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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의 유래

작성자山房山|작성시간22.06.12|조회수103 목록 댓글 0

화투의 유래

한국인들은 으레 세 사람 이상 모이면, 어디서든지 고스톱 판을 벌인다. 심지어 신성한 국회의사당 내에서 고스톱 판을 벌인 국회의원들까지 있을 정도다. 어쩌면 우리나라 전체가 ‘고스톱 공화국’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정작 화투 48장의 실체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화투에 숨겨진 일본 문화의 비밀코드에 대해서는 하등의 지식을 갖지 못한 채, 그들이 전해준 고스톱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월별로 각각 4매씩 총 48장으로 구성된 화투는 일본 문화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화투의 낱장 하나하나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거기에는 일본 고유의 세시풍속, 월별 축제와 갖가지 행사, 풍습, 선호, 기원 의식 심지어는 교육적인 교훈까지 담겨져 있다.

우선 1월의 화투는 위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점짜리 광(光), 5점짜리 홍단, 그리고 2장의 피로 구성되어 있다. 세칭 광(光)의 화투 문양을 보면 1/4쪽 짜리 태양, 1마리의 학, 소나무, 홍단 띠가 나온다. 여기서 태양은 새해의 일출을, 학은 장수와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나타내는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적 코드다.

또 1월의 화투에 소나무가 등장하는 이유는 가도마쯔(門松; かどまつ) 행사에 소나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1월에 맞이하는 일본의 대표적 세시풍속인 가도마쓰는 일본인들이 1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소나무를 현관 옆에다 장식해 두고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이기 위한 일련의 행사를 의미한다.

또 학을 의미하는 츠루(鶴; つる)가 소나무를 뜻하는 마쯔(松; まつ)의 말운(末韻)을 이어받는 것도 일본식 풍류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1년 열두 달 중에서 8월과 11월을 의미하는 화투 팔(八)과 오동(세인들은 오동을 똥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다.)을 제외한 나머지 10개 달의 5점짜리 화투에 등장하는 청, 홍색 띠는 일명 '단책(丹冊)’이라고 하는 종이다.

일본에서는 하이쿠(俳句; はいく)라는 일본의 전통 시구(詩句)를 적을 때 그 종이를 사용하며 크기는 대략 가로(6cm)×세로(36cm) 정도가 된다. 이것 또한 일본인들이 시를 짓는 풍류 의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청색과 적색에 관한 한일 양국간의 시각차이다. 한국에서는 빨간색이 사망, 공산당, 화재 등과 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갖지만, 일본에서의 빨간색은 쾌청한 날씨, 경사스러움, 상서로움을 나타낸다. 그런 점에서 화투 일, 이, 삼의 5점짜리가 홍단의 구성 요소라는 것은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1, 2, 3월이 매우 상서로운 달임을 시사해 준다고 할 수 있다.



2월을 나타내는 화투의 문양에는 꾀꼬리와 매화가 나온다. 2월의 화투에 매화가 등장하는 이유는 일본의 매화 축제가 2월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매화 축제는 이바라키현 미토의 가이라크 매화 공원을 비롯한 전국의 매화 공원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또 꾀꼬리는 ‘우구이스다니’라는 도쿄의 지명에도 남아 있을 만큼 일본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새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꾀꼬리가 봄철이 아닌 2월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조류학자들에 따르면 철새인 꾀꼬리가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시점은 대체로 4월 이후라고 한다. 그런데도 2월의 화투에 꾀꼬리가 그려져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아직까지 그 의문을 시원스럽게 풀어줄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꾀꼬리와 매화가 봄의 전령사임을 노래하는 대표적 시어(詩語)인 동시에 꾀꼬리의 일본어 표기인 우구이스(うぐいす)와 매화를 뜻하는 우메(うめ)간에 두운(頭韻)을 일치시키려는 일본인들의 풍류 의식을 반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벚꽃 축제는 3월 달에 최고 절정에 이르기 때문에 3월의 화투 문양은 온통 벚꽃(일본인들은 벚꽃을 사꾸라 꽃이라고 명명한다.)으로 가득 차 있다. 삼광(光)의 벚꽃 밑에 그려진 것은 만막(慢幕; まんまく)이라는 휘장인데 그것은 지금도 일본인들의 경조사 때에 천막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휘장 속에는 벚꽃을 감상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상춘객들이 놀고 있을 테지만, 삼광의 화투에서는 그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춘객들이 화투 하단의 숨겨진 1인치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 만막 안에서 낮술에 취한 채 봄날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는 상춘객이 그대로 튀어나올 법도 하다.





