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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朝鮮王朝實錄)세조실록(44권13년)[33-2]

작성자山房山(榮國)|작성시간09.12.14|조회수90 목록 댓글 0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4. 세 조 실 록[33-2]

세조 44권 13년 10월 24일 (병진) 1번째기사 / 강순이 와서 복명하다.

 세조 44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 成化) 3년) 10월 24일(병진)

강순이 와서 복명하다

우의정(右議政) 강순(康純)이 와서 복명(復命)하니, 임금이 보경당(寶慶堂)에서 인견(引見)하고, 또 상정소 당상(詳定所堂上) 등을 불러서 술자리를 베풀어 강순을 위로하였다.

 

세조 44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10월 29일(신유)

건주위 정복에 대한 포상을 위한 등급을 의논할 것을 명하다

병조(兵曹)에 전지(傳旨)하기를,

“지금 이미 건주위(建州衛)를 파(破)하였으니, 더욱 장사(將士)의 노고를 가상히 여긴다. 포상(褒賞)을 행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4등 인원(四等人員)에게도 또 1자급(資級)을 가(加)하라. 건주(建州)를 정복한 장사(將士)와 강순(康純) 등이 같이 등급을 의논하여서 아뢰어라.”

하였다.

 

세조 44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11월 2일(갑자)

공신연을 베풀다. 적개 공신 귀성군 이준 등이 치사하니, 교서를 반사하다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서 공신연(功臣宴)을 베푸니, 세자(世子)가 술을 올렸다.

 

적개 공신(敵愾功臣)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 등이 치사(致詞)하기를,

“이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운수를 만나니, 바람이 범을 따르고 구름이 용(龍)을 따릅니다. 요망한 기운이 하늘에 가득찼으나, 한 차례의 정벌로 빨리 쓸어버렸습니다. 신무(神武)를 받들어 선양(宣揚)하니, 큰 공(功)을 능히 이루었습니다. 총응(寵膺)을 내려 주시니, 수운(需雲)8077) 의 은혜가 무르익습니다. 대려(帶礪)8078) 를 어찌 잊겠으며, 다시 단충(丹衷)을 다하겠습니다. 신들이 절하여 머리를 숙이니, 만복(萬福)이 같을 것입니다.”

하였다. 읽기를 끝마치자, 교서(敎書)를 반사(頒賜)하였다.

 

정충 출기 포의 적개 공신(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 현록 대부(顯祿大夫) 귀성군(龜城君)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이준(李浚)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일덕 일심(一德一心)으로 유성(維城)의 중한 인망(人望)을 오랫동안 얻었고, 공(功)이 많으니 힘써 상(賞)을 주어야 하므로, 그 공을 크게 보아주는 떳떳한 의절(儀節)을 거행하는데, 사사로운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실로 공의(公義)에서 나오는 것이다. 생각건대 그대는 동기(同氣)의 출생으로 아들과 같이 보는 바이다. 일찍이 강보(襁褓)에 있을 때 갑자기 질병(疾病)의 침노에 걸리니, 친히 조호(調護)를 더하여 도리어 평전(平痊)8079) 의 효험을 얻었도다. 더욱 긍휼(矜恤)을 돈독히 하여, 항상 나의 좌우에 있게 하였도다.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기국(器局)은 스스로 노성(老成)하였도다. 생각건대 마음가짐을 충성스럽고 곧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밤낮으로 오로지 공경하는도다. 또한 일을 처리하는데 정통(精通)하고 주선하는데 모두 합당하도다. 일찍이 준량(俊良)을 등용하는 시험에 뽑히니, 더욱 권애(眷愛)를 깊이 하였도다. 진실로 내가 위임하던 날이 곧 그대의 충절(忠節)을 다할 때였도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이모(異謀)를 품고 널리 간당(姦黨)을 심고서, 와언(訛言)으로 선동하여 여러 사람의 들음을 의혹스럽게 하였다. 조정의 사신[使命]을 구속하고 조정의 관리[朝差]를 죽였으며, 유서(諭書)를 멸시하여 버리고 관작(官爵)을 가짜로 임명하였도다. 망령스레 교토(狡兎)의 굴혈(窟穴)을 믿고 황지(潢池)의 군사를 도적질하여 농락하였도다. 신(神)이 이미 분노하여서 이미 음주(陰誅)하려는 마음이 간절하고, 군중들도 또한 노(怒)하였으므로, 오히려 천토(天討)를 늦추었던 것이다. 이에 내가 진노(震怒)하여 그대에게 명하여 함길도(咸吉道)·평안도(平安道)·황해도(黃海道)·강원도(江原道)의 4도 병마 도총사(四道兵馬都摠使)로 삼아 가서 정벌(征伐)하게 하였도다. 추곡(推轂)8080) 에 응하던 처음부터 이미 절충(折衝)의 계책을 수립하고, 모든 장수들을 거느리고 격려하니, 사람들은 적개(敵愾)의 충성을 분발하였고, 삼군(三軍)을 지휘하니, 군사들은 원수(怨讎)를 진멸(殄滅)할 뜻에 협조하였도다. 기각(掎角)의 전술을 측량할 수 없게 이루었고, 기정(奇正)의 병법을 무궁하게 변화하니, 빠르기가 바람과 같았고 느리기가 숲과 같았고, 군사를 하늘에 감추고 땅에 숨기었도다. 예봉(銳鋒)이 맞닿고 칼날을 부딪치자 예봉이 무너지고 굳은 칼날이 꺾기었고, 북 소리 한 번에 뇌정(雷霆)이 진동하고 깃발[麾]을 두 번 흔드니, 산악(山岳)이 동요(動搖)하였도다. 군흉(群兇)들이 이리처럼 도망치니, 쌓인 달걀이 무너지듯 할 뿐만 아니라, 적의 괴수가 쥐처럼 도망치다가 마침내 쇠도끼에 복주(伏誅)되었도다. 일찍이 협순(浹旬)8081) 도 되지 못하여 갑자기 이미 첩보(捷報)를 바치도다. 한쪽 지방이 옛날과 같이 안도(按堵)하고 만백성들이 고무(鼓舞)하여 고루 즐거워하도다. 그대의 군공(軍功)을 생각하여, 우리 왕실에서 봉작(封爵)을 주고 총명(寵命)을 주는 데 있어서 어찌 오로지 친친(親親)8082) 의 은혜를 펴는 것뿐이겠는가? 덕(德)을 높이고 공(功)을 갚은 것은 또한 현현(賢賢)8083) 의 의리를 표창하는 것이로다. 이에 그대를 적개 일등 공신(敵愾一等功臣)으로 책훈(策勳)하고, 유사(宥赦)가 영세(永世)에 미치게 한다. 인하여 노비(奴婢) 13구(口), 전지(田地) 1백 50결(結), 은(銀) 50냥(兩), 의복 1습(襲), 안장 갖춘 내구마(內廐馬) 1필을 주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해를 가히 꿰이고 하늘을 가히 고이듯이 더욱 큰 도모(圖謀)를 반석과 같이 굳게 할 것이며, 태산(泰山)이 숫돌[礪]같이 되고 황하(黃河)가 띠[帶]같이 되도록 아름다움과 짝하기를 구름이 떼지어 모이듯이 많이 누리기 바란다.”

하였다.

 

추충 좌익 출기 포의 적개 공신(推忠佐翼出氣布義敵愾功臣) 대광 보국 숭록 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좌의정(議政府左議政) 겸 춘추관 감사(春秋館監事) 세자 시강원 부(世子侍講院傅) 창녕군(昌寧君) 조석문(曹錫文)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묘당(廟堂)에서 우모(紆謨)8084) 하니, 이미 고굉(股肱)의 높은 위임(委任)에 알맞았고 준조(樽俎)8085) 에서 결승(決勝)하니 또 간성(干城)의 중한 인망(人望)에 부응(副應)하였도다. 스스로 문무(文武)의 온전한 재주가 있지 않다고 하는데, 어찌 능히 장상(將相)의 위대한 공적을 겸하겠는가? 마땅히 포상(褒賞)을 더하여 이에 호웅(豪雄)을 나타내야 하겠다. 경은 성품과 자질이 단아(端雅)하고 방정(方正)하며 지식과 도량이 영매(英邁)하였도다. 일찍이 화요(華要)의 벼슬을 거쳤으니, 성명(聲名)이 이미 사람들의 소문에 족하였고, 바위처럼 우뚝이 사람들이 함께 보는 자리에 뽑아 두니, 경국 제세(經國濟世)를 스스로 자기 임무로 삼았도다. 일전에 역적의 무리들이 흉모(兇謀)를 꾸미니, 어리석은 백성들이 잘못 미혹(迷惑)되어 간계(姦計)를 꾸며 백성들을 속이고 마침내 병란(兵亂)을 얽어서 부엉이처럼 날개을 폈도다. 그 죄는 천지(天地)에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찼고, 그 악(惡)은 신인(神人)이 함께 분개할 정도로 많았다. 이에 내가 혁연(赫然)히 노(怒)하여 장수에게 명하여 토벌 평정하게 하였도다. 부월(鈇鉞)을 주어 제단(祭壇)에 오르게 하니, 이미 진공(晉公)의 지휘에 부끄러움이 없고, 유악(帷幄)에 들어가 주책(籌策)을 수립하니, 반드시 장자방(張子房)8086) 의 조용한 계책에 힘입는 듯하였다. 이에 경(卿)에게 명하여 함길도·평안도·황해도·강원도의 4도 병마 도총 부사(四道兵馬都摠副使)를 삼으니, 경이 능히 기정(奇正)의 모계(謀計)를 잘 협찬하여 스라소니와 이리의 소굴을 다 소탕하였도다. 어찌 다만 한 지방만이 평정되었을 뿐이겠는가? 또한 사방의 경계가 같이 즐거워하는도다. 공이 많으면 후하게 상을 주는 것은 옛날부터 이루어진 법규이다. 하물며 경은 이미 좌익(佐翼)의 공훈에 참여하였으니, 오직 나는 마땅히 포상(褒賞)의 법전(法典)을 힘써야 하겠다. 이에 경을 적개 1등 공신(敵愾一等功臣)으로 책훈(策勳)하여 그 부모와 처(妻)에게까지 벼슬을 주고, 유사(宥赦)가 영세토록 미치게 한다. 인하여 노비 13구(口), 전지(田地) 1백 50결(結), 은(銀) 50냥(兩), 옷 1습(襲), 안장을 갖춘 내구마(內廐馬) 1필(匹)을 내려 주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나가서는 장수가 되고 들어와서는 재상이 되어 이미 세상에 없는 높은 공을 세웠으니, 태산(泰山)이 숫돌되며 황하(黃河)가 띠가 되도록 길이 무궁한 영문(令聞)8087) 을 안보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포의 적개 공신(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 대광 보국 숭록 대부(大匡輔國崇錄大夫) 의정부 우의정(議政府右議政) 강순(康純)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적개 절충(敵愾折衝)하여 이미 막대한 공적(功績)을 세웠으니, 책훈(策勳)하고 상을 행하는 데 마땅히 적지 않은 은혜를 더해야 한다. 이것이 어찌 나의 사정(私情)이겠는가? 스스로 옛 전례(典禮)가 있다. 생각건대 경은 마음 가짐이 순직(醇直)하고 기우(器宇)가 넓도다. 척당(倜儻)8088) 하게 옛사람의 풍토(風土)를 사모하고 웅심(雄深)하게 대장부(大丈夫)의 방략(方略)이 있도다. 문슬(捫蝨)8089) 하는 뜻이 장하니, 국가의 일에 응하여 참되고 다른 생각이 없었고, 소를 엿볼 정도로 기운이 장하니, 유악(帷幄)에 처하여 크게 여유가 있도다. 이에 곤기(閫寄)8090) 의 책임을 매양 맡기면 저절로 조두(刁斗)8091) 의 소리가 끊어지는도다. 국운(國運)의 길이 평강(平康)함을 이루니, 더욱 간우(干羽)8092) 의 교화가 흡족하도다. 근래 역신(逆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다른 뜻을 품고 흉도(兇徒)들을 불러모아서, 난(亂)을 선동하여 군사를 일으켜 흉한 짓을 다하고 악(惡)한 짓이 지극하였도다. 신인(神人)이 함께 분노하니, 천지(天地) 사이에 용납되지 못하였도다. 한 번 노(怒)한 위엄(威嚴)을 떨치고자 하였으나, 누가 삼군(三軍)의 명(命)을 맡을까 하여 군중(群衆)에게 물었더니, 경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에게 명하여 진북 장군(鎭北將軍)으로 삼아 토벌하려고 하였도다. 이미 제단(祭壇)에 올라서 집을 잊고 말가죽에 싸여서 죽더라도 나라에 보답할 것을 맹세하였도다. 경이 북방을 진정(鎭定)한 지가 항상 오래 되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마음으로 신복(信服)한 지가 본래 깊었도다. 군사들이 모두 즐겨 써서 먼저 오르니, 적이 이에 싸우지 않고 스스로 쓰러졌도다. 흉도(兇徒)가 넋을 잃었고 큰 괴수가 머리를 바쳤도다. 요기(妖氣)를 천리 땅에서 빨리 쓸어버리니, 경하(慶賀)하는 칭송(稱頌)이 사방에서 서로 들끊는도다. 비록 옛날의 군사를 잘 쓰는 장수라도 진실로 군사와 나란히 말을 몰았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금세(今世)의 공(功)을 세운 무신(武臣)들도 그 누가 그대 위에 거(居)할 자가 있겠는가? 어찌 성대한 상(賞)을 더하여 그 특수한 공훈을 보답하지 않겠는가?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한다. 아아! 나라의 주석(柱石)이 되어 이미 장수와 재상에 겸하여 이바지하였으니, 산하(山河)가 대려(帶礪)가 되기까지 시종(始終) 아름다움과 짝하기를 바란다.”

