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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좋은 생각)

“익살-장난기 가득한 김삿갓詩

작성자山房山|작성시간16.01.31|조회수632 목록 댓글 0

                                                                 


                                               



익살-장난기 가득한 김삿갓

 

최근 책을 하나 읽고 있습니다.

그 책을 읽고 정조와 정약용만큼이나 언어유희에 능한 분이 조선 후기에 한 분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金笠), 김병연입니다.

김삿갓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야사에 가까운 여러 일화들을 본 것이 전부였는데, 철든 후에 보는 김병연의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웃음이 나게 하는 희비극 그 자체였습니다.

 

김병연은 조선조의 명문가 중 하나인 안동김씨인데도 어릴 적부터 가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홍경래의 난 때 반군에 투항한 데다 김창시의 목을 벤 것을 자기 공으로 꾸민 죄로

조부 김익순이 사형당함으로서 김삿갓의 집안이 멸문지화의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이죠.

젊은 김삿갓은 집안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과거 시험장에 나아가게 되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문제로 하필이면 이런 주제가 나옵니다.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논정가산충절사 탄김익순죄통우천)

 

"정가산의 충절한 죽음을 칭송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닿음을 탄하라"

 

이 글은 한시가 아니라 산문이기에 상당히 깁니다만,

끝부분의 두 부분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전략)

吾王庭下進退膝

(오왕정하진퇴슬) 

  背向西城凶賊脆

(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

(혼비막향구천거) 

  地下猶存先大王

(지하유존선대왕) 


임금 앞에서나 꿇던 무릎을

서쪽의 흉적에게 꿇었으니

네 혼은 죽어서도 황천에 못 가리니

지하엔 선대왕의 영혼이 계신 까닭이다.

 

忘君是日又忘親 

(망군시일우망친) 

  一死猶輕萬死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춘추필법이지부) 

 此事流傳東國史  

(차사유전동국사)


임금을 저버린 동시에 조상을 잃어버린 너는

한번은 고사하고 만번은 죽어야 마땅하다.

도대체 역사의 준엄함을 아느냐 모르느냐.

치욕적인 이 일은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

 

과연 천하의 명문인지라 장원 급제하였고 진사위를 얻은 김병연은 어머니에게 합격 소식을

알리게 됩니다.

그런데 웬일인가요.

천하의 역적이라 욕한 김익순이 사실은 자신의 할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역적놈의 자식이라 놀림감이 되고 위축될 것을 우려한 어머니가 집안의 수치로 숨겨왔던

것이지요.

김삿갓은 충격을 받고 식음을 전폐한 끝에, 조상을 욕한 자신은 하늘을 볼 자격도 없다 하여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나서게 됩니다.

이 때 김삿갓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도로망과 숙박시설 등 사회간접시설이 잘 갖춰진 시대가 아닙니다.

돈벌이 수단이라고는 글짓기뿐인 김삿갓은 거지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으리라 예상됩니다.

오늘은 이 집에서 밥을 청하고, 내일은 저 집에서 잠을 청하는 떠돌이 생활. 스무 살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고단한 생활이었습니다.

그와 관련된 일화는 민간에서 설화처럼 전승되며 실제 그가 한 말이 아닐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일화와 달리 글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요.


민간 이곳저곳에서 써서 남긴 글들이 일제시대 학자들에 의해 수집되며 차츰 김삿갓의 문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방랑하던 도중 겨울날에 서당을 찾아 잠자리를 청하는데, 훈장은 초라한 행색을 보고

그저 귀찮아 내쫓으려고만 합니다.

화가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기왕 들어는 왔으니 시를 한 수 드리고 가겠다'며 지필묵을 청하고,

훈장이 아랫목에 드러누운 틈을 타 아래의 시를 써붙여 남기고 가버립니다.

 

辱說某書堂 (욕설모서당)

모 서당을 욕함

 

書堂來早知 (서당내조지)

서당을 미리 알아 일찍 왔는데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방안엔 모두 귀한 것들 뿐이고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

학생은 모두 열 명도 안되는데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훈장은 와서 보지도 않는구나.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구구절절 드러난 충격적인 시입니다.

비슷한 예가 있는데요.

