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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문종실록(2권즉위년) [1]

작성자山房山(榮國)|작성시간09.12.14|조회수119 목록 댓글 0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2, 문종실록 [1]

  

문종 2권, 즉위년(1450 경오 / 명 경태(景泰) 1년) 7월 22일(갑자)

 

김종서·이천·김효성 등에게 각종 팽배의 사용을 의논하게 하였다.

 

좌찬성(左贊成) 김종서(金宗瑞)와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천(李蕆),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김효성(金孝誠), 전 참판(參判) 이사임(李思任), 행 상호군(行上護軍) 신귀(申貴), 참의(參議) 박강(朴薑),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강순(康純), 상호군(上護軍) 김윤부(金允富)·원익수(元益壽) 등에게 명하여, 각종 팽배(彭排)574) 의 쓰고 못쓸 것을 의논하게 하니,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징석(李澄石)이 만든 삼엽 팽배(三葉彭排)575) 는 길이와 넓이가 너무 커서 운반하기가 어려우니, 일첩(一貼)은 없애고 이첩(二貼)만 써서 삼노[麻繩]로 조르면, 만들기 어렵지 않고 운반하기가 또한 쉬워서 공격과 수비에 모두 편합니다. 양계(兩界)의 여러 진(鎭)에서 이미 시험하였는데, 다만 체제가 똑같지 않으니, 군기감(軍器監)으로 하여금 모형을 만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예전의 원팽배(圓彭排)576) 는 예전 제도에 의하여 만들어서, 군려(軍旅)에 쓰는 것이 가합니다. 다만 공력(工力)이 많이 들고 항상 쓰면 썩기 쉬우니, 청컨대 평상시 시위에는 목원 팽배(木圓彭排)를 따로 만들어서 쓰는 것이 편합니다. 유구국(琉球國) 팽배(彭排)와 본조의 입팽배(立彭排)577) 와 이징옥(李澄玉)이 만든 총통 연접 팽배(銃筒連接彭排)는 모두 쓰기에 불편합니다.”

하였다. 군기감(軍器監)에 명하여 의논한 것에 의하여 시행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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