울리는 자존심과 고압적인 자세로 치루어냈다. 그리고, 귀족들의 용기와 백성들의 열성으로 인해 국가의 이익을 위해 내가 달성해야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차지하였다. 나는 나의 모든 관심과 열성을 성공적인 결과에 이르기 위해 투자하였고 내 의무를 달성하고 백성들에 대한 나의 사랑과 친절을 알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수단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내 왕국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휴식을 줄수 있는 평화를 나의 업무 수행을 통해 획득함으로써 나에게는 그들의 복지 이외에는 어떠한 관심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 제국의 변경을 확장하고 내가 획득한 중요한 요새로서 국경을 보호하고 난후에 나는 나에게 제안된 평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아마 나는 이 때 그렇게 위대한 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신중함의 한계를 넘어섰던 것같다. 그리고, 나는 내 고유한 성격과 조화되지도 않았고 내 백성들에게 휴식을 구해주기 위해서 나 자신에 대해 극단적인 폭력을 가했던 것 같다. 즉, 나는 내 평판 혹은 적어도 내 개인적인 만족을 바쳤고 아마도 내 명성도 투자하였던 것같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이러한 명성을 가지게 해준 이들의 유익을 위해 내 명성을 위기에 빠트렸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여야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지금 나의 가장 격렬한 적이 오로지 나와 경쟁하기만을 바라고 있고 나를 속이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며 그들의 동맹자들은 그들의 무분별한 야망이 명령하는대로 무제한적인 지출을 그들에게 강요하고 하고 있음을 볼 때 나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또, 적들에게 그들이 프랑스를 압도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무력과 수단을 통해 합친 그들의 모든 힘보다 전체적으로 통합된 프랑스가 더 강력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릴지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문제도 돌보지 않는다. 나는 국가의 안전과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지출에 부합하는 금액을 확보하기 위해 실제 행동에 들어갔다. 국가의 모든 자원이 거의 소진된 이 시점에서 나는 어디로부터 안전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너에게 조언과 도움을 청한다. 우리의 적들은 우리가 함께 도출해 낼 노력으로부터 우리가 그들이 믿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요구하고 있고 또, 필요불가결하다고 믿는 그 도움을 통해 우리는 그들에게 평화를 맺으라고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화는 우리 자신에게 영광스러운 일이고 우리의 편안함을 유지하게 할 것이며 또한 모든 유럽의 군주들이 동의할 만한 것이리라. 이것이 내 백성에 대해서 내가 언제나 가졌던 행복과 복지에 대한 압박만큼 강한 전쟁에 대한 압박에속에서 그 결말에 이르른 이 시점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이고 또, 이것은 내 일생의 마지막까지 나의 가장 크고 심각한 염려로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다.
절대주의의 실제
루이 16세가 프랑스 귀족을 길들인 방법 중에 하나가 귀족만이 예의를 아는 완전히 인공적인 사회를 베르사이유에 건립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귀족들에게 어떠한 정치권력을 양도함 없이 그들의 지위를 승인했다. 이러한 사회는 당시의 관행에 관해 간단히 살펴봄으로써 평가될 수 있다.
빛나는 세기: W. H. Lewis
궁정예절은 궁정생활의 연구였다. 예를 들면, 누가 베르사이유에서 노크를 하는 것이 가장 나쁜 예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당신은 왼쪽 새끼 손가락으로 문을 긁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손톱을 길게 길러야 한다. 혹은 당신은 왕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로 친한 친구에게 친근하게 말해서는 안된다. 만약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하인이 당신에게 소식을 전한다면, 당신은 서서 받아 보거나 모자를 쓰지 않아야 할까? 당신은 노크를 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에 있는 대저택에 당신이 처음으로 방문할 때, 당신은 손톱으로 문을 긁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안된다. 당신은 노크를 해야만 했었다. 다음으로 당신이 손잡이를 덜거덕 덜거덕 거리면 한 지나가는 멋쟁이는 당신에게 상류층 부인의 문은 한 번만 두드려야한다는 것도 모르느냐고 모욕적으로 질문 할 것이다. 만약 부엌에서 테이블로 가는 도중 왕족의 정찬을 부딪치게 되면, 당신은 왕에게 하듯 절을 해야만 하고 모자의 깃털로 바닥을 쓸어야하고,낮고 공손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 전하의 고기입니까? "라 말해야만한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 신출내기 궁정신하는 다윗의 탄식처럼 "얼마나 자주 예의에 어긋나는지!" 라는 말을 반복할 것이다. 예의를 어기지 않는 것은 당신의 의무이다. 왜냐하면 왕은 독수리 같이 정확하고 완벽한 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예의범절이라도 어기면 아무리 높은 귀족이라도 왕의 질책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날 밤 저녁 만찬에서 루이 14세의 수다스러운 친구가 왕 앞에서 그의 손가락을 음식에 빠뜨렸을 때, 왕은 쌀쌀하게 "너는 너의 혀와 마찬가지로 손도 통제할 수 없구나"라고 말했다. 한 번은 Marly에서 장관 부인인 Torcy부인이 만찬에서 공작부인보다 상석에 앉았다. 루이 14세는 그녀가 극도로 불편하게 식사동안 계속해서 그녀를 주시했다. 루이14세는 맹트넝(Maintenon) 부인의 방에 도착했을 때 화를 폭발시켰다. 그는 도저히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참을 수 없는 모욕적인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상류층부인으로써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욕이었다. Maintenon 부인과 Burgundy공작은 루이 14세를 달래기 위해 남은 밤을 보내만 했다.
