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세조실록

(朝鮮王朝實錄)세조실록(38권12년)[27]

작성자山房山(榮國)|작성시간11.05.05|조회수68 목록 댓글 0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4. 세 조 실 록[27]

 

 

 

 

세조 38권, 12년(1466 병술 / 명 성화(成化) 2년) 3월 16일(정사)

강원도 고성 탕정에 거둥하다

임금이 중궁(中宮)과 더불어 강원도의 고성탕정(高城湯井) 에 거둥하였다. 이윤손(李允孫)을 내금위 장(內禁衛將)으로 삼고, 정식(鄭軾)을 사자 위장(獅子衛將)으로, 허형손(許亨孫)을 공현 위장(控弦衛將)으로, 민신달(閔信達)을 장용 대장(壯勇隊長)으로, 오자경(吳子慶)을 착호장(捉虎將)으로, 물거윤(勿巨尹) 이철(李徹)을 치중장(輜重將)으로, 의빈(儀賓) 정현조(鄭顯祖)를 잡류장(雜類將)으로 삼았다. 왕세자(王世子)가 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밀성군 이침(李琛)·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사산군(蛇山君) 이호(李灝)·영의정 신숙주(申叔舟)·좌의정 구치관(具致寬)·남양군(南陽君) 홍달손(洪達孫)·좌참찬(左參贊) 최항(崔恒)·중추부 지사(中樞府知事) 강순(康純), 동지사(同知事) 김수온(金守溫)·김국광(金國光)·윤흠(尹欽), 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중추부 동지사(中樞府同知事) 임원준(任元濬)·양양군(襄陽君) 임자번(林自蕃)·영가군(永嘉君) 권경(權擎)·행 대호군(行大護軍) 임득정(林得禎)·파산군(巴山君) 조득림(趙得琳)·당성군(唐城君) 홍순로(洪純老)·병조 참판 박중선(朴仲善)·참지(參知) 한치례(韓致禮) 등과 더불어 수가(隨駕)하고, 백관(百官)이 시복(時服) 차림으로 도문(都門) 밖 길 왼쪽에서 지송(祗送)하였다. 대가(大駕)가 양주(楊州)의 회곡천(灰谷川)에 이르니,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 윤자(尹慈)·절도사(節度使) 김겸광(金謙光)·도사(都事) 허적(許迪)이 조복(朝服) 차림으로 대가를 맞이하여 포천(抱川)의 매장(每場)에 이르렀다.

 

 

세조 38권, 12년(1466 병술 / 명 성화(成化) 2년) 윤3월 17일(무자)

지방 순행에 관해 책제를 짓다

임금이 친히 책제(策題)를 짓기를,

“순성(巡省)7464) 함은 백성의 질고(疾苦)를 알고자 함이다. 이제 강원도를 보건대, 땅이 넓고 사람이 드무니, 어떻게 하면 생활이 부유하고 인구가 많게 할 것인가? 군수(軍需)가 넉넉지 못하니, 어떻게 하면 넉넉히 쌓을 것인가? 땅이 험하고 길이 머니, 나가서 세상에 쓰이고자 하여도 떨치고 나서지 못하는 자가 어찌 없겠는가? 그것을 각각 모두 진술하여 대답하라. 장차 치용(致用)7465) 의 학문을 보려고 한다.”

하고, 좌참찬(左參贊) 최항(崔恒)·중추부 동지사(中樞府同知事) 임원준(任元濬)·좌부승지(左副承旨) 이영은(李永垠)을 독권관(讀券官)으로 삼았다. 무과(武科)는 세곳으로 나누고, 좌의정 구치관(具致寬)·남양군(南陽君) 홍달손(洪達孫), 중추부 동지사 강순(康純)·강효문(康孝文), 병조 참판 박중선(朴仲善)·상호군(上護軍) 임득정(林得楨)·훈련원 도정(訓鍊院都正) 윤흠(尹欽), 상호군 오자경(吳子慶)·허형손(許亨孫), 병조 참지(兵曹參知) 한치례(韓致禮)를 참시관(參試官)으로 삼았다.

[註 7464]순성(巡省) : 임금이 지방을 순행하는 것. ☞

[註 7465]치용(致用) : 실제로 소용됨. ☞

 

 

세조 38권, 12년(1466 병술 / 명 성화(成化) 2년) 윤3월 22일(계사)

강순 등에게 서울로 돌아가 아차산에서 마중하게 하다

대가(大駕)가 양근군(楊根郡)의 시위동(時位洞)에 이르니, 강순(康純)·권경(權擎) 등에게 명하여 먼저 서울에 나아가서 도성(都城)에 머물러 있던 군사를 거느리고 아차산(峨嵯山)에 와서 맞이하게 하였다.

