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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 ♣

[안동] 도산서원

작성자대마왕 양스|작성시간11.07.13|조회수38 목록 댓글 0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우리나라 유학의 길을 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의 운영, 도산서당의 설립으로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전력하였다.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일본 유학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도산서원은 조선 선조 7년(1574)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보물 제211호)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보물 제210호)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선조 8년(1575)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서원의 건축물들은 민간인들의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 자료 ]

 

 

매표서 에서 도산서원까지

전체 구성도

맨 좌측이 주차장 및 매표소 입니다.

 

 

 

 매표소에서 요금을 내고 안으로

 

 

 

 

입구에서 도산서원까지는 조금 걸어들어가야 합니다.

 

 

 

 

 

 

중간쯤에 오른쪽에 위치한 풍경

 

 

 

 

 시사단

조선시대 영남지방의 과거시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건물이다.

정조(재위 1776∼1800)는 이황의 학덕과 유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조판서 이만수에게 도산별과를 새로 만들어 지방의 인재를 선발하게 하였다.

 이러한 과거시험을 기념하기 위해 정조 20년(1796)에 영의정 채제공의 글로

비문을 새기고 시사단을 세웠다.

그 뒤 순조 24년(1824)에 고쳐 세우고, 1974년 안동댐 건설로 현 위치에서 지상 10m의 축대를 쌓아 그 위로 비각과 비를 옮겨지었다.

비각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둥 사이 벽 가운데를 가로질러 댄 나무인 중방 아래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

판벽을 둘렀고, 추녀 4곳에 얇은 기둥을 받쳐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 자료 ]

 

 

 

 

 

 

 

 

 

 

도산서원 전경

 

 

 

 

 

 도산 서원 앞 풍경

건너편에 시사단이 보인다

 

 

 

인증샷

 

 

 

 

 

 

 

 

 

 

 

 

 

왕 버들나무

 

 

 

 

 

 

 

 

 

 

 도산서원 입구

 

 

 도산서원 제일 좌측에 위치한 [역락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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