확실히 왕에게는 무례하거나 실수를 할 수 없었다. 또한 정신들은 아침 잠자리에서 꾸물거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왕이 깨어나는 8시까지 대기실에 도착하려면 일찍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당시의 부인들이 9시까지 꼼짝도 않고 침대있으리라 여기고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 정신들은 그의 후견인과 왕의 아침 인견에 참석하기 전에 정성들여 분을 바르고 화장을 하기 위해 자신만의 화장도구 일체를 가지고 다닌다. 왕의 방에서 하루는 8시 15분전부터 시작되는데, 일등 시종관은 그 방에서 자고 그의 간이 침대를 치울 것이다. 겨울이라면, 두명의 왕궁 장작지기는 왕의 화로를 지피기 위해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1,2 분 후에 왕의 시계의 태엽을 감기 위해서 왕의 시계공이 뒤를 이어 들어올 것이다. 옆문으로는 왕의 가발사가 들어오는데, 옆방은 왕의 가발이 진열되어 있는 방으로 그 안에는 사냥용 가발,회의용 가발,저녁용 가발, 사냥용 가발 등 끝없이 진열된 가발들이 있다. 그러나, 바로 그때 가발사는 왕이 옷을 입는 동안 쓸 짧은 가발과 그날의 첫 번째 가발 2개만을 가지고 온다.
이 시간에 루이 14세는 항상 그의 성가신 습관으로 여름과 겨울에는 침구를 그의 엉덩이 밑에 깔고 잠들어 있거나 잠든 체 하곤 했다. 8시의 첫 번째 종소리가 울렸을 때, 시종은 루이를 깨우고,폐하가 기상했다는 소식은 거의 꽉찬 대기실에 전해져 마치 여름 미풍에 익은 옥수수 들녘 처럼 정신들로 하여금 바삐 움직이게 한다. 동시에 수석 내과의와 수석 외과의가 왕실 간호원들과 함께 방에 들어와서, 간호원들이 침대로 다가가 그에게 키스를 하고 문안을 여쭙는 동안 두 의사는 왕을 마사지하고 그의 셔츠를 갈아 입힌다. 8시 15분에 시종장이 귀중한 입장 특권을 가진 정신들과 함께 들어오고 루이는 성수를 선물받는다. 지금이 왕에게 부탁할 때인데 이런 점에서나 다른점에서나 왕의 심리상태는 다른 보통 사람의 심리상태와는 상당히 달랐다. 만약 내가 루이시대에 루이였다면 한 순간도 편안한 순간이 없었을 것이다. 왕이 성무일도를 하는 동안 들어온 정신들은 물러나고, 그 후 그들은 왕이 겉옷과 가발을 입고 쓰는 것을 보는 특별한 즐거움을 위해 다시 들어와도 되도록 허락받았다.
몇 분후 귀족의 무리가 떼를 지어서 루이가 옷을 입는 것을 보기 위해 방을 가득 메운다. 우리는 루이가 승마용 바지를 입을 때 매우 영민하고도 우아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그들 중 한 명에게 감사해야한다. 루이가 셔츠를 입는 순간이 되면, 그 셔츠는 일등 시종관에 의해 상급자에게 건네지고, 그 상급자는 매우 황공해하면서 셔츠를 왕에게 바친다. 여기까지, 우리는 1640년 같이 오래전에 상류층 사람들은 매일 얼굴 씻듯 손을 씻도록 된 사실에도 불구하고, 목욕은 커녕 세수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물론, 위험한 행동으로 간주되어 물로 씻는 것은 안되고, 희석되고 향수처리된 알콜에 다가 면을 적셔 얼굴을 문질렀다. 아마 루이는 면도를 할 때에만 물로 세수를 했을 것이다. 시종이 그의 앞에 거울을 가져다 주어 면도를 한 후, 그는 와인과 같은 알코올을 섞은 물로 세수를 하고 시종의 도움없이 얼굴을 말린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이발사는 자유롭게 궁정에 기숙할 수 있는 500명의 시종들 중 하나였다. 아마 루이가 목욕을 했던 것은 저녁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가끔은 한 사람을 데리고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목욕을 할 때,제 1 주방 5부의 관리가 공기를 향기롭게 하기 위해, 뜨거운 스푼위에 향수를 끓이면서 서 있었다는 사실에서 추론되어질 수 있는 드문 사건이었다. 이 부서는 두명의 장작 나르는 자를 포함해서, 건장한 45명의 신사는 왕실의 변기를 비우는 특권을 지니고 있었다. 이때쯤이면, 왕의 출현에 대한 경외감은 사그라들고, 대화는 대개 사냥에 관한 것으로 변한다.
생시몽 공작의 비망록
생시몽공작은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귀족가문의 한 사람이다. 여러면에서 그는 루이 14세가 절대권력하에 길들인 봉건귀족의 전형이었다. 그의 비망록은 1739-1751년에 쓰여졌고, 1788년에 프랑스에서 처음 출판되었는 데, 거기에는 궁정생활이 묘사되어져 있고, 루이 14세의 귀족 통제방법들에 대해 상당히 잘 통찰되어져있다.