하였다.

 

정충 출기 포의 적개 공신(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 정헌 대부(正憲大夫) 공조 판서(工曹判書) 예성군(蘂城君) 어유소(魚有沼)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적개(敵愾)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은 오직 신자(臣子)의 위대한 공적(功績)이요, 공(功)에 보답하여 상(賞)을 행하는 것은 곧 국가의 아름다운 법규이로다. 경은 기품이 영호(英豪)하고 조행(操行)은 청렴(淸廉)하고 삼가도다. 호방(虎牓)8093) 에 첫째로 뽑혔고 재주가 우림(羽林)의 우두머리였도다. 나가서 변영(邊營)을 진압하니, 사람들이 장성(長城)의 기국(器局)에 비기고, 들어와서 병무(兵務)를 맡으니, 뭇사람들이 큰 나무의 재목에 복종하는도다. 무릇 역임(歷任)한 바가 자못 성적(聲績)이 있었도다. 지난번에 역신(逆臣) 이시애(李施愛)가 감히 불궤(不軌)를 도모하여 마음대로 적살(賊殺)을 행하였도다. 드디어 군중(群衆)을 모으고 거병(擧兵)하여 크게 조량(跳梁)을 자행(恣行)하였도다. 내가 이에 혁연(赫然)히 노(怒)하여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하여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토벌(討伐)하게 하니, 경이 곧 분연(奮然)히 몸을 돌아보지 않고 친히 시석(矢石)을 무릅썼도다. 정예(精銳)를 다하여 나아가 치니, 드디어 전도(前徒)로 하여금 창을 거꾸로 잡게 하여 원흉(元兇)의 머리를 바치게 하였도다. 불일(不日) 사이에 감정(戡定)하고 개선(凱旋)하는데, 영웅(英雄)의 응양(鷹揚)8094) 에 힘입지 않는다면 어찌 신속(神速)한 탕평(盪平)을 이루었겠는가? 이에 기공(奇功)의 많음을 생각하여, 마땅히 후한 보수(報酬)의 상(賞)을 더해야 한다.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단서(丹書)로써 맹세하고, 이미 누구의 공(功)에 보답하는 전례(典禮)를 거행하였으니, 그대의 소절(素節)에 힘써서 더욱 독비(篤棐)8095) 의 정성으로 보답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포의 적개 공신(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 정헌 대부(正憲大夫) 병조 판서(兵曹判書) 평양군(平陽君) 박중선(朴仲善)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나라에 흉얼(兇孼)이 있으면 이기(利器)8096) 로 이에 능히 삼제(芟除)할 수 있는데, 신하가 큰 공적을 아뢰면 총명(寵命)은 마땅히 정상(旌賞)을 더하여야 하는 것은 금세(今世)에 비롯된 일이 아니고 옛날부터 그러한 일이로다. 근래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이모(異謀)를 품고 삭방(朔方)의 땅을 도적질하여 점거하고 궤언(詭言)으로써 의혹을 선동하여 변장(邊將)과 수령(守令)을 교살(矯殺)하였도다.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반역하니, 예로부터 난적(亂敵)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었다. 생각건대 경(卿)은 평양(平陽)8097) 의 공훈이 있는 집 후손이요, 또 척완(戚畹)과 연결되도다. 배나 충분(忠憤)을 일으키니, 이에 명하여 평로 장군(平虜將軍)으로 삼아 황해도(黃海道)의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에 나가게 하였다. 경이 능히 더욱 의용(義勇)을 분발하여 홀로 하나의 군대를 담당하고 성루(城壘)를 뭉개고 굳은 예봉(銳鋒)을 꺾어서 요얼(妖孼)을 소탕하였다. 이에 신인(神人)의 분노를 씻었으니, 공(功)을 갚는 은전(恩典)을 내가 어찌 감히 뒤에 하겠는가?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정성을 다하여 적개(敵愾)한 것이 이미 선인(先人)의 공훈에 떨어지지 않고 휴척(休戚)을 함께 하였으니, 거의 후손에게까지 태산(太山)이 숫돌[礪]이 되고, 황하(黃河)가 띠[帶]가 되도록 맹세를 어기지 말기를 바란다.”

하였다.

 

정충 출기 포의 적개 공신(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 숭정 대부(崇政大夫) 함길북도 병마 수군 절도사(咸吉北道兵馬水軍節度使) 양천군(陽川君) 허종(許琮)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충성을 바쳐 적개(敵愾)하는 것은 어질고 호걸(豪傑)스런 이가 아니면 누가 능히 하겠는가? 상(賞)을 논하여 공(功)을 갚는 것은 공의(公義)에 있어서 마땅히 급히 해야 할 일이다. 생각건대 경은 기국(器局)이 호일(豪逸)하고 마음가짐이 개통(開通)하였도다. 어려서는 시서(詩書)를 닦았고, 장성해서는 궁마(弓馬)를 겸(兼)하였도다. 일찍이 경세(經世)의 재주를 쌓아서 항상 보국(輔國)의 충성(忠誠)을 품었도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역적을 도모하여 난(亂)을 얽고 군사를 일으켜 죄악(罪惡)이 많았다. 죄가 실로 하늘에 가득하여 차고 넘치니, 군중(群衆)이 날짜를 정하여 진멸(殄滅)하기를 원하였다. 내가 곧 장수(將帥)에게 명하여 정벌하게 하고, 경을 기복(起復)하여 함길도 절도사(咸吉道節度使)로 삼았다. 경이 능히 모계(謀計)에 협찬(協贊)하여 힘을 함께 하니, 드디어 큰 괴수(魁首)를 사로잡아 그 머리[首]를 전(傳)하고 첩보(捷報)를 아뢰었다. 크게 신인(神人)의 분노를 씻었고 능히 변경의 편안함을 이르게 하였으니, 경의 공훈의 특수함을 내가 가상히 여겨서, ‘돈독(敦篤)하다.’고 하였다. 이에 경(卿)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영수(領受)할지이다. 아아! 효광(梟獷)8098) 을 평정하여 공적이 이미 많으니, 옛 일을 상고하여 산하(山河)에 맹세하고 기란각(麒麟閣)8099) 에 올려 은총(恩寵)도 또한 융성하니, 처음 먹은 마음을 보전하여서 후손에게까지 미치게 하라.”

하였다.

 

정충 포의 적개 공신(精忠布義敵愾功臣) 정헌 대부(正憲大夫) 우참찬(右參贊) 파평군(坡平君) 윤필상(尹弼商)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덕(德)이 많으면 힘써 벼슬을 주고, 공(功)이 많으면 힘써 상을 주는데, 이것은 고금(古今)에 공통된 의리이요, 국가의 아름다운 법전(法典)이다. 생각건대 경은 품성(稟性)이 단아(端雅)하고 처사(處事)를 정밀(精密)하고 자세하게 하도다. 두루 모든 책임을 맡아보았으나, 시행하는데 불가(不可)함이 없었다. 내가 심히 기국(器局)으로 여겨서 후설(喉舌)8100) 의 우두머리로 삼았는데, 경이 능히 계옥(啓沃)8101) 하여 헌체(獻替)8102) 하고 출납(出納)하기를 오로지 진실되게 하였으니, 가히 선철(先哲)들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라 하겠다. 지난번에 역신(逆臣) 이시애(李施愛)가 화심(禍心)을 품고서 주진(州鎭)의 장수(將帥)와 수령(守令)을 살해하고 변방의 군사를 도둑질해서 농락하여 감히 천주(天誅)에 간범(干犯)하니, 나의 북방을 돌아보는 근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때에 홀로 금악(禁幄)에 있으면서 비밀히 주책(籌策)을 협찬(協贊)하여, 드디어 군흉(群兇)으로 하여금 기염(氣焰)을 꺾게 하여 원악(元惡)의 머리를 바치게 하였다. 반드시 굳은 갑옷을 입고 예리한 칼을 잡고, 말에 땀을 흐르게 하고 교활한 토끼를 죽이는 것만을 공(功)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그대의 공훈과 그대의 업적은 논(論)하면 제일등이라 하겠다. 경을 책훈(策勳)하여……한다. 아아! 황하(黃河)와 태산(泰山)에 맹세코 금일을 잊지 말 것이며, 단서 철권(丹書鐵券)8103) 을 길이 후손에게 전하기를 기약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포의 적개 공신(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 자헌 대부(資憲大夫) 행 경원 도호부사(行慶源都護府使) 경원진 병마 첨절제사(慶源鎭兵馬僉節制使) 오림군(烏林君) 김교(金嶠)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신하는 정성을 다하여 외적을 방어고, 제왕(帝王)은 덕(德)을 숭상하고 공(功)을 갚는데, 이것은 국가의 떳떳한 법이요, 고금(古今)에 공통된 의리이다. 생각건대 경은 지기(志氣)가 영매(英邁)하고 재예(才藝)가 효웅(驍雄)하였다. 내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부터 좌우(左右)에서 노고(勞苦)를 하였으므로 내가 심히 기국(器局)으로 여겼고, 내가 즉위(卽位)함에 미쳐서 백리(百里)의 곤기(閫奇)8104) 를 맡겼더니, 성문(聲聞)과 치적(治績)이 성하므로 내가 더욱 중히 여긴다. 전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반역을 도모하여 장수(將帥)와 수령(守令)을 죽이고 조정 사신[使命]을 구류하고 병란(兵亂)을 일으켜 발호(跋扈)하니 죄가 하늘에 가득찼다. 내가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 명하여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주멸(誅滅)하게 하니, 경이 편비(偏裨)가 되어 만사(萬死)를 떨치고 삼군(三軍)에 앞장서서 기특한 계책을 내어 그 예봉(銳鋒)을 꺾었다. 드디어 승리를 틈타서 크게 이기었다. 군사를 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원흉(元兇)이 머리를 바치고 삭방(朔方)이 모두 평정되었다. 그 공이 심히 성대하니, 내가 어찌 잊겠는가?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산하(山河)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미 썩지 않게 유방(流芳)을 할 것이며, 그 업(業)을 후손에게까지 전하여 무궁하도록 그 아름다움과 짝하기를 바란다.”

하였다.

 

정충 출기 포의 적개 공신(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 자헌 대부(資憲大夫) 공조 판서(工曹判書)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兼五衛都摠府都摠管) 의산군(宜山君) 남이(南怡)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적(賊)을 토벌하고 적개(敵愾)하는데 반드시 훌륭한 장수의 재주에 힘입는 것이다. 충성을 정표(旌表)하여 책훈(策勳)하는데 마땅히 성대한 상(賞)을 주는 전례(典禮)를 거행해야 하는데, 이것은 공의(公義)에서 나오는 것이요, 사사로운 은혜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생각건대 경은 지식이 육도(六韜)를 갖추었고 기운이 만인의 무리를 제압하였다. 어려서부터 효건(驍健)한 재예(才藝)를 자부(自負)하였고, 일찍이 금위(禁衛)의 행렬에 끼였었다. 전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역적(逆賊)의 모계(謀計)를 부려서 간사하게 속이고 흉악한 기염(氣焰)을 선동하여 부엉이가 날개를 벌리듯이 하였다. 곧 원융(元戎)8105) 에게 명하여 가서 천토(天討)를 이루게 하였다. 경으로 하여금 따라가서 병졸(兵卒)에 앞장서서 바로 나가게 하니, 오직 진군(進軍)하여 죽는 것이 영화(榮華)인 것을 알고 항상 전장(戰帳)에 나가는 것이 남에게 뒤질까 두려워하였다. 소매를 걷어 올리며 남 먼저 오르는 용기를 떨치고 몸을 빼쳐서 홀로 당하려는 마음을 일으켰다. 친히 시석(矢石)의 교차(交叉)되는 것을 무릅쓰고 시호(豺虎)의 소굴을 바로 쳤도다. 흉도(兇徒)를 세 화살로 죽였고 요기(妖氣)를 한번 호령하는 사이에 쓸어버렸다. 공(功)을 갚으려 하니, 마땅히 총명(寵命)을 더하여야 하겠다.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할지어다. 아아! 황하(黃河)가 띠[帶]와 같이 되고 태산(泰山)이 숫돌[礪]같이 되도록 금일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가물 때는 장마가 되고 내[川]에는 배[舟]가 되어, 더욱 뒷날 공효(功効)에 힘쓰기를 바란다.”

하였다.

