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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주 무공큰스님

구업(口業)에 인한 인과응보(因果應報)

작성자사무장|작성시간22.02.25|조회수8 목록 댓글 0

제20대 대선을 몇 개월 앞둔 요즘 언론에서는 연일 서로 상대 후보를 헐뜯는 막말이 오가는 것을 두고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저런 후보에게 과연 이 나라를 맡길 수 있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아지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가정은 물론 사회 지도층까지 도덕성이 상실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쉬운 말로 하자면 가뜩이나 피곤한 세상 세치 혀 잘못 놀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해사 회주 무공 스님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구업을 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업이 있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마저 나조차도 모르게 짖게 되게 되는 것이 바로 구업입니다. 말이라는 것은 웃겨서 많이 할수록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 아리나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실속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실속이 없으니 자기 자신을 갈고 닦기보다는 허세를 부리는 일이 더욱 자연스러워지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몸의 계행(戒行)과 마음의 지혜를 닦지 아니하고 작은 구업을 짓는다면, 이 업의 인연(因緣)으로 해서 몸을 나타내 보(報)를 받게 됩니다. 나아가 그 작은 악을 참회하지 아니하며,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두려워함이 없는 경우에는 업이 증장(增長)해서 지옥(地獄)에 태어나는 보(報)를 받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근본유부비나야율(根本有部毘奈耶律)에서는 구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입으로 나쁜 말은 한다면, 이는 항상 날카로운 칼로 제 몸을 베고 있는 격이 된다. 악인을 찬양하고 선인을 헐뜯어서 입으로 온갖 허물을 짓는다면, 능히 낙과(樂果)를 초래하지 못한다. 만약 사람이 악한 마음에서 나온 말로 여러 성자(聖者)를 헐뜯으면, 알부옥(部獄) 속에서 백천년(百千年)을 지내야 한다.”

대집경(大集經)에도 역시 구업이 짖는 크나큰 업보에 대해 설하고 있습니다.

“신(身)·구(口)·의(意)의 삼악을 지으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신(身)·구(口)·의(意)의 선을 지어 열반의 경지를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이렇듯이 우리는 마땅히 자신이 내뱉는 말을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의지가 있던지 없던지 간에 상대방의 의지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이는 그릇된 일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몸을 땅이라고 한다면 선의(善意)는 곡식, 악의(惡意)를 잡초라 할 수 있습니다.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곡식이 여물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도 악의를 제거하지 않는 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작은 악이라도 대단하지 않다고 알아 재앙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물방울은 작지만 시간이 흐르면 차츰 큰 그릇도 채우고 납니다. 차라리 스스로 몸과 마음의 벽를 깨고 가슴을 깰지언정, 망령된 마음을 따라 악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마음과 다투신 이후로 무수겁(無數劫)에 걸쳐, 마음을 수순(隨順)하지 않고 애써 정진(精進)해 스스로 부처님이 되셨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마음을 다스리고 악업을 짖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말을 단속하십시오. 쓸대없는 말은 자신을 들뜨게 하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합니다.

 

불자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우리 불교는 진리를 말합니다. 상황에 맞게 가르침을 설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방편(方便)을 중요시할 지라도 각자의 상황과 가르침에 맞게 최선의 방법과 수단을 통해 상대방에게 말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상대후보라지만 현재 처해 있는 고통을 문제 삼고 어떻게 하면 그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해결할 적절한 방편을 선택할 것입니다. 고통으로부터 중생을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기에 그래서 말합니다.

 

우리 스스로 마땅히 자신을 다스려 말의 노여움을 막고, 말을 억제해야 합니다. 말의 악행을 버리고, 말로서 선행을 해야 합니다. 또한 마음의 노여움을 막고 마음을 억제해야 합니다. 마음의 악행을 버리고 마음으로써 선행을 해야 합니다.

우리네 속담에도‘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했습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미없고 의무적인 말 대신 조용히 다가가 손을 잡거나 꼬옥 안아주십시오. 세상에는 말로도 다 전하지 못하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신해사 회주 무공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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