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세조실록

(朝鮮王朝實錄)세조실록(37권11년)[26]

작성자山房山(榮國)|작성시간11.05.05|조회수42 목록 댓글 0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4. 세 조 실 록[26]

 

 

세조 37권, 11년(1465 을유 / 명 성화(成化) 1년) 10월 22일(병신)

봉현에 범이 있다 하여 나갔으나 잡지 못하다

사람이 봉현(蜂峴)에 범이 있다고 아뢰니, 임금이 봉현에 거둥하였다.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영의정 신숙주(申叔舟)·상당 부원군 한명회(韓明澮)·좌의정 구치관(具致寬)·우의정 황수신(黃守身)·남양 부원군(南陽府院君) 홍달손(洪達孫)·우찬성(右贊成) 박원형(朴元亨)·공조 판서 윤사흔(尹士昕)·지중추원사 강순(康純)·병조 판서 김질(金礩)·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이석형(李石亨)·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형조 판서 홍응(洪應)·신천군(信川君) 강곤(康袞)·행 호군(行護軍) 구문신(具文信)·행 상호군(行上護軍) 권경(權擎)·행 호군 민발(閔發)·첨지중추 원사 어득해(魚得海)·화산군(花山君) 권반(權攀)·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복천군(福川君) 권개(權愷) 행 사직(行司直) 박대생(朴大生)·행 호군 설정신(薛丁新)·복성군(福城君) 권언(權躽) 등이 호종하였다. 사현(沙峴)을 넘어 말을 멈추고 종친과 재추를 불러 술자리를 베풀었다. 특별히 병조 좌랑(兵曹佐郞) 유진(兪鎭)을 불러 앞으로 나오게 하여서 묻기를,

“오늘 우리들이 나온 것은 무슨 일로 인연한 것이냐?”

하니, 유진이 대답하기를,

“장차 백성을 위하여 해로운 것을 제거하려 함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우활(迂闊)하다.”

하고, 재추와 더불어 크게 웃고 인하여 술을 올리게 하였다. 또 복천군 권개를 불러 말하기를,

“경은 해소가 낫지 않고 오늘 날씨가 차서 바람을 쏘일 수가 없으니, 먼저 돌아 가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거가가 봉현에 이르러 상군(廂軍)으로 하여금 합하여 몰게 하니, 범이 의묘산(懿墓山) 기슭으로 들어갔다. 군사가 포위하니, 범이 두 사람을 상하고 끝내 잡지 못하였다. 내의(內醫)에게 명하여 구료(救療)하게 하고 음식물을 매우 후하게 주었다.

 

 

세조 37권, 11년(1465 을유 / 명 성화(成化) 1년) 11월 6일(경술)

재추 및 제장에게 술자리를 베풀고 세자에게 당부하다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우찬성 박원형(朴元亨)·지중추원사 강순(康純)·이조 참판 강희맹(姜希孟)·병조 참의 박중선(朴仲善) 및 제장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었다. 박원형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명하여 세자(世子)의 관복(冠服)을 의논하여 정하고, 입시한 재추(宰樞)에게 매[鷹] 각 1련(連)씩을 주었다. 조금 뒤에 세자가 입시하여 술을 올리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전(傳)에 이르기를, ‘그 자식의 악한 것을 알지 못하고 그 싹이 크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였는데, 내가 자식 사랑하는 것이 또한 이것과 같다. 내가 장차 《주역》 구결을 정한 뒤에 너를 데리고 근궁(芹宮)에 가서 소왕(素王)께 석전(釋奠)하고 너에게 유관(儒冠)을 씌우고 유생과 가지런히 앉아서 경서를 펴놓고 묻고 논란하고 제생에게 크게 잔치하겠다.”

하고, 인하여 세자에게, 명하여 사부(師傅)들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또 말하기를,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부(師傅)이니, 마땅히 항상 공경하여 대우하여야 한다.”

하였다. 충청도 절제사(忠淸道節制使) 춘양정(春陽正) 이내(李徠)가 절하며 하직하니, 인견하고서 금대(金帶)를 띠고 술을 올리게 하였다.