루이 14세는 화려한 궁정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용모, 용기, 우아함, 수려함, 당당한 풍채, 심지어 목소리와 인격의 위엄과 자연스러운 매력은 Bee왕처럼 죽을 때 까지 그를 두드러지게 했다. 또한 만약 그가 일개 보통의 신사로 태어났더라도 그는 축제나 오락,무용에 있어서 모두를 능가했을 것이고, 사랑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루이 14세의 유년기에-Soissons 백작이 여왕의 왕실 감독자로서, 궁정의 중심인물로서 튈리히 궁정에 머물고 있었을 때-말려들어갔던 음모와 위기는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후에 성공적으로 싸울 수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때부터, 영리하고 교육을 많이 받고, 귀족적이며, 높은 도덕심을 지닌 사람들을 루이 14세는 의심하게 되었고, 미워하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통치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그의 끊임없는 시기심은 약점이되었다. 그는 사실 중요한 일에는 소홀하고 사소한 일에만 영향력을 미쳤다. 심지어 사소한 일 조차도 그는 종종 통제하지 못했다. 그의 통치 초기 장관과 장교들의 유능함에 그는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어떠한 형태든지 그보다 나은 자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장관을 선임할 때는 지식있고 능력있는 자가 아니라 무식하고 무능한 자를 선임했다. 그는 장관들을 다듬어 가는 것을 좋아했고 아주 사소한 것들 조차도 그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했다. 장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장관들과 장교들을 가르친다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았다. 내각으로 하여금 루이 자신이 모든 군대를 통솔 ,지도한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는 군대,궁전, 저택들의 가장 작은 부분들까지도 간섭했다. 심지어 그의 숙련된 요리사들도 초보자들처럼 가르쳤다.
이러한 허영과 끊임없는 비이성적인 욕구가 그의 패망의 원인이었다. 장관,장교,그의 연인,정신들은 곧 그의 약점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경쟁적으로 루이를 찬양했고 그를 망쳤다. 찬양- 실은 아첨-은 가장 비열하고 야비한 것이 받아들여질 정도로 루이를 기쁘게 했다. 그것만이 당신이 루이에게 접근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루이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끊임없는 아첨으로 루이의 사랑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그의 장관들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쥐게 되었고 그에게 아첨하고 모든 것을 그의 덕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배우는 척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순응과 비열,찬양적이면서도 의존적이며 아첨하는 방법, 무엇보다도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것이 그를 찬양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독이 퍼졌다. 심지어 보통사람들 보다도 지능이 낮았지만 완전히 분별없지는 않았고 경험도 풍부한 왕자에게도 그 독이 미쳤다. 음악적인 지식도 좋은 목소리도 없으면서 그의 찬양으로 가득한 오페라 프롤로그의 한 줄을 노래하곤했다. 그는 허영에 빠져들었다. 아주 깊게.
정식만찬에서 모든 궁정인, 음악가들 모두와 그는 음악에 반주에 맞추어 목소리를 죽이며 이와같은 찬양을 부르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공식적이었더라면 그는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비록 그의 지능이 보통사람들보다 낮을 지라도 그것은 교정될 수도 있었다. 그는 영광을 사랑했고 질서와 규칙을 좋아했다. 그의 성격은 신중했고 온화했고 분별력이 있었으며 그의 행동과 말을 통제할 수 있었다. 믿겨지는가? 그의 성격은 또한 선했고 공정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충분히 좋은 왕이 될 수 있는 자질을 주었다. 아마도 참을성이 있는 위대한 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성격 이외에서 잘못된 것 같다.
그의 조기교육은 너무나도 소홀해서 아무도 그의 집에 접근 할 수 없었다. 그는 종종 당시의 신랄한 말을 듣고 말했다. 어느날 저녁 그는 Royale 정원분수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거의 읽고 쓰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너무나 무식해서 대부분 친근한 역사적 사실이나 그외의 것들을 완전히 몰랐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대중 앞에서도 가장 상스러운 무식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스페인왕의 죽음을 핑계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그의 영광에 대한 허영심과 욕망 때문이었다. 결혼 동맹이라는 가장 최근의 절제와 주의 깊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플랑드르로 행진해 들어갔다. 그는 이곳을 빨리 정복했다. 라틴강의 횡단은 경탄 할 만 했다. 영국, 스페인 , 홀란드 3자 동맹만이 그를 고무했다. 한 겨울에 그는 엑스-라-샤펠 조약 평화기를 재건함으로써 프랑슈 콩트를 획득했고 ,그는 플랑드르 정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때는 제국내에 모든 것이 번영했었다. 모든 곳이 부유했다. 콜베르는 재정,해군,상업, 제조업 , 심지어는 문학에서조차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였다. 이 당시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처럼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인사들이 많았다. 심지어 향락에 있어서도. 그래서 우리는 이 군주를 위대하고 부유하고 정복적이며 유럽의 조정자로서 알고 있다. 정말로 명성을 떨칠만한 장관들과 대령들이 존재하던 한은 경외와 존경을 받았다. 이러한 재상과 대령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정치기구는 계속해서 얼마 동안은 그들의 영향으로 움직여졌다. 그러나 얼마후 우리는 표면 아래를 보았다. 결점과 실수들이 증가되었고 부패가 엄청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전제군주가 그렇게 모든일을 다 하려고하고 스스로 모든 일들을 지도하려고했으며,국내의 공포를 증가시킴으로써 해외에서의 불명예를 보상하려고하는 것에대해서 잘못이 지적되지도 않았다.