 

 

세조 38권, 12년(1466 병술 / 명 성화(成化) 2년) 4월 6일(병오)

사정전에 나아가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다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상참(常參)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좌의정 구치관(具致寬)·좌찬성(左贊成) 최항(崔恒)·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 중추부 지사(中樞府知事) 강순(康純)·강효문(康孝文),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 이파(李坡)를 불러 술자리를 베풀었다. 또 부장(部長) 및 도총부 낭관(都摠府郞官)을 불러서 각각 뜻한 바를 진술하게 하니, 도사(都事) 정옥경(鄭沃卿)은 말하기를,

“진상(進上)하는 물선(物膳)7527) 은 여러 고을의 소산으로써 민호(民戶)의 많고 적음을 참작하여 나누어 정하고, 여러 도(道)의 사형수(死刑囚)는 차사원(差使員)을 골라 정하여 추핵(推劾)하게 할 것입니다.”

하고, 진무(鎭撫) 유포(柳䀯)는 말하기를,

“부안(扶安)·옥구(沃溝)의 읍성(邑城) 안에 샘물이 없으니, 불가합니다.”

하고, 도사(都事) 남임(南任)은, 도둑에게는 얼굴에 자자(刺字)하기를 청하였는데, 임금이 다만 유포의 말만 따랐다.

[註 7527]물선(物膳) : 음식을 만드는 재료. ☞

 

 

세조 38권, 12년(1466 병술 / 명 성화(成化) 2년) 4월 17일(정사)

화위당에 나아가 강론하게 하고 사물을 내리다

임금이 화위당(華韡堂)에 나아갔다. 우찬성(右贊成) 최항(崔恒)·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이조 참판 신승선(愼承善)·병조 참판 박중선(朴仲善)·이조참의 김필(金㻶)·병조 참의 박서창(朴徐昌)·참지(參知) 한치례(韓致禮)·도총관(都摠管) 강순(康純)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이조·병조의 낭관(郞官)과 주서(注書)·사관(士官) 등에게 묻기를, “무릇 사람의 살을 다쳤을 때에 아픈 마음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각각 모두 말하라.”

하니, 어떤 이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고 어떤 이는 정(情)에서 나온다고 하여 의논이 분분하니, 임금이 웃고 각각 녹비(鹿皮) 한 장(張)씩을 내려 주었다. 또 에게 이르기를,

“대저 사람의 마음은 오직 곧음만이 귀중하다. 무릇 물건이 거울에서 청(靑)·황(黃)·적(赤)·백(白)이 각각 그대로 나타나는데, 가령 횐 것을 검다고 하고 푸른것을 누렇다고 하면, 이는 군신(君臣)에 친(親)이 있고 부자(父子)에 의(義)가 있다는 것과 같으니, 어찌 곧다고 이르겠는가?”

하고, 또 한계희·노사신에게 이르기를,

“치지 격물(致知格物)의 공부는 오직 공경(恭敬)함이 가장 절요(切要)하다. 그 방심(放心)을 거두어 들이고 그 덕성(德性)을 길러서 ‘공경’으로 주(主)를 삼으면, 수신 제가(修身齊家)·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의 도(道)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고, 또 이조·병조의 낭관과 주서·사관 등을 불러 앞에 나오게 하여 유진(兪鎭)으로 하여금 《주역(周易)》의 건괘(乾卦)를 가지고 강론하게 하여 각각 아는 바로써 대답하게 하였다. 여러 종친(宗親)과 재신(宰臣)이 차례로 술을 올리고, 인하여 입시한 종친과 재신에게 말 각각 한 필씩을 내려 주었다.

 

 

세조 38권, 12년(1466 병술 / 명 성화(成化) 2년) 4월 28일(무진)

사정전에서 뇌영의 사자 수린에게 사물을 내리고 유시하다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상참(常參)을 받았다.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봉원군(蓬原君) 정창손(鄭昌孫)·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좌의정 황수신(黃守身)·우의정 박원형(朴元亨)·좌찬성(左贊成) 최항(崔恒)·우찬성(右贊成) 조석문(曹錫文)·병조 판서 김국광(金國光)·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 중추부 지사(中樞府知事) 강순(康純)·정식(鄭軾), 병조 참판 박중선(朴仲善)·참지(參知) 한치례(韓致禮)가 입시(入侍)하고, 겸사복(兼司僕)·내금위(內禁衛) 등이 뜰아래에 시위(侍衛)하여 술자리를 베풀었다. 뇌영(賴永)의 사자(使者) 중[僧] 수린(壽藺) 등이 장차 귀국하려 하니, 임금이 인견(引見)하여 술을 3, 4차례 돌리고 각각 표피(豹皮) 1장, 호피(虎皮) 1장, 유지석(油紙席) 2장, 면포(綿布)·저포(苧布) 각각 3필씩을 내려 주고, 또 따로 필묵(筆墨)·서책(書冊)·식물(食物)을 차등 있게 내려 주었다. 또 유시(諭示)하기를,

“너희들이 귀국하여 나의 말을 너희 임금에게 고하여 항상 이웃끼리 사이좋게 지내게 하라. 다만 세간(世間)뿐만 아니라, 지금 다시 국왕과 더불어 삼보(三寶)로써 서로 따라서 기뻐하면 수타천식(須陁天食)이 곧 왕국(王國)에 내릴 것이니, 너희들은 이 말을 가슴속에 간직하여 감히 잊어버리는 일이 없게 하라.”

하니, 수린 등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부복(俯伏)하였다. 인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차례로 술을 올리게 하였는데, 임금이 심히 기뻐하였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