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길들이기; 당근과 채찍

작성자ThundeR[GP]|작성시간12.09.12|조회수1,180 목록 댓글 7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저 당근과 채찍이라 표현될 만한 경우에 많이 봉착하죠. 이공계 전공자인 썬더는 아마도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는 위치와는 거리가 멀 것 같습니다만, 윗분들이 썬더 앞에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는 건 종종 경험하곤 합니다. 그런데 눈에 뻔히 보이는 당근과 채찍은 퍽이나 기분 나쁘죠. 그리고 당근이거나 채찍이거나 사실 매일반입니다. 그런 것은 조직을 위한 것이지 사실 조직원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런대로 자유민인 썬더와는 달리 고대 노예들에게 저 당근과 채찍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었겠죠.

 

'로마제국의 노예와 주인'이라는 책은 노예가 경제의 기반이었던 로마 사회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노예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노예 자신의 진술이 없기에 사료가 부족하고, 있는 사료 역시 간접적인 증언에 불과한 이 분야를 연구함에 있어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매의 눈과 심리학자로서의 자질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기에 K. R. Bradley라는 저자에게 경외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 그런데 K. R. 이 어떤 이름의 약자인지 끝내 밝히지 않더군요.

 

노예는 기본적으로 매매가능한 동산이었습니다. 요즘은 하나의 조직도 법적으로 인간대접을 받아 '법인'이라 불리고 법인으로서 재산소유가 가능하지만, 노예는 반대로 인간이지만, 법적으로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죠.

바로 이 기본적인 정의에 의해 노예는 인간성을 침해당하게 되는데,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그가 기댈 수 있는 어떤 종류의 가족도 형성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노예는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가 없었는데, 만약 결혼을 했다면 그건 인정된 것이 아니라 묵인된 것이었습니다.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었죠. 주인은 필요에 따라 그가 묵인했던 노예가족의 일부만 팔아버릴 수 있었으니까요. 이것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이었는데, 이들은 부모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서 강제로 분리되어 머나먼 타향으로 떠나야 하는 가능성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고, 또 상당수는 이를 경험했습니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진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슴에 와닿는 사진이었습니다.

 

노예들 역시 자연인이었기에 가족이 필요했고, 일단 가족을 이루면 그것을 오래도록 유지시키고 싶어했습니다. 로마의 노예 소유주들은 이것을 이용했고 말입니다.

 

보통 노예의 수가 전체인구의 35%를 넘으면 노예사회라고 한답니다. 제국 로마의 모든 곳에서 노예의 비가 35%를 넘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로마와 이탈리아는 확실히 35%를 넘었다고 합니다. 현대에도 예를 들면, 자동차 같은 것만해도 오래도록 좋은 성능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꽤나 아끼고 유지보수에 신경 좀 써 주어야 합니다. 로마의 노예소유주가 그들의 노예를 바라보는 관점은 정확히 이것과 일치했습니다.

노예 주인에게 노예는 필요했지만 그들의 충성과 복종을 얻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죠. 로마의 상식에서 노예는 게으르고 주인을 속이는 존재였습니다. 채찍질은 단기적 처방이었고, 또한 잘못하면 노예의 건강에 치명적 손실, 즉 주인의 입장에서는 재산손실을 입는 누워서 침뱉는 격이 될 수 있겠죠. 그래서 대 카토와 콜루멜라와 같은 이른바 '조언자'들이 당근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노예에게 그가 원하는 것에 대한 희망을 줌으로써 충성과 복종을 유도한다라는 것이죠. 작게는 휴식에의 희망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하루 정도는 쉬게 해주겠다는... 그러나 좀 더 큰 것은 역시 결혼과 가족에의 희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해방에의 희망이 있을 수 있겠죠. 아울러 해방이라는 것 역시 조금 부족한 것이, 본인만 해방되고 나머지 가족들은 여전히 노예상태에 있게 된다면, 일반적인 경우에 해방된 노예는 여전히 완전한 해방감을 맛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노예의 지극한 충성과 복종은 이론상 그 노예를 휴식, 결혼, 가족, 해방으로 이끌 수 있었으며, 실제로 그를 성취한 억세게 재수좋은 노예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이 과정이 '법적'으로 존재했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용이했는가 하는 점이죠. 일단 이 모든 과정에서 주인의 변덕스런 의도가 핵심적입니다. 박애주의적인 주인이 없었을리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주인은 노예를 사랑하기보다는 이용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 당연히 높았습니다.