함경도의 어느 제사에서 술 한잔 안 주고 박대를 하자 자신이 축문을 지어 주겠다며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축문 비슷하게 지은 한시가 있습니다.

 

年年臘月十五夜 (연년납월십오야)

해마다 돌아오는 섣달 보름날은

 

君家祭祀乃早知 (군가제사내조지)

그대 집의 제삿날인 줄 진작 알았네

 

祭尊登物用刀疾 (제존동물용도질)

제사에 올린 음식은 칼 솜씨가 빠르니

 

獻官執事皆告謁 (헌관집사개고알)

헌관과 집사 모두 정성을 다하였도다.

 

 

위의 시에서 두 번째 줄부터 한시를 읽는 방식으로 음을 읽으면 이런 뜻이 됩니다.

 

"니 집 제사는 내 X이고,

제사에 올릴 음식에 용두질을 하며,

헌관과 집사는 모두 개X알이다."

 

허허, 인터넷에 다는 악플 같군요. 어쩌면 세계 최초의 악플러는 김삿갓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단순한 욕설이 아닌, 보다 흥미로운 것들도 있습니다.


언문풍월(諺文風月)

 

天長去無執 花老蝶不來

천장거무집 화로접불래

(천장 거미집 / 화로에 접불 내)

 

菊樹寒沙發 枝影半從池

국수한사발 지영반종지

(국수 한사발 / 지령(간장) 반 종지)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강정빈사과 대취복송하

(강정 빈사과 / 대추 복숭아)

 

月利山影改 通市求利來

월이산영개 통시구리래

(워리 사냥개 / 통시(변소) 구린내)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은 시들어 나비가 오지 않네.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 지나가다가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에 엎드렸네.

달이 기울어 산 그림자 바뀌니

시장에 다녀와 이익을 얻어 오네.


언문풍월이란 언문(한글)을 오언이나 칠언절구 같은 한시 형식에 때려맞춘 것을 뜻합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한시형식으로 정리된 한글 메시지(딴지일보에서 잘 하죠?)

원조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느 주막에서 주인과 탁주를 건 한시내기를 하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주인이 부른 시제는 ', , '이었습니다. 구리, , 지네라니. 참 이런 시제를

가지고 저라면 어떻게 시를 지을까 고민되네요.

하지만 김삿갓은 이렇게 멋진 시를 지어냅니다.

 


탁주래기(濁酒來期)


主人呼韻 太環銅 (주인호음태환동)

주인이 운자를 너무 구리()게 부르니

 

我不以音 以鳥熊 (아불이음이조웅)

나는 음으로 짓지 않고 새김(새곰.鳥熊)으로 짓겠네

 

濁酒一盆 速速來 (탁주일분속속래)

탁주 한 동이 어서 가져오게

 

今番來期 尺四蚣 (금번내기척사공)

금번 내기는 '자네가 지네(尺四蚣)'.


마지막의 '척사공''' , ('') , '지네' 의 뜻만을

모아 만든 것으로 '자네가 지네' 라는 뜻이 됩니다.

아쉽습니다.

이 절묘한 언어유희를 단지 탁주 한 사발에 들려주기는 아까운데 말입니다.

그는 위대한 시성으로 추앙받아 마땅했을지도 모릅니다.

 

●●

자지(自知)

만지(晩知),

보지(補知)

조지(早知)"

어느 날 김삿갓(김병연)이 전라도 화순 적벽에 가는 도중,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어떤 서당에 들렀다.

그런데 서당 학생들이 어찌나 열심히 공부를 하는지

감탄하여 한마디 내뱉은 한시다.

 

처음엔 서당 훈장과 학생들이 자신들을 욕하는 줄 알고 달려들자

김삿갓이 이렇게 해명했다.

 

자지(自知)

만지(晩知),

보지(補知)

조지(早知)"

 

, "혼자 알려고 하면 늦게 깨우칠 것이요,

남의 도움을 받으면 빨리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시와 우리말을 합쳐 멋진 퓨전요리 컬렉션을 선보인

언어의 쉐프, 김삿갓의 한시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아참, 제가 읽고 있는 책은 양기원씨가 지은 '방랑시인 김삿갓'입니다.