Enclos 양의 죽음 직후, 끔찍한 시련이 Louvois의 맏아들 Courtenvaux에게 일어났다. Courtenvaux는 친위대의 지도관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다. 비록 그가 점잖고 존경할 만했지만 어리석고 욕심 많고 싸움을 좋아했다. 요컨데 그는 매우 어리석은 자였다. 상식이상으로 통행자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기를 원했던 왕은 Bontemps에게 문과 공원 정원의 배치권과 스위스 용병 고용권을 주었다. 이러한 수행원들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복도와 통로 계단 심지어 사적인 장소까지도 순찰하도록 명령받았다. 날씨가 좋으면 정원과 뜰도.
또한 비밀리 사람들을 감시, 미행해서 그들이 가는 장소를 알아내고 누구와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그들의 대화내용을 엿들어 캐낸 것을 왕에게 보고하도록했다. 이러한 일은 베이사이유, Marly,Trianon, Fontainebleau와 왕이 있는 모든 궁에서 주도면밀하게 행해졌다. 이러한 새로운 수행원들은 Courtenvaux에게 상당히 거슬렸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한 새로운 유입자들에 대한 통제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Fontainebleau 에서는 원래 친위대와 근위대의 방을 새로운 군대가 완전히 차지했다. 그 방은 성안의 모든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공개 논쟁장 안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곳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감시하기에 매우 적당한 곳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로인해 점점 성가시게 된 Courtenvaux는 이 새로운 군대를 그의 권위에 대한 새로운 잠식이라고 간주했고 새로운 군대에게 격렬한 분을 터트렸고, 그들에게 단호히 욕을 퍼부었다.
신병들은 Courtenvaux가 노발대발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았다. 그들은 규칙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너무나 영리해서 Courtenvaux의 분노로 방해를 받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을 들은 왕은 즉시 Courtenvaux를 불렀다. 그가 방에 들어오자 마자 그가 다가올 겨를도 없이 방의 저쪽 끝에서 왕은 그에게 소리를쳤다. 분노가 너무나 심해서 그와 그 방안에 있던 왕자와 공주 그리고 모든사람들이 모두 떨었다. 왕으로부터 물러가라는 위협과 가장 심하고도 엄청난 말이 그에게 빗발치듯 퍼부어졌다. Courtenvaux는 거의 공포로 기절할 것 같았고, 곧 땅에 엎드려서 무슨 말을 할 지 몰랐다. 그러한 질책은 왕의 "물러가라"는 말에 의해 끝났다. Courtenvaux는 명령을 따를 힘도 없었다. 이러한 이상한 사건의 원인은 Courtenvaux가 공연한 소란으로 왕이 일으킨 변화에 온 궁정인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사건의 목적은 뻔하다. 왕은 그의 스파이체제를 주도면밀하게 감추려고 했고 이런 변화가 알려지지 않기를 원했다. 그런데 Courtenvaux의 소란으로 모든사람들에게 알려지자 그는 미친 듯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던 것이다. Courtenvaux는 남은 여생동안 다시는 왕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 만약 그의 가문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분명히 추방되고 관직을 박탈당했을 것이다.
이 해 초에 Vatteville 신부가 죽었는 데 그의 깜짝 놀랄만한 삶으로 인해 약간의 소동이 일어났다. Vatteville는 프랑스 프랑슈 콩트집안의 작은 아들이었다. 초년기에 그는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수도사가 되었고 성직에 임명되었다. Vatteville는 매우 영리했지만 성급한 사람이었고 곧 신앙생활의 속박에 안달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신앙생활의 속박에서 벗어나 몇가지 세속적인 습관과 사격, 승마를 즐겼다. 그가 사다리를 이용해 수도원벽을 막 뛰어 넘으려는 바로 그 때, 수도원 원장이 그의 방에 들어왔다. Vatteville는 소란을 피우지 않고 곧 총을 쏘아서 원장을 죽이고 교묘하게 도망쳐 버렸다.
