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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좋은 생각)

정승의 정자

작성자山房山|작성시간17.05.10|조회수205 목록 댓글 0

●○ 오늘의 고전명구 ○●

정승의 정자

높은 곳에 있으면 위태로울 것을 생각해야 하고
방에 들어와서는 귀신이 볼 것을 생각해야 한다.

居高 不可不念其危也 入室 不可不思其瞰也
거고 불가불염기위야 입실 불가불사기감야

- 김육(金堉, 1580~1658)
『잠곡유고(潛谷遺稿)』권9
「구루정기(傴僂亭記)」



이 글은 대동법(大同法) 시행을 위해 평생 노력했던 잠곡(潛谷) 김육(金堉)이 70살이 지나 자기 집 뒤편에 구루정(??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쓴 글이다. 이 정자는, 가까이로는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목멱산ㆍ백악산ㆍ낙산ㆍ인왕산, 멀리로는 북한산의 인수봉까지 바라다 보이는 풍광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돌 틈 사이로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연못에는 연꽃도 심어져 있으니, 노년의 잠곡이 몸과 마음을 쉬기에는 딱 알맞은 곳이었다.

그런데 왜 정자의 이름을 ‘구루(??)’라고 지었을까? ‘구루’라는 말은 ‘구부린다’는 뜻이다. 지붕이 낮아 머리가 부딪치므로 허리를 구부리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다. 이름은 그래도 실제로 정자가 그렇게까지 낮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자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잠곡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큰길을 바라보면 여염집들이 땅에 나지막하게 있고, 대궐 쪽을 바라보면 궁궐의 용마루가 하늘에 접해 있다. 그리고 도성 사람들이 구름 같이 오가며 보는 자가 많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떨려 높게 짓는 것이 혐의스럽다. 이 때문에 처마와 서까래를 낮게 하고 담장을 낮게 한 다음 소나무와 대나무로 울타리를 쳐서 검소함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옛말에 귀신은 가득 찬 것을 싫어하여 부귀한 자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방 안에 혼자 있을 때에도 살펴본다고 하였다. 당시 잠곡은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인 정승의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처신을 더 엄격하게 단속하여 정자 하나 짓는 데까지도 이렇게 자신을 낮춘 것이다.

요즘 세상은 온통 자본주의가 득세하여 자신의 부귀를 마음껏 과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경치가 좋다 싶은 곳에는 어김없이 으리으리한 별장을 지어 아름다운 경관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만약 옛말대로 정말 귀신이 있다면 그 집 방 안 어디에선가 귀신이 주인의 교만한 마음을 노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쓴이 : 이규옥(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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