김삿갓의 주옥같은 시편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ps.

할아버지를 욕했다고 하늘 볼 낯이 없어 삿갓을 쓰고 평생 방랑했던 김삿갓.

오늘의 눈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3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는 아프리카 방송에서 부자간에 욕설을 하며

싸움박질을 하는 것이 전국에 생중계되며, 아버지를 죽여 보험금을 타내려는 아들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부족할 것 없는 풍요를 누리며 살면서도,

옛사람들의 바보스러운 낭만에 아련한 눈길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일까요.

 


●●

이년 십구령(爾年 十九齡), 내조지 금실(乃早知 琴悉)하다.  

​너의 나이 열 아홉에 이미 부부의 정을 알았노라


●●

김삿갓이 천하 주유(天下 周遊)를 하다가 한 처녀를 만나서

하룻밤 정()을 나누고 한다는 소리가,

 

毛深內關(모심내관)하니 必過他人(필과타인)이라

털이 무성하고 속이 넓으니 필시 타인이 지나갔을 것이다.

 

이 처녀 그 말을 받아서 질세라 한다는 소리가,

 

後園黃栗不蜂折(후원황률불봉절)하고

?楊柳不雨長(계변양유불우장)입니다.

뒤 뜰의 누른 밤은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지고,

시냇가의 버드나무는 비가 안 와도 잘 자랍니다

 

천하를 방랑하던 김삿갓이 금강산에 이르게 되었다.

수풀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걸어가다가 절을 발견한 김삿갓은 아픈 발을 쉴 겸 법당으로 가는

층계를 올라갔다.

법당 대청 안에는 스님 한 분과 유건을 쓰고 도포를 입은 젊은 선비 한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헴!"

김삿갓은 사람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큰기침을 했다.

"누구요?"

중이 먼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물었다.

"절 구경을 좀 왔소이다."

김삿갓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며 다짜고짜 법당 안으로 척 올라섰다.

"이 양반이 무례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올라오는 게요?"

유건을 쓴 젊은 선비가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날카롭게 내뱉었다.

"법당이지요, 자비로우신 부처님께서 어디 양반 쌍놈 가리신 답니까?"

"아니 이 사람이?"

 

선비는 어이가 없는 지 김삿갓의 행색을 살폈다.

차림새는 비록 남루했지만 글줄이나 읽은 사람인 듯 해서 함부로 얕잡아 볼 수 없는

상대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젊은 선비는 이 무례한 방문객을 보기 좋게 물리칠 계책을 재빨리 궁리했다.

"어디서 오셨소?"

이번에는 중이 말문을 열었다.

"'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올시다. 잠시 쉬어갈까하여 들렀습니다."

김삿갓은 앉으라는 말도 없는데 그들 곁에 털썩 주저앉으며 넉살좋게 말했다.

"여보, 우린 지금 긴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자리를 비켜 주시오."

선비가 눈살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그를 내쫓으려 했다.

"허허, 보아하니 은밀한 말씀을 나누고 계신 모양인데, 참 딱도 하시오."

김삿갓은 냉큼 일어날 기색은커녕 점점 그들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질 작정이었다.

"아니 뭐가 딱하단 말이오?"

중이 험악한 기세로 쏘아 부쳤다.

 

"스님, 긴요한 이야기라면 뒷켠 승방에서 나눌 일이지 어찌 부처님 앞에서 나눈단 말씀이오, 앉아만 계셔도

구만리를 내다보시는 부처님은 두렵지 않고 한낱 지나가는 이 과객은 두렵단 말이오."

"뭣이?"

 

선비와 중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말을 듣고 보니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

인간은 속일 수 있어도 부처님은 못 속이는 법, 지금까지 부처님 앞에서 비밀 이야기를 하다가

보잘 것 없는 과객하나를 쫓아내려던 자신들이 부끄러웠다.

 

선비는 이 낯선 과객의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글겨루기를 해서 내쫓을 심산이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풍류과객을 자처하며 어설픈 글귀나 읊조리고 밥술이나

얻어먹으려는 부류들을 많이 겪어보았지만 그런 사람들 치고 제대로 시 한 수 읊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선비는 김삿갓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 라고 생각해서 글짓기로 콧대를 꺾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우선 상대방의 실력을 알아야 하겠기에 먼저 딴청을 피웠다.

