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물리 (비댓 금지)

화학을 바탕으로 발전한 물리학 이론

작성자P.W.Anderson|작성시간26.03.07|조회수274 목록 댓글 2

------♡ 서로 배려하는 물화생지 ♡------ (지우지 마세용)

1. 답변 달아주신 분께 감사의 댓글은 필수!

2. 모두 볼 수 있도록 비밀댓글은 금지!

3. 답변을 받은 후 질문글 삭제하지 않기!

4. 질문 전에 검색해보기! 질문은 구체적으로!

------♡ 서로 배려하는 물화생지 ♡------ (지우지 마세용)

안녕하세요, 보통 물리학을 "근본"이라 생각하며 이론의 발전 과정을 물리학에서 화학으로 이어지는 방향을 자연스럽다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환원주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화학 이론에서 등장한 아이디어로 발전한 현대물리학 이론을 소개하려 합니다. 물리학이 근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신 선생님들께서는 거슬릴(?) 수도 있으니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농담이고 물리학이 위대한 학문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 1901-1994) 등이 제시한 화학에서 유명한 원자가 결합 이론(Valence bond theory)을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원자가 결합 이론에서 각 원자들의 원자가전자를 공유해 공유 결합이 형성된다고 배웁니다. 이 때 파동함수의 겹치는 단면이 원형이면 σ결합, 길쭉한(?) 모양이면 π결합입니다. 서로 다른 원자의 파동함수가 서로 만나 겹쳐서 새로운 양자상태를 만든다는 개념입니다. 단일 결합은 σ결합, 이중 결합은 1개의 σ결합과 1개의 π결합, 삼중 결합은 1개의 σ결합과 2개의 π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물론 C₂ 이원자분자 같은 π결합만 있는 예외도 있지만요).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자 구조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자가 결합 이론은 벤젠 분자의 구조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원자가 결합 이론대로라면 벤젠은 단일 결합과 이중 결합이 반복된 구조이고, 단일 결합과 이중 결합은 결합 길이가 다르지만 실제 벤젠은 정육각형 구조였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폴링은 공명(resonance) 개념을 도입합니다. π결합이 σ결합으로 이루어진 고리 위에서 비편재화되어 퍼져있는 구조라 주장했습니다. 공명 개념을 도입하자 벤젠 분자 뿐만 아닌 많은 공액 구조(conjugated structure)를 가진 분자들의 구조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화학 선생님들께서는 익숙하셨던 내용입니다.


물리학자 필립 워런 앤더슨(Philip Warren Anderson, 1923-2020)은 폴링이 제시한 원자가 결합 이론과 공명 개념을 전하가 아닌 스핀에 적용합니다.

그림처럼 다윗의 별 모양으로 원자가 배열한 격자 구조를 생각해봅시다. 이러한 격자 구조를 카고메 격자(Kagome lattice)라고 부릅니다. 이 격자 구조에서 일부의 삼각형만 따로 떼어 봅시다.

각 원자가 홀전자를 갖고 있고, 그 원자들이 가진 스핀끼리 반강자성(antiferromagnetic) 결합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물리 임용 문제에서 하이젠베르크 해밀토니안 H=-JS₁•S₂ 꼴이 자주 나오는데, 이때 J<0인 경우가 반강자성입니다. 이러면 그림처럼 두 원자의 스핀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배열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남은 한 곳의 스핀은 어떻게 배열할까요? 남은 자리에서는 스핀이 위쪽을 바라보면 왼쪽 위의 스핀과 강자성으로 배열하고, 아래쪽을 바라보면 오른쪽 위의 스핀과 강자성으로 배열해버려서 세 스핀끼리 모두 반강자성으로 배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세 스핀은 마땅한 배열 방법을 찾지 못해 위 그림처럼 요동칩니다. 이러한 스핀의 배열 상태를 "좌절(frustrated)"이라고 합니다.

결국 세 스핀끼리 타협하여 서로 120도 간격으로 바깥을 바라본다고 해 봅시다. 이제 인접한 다른 삼각형을 봅니다.

다른 삼각형에서도 스핀끼리 120도를 바라보는 방법은 위 그림처럼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제 격자 전체를 봅시다.

격자 전체를 보면 스핀의 배열 가능한 상태가 하나 뿐이 아닌 여러 가지가 됩니다. 열역학적으로 보면 T=0에서의 엔트로피가 0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태를 스핀이 가만히 고정되어있지 않다 하여 스핀 액체(spin liquid)라고 합니다.

스핀 액체의 대표적인 물질 중 하나인 가돌리늄 갈륨 가넷(gadolinium gallium garnet, GGG, Gd₃Ga₅O₁₂)입니다. 가돌리늄 이온(Gd³⁺=[Xe]4f⁷)의 자기 모멘트가 위 그림처럼 좌절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외부 자기장이 존재하면 자기장에 끌리는 상자성 물질이기는 합니다. 아래는 GGG를 네오디뮴 자석으로 끌어 본 것입니다.