2,3년 후 전국을 떠돌며 가능한한 복잡한 곳은 피해다니던 중 그는 초라한 도로가에 있는 여인숙에 도착했다. 그는 창고안에 무엇이 있는가를 물었다. "양다리와 닭다리" "좋군" 이라고 제명된 수도승이 말했다. "그것들을 구워 주시오." 집주인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한사람 몫으로는 너무 많고 집에 있는 전부라고 대답했다. 이에 수도승은 벌컥 화를 내며 어쨌든 집주인은 그가 값을 치른 것을 그에게 주어야한다고 윽박질렀다. 그리고 그는 양과 닭다리를 모두 먹어치울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들은 난로가로 다가갔고 집주인은 감히 다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요리하는 동안에, 한 말탄 여행객이 여관에 도착했고 그것들이 1인분임을 알고 매우 놀랐다. 여행객은 Vatteville의 몫을 나누어줄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그 신사가 그것을 동의할지 모르겠다고 여행객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 여행객은 위층으로 올라가 공손하게 Vatteville에게 비용의 절반을 낼테니 그와 식사를 같이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거절했고 곧 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그는 이 여행객도 수도원 원장처럼 쏴 죽였다. 그 후 그는 조용하게 내려와서 집주인과 온 집이 두려움에 떠는 가운데, 양과 닭다리를 먹었고 그 뼈를 손으로 뜯고 계산을 하고 다시 말을 타고 떠났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그는 터어키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성공하기 위하여 할례를 받고 터번을 쓰고 의용군에 들어갔다. 그의 신에 대한 불경이 그를 승진시켰고 그의 재능과 피부빛으로 그는 두드러지게 되었다. 그는 Bacha가 되었고 Morea에서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 되었다. Morea에서는 터키와 베네치아와의 전쟁이 있었다. 그는 사적인 이익을 늘리기 위하여 그의 지위를 이용하기로 하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대원수와 대화를 시작하면서 터어키의 비밀지역을 대원수에게 넘길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몇가지 조건이 있었다. 조건이란 그의 삶의 모든 범죄와 살인, 배교에 대해 교황으로 부터 면죄받는 것이었다. 샤르트뢰즈 수도회에 대한 보호조치와 다른 수도회에 대한 보호조치를 받았다. 또한 그의 시민권의 완전복구와 성직자로서 모든 종류의 성직록을 받을 자유를 얻었다. Vatteville생각에는 거래조건이 너무 좋아서 거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교회의 이익을 위해 교황은 Bacha의 모든 요구를 따랐다. 그는 자신의 조건이 받아들여질 것이 확실해지자 그가 단언했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실행했다. 그가 베네치아 군대에 투신한 직후 그는 이탈리아에 귀속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교황의 환대를 받았고 프랑스 콩테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갔으며, 샤르트뢰즈 수도회를 무시하며 즐겼다.
프랑스 콩테를 획득했을 때, 그는 황태후와 성직자와 잘 내통해서 Besancon 대주교직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교황은 그의 살인,할례, 배교의 이유를 들어 이에 강하게 반대했다. 왕은 교황 편을 들었고, Vatteville는 어쩔 수 없이 Baume의 수도원과 Picardy의 수도원에 만족하고 다른 이익 추구에 뛰어들어야만했다. 그가 항상 환대를 받는 왕궁에 들를 때를 제외하면, 그가 Baume 수도원에 머물면서 대영주처럼 좋은 사냥개를 키우고 좋은 음식과 즐거운 모임을 가지고 첩을 두고 살았다. 가장 강압적인 방법으로 그의 소작인과 이웃을 압제했다. 지사는 그에게 굴복했고, 왕의 특별명령에 의해 그의 마음대로 행동했다. 심지어 세금도 그의 마음대로 정했다. 그의 세금징수는 흔히 강압적이었다. 이러한 방법과 태도로 그는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종종 샤르트뢰즈 무리를 매질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샤르트뢰즈 수도원을 보러가는 것을 즐겼다. 그는 옴버(hombre)라는 카드놀이를 즐겼는 데 codille를 자주 획득해서 " codille주교 "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이렇게 항상 멋대로 하면서 상당한 지위를 누리면서 90까지 살았다. 그것이 바로 1706년 우리 군대의 역사였다.
상실과 불명예의 역사였다. 국고재화에 대한 그렇게 많은 수요로 보아 국고의 상태가 어땠는 지는 아마 짐작이 갈 것이다. 지난 2, 3년 동안 왕은 전쟁경비와 손해 때문에 매년 초에 왕께 바치는 선물을 삭감해야했다. 그가 보통 이방면으로 사용했던 금액은 35,000리브르였다. 1707년 이해에 10,000 리브르로 줄였다. 타격을 입은 것은 몽테스팡 부인이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왕궁을 물러나온 이후에 왕은 그녀에게 연간 20만 리브르를 주었다. 이 해에 왕은 그녀에게 단지 8리브르만을 줄 수 있다고 전언을 보냈다. 몽테스팡 부인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많이 나누어 주었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안할 뿐 이라고 말했다.