 

정충 출기 포의 적개 공신(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 가정 대부(嘉靖大夫) 이조 참판(吏曹參判) 연안군(延安君) 이숙기(李淑琦)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신자(臣子)의 충성은 적개(敵愾)보다 큰 것이 없고, 인군(人君)의 도리는 마땅히 공(功)을 상(賞)주기에 급해야 한다. 생각건대 경은 강의(强毅)하여 무리와 더불지 아니하고 단방(端方)하여 지키는 바가 있었다. 천리(千里)를 절충(折衝)할 재주를 자부(自負)하였고, 백가(百家)에 적용할 학문(學問)을 품었다. 일찍이 호방(虎榜)에 이름이 올랐고 여러 차례 어부(魚符)8106) 를 나누어 차니, 위엄(威嚴)과 은혜(恩惠)가 아울러 행하여져서 성적(聲績)이 성하게 나타났도다. 전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다른 뜻을 품고 크게 흉모(兇謀)를 부려서, 드디어 중병(衆兵)을 일으켜 스스로 천주(天誅)를 불렀다. 관군(官軍)들이 이미 싸움에 임(臨)하게 되자, 버마재비[螗螂]가 감히 수레를 막는 것과 같았다. 경이 편비(偏裨)의 장수로서 시석(矢石)의 사이에 임하여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구치(驅馳)하여, 마침내 흉추(兇醜)를 진멸(殄滅)하기에 이르렀다. 공(功)이 이미 크고 위대하니, 의리상 포상(褒賞)하여 존숭(尊崇)함이 합당하다.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그대의 큰 공적을 가상(嘉賞)히 여기니, 이미 산하(山河)를 가리켜 맹세하고, 나라와 더불어 모두 아름다움을 누리고 후손에게까지 길이 보전하기를 기약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숭록 대부(崇祿大夫)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 세자 시강원 이사(世子侍講院貳師) 병조 판서(兵曹判書)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춘추관 지사(春秋館知事) 광산군(光山君) 김국광(金國光)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주책(籌策)을 수립하여 천리(千里) 밖의 승부를 결정하는데 반드시 명세(命世)의 호걸(豪傑)에 힘입는 바이다. 힘을 다하여 만세(萬世)의 공(功)을 세웠으니, 임금으로부터 은총(恩寵)을 마땅히 두텁게 받아야 하는데, 옛날 법을 상고하여도 실로 이것은 변함없는 법규(法規)였다. 생각건대 경은 품성(品性)이 단량(端良)하고 천자(天資)가 침중(沈重)하였다. 일찍이 과거(科擧)에 올랐고 반련(班聯)를 두고 거치었다. 지식(知識)은 옛 사람들의 큰 방략(方略)에 통달하였고, 지혜는 당세(當世)의 요무(要務)에 정통하였다. 옛적에 내가 한번 보고 불기(不器)의 재주를 얻었다고 하였더니, 뒤에 여러 차례 벼슬을 옮김에 미쳐 과연 다문(多聞)의 건의(建議)를 바쳤다. 지난번에 역신(逆臣) 이시애(李施愛)가 천험(天險)을 믿고 난(亂)을 꾀하여 당(黨)을 모아 군사를 일으키니, 누군들 이를 갈면서 마음을 태우지 아니하였겠는가? 그러므로 곧 장수에게 명하여 토벌하게 하였다. 경이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겸하여 항상 나의 좌우에 있으면서 오로지 그 방략(方略)을 맡았다. 군사를 내보낸 지 얼마 아니되어 흉도(兇徒)들이 다 진멸(殄滅)되어, 첩음(捷音)을 문득 아뢰니, 사방에서 함께 즐거워한다. 힘을 바쳐 구치(驅馳)하는데 어찌 홀로 한신(韓信)만이 용맹하였겠는가? 절충(折衝)하고 담소(談笑)하는데 장자방(張子房)의 모계(謀計)보다 많았다. 이미 준위(雋偉)한 공이 있으니, 어찌 포상(褒賞)하는 은전(恩典)이 없겠는가?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 적개 2등 공신(敵愾二等功臣)을 삼고, 그 부모와 처(妻)에게 벼슬을 주고 사유(赦宥)가 영세(永世)에 미치게 한다. 인하여 노비 10구(口), 전지(田地) 1백 결(結), 은 25냥(兩), 의복 1습(襲), 내구마(內廐馬)를 내려 주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고굉(股肱)과 심려(心膂)가 이미 한 몸이 되어 서로 이바지하니, 대려(帶礪)와 산하(山河)에 만세토록 함께 복을 누리기를 기약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가선 대부(嘉善大夫) 행 중추부 첨지사(行中樞府僉知事) 길성군(吉城君) 허유례(許惟禮)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정충(精忠)을 다하여 적(賊)을 사로잡아 이미 특수한 공훈을 세웠으니, 성대한 상(賞)을 베풀어 공을 정표(旌表)하고, 이에 총명(寵命)을 더하여야 하는데, 이것은 공의(公義)를 따르는 것이요, 사사로운 은혜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생각건대 경은 풍패(豊沛)8107) 의 고향에서 출계(出系)하여 금려(禁旅)에 뽑혀서 보충되었도다. 지난번에 역신(逆臣) 이시애(李施愛)가 감히 은혜를 저버리고 불궤(不軌)를 도모하여 드디어 군사를 일으키고, 관군(官軍)에 항거(抗拒)하였다. 경이 능히 의담(義膽)을 떨치고 홀몸으로 길주(吉州)에 달려가서 드디어 적(賊)을 사로잡기를 도모하였다. 이미 아비를 장차 죽을 곳에서 벗어나게 하였고, 또 나의 적개(敵愾)하는 자를 대적(對敵)하였다. 평탄하거나 험난한 때에도 한결같이 절개를 지켰고 충성과 효도를 양쪽으로 온전히 하였다. 이러한 기특한 공(功)을 생각하여 마땅히 이수(異數)를 더하여야 하겠다.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단서(丹書)로써 맹세하고 이미 공(功)을 보답하는 은전을 거행하였으니, 그대의 소절(素節)을 힘써 더욱 돈독한 보필(輔弼)의 정성을 바치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가선 대부(嘉善大夫) 행 중추부 첨지사(行中樞府僉知事) 종성군(鍾城君) 이운로(李雲露)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적(賊)을 토벌하고 적개(敵愾)하는데 이미 특수한 공을 세웠으니, 책명(策命)하여 공(功)을 정표(旌表)하고 마땅히 총전(寵典)을 더하여야 한다. 경은 멀리 변비(邊鄙)로부터 와서 조정에 시위(侍衛)한 지가 여러 해가 되었다. 근래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드디어 반역자에게 위협당한 바가 되었지만, 그러나 마침내 능히 적(賊)을 묶어 와서 군문(軍門)에 바치니, 가히 소절(素節)의 굳음을 알겠다. 그대의 마음과 그대의 공(功)으로 오직 내가 그대를 가상히 여기어,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하라. 아아! 공(功)을 크게 보아서 기록하고 이미 그대의 공로를 뽑았으니, 대대로 충정(忠貞)을 돈독히 하여 나의 명(命)에 변함이 없을지어다.”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가정 대부(嘉靖大夫) 행 회령 도호부사(行會寧都護府使) 회령진 병마 절제사(會寧鎭兵馬節制使) 전의군(全義君) 이덕량(李德良)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비상한 재주가 있어야 이에 능히 난(難)을 이기는 공적을 세울 수 있다. 적지 않은 상(賞)을 베푸는 것은 적개(敵愾)의 공(功)을 갚는 것이다. 생각건대 경은 재예(才藝)가 무리에서 빼어나고 기략(氣略)이 무리에서 뛰어났다. 충의(忠義)를 항상 평소(平素)에 힘썼으니, 구명(軀命)8108) 을 어찌 험(險)하고 위태한 때에 아끼겠는가?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화심(禍心)을 품고 주진(州鎭)의 장수(將帥)와 수령(守令)을 죽이고,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돼지같이 돌격하여, 악(惡)이 이미 하늘에 가득찰 정도로 지극하였고 분(憤)이 실로 온 천하(天下)에 같았다. 내가 이에 장수에 명하여 토벌(討伐)하게 하였는데, 경이 능히 충간(忠肝)을 분격하여 사졸(士卒)에 앞장서서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용기를 북돋우어 힘써 공격하니, 드디어 적도(賊徒)로 하여금 와해(瓦解)되게 하고, 큰 괴수(魁首)를 복주(伏誅)하게 하였다. 불일(不日)에 평정하게 된 것은 그대의 공(功)이요, 그대의 노고이니, 내가 감히 잊어버리겠는가?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앞뒤에서 분주(奔走)하여 이미 한마음을 다하여 충성을 바쳤으니, 대려(帶礪)와 산하(山河)에 거의 만대(萬代)를 전하도록 절개를 다하기를 바라노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가정 대부(嘉靖大夫) 행 호분위 상호군(行虎賁衛上護軍) 곤산군(昆山君) 배맹달(裵孟達)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비상한 변(變)을 만나야 바야흐로 초탁(超卓)하고 기이한 재주를 알게 된다. 막대한 공(功)을 세웠으니, 가히 성대한 총명(寵命)을 누려야 하는데, 이것은 옛날 명신(名臣)과 양장(良將)이 부귀(富貴)가 그 몸에서 떠나지 않고, 성명(聲名)이 후세에 남는 까닭이다. 생각건대 경은 품자(稟資)가 웅장(雄壯)하고 마음가짐이 굳고 확실하였다. 처음에 우림(羽林)에서 자취를 드러내니, 사람들이 모두 양장(良將)이라 지목하였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가만히 불궤(不軌)를 도모하여, 장수와 수령을 죽이고 토군(土軍)을 단결(團結)하여, 관군(官軍)에 항거(抗拒)하여 그 발호(跋扈)가 지극하였도다. 내가 이에 장수(將帥)에게 명하여 토벌(討伐)하게 하였는데, 경(卿)이 편비(偏裨)가 되어 그대의 마음과 힘을 합하여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드디어 파죽(破竹)의 형세를 이루어, 간흉(奸兇)의 머리[首]를 바치고, 변경(邊境)이 다시 평안해졌다. 그 공(功)이 성하니, 내가 그대를 가상히 여긴다.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띠[帶]가 되고 숫돌[礪]이 되도록 산하(山河)를 가리켜 잊지말 것이며, 모유(謀猷)가 있고 하는 일이 있어서 자손에게 전하여 변하지 말게 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가선 대부(嘉善大夫) 행 전라도 절도부사(行全羅道節度副使) 겸 전주 부윤(兼全州府尹) 가평군(嘉平君) 이형손(李亨孫)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외적을 방어하여 난(難)을 이기는 것은 신하(臣下)된 자가 바치는 충절(忠節)이요, 책훈(策勳)하고 상(賞)을 행(行)하는 것은 나라를 가진 임금의 항규(恒規)이다. 예로부터 그러한 것이요, 금세(今世)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생각건대 경은 일찍이 준재(雋材)가 있어서 두 차례의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특히 우림(羽林)의 호걸(豪傑)일 뿐만 아니라, 또 양리(良吏)의 명성을 나타냈다. 근래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감히 불궤(不軌)의 음모(陰謀)를 꾸며서 장수와 수령을 죽이고, 드디어 차고 넘치는 악(惡)을 부려서 관군(官軍)에 항거(抗拒)하였다. 이에 내가 장수에게 명하여 토벌(討伐)하게 하였는데, 경이 능히 충의(忠義)를 분발하여, 몸소 사졸(士卒)에 앞장서서 험난(險難)을 피하지 않고 몸소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역당(逆黨)으로 하여금 파죽(破竹)의 형세에 몰리게 하고, 큰 괴수(魁首)가 복부(伏鈇)8109) 하였다. 그 평정(平定)한 공(功)을 갚고 견고한 적(敵)을 꺾고 적진(敵陣)을 함락한 공효를 상주어야 한다.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서……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내가 ‘우익(羽翼)이 있다.’고 하여, 그 공이 이미 옛 사람에게 양보하지 않게 되었으니, 경은 그 산하(山河)를 가리키면서 길이 금일을 잊지 않도록 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가선 대부(嘉善大夫) 행 용양위 상호군(行龍驤衛上護軍) 함성군(咸城君) 이종생(李從生)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왕(王)의 적개(敵愾)하는 자를 대적(對敵)하는 것은 신자(臣子)의 특수한 공훈이요, 사람의 공(功)이 있음을 상(賞) 주는 것은 국가의 떳떳한 법전이다. 근래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반역의 음모(陰謀)를 꾸며 흉당(兇黨)을 불러 모아서, 장수와 수령을 모두 죽이고 크게 거만한 기세를 부렸다. 내가 장수에게 명하여 정벌(征伐)하게 하였는데, 경이 이에 몸소 사졸(士卒)에 앞장서서 견고한 적을 꺾고 적진(敵陣)을 함락시켜서, 능히 평정하기에 이르렸다. 경의 큰 공을 생각하니 어찌 정표(旌表)하여 상주기를 잊겠는가? 이에 경(卿)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모두 아름다운 의리로 공을 크게 옛 전장(典章)에 따르니, 길이 변함없는 마음으로 후손에게 전하기를 바란다.”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가선 대부(嘉善大夫) 함흥 부윤(咸興府尹) 함흥진 병마 절도사(咸興鎭兵馬節度使) 전성군(全城君) 이서장(李恕長)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곤란한 일을 당할 때 바야흐로 이기(利器)의 남다른 것을 알고 주책(籌策)을 수립하는데 반드시 좌막(佐幕)의 어진이에게 힘입는 것이다. 이미 비상한 공훈을 세웠으니 마땅히 적지 않은 은총을 더하여야 할 것이다. 생각건대 경은 재주가 많고 기예(技藝)가 많아 지키는 바가 있고 모유(謀猷)가 있었다. 일찍이 과명(科名)에 뽑혔고 번극(繁劇)한 직을 역임하였다. 내가 심히 기국(器局)으로 여겨 장차 크게 쓰기를 기약하였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감히 불궤(不軌)를 도모하여 멋대로 적살(賊殺)을 행하고,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도량(跳梁)하니 한 도(道)가 흉흉(洶洶)하였다. 내가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 명하여 큰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게 하였는데, 경이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막부(幕府)에 참여하여 도왔다. 모의(謀議)에 계책을 내어서 비보(裨補)한 바가 많았고, 군부(軍簿)를 잘 다스리어 잘못된 점이 있지 않았다. 혹은 위험을 무릅쓰고 위태함을 겪으면서 왕복하여 치보(馳報)하였고, 모산(謀算)을 받들어 주선(周旋)하니 움직이면 기회(幾會)에 맞아서, 드디어 파죽(破竹)의 형세를 이루어 도리어 첩보(捷報)의 소식을 아뢰었다. 경의 공(功)이 성하니, 내가 감히 잊어버리겠는가? 이에 경(卿)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산하(山河)를 가리켜 맹세하였으니, 만세에 아름다움과 짝할 것을 기약하고, 고굉(股肱)의 힘을 다하였으니, 길이 한마음을 지니기를 바란다.”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통훈 대부(通訓大夫) 군자감 정(軍資監正) 김순명(金順命)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난(難)을 이기고 적개(敵愾)하는 것은 신하의 지극한 충성이요, 덕(德)을 높이고 수고를 갚는 것은 나라를 가진 임금의 영전(令典)이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부육(覆育)의 은혜를 저버리고 굴혈(窟穴)의 견고함을 믿고서 뜬소문[浮言]을 선동하여 군중(群衆)을 유혹하여서 관리를 죽이고 군사를 일으켰다. 난(亂)이 이미 지극[極]하였고, 만연(蔓延)하여 도모(圖謀)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하여 여러 장수를 지휘하여 이를 토벌(討伐)하게 하였는데, 그대가 좌막(佐幕)이 되었다. 군기(軍機)의 일은 비밀히 하므로 멀리서 듣기가 어려운데, 그대가 자주 와서 계달(啓達)하니 털끝만큼도 빠뜨리지 않았다. 돌아와서 성산(成算)을 받들고 장사(將士)에게 밝게 교유(敎諭)해서 그들로 하여금 마음과 힘을 합하여 기회를 살펴 나아가 공격하게 하였다. 큰 괴수(魁首)가 낭패(狼狽)하여 스스로 천주(天誅)에 나아왔도다. 그대의 공(功)을 가상히 여기는데, 내가 어찌 감히 잊겠는가?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단서(丹書)와 백마(白馬)로 한 마음을 길이 보전하도록 기약하고, 태산(泰山)과 황하(黃河)에 만세토록 잊지 않기를 맹세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통훈 대부(通訓大夫) 종부시 정(宗簿寺正) 김관(金瓘)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왕(王)의 적개(敵愾)하는 자를 대적(對敵)하는 것은 실로 충의(忠義)의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그대의 공(功)이 있음을 생각하니, 감히 포숭(褒崇)하는 전례를 늦추겠는가? 생각건대 그대는 성품과 자질이 총민(聽敏)하고 지식이 정통(精通)하였도다. 일찍이 흥현(興賢)의 과거(科擧)에 뽑혔고, 경세(經世)의 직무에도 두루 밝았다. 어진 명성이 전파되어 들리니, 오직 내가 그대를 가상(嘉賞)하게 여겼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문득 흉(兇)한 음모(陰謀)를 품고 크게 도량(跳梁)을 부려서 천지(天地)에 용납하지 못하고, 신인(神人)이 함께 분개하였다. 내가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하여 도총사(都摠使)로 삼아 이를 토벌하게 하고, 그대로 하여금 막부(幕府)에 종사(從事)하게 하였다. 그대가 능히 하여금 모획(謀畫)을 협찬하여 왕복하면서 치보(馳報)하고, 움직이면 기회에 맞추어서 마침내 역당(逆黨)을 섬멸(殲滅)하고 드디어 평정(平定)하기에 이르러, 나로 하여금 북방(北方)을 돌아보는 근심을 펴게 하였도다. 그대의 공훈을 생각하니, 가히 성대하다고 이를 만하다.