 

"보아하니 풍월께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진정 풍류를 아는 선비라면 내 톡톡히

선비대접을

하겠지만 글에 자신이 없다면 저쪽 주방으로 가서 찬밥이나 얻어먹고 가시구려."

 

김삿갓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오냐, 네놈이 글줄이나 읽은 모양인데 어디 한 번 혼나봐라.`

이렇게 선비를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정색을 하고 점잖게 말문을 열었다.

 

"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외다.

제가 깊이 배운 바는 없으나 일찍이 부친 덕에 천자문을 읽어 하늘천 따지는 머리 속에 집어넣고 있으며 어미 덕으로 언문 줄이나 깨우쳤으니 하교해 주시면 가르침을 받겠소이다."

 

김삿갓의 이 같은 말에 중이나 선비는 더욱더 눈살을 찌푸렸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건 은근한 도전이다.

 

"좋소, 그럼 내가 먼저 운을 부를 테니 즉시 답하시오."

선비는 이왕 내친김에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

그의 입에서 ``란 말이 떨어졌다.

 

"타라니, 이건 한문풍월이요, 아니면 언문 풍월이요?"

김삿갓은 눈을 빛내며 선비에게 물었다.

 

"그야 물론 언문 풍월이지."

김삿갓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였다.

 

"좋소이다. 내 답하리다. 사면기둥 붉게 타!"

"또 타!"

 

"석양 행객 시장타!"

"또 타!"

"네 절 인심 고약타!"

"........"

 

``자가 떨어지기 바쁘게 김삿갓이 대답하니 선비는 어이없는 모양이었다.

더구나 갈수록 듣기 거북한 말만 나오니 다시 더 부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무슨 창피를 당할지 모르는 일 이였다.

 

김삿갓은 선비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그가 `!`하고 뱉으면 `지옥가기 꼭 좋타!` 하고 내쏠 작정이었다.

 

<중략>

 

김삿갓은 그들의 심보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설사 이들이 풍월이나 같이 하자고 수작을 걸어온다 할 지라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같아서는 침이라도 뱉어주고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어서 글로서

그들을 희롱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묵묵부답인걸 보니 제 글이 마음에 들지 않나 보구려. 내 한 수 더 읊어 드리리다."

 

김삿갓은 이어 막힘 없이 글귀를 읊었다.

 

승수단단은 한마랑이오.

(僧首團團 汗馬崇)

유두첨첨은 좌구신이라

(儒頭尖尖 坐狗腎)

성령동령은 동정하고

(聲令銅鈴 銅鼎)

목약흑초는 낙백죽이라.

(目若黑椒 落白粥)

 

둥굴둥굴한 중대가리는 땀찬 말좃대가리요

뾰족뾰족한 선비 머리통 상투는 앉은 개 자지로다.

목소리는 구리방울을 구리 솥에 굴리듯 요란스럽고

눈알은 검은 산초 열매가 흰죽에 떨어진 듯하구나.

 

정말 지독한 욕설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

중과 선비는

뒤늦게 자기들을 욕하는 글임을 알아차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이런 죽일 놈을 보았나?"

선비가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김삿갓은 벌써 섬돌 아래에 내려가 있었다.

 

"여보 선비님, 눈을 부릅뜨니 정말 흰죽에 산초 알이 떨어진 것 같소이다.

허허허....."

김삿갓은 너털웃음을 날리며 다시 정처 없는 발길을 옮겼다. (출처 : 소설 <꺼리>)



 

환갑 잔치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으니

아마도 하늘 위에서 내려온 신선일 테지.

여기 있는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니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를 훔쳐다 환갑 잔치에 바쳤네.

 

還甲宴 환갑연

 

彼坐老人不似人

피좌노인불사인

疑是天上降眞仙

의시천상강진선

其中七子皆爲盜

기중칠자개위도

偸得碧桃獻壽筵

투득벽도헌수연

 

*환갑 잔치집에 들린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이 모두 화를 내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모두들 좋아하였다.