왕이 이러한 삭감을 단행한 직 후, 즉 1월 8일- Bourgogne공작부인이 아들을 낳았다. 기쁨이 대단히 컸지만, 왕은 Bourgogne가문의 장남 생일에 드는 엄청난 경비의 지출을 막았다. 이 당시에 돈에 대한 필요가 너무나 절실해서 왕은 보통사람들이 그러하듯 재원을 찾아만했다. Rodes라는 금광 투기업자는 피레네에서 광맥을 발견한 체 했었다. 그가 이러한 금광을 찾을 수 있도록 보조금이 주어졌다. 1800명의 인부가 함께 주당 1만 프랑을 생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연간 52만 프랑은 국가 세입의 상당한 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전혀 금이 나오지 않게되자 이 사업에 투자된 돈은 완전히 날리게 되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국가사업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 재정과 전쟁분야를 통솔하는 Chamillart는 이로인해 증가되는 문제와 고민거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여러 번 그는 이 두가지 일이 그에게 너무 벅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왕은 옛부터 재정과 전쟁분야간의 문제가 너무나 골치 아팠기 때문에, 일단 한 번 결합한 후에 다시 그것들을 갈라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마침내, Chamillart는 더 이상 그의 무거운 짐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우울증에 사로 잡혔다. 그는 현기증을 느꼈다. 소화도 안됐다. 그는 점점 말랐다. 그는 다시 왕에게 그의 의무에서 벗어나도록 애걸하는 편지를 썼고, 솔직히 그에게 약간의 휴식이 주어지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잘못되고 망쳐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항상 왕이 답장을 쓸 수 있도록 그의 편지에 많은 여백을 두었다. 그가 편지의 회답을 받았을 때, 이 편지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놀랐다. 왕의 친필로 이렇게 쓰여져있었다. "음- 우리 같이 망하세!" 지금은 돈에 대한 필요가 더욱 커져서 그것을 얻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이 채택되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세례세와 결혼세가 설정되었다. 이러한 세금은 가장 번거로우면서도 싫은 것이었다. 보기드문 혼란이 발생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이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지 않고 그들 스스로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정식절차 없이 그들을 결혼시킬 성직자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상호 동의하에 증인을 세우고 집에서 결혼을 했다. 이런 결과 더 이상 어떠한 세례명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세례와 출생에 대한 분명한 기록이 없었다. 내가 위에서 말한 이러한 방법으로 식을 올린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법적으로 보면 사생아였다. 그런 까닭에 이런 폐해의 탐색과 엄격한 시행이 한쪽으로 점차 편중되었다. 즉, 세금을 긁어 모으는 쪽으로 이러한 폐해가 증가되었다. 어떤 곳에서는 민중의 탄원과 불평이 폭동으로 이어졌다. Cahors에서는 사태가 너무 진전되어서,거기에 배치된 2개 대대가 무장한 농민을 진압하여 마을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스페인 전에 쓸 군대를 거기에 보내야만했다. 세금징수를 일시적으로 중단해야할 필요가 있었지만,Quercy운동이 잠잠해졌고, 함께 무장했던 농민들이 그들 마을로 돌아가게 된 것이 큰 문제였다.
농민들은 Perigord에서 봉기해서 관청을 약탈하고 그들 스스로가 작은 마을과 몇몇 성의 주인이 되었고, 신사들로 하여금 그들을 상전으로 받들도록하였다. 농민은 왕과 목사,영주들에게 기존의 세금은 내겠지만, 그외의 세금이나 괴롭힘은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언했다. 결국 온갖 괴럽힘과 부정으로 부정축재했던 세금징수자들에게는 유감이었겠지만, 세례세와 결혼세를 낮출 수 밖에 없었다.
절대주의는 왕의 뜻이 절대적인 것이고 이러한 절대권력은 프랑스에서 철저하게 시행되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루이 14세와 쟝 벱티스트 콜베르는 통치권의 최대한 확장을 위해 관료제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관료제를 통해 지방의정보가 베르사이유까지 흘러들어 왔고, 왕의 명령이 자방에까지 전달되었다. 절대주의 효율성 여부는 이 두가지의 효율성에 의해 결정되었다.
절대주의(Absolutism)
Ⅰ. 서 론
15∼16 세기까지 유럽의 각국은 근대사의 개막과 함께 절대왕정이 성립되는데 그래서, 이 시기를 절대주의(Absolutism) 혹은 절대군주(Absolute Monarchy)의 시대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물론, 절대왕정이 전형적인 정치 형태를 갖추고 고유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지만 이 시기는 봉건제의 위기가 표면화되면서 국내적으로는 종교전쟁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귀족들의 경쟁 그리고, 국외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국가간의 대립이 나타나는 시기였다. 또한, 지리상의 발견을 계기로 식민지 획득과 상품시장 개척에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즉, 이시기는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들과 변혁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시기인데 그 중에서도 절대왕정의 등장은 대표적인 정치현상의 하나였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 시기에 등장한 절대주의의 개념과 그 발생 과정을 분석하여 절대주의가 내표하고 있는 역사상의 성격을 알아보겠다.
Ⅱ. 본 론
1) 절대주의의 개념
절대주의는 "지배자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전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를 말하는데 전제주의(Despotism) 혹은, 참주정(Tyranny) 등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개념이다. 즉, 여기서의 절대주의는 일반적 의미의 전제주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사의 한 특정한 시대에 출현한 정치형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물론, 왕권신수설에 입각한 절대왕권정치는 이집트의 전제군주나 로마의 황제체제에서 이미 나타나기는 하지만 가장 과장된 형태와 세련된 이론으로 합리화된 것은 17세기 유럽의 그것이다.
절대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오래 전부터 주장되어 온 것은 계급균형론 내지는 과도 정부론이었다. 이 견해는 구귀족 및 영주의 몰락과 부유한 상인을 중심으로한 시민계층의 등장을 중시하여 절대왕정은 이 상호 대립되는 귀족과 시민의 양 균형위에서 그 양 계급의 조정자로서 독자적이고 초월적인 권력을 보유하는 과도적, 예외적 국가형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봉건사회로부터 근대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가교의 시대라고 말 할 수도 있는데 봉건제도 그 자체를 완전히 해체하거나 폐지한 것이 아니고 영주와 교회의 권력을 절대군주에게 통합시키고 또한 신흥시민계급의 지지를 받아 그 위에 군림하는 정치형태인 것이다. 그래서, 왕권은 제후들로부터도 또한 시민들로부터도 제한을 전혀 받지 않는 절대적 존재로 등장하여 그 이전부터 있어온 신분제의회마저도 그 기능이 점차 정지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절대군주에게 집중화된 절대권력은 봉건영주와 교회의 권력에는 대립되는 것이나, 봉건제도 그 자체를 폐지한 것은 아니었다. 즉, 이러한 권력의 집중은 봉건제도를 민족적, 전국적인 대규모로 재편성한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집중화된 절대왕정의 정치권력은 그 본질상 일반 개개의 영주와 교회의 정치권력 즉, 지방분권적 정치권력과도 상반되는 것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인 정치형태인 자유주의의 정치권력과도 대립되는 개념이다. 물론, 절대주의의 정치권력은 통일민족국가를 형성하여 봉건적 신분관계를 대신하는 시민적인 자유평등의 토대를 닦고 중상주의에 의하여 Guild 제도를 Manufacture 체제로 전진시킴으로서 시장의 확대를 초래하는 등 자본주의적 발전을 허용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절대주의의 정치권력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으며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시민계급 그 자체의 발전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정치권력은 봉건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에 모순된 일종의 기형적인 권력형태였다.