그리고 노예해방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정무관의 승인이었는데 이는 주인과 노예가 정무관앞에 출두하는 것을 요구했습니다. 도시 로마에서 이는 비교적 용이했을 것이나 이탈리아의 지방도시나 속주에서는 정무관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일 수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주인은 자신이 약속을 이행할 수 없는 좋은 변명거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희망의 실현가능성이 지극히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노예들은 단결하고 봉기하는 것보다 충성과 복종하는 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노예 역시 인간이다라는 사실에 기인하기에 이 '당근' 이 '채찍'보다 더욱 혐오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노예소유주들은 스스로를 기품있는 인간으로 생각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채찍이라 표현되는 체벌(각종 폭행과 굶주림), 고문, 투옥(노예감옥은 상식적인 것이었습니다)은 말안해도 알 수 있는 것이겠죠. 어느 부인은 남편과 부부싸움의 화풀이로 심심찮게 노예들을 때렸다고도 하는군요. 아울러 동성애의 상대로서 가치를 높이기 위한 거세도, 유명한 금지법안들에도 불구하고 전혀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노예를 상대로 한 각종 인간적인 '법안'들이 있었다는 이유로 제국 로마가 점차 노예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의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법안들의 근본 취지는 노예제 사회의 유지를 목적으로 제정되었다는 점, 즉 개개 노예소유주의 과도한 잔혹함을 줄여 노예봉기의 소지를 없애자라는 의도로 제정되었다는 점은 숙고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그 모든 법안들이 겉모양은 그럴 듯 했으되 다들 현실에서 장애가 될 수 있는 조항들 - 예를 들면, "입증될 만한 증거가 있을 경우에"라든지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라든지 - 을 물고 있었기에 노예들이 법의 구제를 받기가 전혀 쉽지 않았다라는 것도 당연히 고려를 해야만 하죠.

 

썬더는 로마제국의 노예 이야기를 읽고, 노예의 삶을 산다는 것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고된 것, 특히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소망을 볼모로 잡아서는 안되는 것이죠.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작지만 노예와 노예 소유주 사이에서 벌어졌던 것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들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잔혹한 문명'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한편으로 법이 제정된 것과 법에 실행된 것에는 심연이 가로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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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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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gada | 작성시간 12.09.13 얼마전 부터 '프로레타리아여, 안녕'이란 책을 들고 잇다니면서 조금씩 읽고 있씁니다. 어려운것보다 마음이 가까이 선뜩 안 서서인지, 읽기가 좀 ~~그래요. 연필들고 줄치면서 읽다보면서 알아본 결과 참 '노동' 너, 대단하구나!!! 노동철학이 보이더군요. 며칠전 르노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뉴스에서 '노동의 강도'에 대해서 이야길 하더군요 5명이 할 일을 2~3명이 해대는 그런 노동현실, 노동일터!!! 인간을 빨리 파괴하는 거겠죠? 현대판 노예가 뭐 별거겠수? '노는 미학'도 모르게 만든 일중독 회사들~~'잔혹한 문명' 이게 이건가요? ㅎㅎ
  • 작성자agada | 작성시간 12.09.13 그리고 사진 ~~너무 가슴에 와닿네요^^ 실례가 안되면 울 카페에 좀 모시고 갑니다.ㅎㅎㅎ
  • 작성자seeker | 작성시간 12.09.15 개개 노예소유주의 과도한 잔혹함을 줄여 노예봉기의 소지를 없애자라는 의도로 제정된 법안이 현제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 작성자율리아 | 작성시간 12.09.15 잘 봤습니다^^
    갑자기 스페인침략이후 라틴아메리카가 생각나네요...원주민은 원래 있는(!) 것이니 막 다루고,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노예들은 돈을 주고 사온것이니 상처안나게 다뤘다는...결국 원주민은 대부분 학살당하게 되었지만요...
    지금생각해보니 <로마인이야기>에는 노예가 없군요-.-
  • 작성자agada | 작성시간 12.09.17 얼마전 도서관에서 '미국사'란 책을 읽었습니다. 책 크기에 좀 ? 했지만 정말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 책이었습니다. 여러사람들의 연설문들이 들어있었는 데 , 그것들이 미국의 역사적 사건들을 한눈에 확 알도록 해 주었습니다. 제일 마음에 와 닿은 글은 '헬렌 켈러'의 '노동학대현장'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미국~~그 땅의 주인들, 자연같은 존재였던 '인디언'들이 없더군요 율리아님 말에서 문득 생각이 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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