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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세조실록(27권8년)[15]

작성자山房山(榮國)|작성시간11.05.05|조회수32 목록 댓글 0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4. 세 조 실 록[15]

 

 

세조 27권, 8년(1462 임오 / 명 천순(天順) 6년) 1월 12일(정미)

함길도 도절제사 강순이 여진의 동태와 입구에 따른 대비 상황을 치계하다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강순(康純)이 종성 절제사(鍾城節制使)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치계(馳啓)하기를,

“수주(愁州)에 사는 올량합(兀良哈) 야상합(也尙哈)이 와서 말하기를, ‘포주(蒲州)에 사는 여진(女眞) 이속합(伊速哈)·모리합(毛里哈) 등이 말하기를, 「연전 12월에 포주(蒲州)에 사는 알타리(斡朶里) 3백여 명이 화라온 올적합(火刺溫兀狄哈) 50여 명을 청하여 평안도(平安道)에 입구(入寇)하여, 각각 사람과 가축을 사로잡아 와서 말하기를, 평안도의 군사가 부실(不實)하고 방어(防禦)가 허술하니, 장차 화라온의 병사를 다시 청하여 2월 사이에 입구(入寇)하겠다고 하였으며, 또 여러 곳의 올량합 등이 함께 의논하기를, 금년 정월 보름께나 오는 2월 초에 마땅히 길주(吉州)·갑산(甲山) 등지에 빈틈을 타서 입구하자고 하였다.」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즉시 평안도에 이첩(移牒)하였고, 또 갑산(甲山)·혜산(惠山)·삼수(三水) 등지로 하여금 다시 방비(防備)를 엄하게 하고서 군관(軍官) 이중결(李仲潔)을 차송(差送)하여 이를 검찰(檢察)하게 하였습니다.”

하였다.

 

세조 27권, 8년(1462 임오 / 명 천순(天順) 6년) 1월 12일(정미)

평안도 도관찰사·도절제사에게 방비를 더하도록 유시하다

평안도 도관찰사(平安道都觀察使) 김질(金礩)·평안도 도절제사(平安道都節制使) 어득해(魚得海)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전사(傳寫)한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강순(康純)의 계본(啓本)을 동봉(同封)하니, 사정을 살펴서 더욱 방비(防備)를 더하라. 시기에 응하여 이를 격파(擊破)하는 것이 상책(上策)이고, 적(敵)을 가벼이 여기다가 일에 차질(蹉跌)이 나게 하는 것이 하책(下策)이니, 신중하여 적(賊)이 틈타지 못하게 하고, 지중(持重)하여 정예(精銳)의 힘을 기르라.”

하였다.

 

세조 27권, 8년(1462 임오 / 명 천순(天順) 6년) 1월 18일(계축)

함길도 도관찰사 강효문·도절제사 강순 등이 야인의 동태에 대해 치계하다

함길도 도관찰사(咸吉道都觀察使) 강효문(康孝文)·도절제사(都節制使) 강순(康純)이 종성 절제사(鍾城節制使) 김교(金嶠)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치계(馳啓)하기를,

“수주(愁州)에 사는 올량합 도만호(兀良哈都萬戶) 유어린합(柳於麟哈)이 와서 말하기를, ‘내가 상가하(常家下)에 사는 보라대(甫羅大)에게 들으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화라온 올적합(火刺溫兀狄哈) 5명이 이달 초3일에 아치랑귀(阿赤郞貴)에 사는 선두(宣頭)의 집에 이르러 말하기를, 「동류(同類)인 화라온 도독(火刺溫都督) 벌아가(伐兒哥)·이응가다합(伊應加多哈)·하보당합(下甫堂哈) 등이 각각 그 관하(管下) 1천 명을 거느리고, 포주(蒲州)에 사는 알타리(斡朶里) 동창(童倉)·이만주(李滿住)의 아들 등이 각각 그 관하(管下) 5백 명을 거느리고 서로 약속하기를, 평안도(平安道)의 군사가 미약하고 방어가 허술하므로 재차 입구(入寇)하면 절대로 버티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해빙(解氷)하기 전에 가서 공격하여 사람과 가축을 창탈(搶奪)하자고 하였다.」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세조 27권, 8년(1462 임오 / 명 천순(天順) 6년) 1월 19일(갑인)

함길도 도관찰사 강효문 등에게 야인 중 공로가 있는 자를 상경시키도록 유시하다.

함길도 도관찰사(咸吉道都觀察使) 강효문(康孝文)과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강순(康純)에게 유시(諭示)하기를,

“듣건대 근일에 야인(野人) 등이 곤궁(困窮)하여 자못 귀순(歸順)하려는 뜻이 있다고 하는데, 만약 일체 이를 끊어버린다면 그들이 자신(自新)5512) 하는 길이 없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 백성을 쇄환(刷還)하고 적의 소식을 보고하는 등, 공로를 세운 자가 상경(上京)하고자 하거든 그 경중(輕重)을 참작하여 그 종자(從者)를 줄여서 운(運)5513) 을 나누어 올려 보내라.”

하였다.

註 5512]자신(自新) :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는 것. ☞

註 5513]운(運) : 물화(物貨)를 운송할 때 묶는 단위.