4월의 화투 문양은 흑싸리가 아니라 등나무 꽃이다. 4월은 일본에서 등나무 꽃 축제가 열리는 계절이다. 그래서 4월의 화투 문양은 등나무 꽃(보라색을 띤 등나무 꽃은 마치 포도송이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따라서 아래 그림과 같이 화투를 배열해야 옳은 배열이 된다.)이 주류를 이룬다.

등나무는 일본 전통시의 시어(詩語)로 쓰이는 여름의 상징이며, 4월의 화투 10점짜리에 그려져 있는 두견새 역시 일본에서 시제(詩題)로 자주 등장할 만큼 일본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등나무 꽃을 한국 사람들이 ‘흑싸리’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흑싸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자란 40․ 50대 사람들은 빗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는 싸리나무의 색깔은 녹색이며, 가을철에 그것을 베어 햇볕에다 말리면 갈색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5월의 화투에 등장하는 것이‘난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난이 아니라 붓꽃이다. 5월의 붓꽃은 보라색 꽃이 피는 습지의 관상식물(습지와 난은 상극관계에 있다.)로서 여름을 상징하는 시어(詩語)다. 또 한국 사람들은 5월의 10점짜리 화투에 나오는 3개의 작은 막대기는 애연가들이 좋아하는 딱성냥으로 T자 모양의 막대는 건축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제도용 막대 자’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여기서 T자 모양의 막대는 붓꽃을 구경하기 위해 정원 내 습지에다 만들어 놓은 산책용 목재 다리이며, 3개의 작은 막대기는 목재 다리를 지지하는 버팀목이다. 일본인들은 그런 목재 다리를 ‘야츠하시(八橋; やつはし)’라고 부른다. 또 다리 끝에는 붓꽃을 감상하는 사람이 있는데, 삼광(光)에서와 마찬가지로 화투 하단의 보이지 않는 1인치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





6월의 화투 문양은 모란꽃이다. 모란꽃은 여름의 시어(詩語)일 뿐만 아니라 고귀한 이미지마저 갖는 꽃으로서 일본인들의 가문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꽃과 나비하면 바로 모란꽃을 떠올릴 정도로 동양 사회에서는 모란꽃을 꽃의 제왕으로 쳐준다. 그러나 한국화에서는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것이 오래된 관례라고 한다.

그것은 당 태종이 신라의 선덕여왕에게 보낸 모란꽃의 그림에 나비가 없었다는 점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그러나 6월을 의미하는 화투를 보면 일본화의 관례대로 모란과 나비가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한국과 다른 일본 고유의 문화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참고로 6, 9, 10월의 화투 5점짜리에는 청단이 있는데, 일본에서 청색은 우울하거나 좋지 않은 일을 암시하는 색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6, 9, 10월 달에 태풍이나 집중 호우로 인한 수재민들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평균적으로도 1년 중 이 기간에 각종 사건 사고가 비교적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7월의 화투문양은 싸리나무다. 7월의 화투 중에서 10점짜리에만 싸리나무 숲에서 멧돼지가 노니는 모습이 등장하고 나머지 화투에는 싸리나무만 등장한다. 7월의 화투에 멧돼지가 나오는 이유는 근대 일본에서 성행했던 멧돼지 사냥철이 7월이었기 때문이다.





8월의 화투문양을 보면 산, 보름달, 기러기 3마리가 등장한다. 이는 일본에서도 8월이 오츠키미(달구경; おつきみ)의 계절인 동시에 철새인 기러기가 대이동을 시작하는 시기임을 알려주는 일종의 문화적 암호다.