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화란(禍亂)을 평정하여 국가를 안정시켰고 이미 비상(非常)한 공적이 있어서, 총명(寵命)에 응(膺)하였으니, 대려(帶礪)로 더욱 불이(不貳)의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절충 장군(折衝將軍) 행 의흥위 대호군(行義興衛大護軍) 겸 오위장(兼五衛將) 구겸(具謙)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비상(非常)한 공(功)을 세운 자가 적지 않은 상(賞)을 받는데, 이것은 고금(古今)에 공통된 법규이다. 지난번에 적수(賊竪) 이시애(李施愛)가 문득 불궤(不軌)를 도모하여 장수와 수령을 적살(賊殺)하고,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몰래 웅거하고 사람 죽이기를 심히 급하게 하였다. 내가 이에 장수에게 명하여 토벌하게 하였는데, 그대가 능히 마음에 적개심(敵愾心)을 품고 용감하게 바로 나아가서, 친히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견고한 적을 꺾고, 정예(精銳)를 패배시켜, 드디어 적(賊)의 소혈(巢穴)을 탕평(盪平)하니, 한 지방이 베개를 평안히 베게 되었다. 그대의 공을 가상히 여기어 ‘돈독하여 잊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천리 땅에 절충(折衝)하여, 이미 사직(社稷)의 신하(臣下)가 되었으니, 한 마음을 길이 지니고 산하(山河)의 맹세를 변하지 말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절충 장군(折衝將軍) 행 의흥위 대호군(行義興衛大護軍) 박식(朴埴)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충의(忠義)를 분발(奮發)하여 적개(敵愾)하니, 이미 특수한 공훈을 세웠도다. 총명(寵命)을 베풀고 재능을 정표(旌表)하여, 마땅히 후한 상(賞)을 더하는 것은 진실로 공의(公義)라고 하겠으며, 어찌 그 사사로운 은혜라고 하겠는가? 생각건대 그대는 무략(武略)이 무리에 뛰어나고 재예(才藝)가 무리에서 빼어났도다. 지혜는 가히 백려(百旅)를 거느릴 만하고, 용맹(勇猛)은 만부(萬夫)를 대적(對敵)할 만하였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역모(逆謀)를 품고 적해(賊害)를 멋대로 행하여, 신인(神人)이 함께 노(怒)하고, 천지(天地)에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그대가 능히 충의(忠義)로 분격(忿激)하여 나의 적개(敵愾)하는 자를 대적(對敵)하고, 몸소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여러 추류(醜類)를 다 섬멸(殲滅)하였다. 이러한 큰 공을 생각하여, ‘돈독히 잊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에 그대를 책훈(策葷)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그대의 큰 공적을 가상히 여겨 이미 포장(褒奬)의 은혜를 더하였으니, 나라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함께 누리고 더욱 종시(終始)의 절개(節介)를 굳게 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통정 대부(通政大夫) 공조 참의(共曹參議) 김백겸(金伯謙)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적개(敵愾)에 용감하여 이미 세상에 드문 공훈(功勳)을 세웠다. 상(賞)을 주어 공(功)을 갚는데 마땅히 이등(異等)의 은총을 더하니, 이것은 고금(古今)의 큰 의리이요, 제왕(帝王)의 항규(恒規)이다. 근래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대역(大逆)의 음모(陰謀)를 꾸며서 장수와 수령을 적살(賊殺)하고, 드디어 관군(官軍)에 항거(抗拒)하여, 스스로 천주(天誅)를 불렀다. 내가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하게 하였는데, 그대가 오랫동안 금위(禁衛)의 직에 있었다고 하여 중인(衆人)이 효웅(驍雄)을 추대하므로, 그대로 하여금 정벌에 증군하게 하였더니, 그대가 능히 의담(義膽)을 분격(奮激)하여, 험난하고 위급한 것을 무릅쓰고 왕래하면서 계달(啓達)하여 기회를 잃지 아니하니, 드디어 흉(兇)한 추류(醜類)를 진멸(殄滅)시켜 적(賊)의 머리를 전(傳)하고 첩보(捷報)를 바치어 한 지방이 평안하게 되었고, 내 마음도 이에 평안하도다. 그대와 같은 공적을 오직 내가 가상히 여긴다.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그대를 좋아하여 싫어하지 않으니, 오히려 작상(爵賞)이 가벼움을 혐의스러워 하는 바이다. 나라와 더불어 함께 아름다움을 누리고 길이 대려(帶礪)의 맹세를 생각할지어다.”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자헌 대부(資憲大夫) 함길북도 관찰사(咸吉北道觀察使) 아성군(牙城君) 어세공(魚世恭)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왕(王)의 적개(敵愾)하는 자를 대적(對敵)하는데 충신(忠臣)이 아니면 능히 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공적이 있음을 상주는 것은 전례(典禮)에 있으니, 마땅히 거행해야 할 것이다. 생각건대 경은 마음가짐을 굳고 확실하게 하고 일을 처리하기를 정통하고 밝게 하였다. 또 웅대한 무략(武略)을 겸(兼)하였으니, 한갓 유술(儒術)의 좋은 점만을 갖춘 것이 아니로다. 지난번에 적수(賊竪) 이시애(李施愛)가 감히 불궤(不軌)를 도모하여 장수와 수령을 살해하고, 군사를 일으켜 남쪽으로 향하고자 하여 그 형세(形勢)가 장차 막을 수가 없었고, 죄악(罪惡)이 많아서 하늘에 가득찼다. 내가 이에 장수에게 명하여 가서 정벌(征伐)하게 하였는데, 경이 일찍이 후설(喉舌)을 맡아 나의 뜻을 분명히 알므로 재결(裁決)을 시험할 만하다고 하여 한 방면(方面)을 위임(委任)하였더니, 경이 능히 정성을 다하고 힘을 베풀어 드디어 흉도(兇徒)를 소탕하여 빨리 평정(平定)되기에 이르러, 한 지방을 무집(撫輯)하여 옛날과 같이 안도(安堵)하게 하였도다. 내가 ‘앞뒤에 사람이 있다.’고 하고, 내가 ‘어모(禦侮)할 자가 있다.’고 할진대, 경을 두고 누구라고 하겠는가?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이름을 죽백(竹帛)에 드리우고 그 공적(功績)을 크게 보아 기록하였으니, 산하(山河)를 가리켜 맹세하여 영세(榮世)토록 기도(基圖)8110) 를 함께 보전할지어다.”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어모 장군(禦侮將軍) 행 의흥위 호군(行義興衛護軍) 오자치(吳自治)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덕(德)이 많으면 힘써 벼슬을 주고 공(功)이 많으면 힘써 상(賞)을 주는데, 이것은 나라를 가진 자의 항규(恒規)이다. 생각건대 그대의 재략(才略)이 무리에 뛰어나고 권용(卷勇)이 사람들에게서 빼어났다. 재예(才藝)가 많다고 본래 옛날부터 들었으나, 충성을 바치는 것은 이제 위난(危難)할 때에 보았도다. 지난번에 역신(逆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불궤(不軌)를 도모하여 크게 발호(跋扈)를 하여 우리 웅비(熊貔)와 같은 군사에 항거하여 나에게 소간(宵旰)의 걱정을 끼쳤다. 죄는 천지간에 용납하지 못하였고 분노는 뇌정(雷霆)보다 더하였다. 이에 장수에게 명하여 정벌(征伐)하게 하였는데, 그대가 이에 마음에 맹세하여 살기를 잊고 힘을 다하여 과의(果毅)하니, 도리어 감정(勘定)하기에 이르러, 요망한 진애(塵埃)가 깨끗하게 맑아졌다. 기공(奇功)은 전현(前賢)에 비교할 만하므로 후한 상(賞)은 마땅히 옛 전장(典章)에 따라야 하겠다.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내가 이미 대려(帶礪)로 맹세를 삼아 길이 큰 공(功)을 생각하니, 그대도 또한 그 마음을 금석(金石)과 같이 하여 더욱 소절(素節)에 힘쓸지어다.”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절충 장군(折衝將軍) 행 충무위 상호군(行忠武衛上護軍) 정숭로(鄭崇魯)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王)은 이르노라. 힘을 시석(矢石)에 나타내고, 용맹을 삼군(三軍) 앞에 떨치니, 이름을 정종(鼎鍾)에 새겨서 그 빛을 천년(千年) 아래로 보이는데, 이것은 신자(臣子)의 충성을 다하는 큰 절개(節介)이요, 국가에서 공(功)을 갚는 항규(恒規)이다. 생각건대 그대는 무예(武藝)가 무리에서 뛰어나서 숙위(宿衛)에 뽑혀 충당 되었다. 평시에 강개(慷慨)하여 웅지(雄志)가 있었다. 근래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다른 뜻을 품고 변장(邊將)과 수령[守宰]을 교살(矯殺)하고 병기(兵器)를 도둑질하여 농락하며, 한 도(道)를 문득 점거(占據)하여 돼지가 날뛰듯이 범이 짓씹듯이 크게 흉악하고 광포(狂暴)한 짓을 하였다. 신인(神人)이 함께 분노하였고, 내가 이에 혁연(赫然)히 진노(軫怒)하여,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討伐)하게 하였는데, 그대가 비장(裨將)이 되어 분연(奮然)히 몸을 돌보지 않고, 먼저 성에 오르고 바로 적을 치니, 적도(賊徒)들이 풍문(風聞)만 듣고서도 분주(奔走)하여 흩어졌고, 그 큰 괴수(魁首)를 섬멸(殲滅)하여, 한 지방이 평정되기에 이르렀다. 앞뒤에서 분주(奔走)하였으니, 내가 그대의 공(功)을 가상히 여긴다.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공적(功績)을 크게 보아 기록하고 함께 막대한 휴상(休祥)을 곧게 하였으니, 더욱 처음 먹은 마음에 힘써서 길이 끝없는 왕업(王業)을 도울지어다.”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조봉 대부(朝奉大夫) 내섬시 첨정(內贍寺僉正) 장말손(張末孫)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주(周)나라에서는 기상(旂常)8111) 의 기록이 있었고 한(漢)나라에서는 대려(帶礪)의 맹세를 폈으니, 모두 충성을 당시에 권장하여 공효(功效)를 후세(後世)에 장려하려는 까닭이었다. 생각건대 그대는 성품과 자질(資質)이 순각(醇慤)하고 학식이 소통(疏通)하였다. 일찍이 과거(科擧)에 뽑혀서 자못 명칭(名稱)이 있었고, 충의(忠義)의 도(道)는 실로 마음에 깊이 새긴 바였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역모(逆謀)를 품고 감히 발호(跋扈)를 마음대로 하여 흉포한 기염(氣焰)이 심히 성하였다. 내가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討伐)하게 하였는데, 승산(勝算)을 묘하게 이끌어서 적의 형세가 먼저 수그러져서, 드디어 큰 괴수(魁首)를 원문(轅門)8112) 아래에 잡아 바치니, 요기(妖氣)가 깨끗하게 맑아졌고 삭방(朔方) 지역이 안도(安堵)하게 되었다. 이때에 진북 장군(鎭北將軍) 강순(康純)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막주(幕籌)에 참여하여 돕고 분주하게 힘을 바쳤도다.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함께 아름다움을 누리는 의리로 이미 옛 전장(典章)을 크게 보았으니, 길이 보전하는 마음을 오는 후손에게 변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통훈 대부(通訓大夫) 내섬시 정(內贍寺正) 손소(孫昭)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마음을 함께 하고 힘을 협찬(協贊)하여, 능히 적개(敵愾)의 공(功)을 이루었으니, 상(賞)을 논하며 재능을 정표(旌表)하여 마땅히 공(功)에 보답하는 전례(典禮)를 거행해야 한다. 지난번에 역신(逆臣) 이시애(李施愛)가 흉악한 사람을 모으고 그 당(黨)을 심어 와언(訛言)으로 군중(群衆)을 현혹(眩惑)하여, 관리(官吏)를 적살(賊殺)하고 유서(諭書)를 능멸하여 버리고, 드디어 중병(衆兵)을 일으켜 크게 도량(跳梁)을 멋대로 하였다. 내가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토벌(討伐)하게 하니, 그대가 평로 장군(平虜將軍) 박중선(朴仲善)의 막부(幕府)에 참여하여 돕고, 군무(軍務)를 총섭(摠攝)하여 험한 것을 겪고 위태한 것을 무릅쓰며, 분주하게 왕래하여 적(賊)의 정상(情狀)을 보고하고, 나의 지시와 계획을 고유(告諭)하여 모두 기회에 맞추어 착오가 있지 아니하니, 승세(勝勢)가 드디어 떨쳐져 역괴(逆魁)의 머리를 바치고 한 지방이 편안해졌다. 그대의 공적(功績)을 생각하니, 감히 포장(褒奬)함을 잊겠는가?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막부(幕府)에 들어가서 계책을 도와서 이미 불세(不世)에 성대한 공적을 세웠으니, 황하(黃河)가 띠[帶]같이 되고 태산(泰山)이 숫돌[礪]같이 되도록 길이 끝없는 아름다움과 짝하기를 보전하도록 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절충 장군(折衝將軍) 행 의흥위 부호군(行義興衛副護軍) 오순손(吳順孫)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적개(敵愾)를 하여 충성을 바치는 것은 신하가 된 자의 특수한 공적(功績)이요, 유공(有功)한 사람에게 상(賞)을 논하는 것은 나라를 가진 자의 항규(恒規)로다. 근래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모역(謀逆)을 꾸미고 악(惡)을 쌓아 몰래 북변(北邊)에 웅거하여 관리(官吏)를 살해하고, 군사를 일으켜서 돼지처럼 돌격(突擊)하고 감히 관군(官軍)에 항거(抗拒)하였는데, 그대가 이에 몸소 만사(萬死)의 용기를 내어 분연(憤然)히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칼날을 무릅쓰고 적의 예봉(銳鋒)과 부딪혀 굳은 예봉을 꺾고 적진(敵陣)을 함락하여 큰 원수를 깨끗이 맑게 하였도다. 그 공적(功績)이 이미 성한데 감히 포상(褒賞)하기를 늦추겠는가?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이미 고굉(股肱)의 힘을 다하여 방가(邦家)에 마음을 바쳤으니, 길이 대려(帶礪)의 맹세를 품고 이에 후손에게 미치게 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절충 장군(折衝將軍) 행 용양위 호군(行龍驤衛護軍) 심응(沈膺)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덕(德)이 많으면 높은 벼슬을 주고 공이 크면 후(厚)한 상(賞)으로 갚는데, 이것은 국가의 공의(公誼)이요 고금(古今)의 항규(恒規)로다. 생각건대 그대는 일찍이 무과(武科)에 뽑혀서 오래 금위(禁衛)에 시위(侍衛)하여 조아(爪牙)의 노고가 있었는데, 그대의 재주와 힘을 내가 진실로 마음에 두었던 바였다. 지난번에 역적(逆賊) 이시애(李施愛)가 불궤(不軌)를 도모하여 크게 흉악하고 광포(狂暴)한 짓을 부리니 실로 신인(神人)의 분노(憤怒)가 같이 하므로, 어찌 뇌정(雷霆)의 위엄(威嚴)을 늦추겠는가? 내가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하여 토벌(討伐)하게 하였는데, 그대가 능히 용맹을 일으켜 바로 치니, 적도(賊徒)들이 와해(瓦解)되고 드디어 큰 괴수(瑰首)를 섬멸하여 삭방(朔方)의 경계가 깨끗이 맑아졌도다. 오로지 그대가 힘을 다하여 충성을 바친 공적(功績)이니, 내가 감히 잊겠는가?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책훈(策勳)하여 공(功)을 갚는 것이 어찌 일시의 사사로운 은혜이겠는가? 휴척(休戚)을 함께 하여, 거의 만세(萬世)에 길이 감사하기를 바란다.”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통정 대부(通政大夫) 형조 참의(刑曹參議) 윤말손(尹末孫)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국가에 난(難)이 있으면 오직 호걸(豪傑)이 능히 그 충성을 떨치고 신린(臣隣)이 공적을 세우니, 군상(君上)에 있는 자가 마땅히 그 상(賞)을 성하게 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떳떳한 전례(典禮)에 따르는 것이요, 특수한 공훈을 갚으려는 것이다. 그대는 자취를 항오(行伍)에서 일으켜 금려(禁旅)에 시종(侍從)하면서 나의 조아(爪牙)가 된 지 여러 해 되었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고 몰래 반역(叛逆)할 마음을 품고, 망령스레 생각하기를, ‘험(險)하고 먼 것을 넉넉히 믿고 변지(邊地)의 백성이 어리석다.’고 하고, 뜬소문으로 선동하여 장수와 수령을 적살(賊殺)하고 한 지방에서 부엉이가 날개를 벌리듯이 하여, 죄악이 하늘에 넘치니, 내가 장수에게 명하여 정벌(征伐)하게 하였다. 그대가 이에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싸움터에 나아가, 몸소 사졸에 앞장서서 친히 예리한 칼날을 무릅쓰고, 굳은 예봉을 꺾고 적진(敵陣)에 돌격하여 드디어 병세(兵勢)가 크게 떨치기에 이르러, 적도(賊徒)들이 와해(瓦解)되고 큰 괴수(魁首)의 머리를 바쳤다. 이러한 큰 공을 생각하니, 마땅히 표창하는 은전을 더해야 하겠다.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산하(山河)를 가리켜 맹세하였으니, 나라와 더불어 함께 아름다움을 누리도록 기약하고, 복심(腹心)이 되어 정성을 다하여 후손(後孫)을 영세(永世)에 넉넉하게 하기를 바란다.”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절충 장군(折衝將軍) 행 충무위 호군(行忠武衛護軍) 김면(金沔)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적개(敵愾)하여 충성을 바치는 것은 오직 신자(臣子)의 큰 절개(節介)이요, 공(功)을 논하여 상(賞)을 행(行)하는 것은 곧 국가의 항규(恒規)이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흉악(兇惡)하고 완악(頑惡)한 사람을 모아서 군사를 일으키고 임금의 명(命)을 거역하니, 그대가 당시에 금위(禁衛)의 웅걸(雄傑)이라 칭하므로, 뽑아서 편비(偏裨)의 항렬(行列)에 참여하게 하였다. 그대가 능히 충간(忠肝)을 분발하여 적(賊)의 성루(城壘)에 돌격하고 군량(軍糧)의 길을 염탐하여 알아내며, 어렵고 위험한 것을 무릅쓰고 군대의 기운을 장(壯)하게 하여, 마침내 시호(豺虎)와 같은 무리를 섬멸(殲滅)하였도다. 그대의 공적(功績)이 이미 성하니, 내 마음으로 가상하게 여긴다.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공신의 형상을 그리고 공(功)을 솥[鼎]에 새겨서, 조아(爪牙)의 공로(功勞)를 보답하였으니 태산(泰山)이 숫돌[礪]같이 되고 황하(黃河)가 띠[帶]같이 되도록 길이 후손의 보전을 기약하라.”