 

 

세조 37권, 11년(1465 을유 / 명 성화(成化) 1년) 11월 11일(을묘)

함길도 도절제사 강순이 변방의 방어를 강화할 것을 아뢰다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강순(康純)이 종성 절제사(鍾城節制使) 배맹달(裵孟達)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수주(愁州)에 사는 중추(中樞) 유상동개(柳尙同介) 등이 와서 고하기를, ‘전에 5일 노정인 소을고초(所乙古肖)에 가서 니마거 올적합(尼麻車兀狄哈) 우두(亐豆)를 보았는데, 내게 말하기를, 「올적합 지을개(之乙介) 등 2백여 군사가 장차 포주(蒲州) 알타리(斡朶里)에 가 쳐서 전의 원수를 갚겠다고 한다.」 하였고, 그 뒤에 또 모리안(毛里安)에 사는 어허주(於虛主)를 보았는데, 또한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동쪽을 찌르고 서쪽을 쳐서 적의 꾀를 헤아릴 수 없다 하여 이미 여러 진(鎭)·보(堡)에 이문(移文)하여 더욱 방비를 삼가게 하고 만일 적변(賊變)을 만나면 경솔하게 나가서 싸우지 말고 권도로 타일러서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하였다.

  

세조 37권, 11년(1465 을유 / 명 성화(成化) 1년) 11월 18일(임술)

동교에서 범사냥을 하다

어떤 사람이 동교(東郊)에 범이 있다고 아뢰니 임금이 친히 동교에 거둥하였다.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남양 부원군 홍달손(洪達孫)·공조 판서 윤사흔(尹士昕)·지중추원사 강순(康純)·병조 판서 김질(金礩)·신천군 강곤(康袞), 행 호군 구문신(具文信)·민발(閔發), 첨지중추원사 어득해(魚得海)·청성군 한종손(韓終孫)·복성군(福城君) 권언(權躽)·행상호군 임자번(林自蕃)·당성군(唐城君) 홍순로(洪純老) 등이 호종하였는데, 몰이하여 사냥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세조 37권, 11년(1465 을유 / 명 성화(成化) 1년) 11월 25일(기사)

대소 신료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유생에게 《주역구결》을 강하게 하다

비현합(丕顯閤)에 나아가니,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에서 풍정(豐呈)을 올리고 왕세자(王世子) 이하가 뜰에 들어와 사배(四拜)하였다. 왕세자는 뜰 위 동쪽에 앉고, 효령 대군 이보(李補)는 뜰 위 서쪽에 앉고, 임영 대군 이구(李璆)·영응 대군 이염(李琰)·의성군(誼城君) 이채(李宷)·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오산군(烏山君) 이주(李澍)·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함양경(咸陽卿) 이포(李)·귀성군(龜城君) 이준·보성경(寶城卿) 이합(李㝓)·낙안군(樂安君) 이영(李寍)·영천경(永川卿) 이정(李定)·은천군(銀川君) 이찬(李穳)·옥산군(玉山君) 이제(李躋)·사산군(蛇山君) 이호(李灝)·진남군(鎭南君) 이종생(李終生)·물거윤(勿巨尹) 이철(李徹)·거평정(居平正) 이복(李復)·진례정(進禮正) 이형(李衡)·금산정(金山正) 이연(李衍)·평성정(枰城正) 이위(李徫) 등은 뜰 서쪽에 앉고, 봉원 부원군 정창손(鄭昌孫)·영의정 신숙주(申叔舟)·상당 부원군 한명회(韓明澮)·좌의정 구치관(具致寬)·우의정 황수신(黃守身)·남양 부원군 홍달손(洪達孫)·영중추 원사 심회(沈澮)·판중추원사 심결(沈決)·좌찬성 윤사분(尹士昐)·밀산군(密山君) 박중손(朴仲孫)·우찬성 박원형(朴元亨)·좌참찬 최항(崔恒)·공조 판서 윤사흔(尹士昕)·중추원 사 강순(康純)·병조 판서 김질(金礩)·우참찬 윤자운(尹子雲)·동지 중추원사 김수온(金守昷)·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지중추원사 김개(金漑)·중추원 사 어효첨(魚孝瞻)·대사헌 양성지(梁誠之)·문산군(文山君) 유하(柳河)·행상호군 송처관(宋處寬)·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형조 판서 홍응(洪應)·신천군(信川君) 강곤(康袞)·인순부 윤(仁順府尹) 성임(成任)·행상호군 김예몽(金禮蒙)·첨지중추원사 어득해(魚得海)·한성부 윤 이서(李墅)·병조 참판 임원준(任元濬)·화산군(花山君) 권반(權攀)·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예문 제학 서거정(徐居正)·행 호군 설정신(薛丁新)·복성군(福城君) 권언(權躽)·행상호군 임자번(林自蕃)·영가군(永嘉君) 권경(權擎)·공산군(公山君) 안경손(安慶孫)·이조 참판 강희맹(姜希孟)·행 첨지중추원사 안철손(安哲孫)·당성군(唐城君) 홍순로(洪純老)·여산군(礪山君) 송익손(宋益孫)·옥천군(玉川君) 설계조(薛繼祖)·한성부 윤 이파(李坡)·공조 참판 구종직(丘從直) 등은 뜰 동쪽에 앉고, 기생·공인 및 내녀(內女) 3인은 동랑(東廊)에서 풍악을 연주하였다. 종친과 재추가 차례로 술을 돌리어 술이 반쯤 취하자 겸예문 유신 등을 불러 《주역구결(周易口訣)》을 강하게 하고 특히 보덕(輔德) 정자영(鄭自英)에게 갖옷 1령(領)을 주었다. 또 육조 판서 이상과 공신 등에게 초피(貂皮) 각 50령(領)을 주고, 또 명하여 입직(入直)한 군사에게 술을 먹이었다.