또 한국에서 제작되는 8월의 화투에서 검은색으로 처리된 것이 산이다. 10점짜리와 피에서 흰색으로 처리된 부분은 하늘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8월의 한국 화투에는 산에 억세 풀이 없는데 반해, 일본의 화투에는 억세 풀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8월의 화투에는 5점짜리 화투도 없고 홍색이나 청색 띠도 없다. 그것은 일본에서도 8월 달이 1년 중에서 제일 바쁜 추수철이기 때문에 한가롭게 시를 쓰고 낭송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시사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고스톱꾼들이 9월의 화투를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는? 9월은 일본에서 국화축제가 열리는 대표적인 계절이다. 따라서 9월의 화투문양으로 국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또 9월의 화투에서 10점짜리를 보면 ‘목슴 壽’자가 새겨진 술잔이 등장한다. 이는 9세기경인 헤이안 시대부터 ‘9월 9일에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꽃을 덮은 비단옷으로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를 한다.’는 일본의 전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특히 국화가 일본의 왕가를 상징하는 문양임을 고려할 때, 그것은 일왕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흐르는 물에다 술잔을 띄워놓고 국화주를 마시면서 자신들의 권세와 부귀가 영원하기를 기원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9월의 화투 가운데 10점짜리 화투만이 자기 맘대로 쌍 피(2장의 피)가 될 수도 있고, 10점짜리 화투로 남을 수 있는 특권을 갖는 것도 바로 9월의 10점짜리 화투가 일왕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왕만 되면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9월의 화투문양 중에서 10점짜리 화투만 보면 신라시대의 고관대작들이 포석정에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임금과 자신들의 태평과 안녕을 기원했던 풍류가 연상된다. 술잔을 의미하는 사카즈키(さかずき)와 국화를 뜻하는 키쿠(きく)간에 말운(末韻)과 두운(頭韻)이 연속성을 갖는 점도 흥미 있는 일이다.





일본에서 10월은 전통적으로 단풍놀이의 계절인 동시에 본격적인 사슴 사냥철이다. 10월의 화투를 보면, 10점짜리 화투에 수(♂)사슴과 단풍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계절의 특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사슴을 의미하는 시카(鹿; しか)와 단풍을 뜻하는 카에데(丹楓; かえで)간에도 말운(末韻)과 두운(頭韻)이 일치하는데 이것 역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11월과 12월을 의미하는 화투는 한일 양국 간에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오동’은 11월의 화투이고 ‘비’는 12월의 화투인데 반해, 일본은 그 반대이다. 즉 일본에서는 ‘비’가 11월의 화투이고 '오동’은 12월의 화투이다. 일본에서 ‘오동’이 12월의 화투가 된 것은 ‘오동’을 뜻하는 기리(きり)가 에도시대의 카드였던 ‘카르타’에서 맨 끝인 12를 의미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점들을 사전적으로 이해하고 화투 ‘오동’과 ‘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고스톱을 즐기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동이다. 속칭 ‘똥광’으로 불리는 오동의 광(光)은 광으로도 쓸만하고 피(皮) 역시 오동만이 유일하게 3장이다. 물론 일왕을 상징하는 9월의 화투 중에서 10점짜리가 쌍 피가 되겠다고 하면, 9월의 화투도 피가 3장이 될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더러움, 지저분함, 고약한 냄새의 이미지를 주는 오동이 왜 고스톱꾼들에게는 제일로 각광 받는 화투패가 되었을까? 그 비밀은 오동의 화투 문양에 있다. 오동의 20점짜리 광(光)에는 닭 모가지 모양의 이상야릇한 조류와 고구마 싹 같은 것이 등장한다. 한국인들은 그 대상이 무엇이고, 또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나타내 주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11월의 화투문양 중에서 검정 색깔의 문양은 고구마 싹이 아니라 오동잎이다. 일본 화투를 보면 오동잎이 매우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 오동잎은 일왕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막부의 쇼군을 상징하는 문양이며, 지금도 일본 정부나 국공립학교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일본 화폐 500엔(¥)짜리 주화에도 오동잎이 도안으로 들어가 있을 정도다. 그리고 닭 모가지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는 조류 또한 평범한 새가 아니다. 그것은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쇼군의 품격과 지위를 상징하는 봉황새의 머리이다.