셋째 구절을 읊자 다시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역시 모두들 좋아하였다.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는 천 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로 이것을 먹으면 장수하였다.

 

 

원생원


해 뜨자 원숭이가 언덕에 나타나고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밤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元生員 원생원


日出猿生原

일출원생원 

猫過鼠盡死

묘과서진사

黃昏蚊

황혼문첨지  

夜出蚤席射

야출조석사

 

*김삿갓이 북도지방의 어느 집에 갔다가

그곳에 모여 있던 마을 유지들을 놀리며 지은 시이다.

구절마다 끝의 세 글자는

원 생원(元生員), 서 진사(徐進士), 문 첨지(文僉知), 조 석사(趙碩士)

음을 빌려 쓴 것이다.

 

 

피하기 어려운 꽃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 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難避花 난피화

 

靑春抱妓千金開 청춘포기천금개 

白日當樽萬事空

백일당준만사공

鴻飛遠天易隨水 홍비원천이수수 

蝶過靑山難避花

접과청산난피화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다.

김삿갓이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 뒤 이 시를 지어 주었다.

 



기생과 함께 짓다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김삿갓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기생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김삿갓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기생

 

妓生合作 기생합작

 

金笠. 平壤妓生何所能

김립. 평양기생하소능

妓生. 能歌能舞又詩能

기생. 능가능무우시능

金笠. 能能其中別無能

김립. 능능기중별무능

妓生. 月夜三更呼夫能

기생. 월야삼경호부능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젖 빠는 노래

 

시아비는 그 위를 빨고

며느리는 그 아래를 빠네.

위와 아래가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시아비는 그 둘을 빨고

며느리는 그 하나를 빠네.

하나와 둘이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시아비는 그 단 곳을 빨고

며느리는 그 신 곳을 빠네.

달고 신 것이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嚥乳章三章 연유장삼장

 

父嚥其上 婦嚥其下

부연기상 부연기하

上下不同 其味卽同

상하부동 기미즉동

父嚥其二 婦嚥其一

부연기이 부연기일

一二不同 其味卽同

일이부동 기미즉동

父嚥其甘 婦嚥其酸

부연기감 부연기산

甘酸不同 其味卽同

감산부동 기미즉동

 

*어느 선비의 집에 갔는데

그가 "우리집 며느리가 유종(乳腫)으로 젖을 앓기 때문에

젖을 좀 빨아 주어야 하겠소"라고 했다.

김삿갓이 망할 놈의 양반이 예의도 잘 지킨다고 분개하면서

이 시를 지었다.

 

 

옥구 김 진사

 

옥구 김 진사가

내게 돈 두 푼을 주었네.

한번 죽어 없어지면 이런 꼴 없으련만

육신이 살아 있어 평생에 한이 되네.

 

沃溝金進士 옥구김진사


沃溝金進士

옥구김진사 

與我二分錢 

여아이분전

一死都無事

일사도무사

平生恨有身 

평생한유신

 

*김삿갓이 옥구 김 진사 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자

돈 두 푼을 주며 내쫓았다.

김삿갓이 이 시를 지어 대문에 붙이니 김 진사가

이 시를 보고 자기 집에다 재우고 친교를 맺었다.

 

 

 

()자가 서로 이어지고 구()자가 빗겼는데

사이사이 험난한 길이 있어 파촉(巴蜀)가는 골짜기 같네.

이웃집 늙은이는 순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지만

어린 아이는 열기 어렵다고 손가락으로 긁어대네.

 

 

十字相連口字橫

십자상연구자횡

間間棧道峽如巴

간간잔도협여파

隣翁順熟低首入

인옹순숙저수입

稚子難開擧手爬

치자난개거수파

 

*눈 오는 날 김삿갓이 친구의 집을 찾아가자 친구가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고

()이라는 제목을 내며 파촉 파()와 긁을 파()를 운으로 불렀다.

 

 

양반

 

네가 양반이면 나도 양반이다.

양반이 양반을 몰라보니 양반은 무슨 놈의 양반.

조선에서 세 가지 성만이 그중 양반인데

김해 김씨가 한 나라에서도 으뜸 양반이지.