 

 

세조 37권, 11년(1465 을유 / 명 성화(成化) 1년) 12월 1일(갑술)

서교에서 사냥을 구경하다

서교(西郊)에 거둥하여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상당 부원군 한명회(韓明澮)·좌의정 구치관(具致寬)·우의정 황수신(黃守身)·남양 부원군 홍달손(洪達孫)·공조 판서 윤사흔(尹士昕)·중추원 사 강순(康純)·우참찬 윤자운(尹子雲)·동지 중추원사 정식(鄭軾)·행상호군 이윤손(李允孫)·문산군 유하(柳河)·행 호군 홍익생(洪益生)·신천군 강곤(康袞)·행 호군 구문신(具文信)·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영가군 권경(權擎)·공산군 안경손(安慶孫)·당성군 홍순로(洪純老)·여산군 송익손(宋益孫) 등이 호종하였다. 거가가 봉현(蜂峴)에 이르러 상군(廂軍)이 범을 잡았다. 군사 한 사람이 범에게 상(傷)하였는데, 내의(內醫)에게 명하여 약으로 구료(救療)하게 하였다.

 

 

세조 37권, 11년(1465 을유 / 명 성화(成化) 1년) 12월 5일(무인)

사정전에서 종친과 제추에게 술자리를 베풀다

근정문(勤政門)에 나아가서 조참(朝參)을 받고 들어가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종친과 재추를 불러서 술자리를 베풀었다. 상당 부원군 한명회(韓明澮)·좌의정 구치관(具致寬)·영중추 원사 심회(沈澮)·지중추원사 강순(康純)·병조 판서 김질(金礩)·판한성부사 이석형(李石亨)·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동지 중추원사 윤흠(尹欽)·병조 참의 박중선(朴仲善) 등이 입시하였다. 명하여 내구마(內廐馬) 한 필을 가져다가 재추(宰樞) 등으로 하여금 윤목희(輪木戲)를 하여 내기하게 하였는데, 한명회가 차지하였다. 들어가 강녕전(康寧殿)에 나아가 또 한명회·구치관·심회·강순·김질·노사신 등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었다.

 

 

세조 37권, 11년(1465 을유 / 명 성화(成化) 1년) 12월 11일(갑신)

왕세자와 재추가 입시하여 술을 올리다

근정문(勤政門)에 나아가 조참(朝參)을 받고 들어가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니, 왕세자가 상당 부원군 한명회(韓明澮)·좌의정 구치관(具致寬)·영중추 원사 심회(沈澮)·좌참찬 최항(崔恒)·공조 판서 윤사흔(尹士昕)·지중추원사 강순(康純)·병조 판서 김질(金礩)·우참찬 윤자운(尹子雲)·서원군(西原君) 한계미(韓繼美)·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행 첨지중추원사 이윤손(李允孫)·이조 참판 강희맹(姜希孟)·공조 참판 구종직(丘從直)이 입시하였다. 왕세자가 술을 올리고 재추가 차례로 술을 올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