2) 절대주의의 성립과정
① 중세의 유럽
절대주의가 등장하기 이전 유럽의 중세사회는 봉건귀족들이 국내에 할거하여 정치권력은 분산되어 있었으며 국왕은 그들 귀족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데 지나지 않았고 대귀족들은 국왕의 행동을 제한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국왕을 제거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귀족이외의 중세인들은 자신이 어느나라의 국민인가에 대한 자각은 없었고 오직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였으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국민이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속한 작은 공동체의 일원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던 질서도 오직 신분제의 원리뿐이었다.
이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귀족, 서민이라는 신분 또는 그 신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집단에 속하고 그 집단에 주어진 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개인으로서는 누릴 수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신분사회는 개개인보다 단체가 우월한 사회였다. 그리고, 이 시대의 주요한 공동체인 동업조합, 마을, 도시 공동체들은 각각 고유한 규칙과 권리를 오랜 역사에 의해 길러진 관습으로부터 부여받고 있었다. 이처럼 중세의 유럽은 분산되고 신분제적인 질서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였다.
또한 중세에 있어서의 정치적 지배권력은 사적인 토지지배에 기초를 두고 있었으므로 영주가 영민에 대하여 직접적인 정치지배를 하고 군주에게는 그 권한이 없었다. 즉, 군주의 신하에 대한 권력적 지배관계는 관념적이고 간접적이었으므로 절대주의 성립이전의 권력구조는 지방영주들에 의한 다원적이고 분열적인 것이었이며 각 정치단위는 독립적이었다. 그러므로, 군주는 영주권을 구속하고 영지의 내부까지 간섭할 강력한 권력을 갖추지 못한 예의상 또는 종교상의 존재였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경제분야에 있어서도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나타났는데 중세시기 동안의 경제는 각 영주들의 장원 내부를 중심으로 농업을 바탕으로한 독립적이고 자급자족적인 경제활동이 전부였다. 물론, 일부의 도시를 중심으로 소규모의 수공업과 상업 활동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 역시 길드와 같은 수공업자 혹은 상인들의 공동체를 정점으로 이루어지는 폐쇄적이고 독립적인 활동이었다.
② 중세의 위기
이상과 같은 중세사회는 13세기 초반에까지 팽창과 발전을 지속해 왔으나 13세기 후반∼14세기에 이르면서 정체 내지 쇠퇴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개간 가능한 숲과 황무지가 바닥나자 인구에 비하여 토지의 부족이 심화되어 갔고 지력의 쇠퇴, 등으로 인해 생산성도 낮아졌으며 기아와 질병에 의한 인구의 감소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무엇보다도 이 시기 지배계급의 소비수준이 전투장비와 사치품 구입 때문에 수입을 초과함으로써 다수의 영주들이 재정적 위기를 겪는 14세기초 "중세의 위기현상"이 나타났다. 즉, 이것은 봉건적 생산양식이 가지는 구조적인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봉건적 생산력이 더 이상의 인구를 수용할 수도 없고 지배계급의 수입증대 욕구도 충족하지 못 하는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봉건제 자체의 구조적인 위기와 함께 1347년 이후로는 흑사병(Black Death)이라는 파국적인 국면이 중첩되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시작하여 전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인구의 격감과 노동력의 심각한 부족을 야기시켰다. 그리고, 이에 따른 식량수요의 감소는 곡가의 하락과 노동임금의 상승을 초래하였고 그래서, 이러한 위기는 소득 분배를 둘러싸고 지배-피지배계급간의 대립과 계급갈등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된 지배층의 가혹한 정책들은 농민과 수공업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게 되어 1323년 플랑드르(Flanders)지방의 반란, 영국의 외트 타일러(Watt Tyler)반란, 스페인의 까탈로냐(Catalonia) 반란 등 대표적인 농민, 수공업자들의 투쟁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며 14∼15세기에 이르자 장원제 자체가 붕괴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주들은 곡가하락, 지대하락, 임금상승, 농민의 반발에 따른 노동력확보 블능 등으로 인해 현금을 받고 직영지를 임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이것은 결국 중세의 장원제적 농업 경영의 사실상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장원제적 제반 질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또한 시민층의 성장을 촉진하고 자연경제에서 화폐경제로의 전환을 촉진시켰으며 자영농민의 출현으로 인한 농민의 사회적 지위의 향상은 봉건제도의 존립기반에 동요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③ 절대주의의 등장
앞서와 같은 유럽 사회 내부의 변화와 함께 유럽 사회 외적으로도 십자군전쟁 이후 세계로의 통로가 개척되고 15세기에 이르러 지리상의 발견등으로 항해와 무역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자 봉건사회의 붕괴를 더욱 촉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은 더욱높은 단계로 발전하여 유럽인의 시야를 더욱 넓히고 유럽인들의 경제적인 활동은 지중해에서 벗어나 전세계로 확대된다.