하였다.

 

정충 출기 적개 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건공 장군(建功將軍) 호분위 대호군(虎賁衛大護軍) 맹석흠(孟石欽)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적개(敵愾)하여 충성을 바치는 것은 신자(臣子)의 큰 절개(節介)이요, 공(功)을 책훈(策勳)하여 상(賞)을 행(行)하는 것은 국가의 통상적인 규칙이다. 옛날을 상고하여도 모두 그러한데, 금세(今世)에 있어서 가히 폐(廢)하겠는가? 생각건대 그대는 지략(智略)이 무리에서 뛰어났고 재주와 용맹이 겸전한 사람이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고, 흉악(兇惡)한 도당(徒黨)을 불러 모아, 장수와 수령을 적살(賊殺)하고 한 지방을 도적질하여 웅거(雄據)하다가, 대병(大兵)이 그 지경에 임(臨)하자, 오히려 버마재비의 어깨로 큰 수레바퀴를 막으려고 그 발호(跋扈)가 지극하였다. 그대가 진북 장군(鎭北將軍) 강순(康純)의 막사(幕士)가 되어, 능히 몸을 빼쳐서 성루(城壘)를 짓뭉개고 시석(矢石)을 무릅쓰니, 드디어 흉한 무리를 섬멸하고, 재빨리 큰 공적을 아뢰었다. 오직 그대의 공적이니, 내가 어찌 감(敢)히 잊겠는가?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봉작(封爵)을 내려 주어 특수한 공훈에 보답하니, 태산(泰山)이 숫돌[礪]같이 되고 황하(黃河)가 띠[帶]같이 되도록 더욱 소절(素節)을 다할지어다.”

하였다.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 현록 대부(顯祿大夫)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충성을 다해서 적개(敵愾)하는 자를 대적(對敵)하여 이미 비상한 공훈을 세웠으니, 그 재능을 정표(旌表)하여 그 공(功)에 보답하는데 마땅히 적지 않은 상(賞)을 더해야 한다. 이에 지난날의 문헌(文獻)을 상고하여 떳떳한 규칙에 따르는 것이다. 생각건대 그대는 기운을 화악(華萼)8113) 에서 나누었고 빼어남을 의란(猗蘭)8114) 에서 받았다. 성품이 혼후(渾厚)8115) 하고 지식(知識)이 정통(精通)하였다. 수고하지 않고도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능히 육적(六籍)의 깊음을 다 궁구(窮究)하였고, 수고하지 않고 지시하여 주는 것이 널리 백예(百藝)의 재능을 겸하였도다. 지난번에 임헌(臨軒)8116) 하여 선비에게 책문(策問)할 때 이에 과거에 발탁(拔擢)되어 그 영특함을 날렸고, 족히 일취(日就)의 공(功)을 징험(徵驗)하였으니, 또한 천자(天資)의 아름다움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일찍이 성고(聖考)8117) 의 남기신 부탁을 받들어, 특히 중궁(中宮)과 더불어 어여삐 여겨 사랑하였고, 진실로 폐부(肺腑)의 영특함으로 항상 후설(喉舌)의 책임을 대신하였다.

마침 이번 얼아(孼芽)의 무리들이 감히 불궤(不軌)의 음모(陰謀)를 멋대로 부려, 알유(猰揄)8118) 가 황지(潢池)에서 발호(跋扈)하듯이, 효경(梟獍)8119) 이 변진(邊鎭)에서 연편(聯翩)8120) 하듯이 하니, 실로 신인(神人)이 분개를 같이 하였고 바야흐로 소간(宵肝)의 걱정을 끼쳤다. 그대가 홀로 좌우에서 주선(周旋)하고 출납(出納)하여 모의(謀議)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묘한 계책을 주고, 윗사람에게는 군대의 사정을 아뢰니, 움직이면 사의(事宜)에 합하여, 드디어 승첩(勝捷)하기에 이르러 방가(邦家)의 반석(盤石)같은 복조(福祚)를 굳게 하였고, 조야(朝野)에 있는 유성(維城)의 중망(衆望)에 부응(副應)하였다. 이에 그대의 공훈(功勳)을 생각하니, 감히 나의 상(賞)을 늦추겠는가?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 적개 3등 공신(敵愾三等功臣)으로 삼아, 유사(宥赦)가 영세(永世)에 미치게 한다. 인하여 노비(奴婢) 8구(口), 전지(田地) 80결(結), 은(銀) 10냥(兩), 옷 1습(襲), 내구마(內廐馬) 1필(匹)을 내려 주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공(功)이 성하니 힘써 상(賞)을 주고, 덕(德)이 성하니 힘써 벼슬을 주어, 이에 책훈(策勳)하는 은전(恩典)을 거행한다. 황하(黃河)가 띠[帶]같이 되고, 태산(泰山)이 숫돌[礪]같이 되도록 더욱 돈독히 보필(輔弼)하는 정성을 바칠지어다.”

하였다.