이쯤 되면 일본인들이 왜 그렇게 오동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감이 잡힐 것이다. 한국인들은 오동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단지 점수를 나는데 유리한 화투 오동의 광(光)과 3장의 피(皮)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면 9월의 화투문양인 국화와 11월의 화투 문양인 오동 중에서 누가 더 끗발이 세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화투 ‘오동’이 더 세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국화만 가지고 있게 되면 광 박을 뒤집어쓰지만, 오동의 광을 갖고 있으면 광박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의 화투문양을 보면 20점짜리 ‘비’광(光)에는 양산을 쓴 선비, 청색의 구불구불한 시냇가 개구리가 등장한다. 또 10점짜리 화투에는 색동옷을 걸친 제비가 나오고 쌍피로 각광을 받는 ‘비’ 피를 보면 정체불명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고스톱에 사족을 못 쓰는 노름꾼들에게 광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화투 패가 엉망일 때, 제일 먼저 집어내 버려야할 대상으로 지목되는 ‘비’광을 보노라면, ‘광 팔자가 따라지 팔자’라는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절기상으로 12월은 추운 겨울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 광을 살펴보면 웬 낯선 선비 한 분이 양산을 받쳐 들고 ‘떠나가는 김삿갓’처럼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리고 축 늘어진 수양버들(실제로는 녹색인데, 검은색으로 처리되어 있다.)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고, 그 옆에는 개구리 한 마리가 앞다리를 들며 일어서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개구리가 혹한의 계절인 12월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매우 신기하다.

그러나 ‘비’광 속에 나오는 그림은 과거 일본 교과서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유명한 ‘오노의 전설’을 묘사한 것이다. 즉 ‘비’광 속의 갓 쓴 선비는 오노노도후(小野道風)라는 일본의 귀족으로서 약 10세기경에 활약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다. 한국 화투에서는 일본 화투에 나오는 그 선비의 갓 모양만 일부 변형시켰을 뿐, 나머지는 일본 화투와 동일하다. 또 개구리를 뜻하는 카에루(かえる)와 양산을 의미하는 카사(かさ)의 두운(頭韻)이 일치하는 것도 일본인들의 풍류 의식에 따른 것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오노의 전설’에 대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일본의 서예가였던 오노가 붓글씨에 몰두하다 싫증이 나자 잠시 방랑길에 올랐다. ‘비’광에 등장하는 선비의 모습이 머나먼 방랑길을 떠나는 오노의 모습이다. 그런데 오노가 수양버들이 우거진 어느 길목에 다다랐을 때 아주 이상한 광경을 발견했다. 그것은 개구리 한 마리가 수양버들에 기어오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개구리는 오르다가 미끄러지고 또 오르려다 미끄러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그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오르기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오노는 연속적인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수양버들에 기어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개구리의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미물(微物)인 저 개구리도 저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여기서 포기해서 되겠는가?”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 붓글씨 공부에 정진하였고 결국 일본 최고의 서예가가 되었다고 한다.

또 쌍피로 대접받는 ‘비’피의 문양을 보면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방안의 커튼, 문짝 등 여러 가지가 연상된다. 그런데 ‘비’피의 문양은 ‘죽은 사람을 내보내는 일종의 쪽문’으로서, 라쇼몬(羅生門)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50년에 다이에이(大映) 영화사가 라쇼몬(羅生門)이라는 영화를 제작(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주연: 미후네 도시로, 교마치코) 하여 큰 관심을 거두기도 하였다.

한편, ‘비’피가 쌍 피로 대접받는 것은 라쇼몬이 죽은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귀신이 붙어있을 것이고 따라서 귀신을 잘 대접해야만 해코지를 면할 수 있다는 일본인의 우환(憂患)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와 비슷한 예는 우리 주변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흔한 얘기로 ‘손’이라 함은 귀신을 의미한다. 어른들이 가족의 중대사 (예: 결혼, 이사 등)를 결정할 때 가장 먼저 체크하는 것이 ‘손’없는 날인가의 여부다. 그때의 ‘손’이 바로 귀신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손’이라는 단어보다는 ‘손님’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쓴다. ‘님’자를 붙여주는 이유 또한 ‘손’에다 ‘님’자를 붙여줌으로써 귀신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이 아닐까?


(김덕수의 파워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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