이러한 경제적 활동권의 확대는 상업적 활동을 더욱 촉진시켜 새로운 중산계급을 낳게 하였다. 즉, 상업자본의 발달은 봉건적인 사회관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근대자본주의 발달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신대륙에서 유입되는 막대한 양의 귀금속은 자본주의의 발달에 불가결한 화폐의 공급을 촉진하였고 아울러 새로운 시민계급을 나타나게 하였으며 이러한 상업상의 변동은 지금까지의 Guild체제 경제에서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Manufacture체제로의 전환을 야기시켰다.
이상과 같은 사회 경제적인 변화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나타났는데 앞서 설명된 "중세의 위기"는 서민층 뿐만 아니라 귀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즉, 화폐경제의 신장과 서민층의 지위향상등으로 인한 지배층의 동요는 지배층 내부의 분열을 초래하였고 이러한 위기가 내란이라는 권력투쟁을 초래하였으며 또한 이 내란이 봉건귀족의 몰락에 박차를 가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절대군주의 후보자들은 평화와 질서를 요구하는 소리에 부응하여 여러 가지 상호대립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외관상으로는 조정자로서 등장하여 내란의 종지부를 찍고 절대주의국가를 성립시켰다.
유력한 귀족중의 한 사람이 조정자를 자처하며 절대군주로 등장하는 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귀족들의 분열과 함께 성장하는 시민층 및 농민들의 협력이라는 요소가 절대왕정의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즉, 조정자로서의 절대군주는 귀족들 사이의 분쟁에 대한 조정자일 뿐만 아니라 귀족들과 서민들사이의 계급적 투쟁에 대한 조정자로서도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력의 성장과 함께 사회적 신분의 신장도 함께 추구하는 서민들의 요구는 영주에 의한 직접적인 지배보다는 한 사람 군주에 의한 간접적인 지배를 선호하게 되고 여러 귀족들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의 성립을 원하는 군주는 이러한 서민층의 원조에 힘입어 다른 귀족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이 과정에서 시민층은 자신들의 무역과 상업의 이익을 계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하여 그리고, 농민들은 영주로부터의 봉건적인 제제와 착취를 막는 수단으로서 절대군주를 영주들의 직접 지배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패로 생각하여 군주에게 협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주는 서민층이 보유한 경제적 힘을 자신의 강력한 무기로서 이용하여 다른 귀족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강력한 실권을 가지게 된 군주는 그의 절대권을 확립하는 수단으로서 다시 영주들에게도 손을 뻗어 정략적 외교수단, 통혼 등으로 점차 봉건영주들의 권한을 빼앗고 그들로 하여금 영지에 대한 직접적인 행정권을 포기시키면서 그들을 귀족화하엿고 성직계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방법을 취하였다.
이로서, 봉건제 기간동안 분열되고 독립적이었던 정치, 경제, 사회 체제는 종식되고 민족적이고 단일한 국가가 나타나고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게 된 군주는 무역과 상업을 촉진하여 거대한 부를 형성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많은 식민지와 해외발전을 보게되지만 서민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군주는 그들이 바라던 진정한 자신들의 보호자로서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것은 투쟁에서 승리한 군주가 지방의 영주들을 궁정 귀족화 시키고 자신의 관료제 체제속에 편입시킴으로서 여전히 그들에게 지배층의 위치를 점유하게 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Ⅲ. 결 론
역사상에서 나타나는 절대주의 국가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관료기구, 상비군, 공통된 법체계, 국민적 조세제도 등은 모두 근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과 말접하게 관련된 듯 보인다. 그리고, 이 때문에 절대주의 국가의 성격에 관해서는 일정한 한계 안에서나마 그 근대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래서, 근대사의 기점을 절대주의 국가의 성립에서 찾는 서유럽 각국의 정치사 서술은 물론 맑스주의 역사학에서도 절대왕정의 존립기반이 봉건귀족과 부르주아지의 힘의 균형에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즉, 절대군주는 양 세력 사이의 균형추 역할을 함으로써 스스로 공권력을 강화해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주의의 지배세력이 자본주의의 추진체제인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에 전반적으로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절대주의 체제는 농노제적 사회체제의 해체에 직면한 봉건지배세력이 그와 같은 경제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스스로 재편성한 봉건국가의 최종형태였다. 농노제가 약화될수록 개별적으로 농민의 잉여를 수탈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으며 이에 따라 그들은 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중적인 지배기구를 통하여 전국적인 차원에서 일반민중의 잉여를 수탈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즉, 절대국가의 전국민적인 과세는 집중된 봉건지대인 셈이다. 그리고, 근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알려진 여러 제도들도 전국적으로 직접생산자들을 지배하고 그들의 잉여를 수탈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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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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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영 수, {서양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1993.
페리 앤더슨, 김 현 일 역, {절대주의 국가의 역사}, 소나무, 1993
조 경 래, "Europe Absolutism 시대에 관한 연구", {상명여사대논문집,5}, 1976
________, "Absolutism의 특성", {사 총 7}
________, "Absolutism의 특성Ⅱ," {사 총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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