천 리를 찾아왔으니 이 달 손님 양반이고

팔자가 좋으니 금시 부자 양반이지만

부자 양반을 보니 진짜 양반을 싫어해

손님 양반이 주인 양반을 알 만하구나.

 


兩班論 양반론

 

彼兩班此兩班

피양반차양반

班不知班何班

반부지반하반

朝鮮三姓其中班

조선삼성기중반

駕洛一邦在上班

가락일방재상반

來千里此月客班

내천리차월객반

好八字今時富班

호팔자금시부반

觀其爾班厭眞班

관기이반염진반

客班可知主人班

객반가지주인반

 

*김삿갓이 어느 양반 집에 갔더니 양반입네

거드럼을 피우며 족보를 따져 물었다.

집안 내력을 밝힐 수 없는 삿갓으로서는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주인 양반이 대접을 받으려면

행실이 양반다워야 하는데

먼 길 찾아온 손님을 박대하니 

따위가 무슨 양반이냐고 놀리고 있다.

 


 

●●

김병연 = 김립 金笠 [1807~1863]

1807(순조 7)1863(철종 14).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본관은 안동. 자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 경기도 양주 출생.

 

평안도 선천(宣川)의 부사였던 할아버지 익순(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에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였다.

노복 김성수 (金聖洙)의 구원으로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해

공부하였다.

후일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어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안근(安根)은 홧병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자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기고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김병연이 과거에 응시,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그의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시제로 장원급제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둔 채로 방랑의 길에 오른다.

이때부터 그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금강산 유람을 시작으로 각지의 서당을 주로 순방하고, 4년 뒤에 일단 귀향하여

1년 남짓

묵었다.

이때 둘째아들 익균(翼均)을 낳았다.

또다시 고향을 떠나서 서울·충청도·경상도로 돌았다.

도산서원(陶山書院) 아랫마을 서당에서 몇 해동안 훈장노릇도 하였다.

다시 전라도·충청도·평안도를 거쳐 어릴 때 자라던 곡산의 김성수 아들집에서

1년쯤 훈장노릇을 하였다.

 

충청도 계룡산 밑에서, 찾아온 아들 익균을 만나 재워놓고 도망하였다가

1년 만에 또 찾아온

그 아들과 경상도 어느 산촌에서 만났으나, 이번에는 심부름을 보내놓고 도망쳤다.

3년 뒤 경상도 진주땅에서 또다시 아들을 만나 귀향을 마음먹었다가 또

변심하여 이번에는 용변을 핑계로 도피하였다.

 

57세 때 전라도 동복(同福)땅에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나귀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신세를 졌다.

그 뒤에 지리산을 두루 살펴보고 3년 만에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되돌아와 한많은 생애를 마쳤다.

뒤에 익균이 유해를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태백산 기슭에 묻었다.

 

김병연의 한시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 희화적(戱怜的)으로

한시에 파격적 요인이 되었다.

그 파격적인 양상을 한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스무나무 아래 앉은 설운 나그네에게/

망할놈의 마을에선 쉰밥을 주더라/

인간에 이런 일이 어찌 있는가/

내 집에 돌아가 설은 밥을 먹느니만 못하다

(二十樹下三十客 四十村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이 시에서 전통적인 한시의 신성함 혹은 권위에 대한 도전, 그 양식 파괴 등에서 이러한 파격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문학사에서는 김삿갓으로 칭해지는 인물이 김병연 외에도 여럿 있었음을 들어 김삿갓의 이러한

복수성은 당시 사회의 몰락한 양반계층의 편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과거제도의 문란으로 인하여 선비들의 시 창작기술은 이와 같은 절망적 파격과 조롱·야유·

기지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1978년 김병연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광주 무등산 기슭에 시비(詩碑)를 세웠다.

1987년 영월에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全國詩歌碑建立同好會)’에서 시비를 세웠다.

그의 시를 묶은 김립시집 金笠詩集이 있다.

 

참고문헌綠北集(黃五), 海藏集, 大東奇聞, 金笠詩集(李應洙編, 有吉書店, 1939),

金笠諷刺精神(金容浩, 漢陽 37, 1964),

金笠硏究(尹銀根, 고려대학교교육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79).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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