 

세조 27권, 8년(1462 임오 / 명 천순(天順) 6년) 2월 13일(무인)

함길도 관찰사 강효문·도절제사 강순이 올린 야인 정세에 대한 치계

함길도 도관찰사(咸吉道都觀察使) 강효문(康孝文)이 판회령부사(判會寧府事) 선형(宣炯)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치계(馳啓)하기를,

“동량(東良)에 사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김파을대(金波乙大)가 와서 보고하기를, ‘지난 겨울철에 포주(蒲州) 사람들이 화라온(火刺溫)과 군사를 연합하고 가서 평안도를 침략하여, 사로잡아 온 소와 말이 이루 다 셀 수가 없었고, 인구(人口)도 사로잡아 온 것이 또한 많았는데, 사람들이 각각 2, 3명씩 잡아 갔습니다. 화라온(火刺溫)의 모대합(毛歹哈)이 먼저 의논하기를, 「군사를 모아서 얼음이 풀리기 전에 포주(蒲州) 사람과 더불어 도둑질하고자 한다.」 하였고, 모련위(毛憐衛) 여라두(汝羅豆) 등이 목계(木契)를 보내어 힘을 합하여 침략하자고 하였고, 또 벌인(伐引)·모리안(毛里安)·몽고가사(蒙古家舍)·박가별라(朴加別羅) 등지의 사람들도 모두 의논하기를, 「풀이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도둑질하자.」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또 종성 절제사(鍾城節制使) 김교(金嶠)의 정문(呈文)에 의거하면, ‘수주(愁州)에 사는 올량합(兀良哈) 속사(速沙)·아충가(阿充可) 등이 와서 보고하기를 「우리들이 화라온 올적합(火刺溫兀狄哈)의 광응자(光應自)에게 들으니, 말하기를, 포주(蒲州)에 사는 알타리(斡朶里)의 보라대(甫羅大)가 사람을 올적합 도독(兀狄哈都督) 이응가대(里應可大)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지난번에 평안도에 입구(入寇)하였는데 성자(城子)가 없는 곳은 방어(防禦)가 허술하였으니, 만약 너희들의 군사가 온다면 우리도 마땅히 힘을 합하여 도둑질하겠다 하니, 이응가대가 말하기를, 마땅히 관하(管下) 군사 2백 명을 거느리고 정월 그믐 때에 도둑질하겠다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하였고, 수주(愁州)에 사는 올량합(兀良哈)의 나읍타(羅邑他)가 거느리고 있는 중국 사람 몽고(蒙古)가 와서 보고하기를, 「오치안(吾治安)에서 사는 올량합(兀良哈)의 말롱합(末弄哈)이 거느리고 있는 중국 사람 사오간(舍吾間)이 우리 집에 와서 말하기를, 아치랑이(阿赤郞耳)·오치안(吾治安) 등지에서 전일에 조선군(朝鮮軍)이 공벌(攻伐)할 때에 피살된 자의 족친(族親)이 와서 말하기를, 벌주(伐州)에 사는 알타리 등이 조선(朝鮮)을 배반 거역하고 재차 도둑질하려고 하니, 우리들도 또한 장차 보복(報復)하자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오랑캐가 마침 흉년(凶年)을 만나 사람과 가축이 굶주리고 피곤하여 보복(報復)하기는 어렵겠으나, 운(運)을 나누어 둔취(屯聚)하였다가 허술한 때를 틈타서 들어와 도둑질하려는 일을 의논하였습니다.」 하였고, 아치랑이(阿赤郞耳)에 거주하는 올량합(兀良哈)의 사직(司直) 오동고(吾同古)가 와서 보고하기를, 「화라온 올적합(火刺溫兀狄哈)의 구랑동합(仇郞同哈)이 와서 말하기를, 같은 족류(族類)의 올적합(兀狄哈) 등이 의논하기를, 같은 족류의 사람과 벌인(伐引)에 사는 알타리(斡朶里) 3천여 군사가 앞으로 평안도에 가서 방어(防禦)가 허술한 곳에서 도둑질한다면 장차 사람과 가축을 다 사로잡아 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하고, 도절제사(都節制使) 강순(康純)도 또한 이 사실을 치계(馳啓)하니, 즉시 평안·함길·강원·황해도 도체찰사(平安咸吉江原黃海道都體察使) 한명회(韓明澮)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전사(傳寫)한 함길도 관찰사(咸吉道觀察使) 강효문(康孝文)의 계본(啓本)과 주문사(奏聞使) 매우(梅佑)가 먼저 보내 온 사목(事目)을 동봉(同封)하니 자세히 보라.”

하고, 또 매우(梅佑)의 사목을 함길도 도관찰사와 도절제사에게 급히 보내어 알리었다.

 

세조 27권, 8년(1462 임오 / 명 천순(天順) 6년) 2월 16일(신사)

회령으로 도망 온 양유보의 처리에 대한 치계와 유시

이보다 앞서 함길도 도관찰사(咸吉道都觀察使) 강효문(康孝文)이 치계(馳啓)하기를,

“금번에 회령(會寧)으로 도망하여 온 중국 사람 양유보(楊柳甫)는 원래 요동(遼東) 후위(後衛)의 체창(體昌) 지방에서 살다가 사로잡혀서 포주(蒲州)에 사는 알타리(斡朶里) 이라수(伊羅愁)의 사역(使役)을 받은 지 12년입니다. 그러나 전에 저들 야인들이 귀순(歸順)하였을 때에는 노략질하여 사환(使喚)하던 중국 사람이 도망하여 오면 으레 마땅히 돌려주었으나 근년에 야인들이 도둑질한 뒤에는 도망하여 오는 중국 사람을 모두 본토(本土)로 돌려보냈습니다. 지난번에 저들 야인들이 옛날처럼 귀순하였으니, 이번에 도망하여 온 양유보를 어떻게 처리해야 되겠습니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강효문과 도절제사(都節制使) 강순(康純)에게 유시(諭示)하기를,

“회령(會寧)으로 도망하여 온 양유보는 그 주인이 만약 돌려주기를 청하고 그 일이 귀순(歸順)하는 데 관계된다면 그 사세(事勢)를 요량하여 전대로 돌려주고 그렇지 않거든 올려 보내라. 경이 마땅히 짐작하여 시행(施行)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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