하지만 GGG는 f오비탈에 홀전자가 7개나 차 있어 자기 모멘트가 너무 큰 탓에 열적 요동이 크고 양자 요동의 효과가 너무 작아 고전 스핀 액체(classical spin liquid)에 속합니다. 단일 스핀(S=1/2)만 남을 수록 열적 요동이 약해지고 양자역학적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스핀의 크기가 커질수록 더욱 고전적 벡터처럼 행동하려 합니다. [S₁, S₂]=iħS₃라는 교환 관계를 보면 스핀의 불확정성은 S의 크기에 비례하는데 스핀 자체의 크기는 S(S+1)에 비례하니 양자역학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S가 0이 아니면서 가장 작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고전 스핀 액체가 아닌 양자역학적 효과를 극대화한 경우로 넘어가봅니다.

열적 요동이 약해지고 단일 스핀이 남아 양자 요동이 강하게 나타난다면, 인접한 스핀끼리 서로 반평행하게 반강자성 배열이 가능합니다. 고전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양자역학적 현상입니다. 원자가 결합 이론에서 인접한 전자끼리 만나 결합(bond)을 형성했듯 인접한 스핀끼리 "결합"을 형성한 것입니다. 이를 스핀 단일항 쌍(spin singlet pair)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격자 전체에서 위와 같은 스핀 단일항 쌍들이 존재할 수 있고, 물질 전체의 양자상태는 스핀 단일항 쌍들의 중첩 상태가 됩니다. 위 움짤의 마지막을 보면 마치 벤젠의 비편재화된 π결합처럼 스핀 단일항 쌍들이 서로 공명을 이루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와 같이 서로 반강자성 배열을 이루는 스핀 단일항 쌍들이 물질 전체에 비편재화되어있는 상태를 양자 스핀 액체(Quantum spin liquid)라고 합니다. 벤젠이 공명 개념 없이는 이론적으로 단일-이중 결합이 반복되는 구조여야 하고 "1.5중 결합"이라는 양자역학적 상태가 불가능했던것처럼 고전 스핀 액체에서는 좌절때문에 두 스핀이 단일항 쌍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양자역학적으로는 벤젠의 1.5중 결합이 가능하듯 카고메 격자에서 인접한 두 스핀이 반평행하게 배열해 공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라이너스 폴링의 원자가 결합 이론(VBT)과 공명 구조(Resonance structure)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와 귀추 논리로 양자 스핀 액체에서의 스핀의 결합과 공명 구조를 설명했기에 앤더슨은 이 이론을 공명 원자가 결합 이론(Resonating valence bond theory)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양자 스핀 액체의 온도를 올리면 열적 요동때문에 결합이 깨질 수 있습니다. 마치 온도가 올라가면 화학 결합이 끊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스핀 단일항 결합이 깨져 독립된 스핀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 때 나타나는 스핀을 스피논(spinon)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결합이 깨지면 스피논은 2개가 생성됩니다. 이렇게 온도가 더 올라가면 더 많은 스피논들이 생성될테고, 스피논들은 물질 내부를 기체처럼 떠다니는 상태가 됩니다. 스핀 액체에서 온도를 올렸더니 결합을 이루던 스핀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된다는 점이 마치 액체가 기체로 기화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양자 스핀 액체의 대표적인 물질인 염화루테늄(III)(ruthenium(III) chloride, RuCl₃)입니다. 루테늄 이온의 전자 배치가 [Ru³⁺]=[Kr]4d⁵이고, 루테늄은 4d 전이금속이라 d오비탈의 크기가 커서 저스핀 배치를 가지기에 t2g에만 5개의 스핀이 차 양자 요동을 극대화할수 있는 S=1/2상태가 됩니다.

양자 스핀 액체는 전하의 이동 없이 스핀의 들뜸만을 이용해 스핀을 전달할 수 있기에 전류에 의한 발열 없이 스핀을 전달하는 저전력 스핀트로닉스 소자 연구에 응용되고 있는 물질입니다. 이러한 기술이 진보하면 읽고 쓰는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빠른 메모리가 등장할 것이고 차세대 양자컴퓨터에도 크게 응용될 것입니다.

이렇게 이번 글에서 화학 이론으로부터 귀추 논리로 성립된 물리학의 이론인 공명 원자가 결합 이론(RVB)을 소개하였습니다.

아마 이 짤을 어디선가 보신 적이 있을겁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환원주의(reductionism)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한 이론이야말로 이 짤을 반박할 수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원주의로는 물리학 이론이 화학 이론을 바탕으로 발전했음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화학 역시 충분히 물리학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처럼 현대물리학에서는 물리학이 우주의 근본을 설명하는 기본 이론이라는 관점이 아닌, 물리학 역시 유효 이론으로 우주의 다양한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창발적인(emergent) 학문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입니다. 물리학이 모든 과학의 반드시 뿌리가 되는게 아닌, 다른 과학 학문을 뿌리삼아 새로운 물리 이론이라는 열매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현대물리학의 위대함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위에 올렸던 움짤들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게 영상도 첨부하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유자민트티 | 작성시간 26.03.07 리스펙합니다 샘🙏🏻
  • 작성자chris.P | 작성시간 26.03.07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교직 생활 하시면서도 전공 수준의 전문성을 계속 기르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