 

추충 좌익 적개 공신(推忠佐翼敵愾功臣) 숭록 대부(崇祿大夫) 의정부 우찬성(議政府右贊成) 서원군(西原君) 한계미(韓繼美)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간세(間世)의 재능이 있는 자는 비상한 공을 세우고, 비상한 공을 세운 자는 마땅히 세상에 드문 보답을 누려야 하므로, 마땅히 은총(恩寵)의 법전(法典)을 더하여 특수한 공훈을 보답해야 한다. 만약 옛 전장(典章)을 상고하더라도 모두 이 도리에 따랐다. 근래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여러 해 동안 흉모(兇謀)를 품고서 도당(徒黨)을 심고 교활함을 부려, 뜬소문을 선동하여 여러 사람의 의심(疑心)을 북돋우어, 조정의 사신[使命]을 구속하고 장수와 수령을 살해하고, 그 벌처럼 독(毒)을 부려서, 우리의 천주(天誅)를 불렀도다. 경은 본래 먼 친척에 속(屬)하였으나 다시 대쪽 같은 곧은 절조(節操)에 힘썼다. 평안도 대장(平安道大將)으로서 유명(諭命)을 듣고 곧장 나아가서 몸을 잊고 원수(怨讎)를 진멸(殄滅)하기를 맹세하고, 목숨이 다하도록 보국(報國)할 것을 기약하였다. 한 지방의 정예(精銳)한 병졸(兵卒)을 거느리고 문득 복배(腹背)의 형세(形勢)를 잡았고, 삼군(三軍)의 정(精)한 충성을 격려(激勵)하여 기각(掎角)의 형세(形勢)를 이루었다. 각각 그 용맹(勇猛)을 북돋우어 바로 그 예봉(銳鋒)을 치니, 파죽지세(破竹之勢)가 기회(機會)를 발견하는 것보다 나을 수가 없었고, 썩은 무리를 부수듯이 그 발호(跋扈)하는 것을 모두 섬멸하였다. 개선(凱旋)의 소식을 아뢰니, 상(賞)을 논하기를 늦출 수 있겠는가?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 적개 3등 공신(敵愾三等功臣)으로 삼아, 그 부모와 처(妻)에게 벼슬을 주고, 유사(宥赦)가 영세(永世)토록 미치게 한다. 인하여 노비(奴婢) 8구(口), 전지(田地) 80결(結), 은(銀) 10냥(兩), 옷 1습(襲), 내구마(內廐馬) 1필(匹)을 내려 주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이미 과궁(寡躬)을 익대(翊戴)하여 벌써 이기(彝器)를 전(傳)하였고, 다시 흉악(兇惡)한 추류(醜類)를 평정하여 공훈(功勳)이 태상(太常)에 전습(傳襲)하였으니, 아름답게도 정절(貞節)을 함께 하여 해마다 한결같은 절개(節介)에 힘쓸지어다.”

하였다.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 중의 대부(中義大夫) 함길 남도 병마 수군 절도사(咸吉南道兵馬水軍節度使) 율원군(栗元君) 이종(李徖)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기운을 용종(龍種)8121) 에서 나누었고, 실로 빼어남을 의란(猗蘭)에서 받았으니, 재예(才藝)는 범[虎]같은 도략(韜略)을 지니어 능히 공(功)을 파죽(破竹)과 같이 거두었다. 마땅히 이수(異數)에 응(膺)하여, 여러 사람의 말을 따라야 할지로다. 생각건대 그대는 성품과 도량이 단정(端正)하고 방정하며, 지식(知識)이 통달(通達)하였다. 겸하여 협귀(挾貴)하는 습관이 없었고, 항상 행실(行實)을 삼가는 마음이 있었다. 일찍 《예기(禮記)》를 말하고 《시경(詩經)》을 돈독(敦篤)히 익혔고, 항상 무(武)를 닦아서 재기(才技)가 많았도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모반(謀反)하여 군사를 일으켜서 발호(跋扈)하니, 마침 비고(鼙皷)8122) 의 소리를 듣고 장수(將帥)를 생각하였는데, 어찌 폐부(肺腑)를 짝하여 재주를 구(求)하지 아니하겠는가? 드디어 명(命)을 받아 행군(行軍)을 아뢰고 능히 기모(奇謀)를 내어 제승(制勝)하니 곧 큰 도적의 머리를 얻어 첩보(捷報)를 아뢰었고, 수순(數旬) 사이에 한 지방이 평정되었다. 마침 큰 공을 이미 아뢰니, 어찌 총명(寵命)을 늦출 수가 있겠는가?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서……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공(功)을 종정(鍾鼎)에 새기는 것은 어찌 한 때의 사사로운 은혜이겠는가? 넉넉함을 기구(箕裘)8123) 에 드리워서 만대(萬代)에 이르도록 길이 누리기를 바란다.”

하였다.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 자헌 대부(資憲大夫) 행 황해도 병마 수군 절도사(行黃海道兵馬水軍節度使) 유성군(諭城君) 선형(宣炯)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몸을 잊고 나라에 순국(殉國)함은 신자(臣子)의 지극한 충성이요, 책명(策命)하여 공훈(功勳)을 정표(旌表)하는 것은 국가의 떳떳한 법전(法典)이다. 생각건대 경은 성품과 자질(資質)이 영특(英特)하였고, 지식과 도량이 크고 넓었다. 재예(才藝)는 호웅(豪雄)의 무리보다 뛰어났고, 지식은 고금(古今)의 변(變)에 통달하였다. 일찍이 변방의 곤기(閫奇)8124) 에 응(膺)하였고, 매양 훌륭한 재간(才幹)의 명성(名聲)을 날렸으므로, 은연(隱然)히 나라에서 장성(長城)에 의지하듯이 하였고, 위대함은 세상에서 큰 나무와 같다고 일컬었다. 마침 이번에 적수(賊竪) 이시애(李施愛)가 감히 흉악(兇惡)한 모계(謀計)를 부려서 황지(潢池)에 도량(跳梁)하여 장수와 수령을 살해하여 죄악이 가득차서, 신(神)이 노(怒)하고 사람이 분개하였다. 경이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서 본도(本道)의 군사를 거느리고 엄숙하게 천위(天威)를 거느리고 능히 용감하게 나아가서 흉악(兇惡)한 무리를 소탕(掃蕩)하고, 돌이켜 첩보(捷報)를 아뢰었다. 내가 그대의 공적을 성하게 여겨서, ‘돈독(敦篤)히 잊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서……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봉작(封爵)을 내려 주어 이에 조아(爪牙)의 노고를 보답하였으니, 철권(鐵券)과 단서(丹書)로써 길이 산하(山河)의 맹세를 보전하라.”

하였다.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 정헌 대부(正憲大夫) 행 중추부 동지사(行中樞府同知事) 여산군(驪山君) 민발(閔發)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말하노라. 힘을 펴고 적개(敵愾)하여 능히 확청(廓淸)8125) 한 공(功)을 이룬다면 공훈(功勳)을 정표(旌表)하고 충성을 장려하는데 어찌 포숭(褒崇)의 법전(法典)을 거행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사사로운 은혜를 보이는 것이 아니요, 실로 떳떳한 법규(法規)를 따르는 것이다. 생각건대 경은 힘이 웅강(雄强)하였고 굳건한 기질이 남보다 뛰어났도다. 옛날에 잠저(潛邸)에 있을 때 일찍이 조아(爪牙)의 공(功)을 나타냈고, 응도(膺圖)8126) 할 때 미쳐서 오랫동안 숙위(宿衛)의 항렬(行列)에서 수고하면서, 밤낮으로 오직 부지런하니 권애(眷愛)가 더욱 더하였도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흉악(兇惡)한 모계(謀計)를 품고 죽이기를 멋대로 행하며, 드디어 중병(衆兵)을 가지고 감히 관군(官軍)에 항거하였다. 이에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命)하여 토벌(討伐)하게 하였는데, 경이 비장(裨將)이 되어 곧 죄악(罪惡)이 하늘에 넘치는 것을 분개하여 불일(不日) 간에 탕평(逿平)할 것을 맹세하고, 몸을 빼쳐 용기를 일으켜 적진(敵陣)에 돌격하여 포위(抱圍)를 뚫어서, 드디어 여러 흉도(兇徒)로 하여금 창(槍)을 거꾸로 잡게 하고, 원악(元惡)의 머리를 바치게 하였다. 경의 공적(功績)이 매우 크므로, 내 마음에 더욱 가상(嘉賞)하게 여긴다.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신하[股肱]로서 분주(奔走)하게 충성(忠誠)을 다하였고, 휴척(休戚)을 더불어 함께 하였으니, 산하(山河) 대려(帶礪)의 맹세를 생각하여 더욱 시종(始終)토록 마땅히 굳게 지킬지어다.”

하였다.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 자헌 대부(資憲大夫) 행 중추부 첨지사(行中樞府僉知事) 겸 오위장(兼五衛將) 보산군(寶山君) 오자경(吳子慶)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충성을 펴고 힘을 다하여 능히 적개(敵愾)의 공훈(功勳)을 이루면 영재(英才)를 정표(旌表)하여 재능(才能)을 장려하는데 마땅히 보공(報功)의 법전(法典)을 높일 것이다. 예로부터 이와 같았으니, 금세(今世)에 있어서 어찌 의심(疑心)하겠느냐? 생각건대 경은 기국(器局)이 크고 깊으며, 풍의(風儀)가 헌칠하고 크도다. 재주는 만인(萬人)의 적(敵)을 감당했고, 용기는 삼군(三軍)의 선두(先頭)에 서는도다. 이미 깊은 의중(倚重)을 부하(負荷)하여, 더욱 숙위(宿衛)의 책임에 힘썼도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화심(禍心)을 품고서 장수와 수령을 적살(賊殺)하고 미친 개가 그 주인을 짖듯이 독(毒)을 멋대로 내뿜었고 사나운 효경(梟獍)이 어미를 움키듯이 모계(謀計)를 멋대로 부렸다. 죄악이 차고 넘치니, 신인(神人)이 함께 분노하였다. 명하여 비장(裨將)으로 삼아, 절충(折衝)하기를 맡겼더니, 경이 능히 충의(忠義)를 분발하여 적심(赤心)으로 보국(報國)하였다. 사졸(士卒)들을 독려하고 홀로 일우(一隅)를 감당하니, 여러 추악한 무리들을 다 수그러지게 하여 능히 큰 원수를 숙청(肅淸)하였다. 내가 그대의 공적을 가상하게 여겨 ‘돈독히 잊지 않겠다.’고 한다.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예봉(銳鋒)을 꺾고 정예(精銳)를 패배시켜서 이미 번개같이 일소(一掃)하는 공(功)을 이루었으니, 태산이 숫돌이 되고 황하가 띠가 되도록 길이 노년(老年)의 절개(節介)를 보전할지어다.”

하였다.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 가선 대부(嘉善大夫) 수성군(隋城君) 겸 오위장(兼五衛將) 최유림(崔有臨)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몸을 잊고 순국(殉國)하였으니, 이미 불세(不世)의 공훈(功勳)을 세우면 덕(德)을 높여 공(功)을 보답(報答)하는데, 마땅히 비상(非常)한 은전(恩典)을 거행해야 한다. 만약 옛날을 상고하더라도 그 이루어진 법규(法規)가 있는 것이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여러 백성(百姓)들을 선동 현혹하여 흉악(兇惡)한 도당(徒黨)을 불러 모으고, 몰래 변진(邊鎭)에 웅거(雄據)하여 병과(兵戈)를 도둑질하여 농락하였다. 악(惡)이 이미 하늘에 가득찰 정도로 많아지고 죄가 천지간에 용납치 못할 바이므로, 이에 한번 분노한 군사를 일으켜, 기어이 추악한 무리를 섬멸하기에 이르렀다. 오직 경은 분연(奮然)히 몸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앞을 다투어 적진에 나아가서, 험난(險難)하고 위태(危殆)한 곳에 출입하고 시석(矢石)을 무릅쓰니, 원흉(元兇)의 머리를 바치고 만 백성들의 생활이 평안해졌다. 이러한 큰 공을 생각하여 감히 포상(褒賞)하여 장려함을 잊겠는가?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태산(泰山)과 황하(黃河)가 숫돌과 띠가 되도록 잊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으니, 단서(丹書)와 철권(鐵券)으로 길이 자손에게 전(傳)하기를 기약하라.”

하였다.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 자헌 대부(資憲大夫) 행 충무위 상호군(行忠武衛上護軍) 단성군(丹城君) 우공(禹貢)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반역(叛逆)한 사람을 토벌하여 이미 비상한 공훈을 세웠으니, 능한 사람을 정표(旌表)하여 공(功)을 갚는 데 마땅히 적지 않은 상(賞)을 더해야 할 것이다. 생각건대 경은 본래 행동이 청렴하고 충성스러우며, 일찍이 책과 검(劍)을 업(業)으로 삼았도다. 재주는 만인(萬人)의 적(敵)을 감당하고, 기운은 백부(百夫)의 장사보다 뛰어났다. 고을을 다스리니 끼친 은애(恩愛)가 있었고, 직임(職任)을 지내면 공적(功績)을 이룸이 나타났도다. 지난번에 역적(逆賊) 이시애(李施愛)가 감히 불신(不臣)의 마음을 부리고, 군사를 일으켜 막을 수가 없었다. 경이 능히 몸소 사졸(士卒)보다 앞장서서 시석(矢石)을 무릅쓰니, 한번 싸워서 크게 승리하여 드디어 적도(賊徒)들을 섬멸하였다. 내가 그대의 공적(功績)을 가상히 여겨 ‘돈독히 잊지 않겠다.’고 한다.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조아(爪牙)의 심복(心腹)으로 이미 일체(一體)가 되었으니, 서로 모름지기 대려(帶礪) 산하(山河)로 만세에 함께 보전하기를 맹세하라.”

