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남산,846m>
<소순희작/유화/50호>
유월의 풍경
소순희
뻐꾸기 울음 등뒤에 따라붙는 유월이면
찔레 덤불마다 누이의 분내음이 함께 피어났다
비 지나간 뒤 더 푸르게 다가온
논물 가득 찬 가랫들 다랑논마다
조각난 하늘이 들어와 잘방거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논둑에 앉아 권련을 피며
두어 번 헛기침을 하자 감나무 밑
암소가 되새김질하다가 물끄러미 건네다 본다
구름도 하늘 길 가다 쉬어 가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봉밥 같은 멧등의 흐벅진 풀 내음에
까무룩 취한 고향의 하루가
고남산 아랫도리를 살갑게 감아올리고 있었다
2023
유월의 풍경은 농촌의 평화롭고도 서정적인 여름날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낸 작품이다
유월이라는 계절이 주는 시각.청각.후각적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결합하여, 유년의 기억과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1.감각의 공감각적 변주와 고향의 생명력
시인은 유월의 시작을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보지 않고, 감각의 결합을 통해 입체적으로 깨운다.
ㅇ청각과 후각의 조화 : 뻐꾸기 울음 등 뒤에 따라 붇는 유월 이라는 청각적 배경위에,
찔레 덤불마다 누이의 분 내음이 함께 피어 났다며 후각적 이미지를 얹는다
유월의 푸르름 속에 깃든 그리운 가족의 이미지를 후각화하여 고향의 포근함을 극대화 한다.
ㅇ시각적 역동성 : 비 지나간 뒤 푸르게 다가온 /논물 가득찬 가랫들 다랑논의 묘사는 논에 비친
하늘을 "조각난 하늘"로 형상화한 시적 상상력이 뛰어나며, 생명력이 차오르는 농촌의 정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2.자연과 인간, 동물이 조화를 이루는 평화로운 풍경화
시의 중반부는 서사적이고 정적인 농촌의 일상을 담아내며 깊은 평온함을 선사한다.
ㅇ정겨운 농촌의 한때 : 논둑에 앉아 권련(담배)을 피우며 헛기침 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소리에 반응하여 되새김질하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암소의 대비와 조화는
한국 전통의 농촌 정서를 그대로 재현한다
ㅇ물아일체(物我一體)의 풍경 : 조각난 하늘이 들어와 잘방거리고 있었다거나 구름도
하늘길 가다 쉬어가는 풍경 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 안에서 서로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속에서 피어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라는
구절은 삶을 긍정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을 반영한다.
3.토속적 시어를 통한 향수의 극대화와 영원성
마지막 연은 고향에 대한 깊은 애착과 아련함을 압축적인 시어로 마무리 지어 여운을 남긴다.
ㅇ풍요와 기억의 냄새 : 고봉밥 같은 멧등(무덤)이라는 비유는 죽음의 공감마져도 따뜻하고
풍요로운 삶의 연장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 위에 돋아난 흐벅진 풀 내음은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고향의 영원성을 상징한다.
ㅇ황홀한 취기 : 까무룩 취한 고향의 하루가 산자락을 살갑게 감아 올리고 있었다는 마무리는
유월의 싱그러운 자연과 고향의 정취에 시인 자신(혹은 독자)이 매료되었음을 보여준다.
소순희의 <유월의 풍경>은 바쁘고 삭막한 현대인들에게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처방해 주는 시다.
2023년이라는 창작 시점이 무색할 만큼, 시 속의 유월은 유구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농촌의 원형적
아름다움과 가족애 대한 그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읽는이로 하여금 코끝에 풀 내음이 스치고,
귀에 뻐꾸기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