하였다.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 가정 대부(嘉靖大夫) 행 충무위 상호군(行忠武衛上護軍) 겸 오위장(兼五衛將) 칠산군(漆山君) 정종(鄭種)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충성(忠誠)을 다하여 난(難)을 이기고 이미 불세(不世)이 공훈(功勳)을 세웠으니, 덕(德)을 높이며 공(功)을 갚는데 어찌 비상(非常)한 은전(恩典)을 거행하지 않겠는가? 만약 지나간 문첩(文牒)을 상고하더라도 스스로 떳떳한 전장(典章)이 있었다. 지난번에 역적(逆賊) 이시애(李施愛)가 감히 흉악한 모계(謀計)를 부려서 장수와 수령을 살해하고, 군사를 일으켜 감히 항거(抗拒)하여, 흉악한 기염(氣焰)이 더욱 성하였다. 내가 장수에게 명하여 토벌하게 하였는데, 경이 능히 몸을 돌아보지 않고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기계(奇計)를 내어 제승(制勝)하니, 드디어 적도(賊徒)로 하여금 와해(瓦解)되게 하고, 원흉(元兇)의 머리를 바쳤다. 공훈(功勳)이 이미 성하므로, 상을 어찌 늦추겠는가?……아아! 이름이 죽백(竹帛)에 드리워 이미 크게 내려 주는 총애(寵愛)의 법(法)에 응(膺)하였으니, 산하(山河)를 가리켜 맹세하고, 영세(永世)토록 함께 아름다움을 누리기를 보전하도록 바란다.”

하였다.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 가선 대부(嘉善大夫) 행 호분위 대호군(行虎賁衛大護軍) 풍성군(豊城君) 정준(鄭俊)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절충(折衝)하여 어모(禦侮)하고 능히 적개(敵愾)의 공훈(功勳)을 이루었으니, 덕(德)을 높이고 공(功)에 보답하는데 힘써 상(賞)을 주는 은전(恩典)을 거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사사로운 은혜가 아니라 옛날부터 공통된 법규(法規)이다. 생각건대 일찍이 경은 무직(武職)에 올라서 과궁(寡躬)을 숙위(宿衛)하였고, 변진(邊鎭)의 병부(兵符)를 맡게 되자, 여러 차례 융로(戎虜)에 승첩(勝捷)하였음을 아뢰었으므로, 내가 일찍이 믿고 중(重)하게 여겼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몰래 역적의 모계(謀計)를 품고 멋대로 적살(賊殺)을 행하고, 드디어 중병(衆兵)을 가지고 감히 관군(官軍)에 항거(抗拒)하니, 죄악이 이미 하늘에 넘쳤으므로, 진멸(殄滅)하는 것이 모름지기 극일(克日)8127) 에 해당하였다. 내가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하여 토벌하게 하였는데, 경이 편비(偏裨)가 되어 능히 지휘를 받들어, 사졸(士卒)에 앞장서서 바로 나아가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힘을 다하여 공격(攻擊)하였다. 드디어 적도(賊徒)로 하여금 창(槍)을 거꾸로 잡게 하여 스스로 미란(糜爛)하고, 원흉(元兇)이 파죽(破竹)의 형세로 모두 죽었다. 큰 공을 이미 아뢰니, 정표(旌表)하는 상(賞)을 어찌 늦추겠는가? 이에 경(卿)을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공이 많아서 상(賞)을 후(厚)하게 주어 비상(非常)한 은전(恩典)을 보였으니, 노후(老後)에 몸이 늙더라도 더욱 두 마음이 아닌 지조(志操)를 힘쓸지어다.”

하였다.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 충의 교위(忠毅校㷉) 행 호분위(行虎賁衛) 중부 사직(中部司直) 이양생(李陽生)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적개(敵愾)하여 충성을 바쳐 비상한 공적(功績)을 세웠으니, 공(功)을 기록하고 상(賞)을 주어 마땅히 막대한 은전(恩典)을 더해야 한다. 예로부터 모두 그러하였으니, 금세(今世)에 비롯된 일이 아니다. 생각건대 그대는 용감하기가 무리에서 뛰어났고, 재주와 힘이 남보다 지나쳤도다. 일찍이 시위(侍衛) 수종(隨從)에 재능을 나타냈고 완급(緩急)에 가(可)한 것을 시험하여 보였도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은혜(恩惠)를 저버리고 기강(紀綱)을 등지고 몰래 불궤(不軌)의 모계(謀計)를 품고서 당(黨)을 심고 군사를 일으켜 더욱 감히 항거(抗拒)하려는 세력을 떨치었다. 이에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명하여 빨리 천주(天誅)에 이르게 하였는데, 그대가 이에 간담(肝膽)을 분발하여 정벌(征伐)에 종군하여 목숨을 내던지고 적(敵)을 염탐하여 원흉(元兇)을 사로잡고 평정하기에 이르고, 첩보(捷報)를 아뢰고 공훈(功勳)을 바쳤다.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서……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공(功)이 있어서 마땅히 상(賞)을 주어 내가 이미 그대를 비상(非常)한 예로써 대접하였으니, 생명을 버리더라도 변치 않고, 그대는 더욱 나를 도와 변하지 말지어다.”

하였다.

 

정충 적개 공신(精忠敵愾功臣) 추증 가정 대부(追贈嘉靖大夫) 병조 참판(兵曹參判) 연천군(延川君) 차운혁(車云革)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왕은 이르노라. 적개(敵愾)하여 절개(節介)로 항거하고, 능히 험난하거나 평탄하거나 변함이 없었으니, 덕(德)을 높여 공(功)을 보답하는 것이 어찌 살거나 죽거나 간격이 있겠는가? 의리를 헤아려 보면 그러한 것이요, 사사로운 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로다. 생각건대 그대는 마음가짐이 충직(忠直)하고 기력(氣力)이 남보다 뛰어났다. 항오(行伍)에서 발탁하여 겸사복(兼司僕)을 맡기니, 효용(驍勇)하다는 명성이 들렸다. 지난번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그 동생 이시합(李施合)과 더불어 불궤(不軌)를 모의(謀議)하여, 몰래 한 지방에 웅거(雄據)하여 군사를 일으켜 기세가 치열하여 흉악한 기염(氣滔)이 바야흐로 성하였다. 그대가 충분(忠憤)을 이기지 못하고 갓끈을 청(請)하여 바로 달려가서 단신(單身)으로 적(賊)의 진중(陣中)에 들어가 몰래 친사(親士)를 효유(曉諭)하고, 드디어 이시합(李施合)을 사로잡아서 바야흐로 수레에 실어 서울로 보내려고 하다가, 도리어 힘이 부적(不敵)하여 길에서 이시합의 도당(徒黨)에게 잡히었다. 중옥(重獄) 속에 유치(留置)되었다가 그들이 패주(敗走)하게 되자, 머리통을 도끼로 쳐서 죽였다. 그대가 적도(賊徒)에게 ‘섬멸시킨 다음에야 그만 두겠다.’고 맹세하였기 때문에 적(賊)들이 그대에게 보복하기를 지극히 참혹한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아아! 세번 이기려는 장(壯)한 뜻을 펴지 못하고 도리어 삼목(三木)8128) 의 원혼(冤魂)이 되었으니, 적(賊)에 대한 분노(憤怒)의 눈[目]을 죽어도 오히려 감지 못하였으리라. 적(賊)이 이제 머리를 바치니, 그대는 반드시 마음에 통괘할 것이다. 내가 그대의 뜻을 불쌍히 여기니, 그대는 내 마음을 알라. 포상(褒賞)하는 은전(恩典)을 마땅히 남보다 먼저 해야 하므로, 이에 그대를 책훈(策勳)하여……하니, 이르거든 수령(受領)할지어다. 아아! 충혼(忠魂)과 장(壯)한 넋이 영령(英靈)으로 오히려 살아 있으리라 생각하니, 끼친 음덕(蔭德)과 꽃다운 이름을 자손에게 미치기를 바란다.”

하였다. 공신(功臣)들이 꿇어앉아 교서(敎書)를 받았다. 임금이 이준(李浚) 등을 불러서 앞서 내려 준 술잔을 올리게 하였다. 개국 공신(開國功臣) 조인옥(趙仁沃)의 아들 조관(趙貫)이 가장 늙었으므로 특별히 술을 내려 주고, 환관(宦官)으로 하여금 부축하여 내려가게 하였다. 어탁(御卓)을 적개 공신(敵愾功臣)에게 내려 주고, 강순(康純)과 어유소(魚有沼)·남이(南怡) 등을 불러서 한참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였다. 임금이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에게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고, 임금이 어탑(御榻)을 내려와서 술을 받아 마셨다. 지극히 즐거워하다가 잔치를 파(罷)하였다.

 

[註 8077]수운(需雲) : 《주역(周易)》의 괘이름.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서 비가 올 징조로, 군신(君臣)이 연음(宴飮)할 때 이른다고 함. ☞

[註 8078]대려(帶礪) : 임금이 공신(功臣)의 집안을 영구히 변치 않고 대접한다는 맹세의 말.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봉작(封爵)한 서사(誓辭)에, “황하(黃河)가 띠[帶]와 같이 작아지고, 태산(泰山)이 숫돌[礪]과 같이 평지가 되도록 나라에서 영구 보존하리라.” 한 데에서 나온 말. ☞

[註 8079]평전(平痊) : 병이 회복됨. ☞

[註 8080]추곡(推轂) : 수레의 살을 미는 것. 곧 옛날 임금이 장수를 보낼 때 스스로 수레를 밀어주던 고사에서 나온 말. ☞

[註 8081]협순(浹旬) : 10여 일. ☞

[註 8082]친친(親親) : 친척을 친하게 여기는 것. ☞

[註 8083]현현(賢賢) : 어진이를 어질게 여기는 것. ☞

[註 8084]우모(紆謨) : 꾀를 얽음. ☞

[註 8085]준조(樽俎) : 제향 때 술을 넣는 그릇과 고기를 담는 도마. 나라의 예의상 베푸는 연회. ☞

[註 8086]장자방(張子房) : 한(漢)나라 장양(張良). ☞

[註 8087]영문(令聞) : 훌륭한 명예. ☞

[註 8088]척당(倜儻) : 뜻이 크고 기개가 있음. ☞

[註 8089]문슬(捫蝨) : 방약무인(傍若無人)한 것. 옛날 진(晉)나라 왕맹(王猛)이 남의 앞에서 꺼리지 않고 옷에 붙은 이를 문지르며 이야기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

[註 8090]곤기(閫寄) : 외방의 수령(守令). ☞

[註 8091]조두(刁斗) : 군대에서 야경(夜警)하느라고 치던 동라(銅鑼). ☞

[註 8092]간우(干羽) : 문(文)과 무(武). ☞

[註 8093]호방(虎牓) : 무과(武科). ☞

[註 8094]응양(鷹揚) : 무위(武威)를 드날림. ☞

[註 8095]독비(篤棐) : 돈독하게 돕는 것. ☞

[註 8096]이기(利器) : 날카로운 병기(兵器). ☞

[註 8097]평양(平陽) : 순천(順天)의 이명(異名). ☞

[註 8098]효광(梟獷) : 흉악한 무리. ☞

[註 8099]기란각(麒麟閣) : 한(漢)나라 선제(宣帝)가 지은 누각. 공신(功臣) 11명의 상(像)을 그리어 이 각상(閣上)에 걸었음. ☞

[註 8100]후설(喉舌) : 승지(承旨). ☞

[註 8101]계옥(啓沃) : 신하가 마음에 있는 것을 임금에게 아뢰어 덕(德)을 넉넉하게 하던 일. 《서경(書經)》 열명(說命) 상(上)에, “너의 마음을 열어서 나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라.”라고 하였음. ☞

[註 8102]헌체(獻替) : 임금을 받들어 착한 일을 하도록 권하고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권함. ☞

[註 8103]단서 철권(丹書鐵券) : 쇳조각에 지워지지 않게 주서(朱書)하여 공신(功臣)에게 주어 대대로 죄를 면하게 하던 증명서. ☞

[註 8104]곤기(閫奇) : 수령(守令)의 직임. ☞

[註 8105]원융(元戎) : 원수(元帥). ☞

[註 8106]어부(魚符) : 조선조 때 군대를 동원하는 표지로 쓰이던 둥글납작한 나무패. 병부(兵符). 발병부(發兵符). ☞

[註 8107]풍패(豊沛) :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군사를 일으킨 땅으로서, 제왕(帝王)의 고향을 칭하는 말임. ☞

[註 8108]구명(軀命) : 몸과 목숨. ☞

[註 8109]복부(伏鈇) : 도끼 앞에 엎드림. ☞

[註 8110]기도(基圖) : 기업(基業)을 도모함. ☞

[註 8111]기상(旂常) : 주(周)나라 때 기(旂)에 공(功)을 새기는 것을 말함. ☞

[註 8112]원문(轅門) : 군문(軍門). ☞

[註 8113]화악(華萼) : 꽃과 꽃받침. 곧 형제 동기. ☞

[註 8114]의란(猗蘭) : 중국 한(漢)나라 경제(景帝)의 꿈에 하나의 붉은 돼지가 구름에서 내려와서 의란각(猗蘭閣)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무제(武帝)가 태어났다고 함. ☞

[註 8115]혼후(渾厚) : 사람됨이 크고 원만함. ☞

[註 8116]임헌(臨軒) : 임금이 친히 나와 앉음. ☞

[註 8117]성고(聖考) : 세종(世宗). ☞

[註 8118]알유(猰揄) : 얼룩개와 같은 짐승. ☞

[註 8119]효경(梟獍) : 나쁜 짐승. 효(梟)는 어미를 잡아먹는 새이고, 경(獍)은 아비를 잡아먹는 짐승임. ☞

[註 8120]연편(聯翩) : 잇달아 날아 다님. ☞

[註 8121]용종(龍種) : 용(龍)의 자손. 곧 왕손(王孫). ☞

[註 8122]비고(鼙皷) : 전쟁중에 울리는 북소리. ☞

[註 8123]기구(箕裘) : 가업(家業)을 어어받음. 궁장이 아들은 아버지가 단단한 나무를 구부려서 활을 만드는 것을 보고, 잘 휘는 버들가지를 결으며, 대장장이 아들은 아버지가 굳은 무쇠 조각을 녹이어 솥을 만드는 것을 보고, 부드러운 짐승 자죽을 모아서 갖옷을 짓는 일을 배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임. ☞

[註 8124]곤기(閫奇) : 장수의 직. ☞

[註 8125]확청(廓淸) : 적을 깨끗이 쓸어 없앰. ☞ [註 8126]응도(膺圖) : 천명(天命)에 응하여 나라를 세움. ☞

[註 8127]극일(克日) : 기한을 정해 싸우는 것. 급히 쳐 없앰. ☞

[註 8128]삼목(三木) : 목과 손과 목과 발에 씌우는 형. ☞

 

세조 44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11월 8일(경오)

임영 대군 이구가 아들 이준이 부인을 취한다고 풍정을 올림. 재추에게 시연케 하다

임금이 보경당(寶慶堂)에 나아가서 여러 재추(宰樞)를 불러서 새 《대전(大典)》을 의논하였다. 그때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가, 그 아들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이 새로 부인(婦人)을 취(娶)한다고 풍정(豊呈)을 올리니, 임금이 후전(後殿)에 이어(移御)하여 이를 받고, 여러 재추(宰樞)를 불러서 시연(侍宴)하게 하였다. 임금이 술에 취하여 행 호군(行護軍) 구종직(丘從直)에게 명하여 이학(理學)을 주장하게 하고, 대사헌(大司憲) 양성지(梁誠之)·판서(判書) 서거정(徐居正)·동지사(同知事) 홍응(洪應)에게 사학(史學)을 주장하게 하여, 서로 논란하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학(理學) 중에도 사학(史學)의 이론이 있고, 사학 중에도 이학의 뜻을 갖추었으니, 경(卿)들은 그것을 알라.”

하고, 구종직을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인성(人性)의 안에 사단(四端)을 없애면 다른 물건이 따로 있겠는가?”

하니, 구종직이 임금의 뜻을 맞히지 못하였다. 다시 이르기를,

“선(善)이 진실로 있다면 악(惡)도 또한 있는 것인가?”

하니, 구종직이 또한 대답하지 못하였다. 우의정(右議政) 강순(康純)·좌의정(左議政) 조석문(曹錫文)·무송군(茂松君) 윤자운(尹子雲)이 술에 취하여 이준(李浚)이 찬 물건을 다투어 빼앗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자못 품위를 잃었다.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가 이를 아뢰자, 임금이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세조 44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11월 17일(기묘)

효령 대군 이보 등에게 술자리를 베풀고, 문신 등에게 《동파집》을 강하게 하다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봉원군(蓬原君) 정창손(鄭昌孫)·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상당군(上黨君) 한명회(韓明澮)·능성군(綾城君) 구치관(具致寬)·연성군(延城君) 박원형(朴元亨)·영의정(領議政) 최항(崔恒)·좌의정(左議政) 조석문(曹錫文)·우의정(右議政) 강순(康純)·남양군(南陽君) 홍달손(洪達孫)·중추부 판사(中樞府判事) 윤사분(尹士昐)·한성부 윤(漢城府尹) 이석형(李石亨), 중추부 지사(中樞府知事) 성봉조(成奉祖)·윤사흔(尹士昕)·임원준(任元濬), 좌찬성(左贊成) 김국광(金國光)·우찬성(右贊成) 한계미(韓繼美)·좌참찬(左參贊) 유수(柳洙)·무송군(茂松君) 윤자운(尹子雲)·병조 판서(兵曹判書) 박중선(朴仲善)·대사헌(大司憲) 양성지(梁誠之)·행 호군(行護軍) 송처관(宋處寬)·중추부 동지사(中樞府同知事) 홍응(洪應)·이조 판서(吏曹判書) 성임(成任)·중추부 첨지사(中樞府僉知事) 구종직(丘從直)·형조 판서(刑曹判書) 서거정(徐居正)을 불러서 술자리를 베풀었다. 문신(文臣)과 성균관 유생(成均館儒生)에게 《동파집(東坡集)》을 강(講)하게 하니, 시강관(侍講官)이 혹은 제대로 논란(論難)하지 못하자, 임금이 노(怒)하여 말하기를,

“군신(君臣)이 서로 강론(講論)할 때 어찌 서로 규제(規制)하는 뜻이 없겠는가? 지금 시강관(侍講官)은 의(義)에 있어 그러하지 못하니, 어찌 된 것인가?”

하고, 즉시 명하여 물러가게 하였다. 한참 있다가 불러서 위로하여 말하기를,

“경 등이 논란(論難)한 것이 뜻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물러가도록 하였으니, 혐의(嫌疑)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각기 즐거움을 다하라.”

하였다.

 

세조 44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11월 19일(신사)

백악산에서 호랑이를 잡다

어떤 사람이 와서 호랑이가 백악산(白岳山)으로 들어갔다고 고(告)하니, 임금이 경복궁(景福宮) 북쪽에 거둥하여 말을 머물게 하고, 호종(扈從)한 종친(宗親)·재추(宰樞)를 불러서 술자리를 베풀었다. 임금이 겸사복(兼司僕) 이양생(李陽生)에게 명하여 호랑이의 자취를 찾게 하고, 환관(宦官) 박존수(朴存壽)가 남보다 체모(體貌)가 잔열(殘劣)하였으나 일찍이 과장(誇張)하여 말하기를,

“내가 능히 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

하였으므로, 임금이 박존수를 불러서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네가 호랑이를 잡을 때이다.”

하니, 박존수가 돈수(頓首)하고 말하기를,

“신(臣)이 다만 손으로는 능히 할 수 없으나, 만약 장창(長槍)이나 대검(大檢)을 가진다면 오히려 능히 할 수 있겠습니다. 청컨대 이양생(李陽生)과 함께 가게 하여 하여 주소서.”

하였다. 임금이 크게 웃으면서 우인(虞人) 한복련(韓卜連)으로 하여금 박존수를 거느리고 호랑이를 찾게 하였으나, 이윽고 명령하여 이를 중지시키고, 임금이 우의정(右議政) 강순(康純)에게 이르기를,

“경이 건주(建州)를 정벌할 때에 나무를 쪼개어서 흰 데다 글을 썼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하니, 강순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글에다가 무엇이라고 썼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조선 대장(朝鮮大將) 강순(康純)이 정병(精兵) 1만 명을 거느리고 건주(建州)를 공격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공격한다는 글자는 통쾌하지 못하니, 멸(滅)한다는 글자가 가장 좋았을 것이다.”

하고, 임금이 백악산(白岳山)에 올라갔는데 호랑이가 낭떠러지 골짜기에 숨었으므로 쏘아서 잡았다. 어가(御駕)가 돌아오는데, 어떤 한 사람이 길 옆에서 통곡하므로, 이를 물으니 말하기를,

“청풍군노(淸風郡奴) 연금(延金)입니다. 선상노(選上奴)8137) 로서 군기감(軍器監)에 역사(役事)하는데, 지금 또 조지서(造紙署)에 옮겨서 역사(役事)시키니, 배고프고 추운 것을 이기지

하여 이 때문에 통곡합니다.”

하니, 즉시 유의(襦衣) 1령(領)을 내려 주고, 승전 환관(承傳宦官) 이득수(李得守)로 하여금 음식을 먹이게 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군기시(軍器寺)의 관리와 청풍(淸風)의 경저인(京邸人) 등서 문병하였다.

[註 8137]선상노(選上奴) : 각 지방 관아에서 뽑아 서울로 올려 보내던 노비를 말함. ☞

 

세조 44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12월 5일(정유)

정인지 등에게 술자리를 베풀고 정종의 발언에 대해 강순을 책하다

임금이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봉원군(蓬原君) 정창손(鄭昌孫)·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능성군(綾城君) 구치관(具致寬)·연성군(延城君) 박원형(朴元亨)·인산군(仁山君) 홍윤성(洪允成)·좌의정(左議政) 조석문(曹錫文)·우의정(右議政) 강순(康純)·우찬성(右贊成) 한계미(韓繼美)·좌참찬(左參贊) 유수(柳洙)·우참찬(右參贊) 윤필상(尹弼商)·도승지(都承旨) 권맹희(權孟禧) 등을 인정전(仁政殿)에 불러서 술과 음식을 먹이고, 특별히 박원형·홍윤성·조석문·강순·윤필상을 내전(內殿)으로 불러서, 홍윤성에게 이르기를,

“어제 정종(鄭種)의 말을 경(卿)도 들었는가?”

하니, 홍윤성이 대답하기를,

“신이 박원형에게 대략 들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조석문·강순 등에게 이르기를,

“이것은 주장(主將)의 잘못이다.”

하니, 강순이 대답하기를,

“논공할 때 신은 건주(建州)에 갔으므로,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한참 있다가 박원형·홍윤성에게 명하여 태평관(太平館)에 와서 적도(賊徒)를 국문(鞫問)하게 하고, 윤필상에게 명하여 《북정록(北征錄)》을 찬(撰)하게 하였다. 사람들에게 명하여 호랑이 발자취를 백악산(白岳山)에서 찾게 하고, 이윽고 임금이 말을 타고 화약고(火藥庫) 앞산 꼭대기에 이르러서 종친(宗親)·재추(宰樞)를 불러서 술자리를 베풀었다. 이날 저녁 때에 이르러 호랑이를 사로잡고 돌아왔다.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서 어가(御駕)를 수종(隨從)한 종친(宗親)·재추(宰樞)를 불러서 술자리를 베풀었다.

 

세조 44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12월 9일(신축)

건주위를 정벌한 군공을 논하다

건주위(建州衛)를 정벌(征伐)한 군공(軍功)을 논(論)하여 강순(康純)·윤필상(尹弼商)을 1등(一等)으로 삼아서 각각 작(爵) 2자급(資級)을 뛰어올리고, 노비(奴婢) 아울러 10구(口)를 내려 주었고, 어유소(魚有沼)·남이(南怡)·노사신(盧思愼)을 2등(二等)으로 삼아서 1자급(資級)을 뛰어올리고, 노비(奴婢) 아울러 8구(口)를 내려 주었고, 임득정(林得楨)·신숙주(申叔舟)·구치관(具致寬)·홍윤성(洪允成)·김국광(金國光)·우공(禹貢)·이숙기(李淑琦)·운수 도정(雲水都正) 이효성(李孝誠)·하숙부(河叔溥)·권맹희(權孟禧)·이극균(李克均)·김용달(金用達)·경유공(慶由恭)을 3등(三等)으로 삼아서, 노비(奴婢) 아울러 6구(口)를 내려 주었고, 한계미(韓繼美)·이극배(李克培)·오백창(吳伯昌)·배맹달(裵孟達)·이종생(李終生)·김유종(金有宗)·이경(李經)을 4등(四等)으로 삼아서, 노비(奴婢) 아울러 4구(口)를 내려 주었고, 모두 자품(資品)을 올렸다. 조신손(趙信孫)·이종산(李鍾山)·최명손(崔命孫)·이효간(李孝幹)·문수덕(文修德)·김순신(金舜臣)·이평(李枰)·이의형(李義亨)·허혼(許混)·김춘경(金春卿)·박숙무(朴叔楙)는 조병(調兵)한 일로써 1자급(資級)을 뛰어올렸고, 이수의(李守義)·강거인(姜居仁)·전보(田寶)·민처령(閔處寧)·김혼도(金混都)·경손(慶孫)·김양중(金養中)·정효지(鄭孝智)·이광세(李匡世)·신복륜(申卜倫)·유영수(柳永脩)·강복(康輻)·한상직(韓尙直)·김사도(金思道)·지효근(智孝根)·영한(甯漢)은 산료(散料)한 일로써, 한치의(韓致義)·민질(閔質)·김후(金厚)·송인(宋麟)·홍계용(洪繼庸)·김칭(金偁)·박종수(朴從秀)·김민(金民)·우전(禹奠)·박춘산(朴春山)·이탁(李擢)·권평(權枰)은 유방(留防)한 일로써, 어세겸(魚世謙)·김견수(金堅壽)·김백겸(金伯謙)·황사윤(黃斯允)·조간(曹幹)은 봉사(奉使)한 일로써 모두 1자급(資級)을 올려 주었다.

 

세조 44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12월 18일(경술)

정인지·정창손 등과 변방을 방비하는 일을 의논하다

임금이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봉원군(蓬原君) 정창손(鄭昌孫)·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능성군(綾城君) 구치관(具致寬)·연성군(延城君) 박원형(朴元亨)·영성군(寧城君) 최항(崔恒)·영의정(領議政) 조석문(曹錫文)·인산군(仁山君) 홍윤성(洪允成)·좌의정(左議政) 홍달손(洪達孫)·우의정(右議政) 강순(康純) 등을 불러서 빈청(賓廳)에 모아서, 변방(邊方)을 방비(防備)할 일을 의논하였다.

 

세조 44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12월 26일(무오)

우의정 강순아내가 연좌로 고부 관노로 있는 아비 이확을 용서할 것을 청하다

우의정(右議政) 강순(康純)의 아내 이씨(李氏)가 상언(上言)하기를,

“아비 이확(李穫)이 형(兄) 이양(李穰) 때문에 연좌(緣坐)되어서 고부 군노(古阜郡奴)에 영속(永續)된 지 지금 이미 15년입니다. 지금 계집이 지아비의 공(功)으로써 또한 봉작(封爵)을 얻었으나, 청컨대 봉작을 사양하니, 아비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하니, 특별히 명하여 이를 석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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